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환한 대낮 같지만 벌써 저녁 7시 반이 넘었다. 시킨 대로 적당한 수준의 캐주얼 정장을 갖춰 입고 나온 미카는 무대의상과 달라 뭔가 어색하고 답답한 듯 목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출발은 8시 반, 탑승은 8시, 그 15분 전까지는 도착해 있는 것이 신사의 교양이라는 말은 조부에게서 귀에 딱지가 내리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미카를 향해 그 말을 똑같이
※'스카우트! 인텔리전스 Disclosure'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음 귀가길, 미카는 그날따라 온몸에 힘이 쭉 빠져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그저 울고만 싶고,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내달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밖에서는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되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무엇보다 앞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이번 귀국은 스스로 생각해도 갑작스러웠다. 거리와 비용을 생각하면 나름대로는 제법 자주 드나드는 편이었지만, 한동안 따로따로의 스케줄이 워낙 바빴던 터라 벌써 몇 달은 얼굴을 못 본 기분이었다. 물론 영상통화를 비롯한 통화는 빈번히 했으므로 근황은 비교적 파악하고 있는 편이었으나 그래도 미카가 늘 말하듯 '실물이 최고'인 것은 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물랑 루주. 미카는 슈에게서 선물받은 빨간 우산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펼쳐 들고 빙글빙글 돌리면 마치 빨간 풍차처럼 보이는 경쾌하고 예쁜 우산이라는 데서 착안한 이름이었다. "어머. 인형에게 이름을 붙이는 건 이해가 되는데, 우산에까지?" 아라시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미카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내 저번에도 양산 선
모처럼 둘 다 스케줄이 없는 어느 주말 오후, 슈가 만들어 준 보송보송한 파자마를 입고 테디베어를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아 멍하니 커피를 마시던 미카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한 손에 문고본을 들고 책장을 넘기던 슈는 그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지?" "응아… 아, 아무 것도 아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둘 다 성인이 된 후의 미래 시점, 파리에서 동거 중 ※음주묘사 있음 피차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일이지만 슈는 알콜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뵈프 부르기뇽과 함께 레드와인 한 잔, 담백한 흰살생선 요리와 함께 화이트와인 한 잔. 프랑스식 식사에 흔히 딸려 나오는, 입 안을 간신히 헹구는 정도의 와인 한 잔 정도가 아니면 본격적으로 술자
커다란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에 수예부실 책상에 앉아 바느질에 골몰하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옆에서 고요한 숨소리가 들려 온다. 바느질을 배우겠다며 옆에 앉아 처음에는 열심히 관찰하다가 금세 잠이 들어버리고 만 미카다. 눈이 절로 감길 정도로 지루해할 거면 처음부터 배우겠다는 말을 하질 말든가, 잠이 부족하면 처음부
슈미카 교제 계기 IF 절망편 "그러니까—너를 사랑한다는 게야."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문. 카게히라 미카는 자신의 스승이 어째서 제게 사랑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승이 자신을 아낀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스승의 유일한 인형으로 남았고, 그로 인해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었다. 즉, 창조물에 대한 애정, 그
밸런타인데이가 가까운 2월의 어느 날, 코즈프로의 부소장 사에구사 이바라가 심각한 말투로 미카를 호출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가 보니 미카를 보자마자 이바라가 입을 열어 내뱉은 첫 마디는, "카게히라 씨, 혹시 누군가에게서 원한을 산 일이 있습니까? 또는 테러를 당할 이유라도?" "테, 테러?" 미카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고개만 갸우
좋은 저녁이구나, 카게히라. ⋯아아, 그래. 지금은 아침이지만 내용을 모두 적고 나면 저녁일테니. 나는 네가 전에 같이 가보고 싶다고 했던 바다를 보러 가려 하고 있어. 아니, 아니야. 일정 때문이 아니란게야. 조금 쉴 곳을 고민하다 문득 떠올라서 말이지. 너도 같이 가면 좋았을텐데. 같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고? 이런 것으로는 너를 대체할 수 없다
#슈미카_전력_60min 주제: 새해 *둘 다 졸업 후 몇 년이 흐른 어느 미래 *처음부터 끝까지 슈가 혼자 떠들어대고 있을 뿐 (시그널 음악) 라디오를 듣고 있는 여러분, 모두 안녕하신지. Valkyrie의 이츠키 슈다. 기존의 청취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이 라디오는 본래 UNDEAD의 사쿠마 레이가 진행하는 심야 라디오. 낮
습관적으로 홀핸즈를 들여다보았더니 소속사의 부소장 사에구사 이바라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사무적인 표정으로 메시지를 넘겨 보자, 그 내용은 요전번에 미카가 혼자 출연하게 되었다며 불안한 목소리로 연락했던 예의 잡학 버라이어티 방송의 본방 전 영상 체크 요청이었다. 아이돌로서 벌써 어느 정도 경력이 되는데도 여전히 여러 패널들 사이에 섞여서 허둥거릴 모습
2. 천사의 목소리 북부는 기본적으로 기온이 낮고 바다가 가까워 습하다. 결과적으로 1년 중 9개월 정도는 축축한 비와 안개로 젖어 있는 초겨울 같은 날씨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찾아오는 3개월 가량의 여름에는 조금이나마 해가 난다. 슈가 아이들에게 지어 주었던 양털옷이 필요없어지는 아주 짧은 시기다. 그런 여름 초엽의 어느 날. 아침부터 수도원 안이
1. 까마귀와 양털 살을 에는 듯한 바람과 함께 멀리서 갈매기 소리가 끼룩끼룩 울려 퍼진다. 같은 나라 안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먼 북부 변방까지 올 일은 거의 없다. 슈가 본래 살던 곳은 날씨가 훨씬 온화하고, 비가 좀 잦지만 밀농사는 잘 되는 중부였다. 이렇게 궁벽하고, 스산하고, 아무리 대단한 심미안을 갖고 있어도 매력적인 부분이라고는 손톱만큼
*백룡 슈x청룡 미카 깊은 산 속, 드문드문 우짖던 새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요한 한겨울에는 소복소복 눈송이가 내려 쌓이는 소리마저 들린다. 봄이 오려면 한참이나 먼 이 시기, 미카는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은 채 동면에 들어가기 전 스승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냈다. 이 산과 산 아랫마을에 봄을 가져다주는 하얀 용의 화신인 스승은 동굴
*'스카우트! 속삭이는 꽃들속에서' 스토리에서 이어짐 고요한 시간을 결코 싫어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차분한 슈의 천성에는 그 편이 더 잘 맞지만─ 아무래도 여럿이 북적거리며 한바탕 떠들고 지나간 후 홀로 남으면 아무래도 잔잔한 애수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타고난 예술가인 슈는 턱을 괸 채 앉아 가만히 그 여운을 맛볼 줄 알았다.
#슈미카_전력_60min 주제: 캐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슈는 올해 산타 할아버지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 못 받을 거야. 아무리 안 된다고
"카게히라, 안에 있느냐?"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온 반가운 목소리에 미카는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내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미카가 정신없이 문 손잡이를 잡고 벌컥 연 그 너머에는 그리운 나머지 꿈에서까지 만나는 얼굴이 찬 겨울 공기를 두른 채 살짝 발그레해진 얼굴로 서 있었다. "응아, 스승님!" "저런, 몸이 이렇게 따뜻한 것을 보
파리에 와서 살게 된 후로 새롭게 안 사실은 무척 많지만, 그 중 꽤나 예상치 못했던 점을 하나 들자면 뜻밖에도 이곳저곳에 뜬금없이 회전목마가 많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넓은 광장이 있으면 언제나 즐거운 음악과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 그리고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함께 커다란 오르골 같은 그것이 돌아가고 있다. "놀이공원도 아인데 길바닥에 회전
ES빌딩에 소속된 아이돌들은 때때로 같은 옷을 맞춰 입는 이벤트에 참가할 때가 있다. 본디 유메노사키와 레이메이, 슈에츠 등 아이돌 전문 육성 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시스템이라 그런지 일종의 교복이라고 하면 또 이해가 되지 않을 바는 없으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긋지긋한 단체활동에서 겨우 탈출해 숨통이 트였던 슈는 이런 공통 의상이 지급될 때면 그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