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쉼없이 움직였다. 타닥거리는 자판 소리를 듣던 차에 창 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지는 기지개를 키고 문득 혼자 중얼댔다. 대근혀…. 여태 입에 붙어버린 사투리가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하지만 이것마저 없어지고 저것마저 없어지면 누가 기억할 수 있을까. 그 생각에 말만, 사진만, 구슬만 소중히 여기기를 한참이었다. 이별을 가장 잘
손 아래서 깔끔한 정복이 판판히 다려졌다. 무엇보다 이 시간이 차분했다. 미야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일을 끝내고 두어 번 옷을 털었다. 먼지 한 톨 없이 푸른 방범대 옷을 입으면 무엇보다 이 마을의 수호자가 된 기분이었다. ‘넌 방범대 아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술희 성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미야야, 너를 다시 받으면 그때 일을 문제 삼지 않겄냐.
근처 장에 가는 일은 항상 보라, 술희 성과 새인 보살의 일이었다. 그날이 되면 묘한 기대를 품고 모두가 마을에 모여 그들을 배웅했다. 술희 성은 그 모양새가 재밌다며 오래 된 캠코더를 꺼내 찍었다. “아유, 우리 아들이 아주 귀엽고 깜찍혀.” “어서 가죠.” “우리 보살님도 그러면 좀 좋겄어.” “예?” “아무 말도 아니여! 어서어서.” 술희가 새인의 등
잊혀진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고 살았을 때가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점점 사라져 종내에는 한 톨도 남지 않는다는 그런 것. 망각이란 건 무서웠다. “조심히 가셔유.” 말은 그렇게 했으나 한 구석에서 자꾸만 그것이 올라왔다. 저짝이 떠나면 네 곁에 누가 있을 건데? 의리를 기억해 줄 사람도 다시 너 뿐이여. 조용히 시키고 싶었지만 집요하게 그를 감싸던
‘보라야, 내 강아지….’ 눈을 뜨면 그날의 광경이 생생하게 보라를 스쳐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쉬는 날도 없었다. ‘내 새끼.’ 더 볼 수가 없어유, 라고 어떻게 말하겠나. ‘누가 뭐래도, 니는 내 새끼여.’ “우리 아 어디 갔나! 아가 없다!” “성! 아이고, 지금 가면 큰일나유!” 부그르르. 물 속은 차갑고 무거웠다. 팔다리를 휩쓰는 급류는 어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