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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꽂힌 크림치즈 버터크림 케이크가 가지는 의미

이하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 인력의 복리후생

만가 by 挽歌
  • 로고스박사 드림. NCP/CP 여부 자유롭게 봐주세요.

  • 다른 엘리트 오퍼레이터들(특히 블레이즈)이 함께 나오며, 오리지널 박사 설정이 존재합니다.

  • 1098년 메인 스토리 11-14지. 런디니움 사변 마무리 후, 위대한 족장 가비알 리턴즈 이후 시점.

  • 메인 스토리 2부와 로고스의 인사 기록 파일, 모듈 스토리 언급이 있습니다.

  • 후기를 제외한 본문 공백 포함 9835자.


P.M. 04:21 / 맑음

1.

"저기 말야? 로고스, 설마 겨우 이걸 말하려고 부른 건 아니지?"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부산스럽게 휴게실에 도착한 블레이즈가 자신의 동료인 로고스를 앞에 두고 어딘가 맥이 빠진 얼굴로 눈썹을 올렸다.

서류를 든 채로 고개를 바로 세우던 로고스의 말이 이어진다. 그렇다만.

이 대화를 짚으려면 몇십 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블레이즈는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의 강습 전문 정예 오퍼레이터로 속해있으며 열과 관련된 아츠를 사용할 수 있고, 300m 높이의 상공에서 보호장비도 없이 뛰어내리는 데다가 임무가 끝나면 훈련실에 가서 벽 하나는 거뜬히 부숴 먹는 식의 강도 높은 훈련을 빼먹지 않기로 유명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내일을 기점으로 박사의 어시스턴트가 교체되는데, 다음 어시스턴트를 블레이즈가 담당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간 있었던 일'을 토대로 잠깐 박사의 얼굴을 봐야 하나 싶었으나, 급한 연락이 있었다면 호출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블레이즈는 몇 번이고 보았던 복도를 지나 익숙한 무게의 톱날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류를 가득 안고 있는 아미야가 그 훈련실의 문을 박차고 열어 "──블레이즈 씨, 계신가요? 로고스 씨가 블레이즈 씨를 급하게 찾는다고 하는데요!" 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자신의 소중한 동료에게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아미야의 말을 듣자마자 휴게실에 도달했고, 블레이즈를 맞이해준 대답은, 자신이 곧 외근을 나간다는 다소 짧은 본론이었다. 당연하지만 정예 오퍼레이터들 또한 현장에서 박사의 지휘를 받는 여타 다른 전투 담당 오퍼레이터들과 비슷하게 로도스 아일랜드의 외근부에 속해있다. 그리고 그들은 특히 로도스 아일랜드의 대체하지 못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력이 되어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출장이나 외근 같은 일들은 이미 일상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블레이즈는 더더욱 제 앞에 있는 밴시가 이렇게 특별히 자신을 불러낸 이유에 대해 가늠하지 못했으나…….

"언제까지 가길래?”

“일주일. 어림잡아 9월 6일 귀환 예정이다.”

“그렇…… 잠깐, 6일?

“그래.”

이 시답지 않은 외근 사실을 자신에게 말하는 이유가 뭘까. 블레이즈는 다소 뜬금없는 통보에 의아해하며 별 의미 없이 고개를 든 동시에 말을 멈췄다. 주파수 수신에 성공한 것처럼 블레이즈가 머리 위에 있는 귀를 안테나처럼 세운다.

“그러면 너, 못 먹는 거야?”

그렇다. 감염자를 수용하고 더 나은 방안을 생각하는 로도스 아일랜드와 협업하는 오퍼레이터들은 한둘이 아닐뿐더러 그러한 감염자들이 로도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로도스 아일랜드가 보이는 감염자에게 우호적인 태도도 있겠지만, 복지 또한 큰 지분을 차지한다. 광석병의 진행 수준에 따른 의학적 진단, 품질있는 식사 및 숙박 지원, 강도 높은 월급 및 후한 상여금, 각종 첨단 장비와 시설, 감염자들을 위한 정보 공유 및 커뮤니티 구축.

……그리고 그중 하나로, 1년에 한 번씩 오는 오퍼레이터의 생일에 맞추어 자그마한 케이크를 선물해주는 것 또한, 직원의 복리 후생에 포함되어 있다.

감염자들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로서 차별받으며 지내왔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들은 그 수만큼이나 개인이 많은 사정을 가지고 있었고, 개중엔 자신의 생일조차도 축하받지 못하며 지내온 이들 또한 분명 적지 않았다. 되려 그렇기 때문에, 로도스 아일랜드가 감염자의 보호와 의료 기술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정된 터전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일상 속 이어지는 누군가의 생일에 타 오퍼레이터들이 함께 축하해주며 생일 케이크를 내년에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이 로도스 아일랜드만의 작은 문화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이런 유행의 뿌리를 살펴보면, 로도스 아일랜드의 전신인 바벨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로고스 또한 계곡을 벗어나 자신의 고향을 마주한 어린 밴시로서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 바벨에 도착했을 때, 해가 지나기 전에 그가 먼저 받았던 선물 중 하나는 작은 크기의 컵케이크였고, 이러한 약속은 매번 케이크의 형태는 다를지라도 로도스 아일랜드에서도 계속 이어져 왔다.

작년까지는.

"그렇겠지. 다소 유감스러우나."

“그럼 파티도 못 하겠네.”

정예 오퍼레이터들끼리…… 항상 매년 챙겨왔는데. 블레이즈가 드물게 아쉬움을 표한다. 블레이즈는 동료의 생일이 찾아올 때마다 맥주잔을 들며 축하 파티를 이끄는 것을 좋아했다. 언제나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그가 왁자지껄한 걸 언제 싫어했냐마는, 이번 연초, 빅토리아를 지나고 나서 아웃캐스트의 유품이 전달된 이후 더더욱 그런 모습을 보였다. 로고스 이전 가장 마지막으로 무사히 생일을 축하하며 파티를 마무리했던 그날의 주인공은 로즈몬티스였으나 중단된 정예 오퍼레이터들의 생일 파티 또한 존재했고, 이전과 비교하면 인원수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특정 기점마다 그들 몫의 케이크는 언제나 남겨지게 되던 것을, 로고스 또한 역시 모르지 않다는 듯 수긍하듯 눈을 내리 감았다 떴다.

“많이 아쉬워했겠군.”

“…….”

그 무엇도 지칭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블레이즈는 그것이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어쩐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된 표정을 바라보던 로고스가 슬슬 출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정리하는 식으로 동료의 주의를 끌었다. 블레이즈. 박사의 다음 어시스턴트는 너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박사가 서류 정리에 서투른 편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이번 주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들은 따로 서랍 두 번째에 정리해 두는 식으로 분류해 뒀으니, 인수인계에 참고하도록.”

“……됐고, 제대로 돌아오기나 해!”

손에 잡힌 팔랑팔랑한 서류를 흔들면서, 블레이즈는 이만 간다고 말한 뒤 걸음을 옮기는 로고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외쳤다.

2.

런디니움 사변이 마무리된 후 박사와 블레이즈가 이번 여름휴가를 목적으로 아카후알라에서 시간을 보낸 뒤 돌아 왔을 때 이 또한 많은 일이 있었다. 박사는 가비알에게 떠밀려 반강제로 휴가행에 함께했고, 블레이즈가 켈시에게 특별히 요청했던 비행선을 박살 내고 사이좋게 감봉을 당한 이후, 뒷수습의 명목하에 블레이즈와 박사는 필연적으로 작전에 함께 나가는 일이 더러 존재했다. 이 날 또한 크게 다르진 않았다.

로고스가 외근을 나간 이후 박사의 다음 어시스턴트는 블레이즈가 지정되었고, 이 둘은 계획된 스케줄 중 하나로 다른 오퍼레이터들과 함께 주마다 진행되는 장기 섬멸 의뢰를 마무리하고 오는 길이었다. 박사의 지휘를 토대로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복귀하기 위해 다른 오퍼레이터들을 먼저 철수시킨 뒤 둘이 마지막 대열로 함선의 갑판 위를 걷고 있을 때, 블레이즈가 전술 단말기를 바라보고 있던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있잖아, 박사.”

“응.”

“알고 보낸 거야? 로고스가 5일 이후에 돌아온다는 거."

“맞아.”

순순한 긍정. 조율하는 동안 일정이 겹쳐서……. 그리 말하는 박사의 눈동자는 많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시에 아직 사람들의 발자국이 닿지 못한 미지의 장소를 떠올리게 했다. 이를테면 사미 숲속 깊은 곳의 눈밭이라던가. 어딜 바라보고 있는지 쉬이 파악하기 어려운 희끄무레한 동공이 블레이즈 쪽을 응시하면, 이내 뒤늦게 박사의 시선을 느낀 블레이즈가 사과를 받으려 했던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여러 번 저었다.

"아냐, 뭐라 하려던 의도는 아니었어. 그렇잖아? 박사도 알다시피, 파티하던 거. 왠지 당연하게 해왔고."

"응, 저번에 로즈몬티스의 생일을 축하해준 것도."

"그치? 그냥, 스카우트나 에이스처럼, 아웃캐스트의 생일은 이번에 못 챙겨주지 못한 게 생각나서……."

블레이즈는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세차게 이야기하다 걸음을 멈추면, 평소답지 않게 눈썹을 늘어트린 채로 말끝을 흐린다. 호승심 있게 전기톱을 든 채로 감염자들의 권리는 감염자들의 손으로 되찾는다고 외치던, 거대한 확신에 차 있던 그에게 있어선 아주 드문 모습이었다. 일들이 전부 마무리되면,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

박사는 런디니움에서 있었던 일을 잠시 회상한다. 우뚝 솟은 더 샤드 빌딩을 기준점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던 곳. 매캐한 화약 냄새와 시민들의 비명에 찬 목소리, 한탄과 번민, 노여움과 슬픔, 폭력이 불러 일으킨 수많은 참상. 혼란의 소용돌이 속 그 사이 로고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있다.

블레이즈가 마무리 못한 말들의 매듭을 짓는 것은 박사의 대답이었다.

"……블레이즈."

"응, 왜?"

“괜찮을 거야……. 네가 아는 로고스라면.”

그대로 바람이 분다면 너무나 쉽게 묻힐 것 같은 고저 없는 목소리.

동시에 갑판 위에 바람이 불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지휘관의 말을 들은 블레이즈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 한숨 섞인 웃음으로 추정되는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이후 자신의 머리칼을 박박 헤집는다. 바보같이 지금껏 괜한 소리를 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그러게. 내가 뭘 걱정하고 있던 거람. 박사의 하얀 머리칼이 나부낄 때, 돌아가자고 말하는 블레이즈가 먼저 발을 옮겼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전술 지휘관은 바로 뒤따라가지 않고 걸음을 멈춘 채 세찬 바람 사이로 하늘을 바라봤다. 지평선 밑으로 해가 느리게 지고 있을 때, 줄기처럼 뻗어 나온 햇살 사이로 가족처럼 보이는 파울비스트 몇 마리가 함께 지나갔고, 박사는 자신의 전술 단말기를 들었다.

3.

로도스 아일랜드 정예 오퍼레이터 로고스가 외근을 향한 지역은 림 빌리턴의 아이언 캐럿시티였다. 림 빌리턴은 카우투스들의 고향이기도 한, 수많은 컨소시엄이 자리한 대규모 기업도시다. 척박한 땅에 떠 있는 별의 숫자만큼이나 오리지늄 광산의 물자를 채굴하기 위한 기업들이 존재했으며─ 광산을 채굴한다는 특성상 감염자의 숫자 또한 필연적으로 늘곤 했다.

최근 로도스 아일랜드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협력하고 있는 광산 업체 중 하나가 연락이 끊겨 물자 거래가 원활히 되지 않고 있었다. 닥터 켈시는 그에게 로도스 아일랜드 림 빌리턴 지부는 타지역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에 있으니 만일 배타적인 태도의 경쟁 업체들이 불시 검문이라는 명목하에 감염자들을 색출해 내고 있다면 그들을 구출해달라고 요청했고, 밴시가 끝이 보이지 않는 황야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 후 진상에 닿게 된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건은 이랬다. 동남쪽 광산의 채굴팀은 여느 때와 같이 작업을 마친 뒤 거점으로 복귀하려고 했으나, 오리지늄의 예상치 못한 폭발로 수송차가 전복되며 광산의 골조가 무너진 탓에 꽤 많은 인력이 사태에 휘말려버렸다. 밀폐된 장소의 부족한 산소 속 오리지늄 가스에 장시간 노출이 되면 집단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이에 대한 감염자 구출 대책을 세우느라 그대로 업무가 마비 되어버린 것이다.

딱히 시간을 지체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후 사정을 충분히 파악한 로고스는 자신이 로도스 아일랜드의 파견하에 도착했다는 것을 밝히고 함께 피해자들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밴시의 말과 언어에는 진정한 힘이 깃들어있다. 그가 자신의 골필을 들고 주술을 써 내리자, 무너진 광산의 잔해 사이로 빛이 들었다.

그는 전문적인 의학 인력이 아니었으므로, 이후 남은 시간은 밀폐된 광산에서 복귀한 인력들의 부상 회복 및 오리지늄 가스 누출 회복 상황을 확인 후 위급 시 추가 의료 인력 요청과 보고를 위한 경과 관찰을 위해 머무르게 된 것에 가까웠다. 기업의 주도하에 회복은 순탄히 진행되었고, 로고스가 외근을 온 지도 며칠의 시간이 지나 함선으로 복귀할 때가 다가왔다. 그 사이 로고스는 살카즈의 밴시라는 종족을 난생처음 보는 림 빌리턴의 어린아이들에게 잉크가 없는 펜을 들고 신기한 글씨를 쓰는 ‘뿔이 달린 특이한 리베리’라고 인식되었다. 당시 아이들에겐 더 이상 쓸모를 잃은 폐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송곳을 던지는 놀이가 유행했는데, 그건 다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로고스는 적잖이 인기를 끌었다. 천막 아래 의자에서 몸을 기대고 있던 로고스에게 협력 업체에 속한 카우투스가 말을 걸었다.

“돌아가시나요?”

“곧 떠날 예정이다.”

“덕분에 대단히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로고스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대답을 했으나, 카우투스의 입에서 그들은 우리 가족이기에 한 명이라도 잃었다면 무척 슬펐을 거라는 말이 나왔다. “가족?” “아, 저희는 피가 이어지지 않더라도 서로를 믿을 수 있다면, ‘가족’이라고 칭하곤 해요. 그들과는 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죠.” 자신은 채굴팀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이 광산으로 떠날 때마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는 말이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주술이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말도. 로고스는 그 말을 듣고 골필을 흘겨봤다.

로고스가 가지고 있는 뼈로 만든 골필은 밴시가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주술의 매개체다. 밴시라면 모두 하나씩 자신의 골필을 가지고 있다. 어린 밴시가 계곡에서 보낸 첫 번째 생일이 지나면, 그 밴시만을 위한 골필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갈대를 쓸어내리며 자신의 생일을 맞이하게 됐을 때, 어머니이자 밴시의 여왕인 라말리엔에게 골필을 선물 받았다.

로고스는 자신의 유년기를 보낸 계곡을 잊은 적이 없다. 밴시의 왕자로 태어난 그는 안개로 둘러싸인 계곡에서 비단으로 짠 드레스를 입고 누이들과 함께 머리를 땋으며 지내거나 황금빛 숲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곡조를 부르며 지내곤 했다. 자신의 골필을 가지게 된 생일 또한 황금빛 햇살이 물결칠 때 계곡의 모두가 손을 잡고 한뜻으로 아이페니르를 축하해주며 노래를 불렀다.

앞서 서술했다시피, 밴시의 언어엔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골필을 받게 되더라도 직접 주문을 써 내려가는 것에 대해선 ‘허락’을 받기 전까진 일부 제약이 걸려져 있었다. 이러한 밴시들의 약속은 아이페니르에게도 적용되었으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골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받았다. 아이페니르는 생각했다. 그 허락의 기준이 되는 건 무엇이며, 언제쯤 이 골필로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밴시는 한 밤의 모험 중 터스크비스트에게 사냥당하는 치스티비스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베일의 커튼이 드리워진 만들어진 정원에서 자라왔던 밴시는 생전 처음으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치스티비스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 의문을 던진 그때를 기점으로 어머니 라말리엔에게 “우리 아이페니르는 이제부터 자유롭게 행동하고 연습할 수 있다”고 선언 받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아이페니르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어째서 이것이 골필을 사용할 수 있는 허락의 기준이 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느낀 감정은 치스티비스트의 울음소리와 함께 분명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선명히 남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로고스가 아이언 캐럿시티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반겨주는 흐린 하늘 사이로 녹슨 쇠와 겹겹이 쌓인 철골의 냄새는 빅토리아의 지하를 떠올리게 했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지휘하에 런디니움 사변은 종식되었다. 카즈델 군사 위원회가 무너지고 빅토리아 제국의 런디니움 탈환과 살카즈들을 몰아내는 것은 성공했으나 모든 이야기는 형편 좋은 동화처럼 마무리되지 않고 ‘그다음’이 존재했다.

로도스 아일랜드 쪽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미 자신의 생일은 지났으니 그 다음 날 축하하겠다며 블레이즈가 맥주잔을 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로즈몬티스와 아미야는 잠에 들었겠지. 메커니스트는 블레이즈와 함께 마시려다 그런 둘을 미저리가 수습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박사. 박사는…….

글쎄, 이름만 남아 완성되지 못한 문장을 몇 번쯤 되뇌였을 땐 돌아가고 싶다는 기분을 느낀 것도 같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니 밴시의 눈동자가 짙은 구름 사이에 걸려 있는 두 개의 둥근 달로 향했다. 떠날 시간이었다. 이어 로고스는 자신의 골필을 들었다.

4.

동시에 도착한 메세지 하나.

「기다리고 있을게.」

5.

로고스는 돌아오며 복귀 예정 시각보다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역을 넘어오며 로도스 아일랜드의 지상 전함에 가까워졌을 때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예정보다 늦으면 늦었다고 보고서와 함께 이야기하면 되지만, 로고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기다린다니, 어디를? 전함에 가까워져 걸음을 옮길 때쯤이면 내부는 절전모드에 들어간 것인지 어두컴컴했다. 지금이 몇 시인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로 로고스는 그가 있을 법한 곳을 떠올렸다. 박사의 개인실? 돌아오는 길에 불이 꺼져있었다. 갑판? 지금은 비가 온다. 소거법을 통한 추론을 하며 익숙한 복도를 걷는데, 어쩐지 자신이 일주일 전에 블레이즈를 불러냈던 휴게실에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본 것이다.

밴시는 그 문을 열었고, 머잖아 동시에 화려한 폭죽과 함께 컨페티를 뒤집어 쓰게 된다.

주위를 보았을 땐 블레이즈가 항상 이끌어주었던 파티처럼 생일을 축하하는 풍선과 가랜드 사이로 자신이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방증으로 머리에 붙은 컨페티들을 떼지도 못하고 있으면 스팽글 사이로 빨간색 리본따위가 밴시의 티아라와 뿔에 걸려 제법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됐다. 그 모습을 본 일부가 웃음 소리를 가감없이 터뜨리고 있을 때, 로고스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5일은 이미 지났지 않았나?”

“아니, 그건 림 빌리턴 기준이고.” 지금은 아직이라는 식으로 메커니스트가 손가락을 까딱하며 벽에 달린 시계를 가리킨다.

로도스 아일랜드 휴게실에 걸려있는 디지털시계는 당연하다는 듯 9월 5일을 출력하고 있었다.

“나는 로고스가 당연히 6일 이후에 오는 줄 알았는데, 박사가 말하길 지상 전함에 복귀할 땐 시차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지 뭐야.” 방금 미저리와 함께 폭죽을 터뜨린 블레이즈가 쾌활하게 웃었다. 모든 전말을 깨달은 로고스는 한 방 먹었다고 생각하며 수긍했다.

“……놀랐어?” 박사가 조용히 첨언한다.

“무망지복에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음……, 역시 블레이즈 말대로 다 같이 축하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리 말하는 박사가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케이크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밴시는 무어라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는데, 어떤 연유에선지 말의 형태가 맺히지 않아 이내 그만 두었다.

아미야는 무사히 와서 다행이라고. 림 빌리턴은 어떠셨냐고 물어볼 때 로즈몬티스는 졸린 표정으로 로고스를 위해 모두가 기다렸다고 말하면서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그 사이 뭐 하고 있냐며, 촛불을 켰으니 어서 불으라고 채근하는 블레이즈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저리는 블레이즈에게 케이크 자르고 빨리 술을 마시고 싶은 거 아니냐고 대꾸했고, 메커니스트는 지각자 밴시에게 먹일 벌칙 주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피스와 터치가 팔짱을 끼고 곧 난장판이 될 휴게실을 지켜보고 있자면, 스톰아이가 음료수를 따를 잔을 가져왔고, 샤프는 적어도 아미야와 로즈마리는 재우고 나서 마시라고 했다. PhonoR-0는 무려 일주일 만에 재회한, 심금을 울리는 감격스러운 생일인 만큼 축하 영상을 찍겠다며 캠코더가 가동되는 소리와 동시에 밴시들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준비를 했다. 그 모든 순간, 박사가 블레이즈가 붙인 일렁이는 촛불 사이로 오늘의 주인공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로고스, 생일 축하해.

어릴 적 느꼈던 치스티비스트를 향한 감정의 해답을 젊은 밴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골필로 ‘그다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아이페니르가 아닌 로도스 아일랜드의 정예 오퍼레이터인 로고스로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동시에 로고스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


안녕하세요? 가장 마지막 문단에 자리한 글을 마무리 짓는 말은 루쉰 소설 전집을 인용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예요.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다는 건 제가 무사히 로고스의 생일을 축하해줬다는 뜻이겠죠? 제발 그렇길 간절하게 빕니다.

글 소재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이번년도 초에 혼자서 여행을 갈 일이 있었는데, 출발 시각에 비해 타국에 도착하고 나니까 시차 때문에 오히려 출발 시각의 이전 날이 된 걸 보고 그럼 생일에 출발해서 도착하면 생일을 이틀 내내 보낼 수 있겠구나~!!! 싶었던 생각에서 시작된 것 같네요.

정예 오퍼레이터들은 당연하게도 외근부에 속해있으니 특히 더 전문적인 인력 특성 상 다른 오퍼들보다 출장도 잦을 테고 명일방주 스토리 내에서 지역마다 시각이 묘사되는 걸 보면 테라도 그리니치 천문대처럼 지구의 기준선과 표준 시각을 지정하는 장소가 있을텐데 그 시각을 기준으로 한다면 지역마다 시차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엘리오퍼를 좋아하기도 하고 블레이즈도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캐릭터라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됐는데 제가 좋아하는 걸 이것저것 끌어다가 다 때려박으니까 전체적으로 김치피자탕수육 같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로고스와 박사에 대해선 조금 더 자세히 적고 싶었으나 최대한 담백하게 생일 축하 글을 적고 싶었던 의도와 상충되는 것 같아 감정 묘사를 덜고도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모조리 뺐습니다…….

별개로 이렇게 ‘무엇을 하겠다!!’ 하고 목적을 정하고 글을 쓰는 건 근 4년 만이라서, 어색한 문맥 같은 게 있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 오로지 ‘부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쓰거나 만든 창작물을 공개적으로 게재해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는 것에 대해 굉장히 소극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는 편이고 흥미가 떨어지면 그대로 손을 놔버리는 편이라 글도 그림도 취미가 뚝 끊겼는데…

기본적으로 드림은 나 자신과 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집밥강제컨텐츠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려면 “얘네가 어째서 함께 해야 하는지”를 계속 발설하고 이야기의 맥락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상상하고 말할 때 그 과정에서 새삼 즐거움을 느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이번년도에 좋아하는 캐릭터가 실장해 생일이 공개되고 정식적인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헌정하는 글을 직접 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니까 그런 거겠죠 분명… 순전히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이렇게 다시 글을 쓰며 직접 쓴 글을 올리는 것도 드림을 하지 않았다면 못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로고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로고스가 14지를 기점으로 실장해서 다행이에요. 로고스를 좋아하는 동시에 드림을 하는 친한 지인들이랑 놀 때 언제나 즐겁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마음을 가득 안은 채로 앞으로도 오래오래 좋아하고 싶네요. 저의 거대한 앤캐오너라고 말할 수 있는 해묘와 스케이드 쌤에게도 정말 고맙다고 생각해요. 5월에 실장시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족이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이런 아무래도 좋을 말들까지 전부 읽어주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있다면 또한 감사드려요.

마지막으로 로고스 다시 한 번 정말 정말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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