PLAYLIST

[야마세]개막의 불꽃

Track 01. Alternative

* 야마세 :: 시노노메 야마토 + 마세 히마와리

* BLAST - Alternative


마세 히마와리가 에덴을 알고 난 이래 가장 곤혹을 치렀던 일은 다름 아닌 공연이 끝난 직후 가라앉지 않은 흥분에 두근대는 심장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다들 노래 좋았지…….”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회고와 함께 몸 뒤척이는 소리가 이어진다. 기척을 낼 존재라곤 히마와리 하나뿐인 공간에는 닫힌 창 너머로도 채 틀어막지 못한 풀벌레 소리만이 잔잔했음에도, 눈을 감으면 검은 사위 위로 채도 높은 음색이 떠올랐다. 어둠을 보면 삼아 휘갈겨지는 악보들을 읽을 수 있는가 하면 전문적인 음악 지식이 없는 히마와리로서는 당연히 아니라는 답밖에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대를 보고 듣고 느꼈던 순간의 감각이 선명해서, 도무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밝은 주황색, 파스텔 톤의 녹색, 짙은 푸른색, 그리고 불타는 듯한 붉은색. 유독 뇌리에 박힌 네 가지 색을 곱씹는다. 그중에서도 붉은색. 마지막 순서였기 때문일까, 어쩌면 제게 홍보지를 건네준 소년이 속한 밴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년을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익숙한 모교의 교복과 바다색의 올곧은 눈동자, 또 시원하고 담백한 목소리. 그 모든 색에 이끌려 히마와리는 홍보지를 받아들었다. 평소 같았다면 홍보지든 광고지든 집 근처의 공원에 들러 가로등 옆 쓰레기통에 처박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공원에 들를 겨를도 없이 집으로 직행해 책상 한가운데를 내어주고 말았다. 같은 학교 후배가 준 거여서 그런가? 선배라는 소리 들은 건 처음이었는데. 강렬했던 첫 만남을 떠올리고 나니 자연스레 공연에 관심이 갔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무슨 밴드 소속이라고 했더라……. 기억나지 않는 이름에 지면을 더듬었던가. 출연 밴드, 페어리 에이프릴, 오시리스, 당시에는 읽는 방법을 알 수 없었던 큐어큐어트론, 그리고……

“……블레이스트.”

「BLAST」라는 철자를 블라스트가 아닌 블레이스트로 발음한 이유는 분명 즐겁다는 듯 밴드를 소개했던 소년의 목소리가 뒤늦게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나직이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불꽃이 튀는 것만 같은 그 이름을 속으로 두어 번 곱씹던 히마와리는 홍보지에 크게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이 날 특별한 일정은 없는데…… 보러 갈까. 순 제멋대로에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밴드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뿐, 공연을 실제로 보러 간 경험은 없다. 당장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만 해도 라이브 하우스 여럿을 지나치는데도. 어설픈 약도로 보건대 라이브 장소인 ‘에덴’ 역시 몇십 번의 왕복 중 단 한 번의 관심도 주지 않은 익숙한 길목에 있을 것이었다.

왜 갑자기 의욕이 생겼는지는 히마와리로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년에게서 받은 홍보지를 버리느냐 마느냐, 또한 그 공연에 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지는 오롯이 제 손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끝내 선택했다는 것. 그뿐이었다.

* 진심 전력으로 고른 선택에 옳고 그른 건 없어

* 답을 맞춰보는 건 모든 게 끝난 다음에 해도 돼

무대 위에서 소년은 노래했다. 운명이니 한계니 하는 것들은 전부 환상이라고,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순간은 무수히 뻗은 선택지 끝의 결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대 아래에서 히마와리는 생각했다. 왜 자신이 이 공연을 보러 오길 택했는지를. 제 선택에 진심 전력 따위는 없었다. 그저 가벼운 변덕이었을 뿐. 운명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만남에는 명료한 이름표가 붙었다. 선택. 이유나 계기가 어찌 되었든, 이곳에 온 건 내 선택이었어. 너희를 만난 건 그 결과고. 소년의 노랫소리가 히마와리를 물들였다. 붉게, 붉게, 또 붉게.

* 내가 아니었다면

* 네가 아니었다면

*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나에게 물어

히마와리에게 소년의 색은 기꺼웠다. 소년의 것뿐만이 아니라 에덴이라는 장소에서 마주한 형형색색의 채도가, 눈부신 색이, 그토록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연주가. 그 모든 것이 사무치게 사랑스러웠다. 자신을 오롯이 물들이는 감각마저 달가울 만큼.

* 무수하게 흩어진 별 조각 사이에서

* 선택한 내가 나라서 다행이다

그저 스쳐 지났을 뿐인 사소한 선택이었다. 그 별 볼 일 없는 선택들이 모여 다다른 결과가, 히마와리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만약 공연을 보러 가지 않았다면, 그날 홍보지를 집까지 가져오지 않았다면, 종이를 나눠주는 후배에게 아는 척하지 않았다면, 그 길목으로 가지 않았다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라는 수많은 가능성. 또한 끝내 거머쥐고 만 지금 이 순간의 ‘나’.

히마와리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었다. 그리고는 새로이 알게 된 네 밴드의 이름을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정식 음원이 등록된 밴드가 있는가 하면 공연 후기조차 뜨지 않는 밴드 역시 있었다. 아무렴 어떠한가. 자신은 앞으로 그들을 수도 없이 곱씹을 테고, 그들의 노래는 더 높고 넓게 퍼져나갈 것이다. 꼭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것은 제 안목에 대한 확신이 아닌, 그들의 색에 내거는 소망에 가까운 마음.

“그 라이브 하우스에 다시 가보면 다음 라이브가 언제인지 알 수 있겠지?”

미루지 말고 내일 가봐야겠다……. 익숙한 길목 위 낙원의 이름을 한 라이브 회장을 떠올리며 히마와리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툭, 조금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손목이 침대 위로 떨어진다. 다시금 찾아온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창을 닫는다. 무채색으로 꺼진 사위를 파고드는 기억 속 색채는 여전히 선명했다.

* 세차게 말을 걸어오는 그 심장의 고동은 현실이야?

시부야의 무수한 건물 사이로 꺼져가는 여명 같은 색이 말을 걸었다. 그제야 귀 기울여 헤아려보는 심장 소리는 거셌다. 급히 뜀박질이라도 한 것처럼 두근거리는 소리가, 두근, 두근. 그늘 속에서 몸을 둥글게 만 채 그 조용한 외침을 세어보던 히마와리가 일순 아, 희미한 외마디를 토해냈다. 감은 눈두덩 위로 불티처럼 일렁이던 해사한 색은 제 심장의 고동에 맞춰 깜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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