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哀想

절망편

Torso by Manneq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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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카 교제 계기 IF 절망편


"그러니까—너를 사랑한다는 게야."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문. 카게히라 미카는 자신의 스승이 어째서 제게 사랑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승이 자신을 아낀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스승의 유일한 인형으로 남았고, 그로 인해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었다. 즉, 창조물에 대한 애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텐데. 한편으로는 기뻤다. 늘 꿈꿔왔던 상황이지 않나. 그러나 제가 원하는 미래는 변칙적인 감정에 의존하는 종류가 아니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당신의 옆에 있고 싶었다. 한때는 그 형태에 평생의 반려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제 과욕이었다. 넘봐서는 안 될 자리임은 물론이고 제가 가질 수 없는 위치였다.

그러므로 저의 스승은 제게 사랑을 말해서는 안 됐다. 감정은 변한다.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 카게히라는 스승이 제게 가진 책임감과 제 외모에 대한 감상을 결합한 감정을 착각했다고 믿었다. 당신의 애정愛情은 저에 대한 애정哀情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경우를 말하자면—저는 자신의 스승을 사랑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제 사랑은 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세상의 어떤 창조물이 제게 생명을 부여해 준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당연한 끌림이며 감정이었다. 당신이 저를 봐 주길 원하는 것도, 제가 당신 옆에 있고 싶음도 당신이 저의 신인 까닭이었다. 한없이 침잠해가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빛을 보여준 순간 저는 현재를 알게 되었다. 당신의 손으로 거두어져 아름다운 언어를 배우고 노래하며 치장되었을 때 기쁨을 알게 되었다. 인형으로 남아있어도 족했건만 당신께서는 제가 인간으로 살아가길 소망했고 생명을 부여했다. 따라서 제 삶은 당신을 위해 바쳐짐이 옳았다. 저는 그렇기에 삶의 이유를 당신으로 삼았다. 그것이 순리였다.

거절해야했다. 자신은 스승의 연정에 기반한 사랑을 받을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거절할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원하는 일이었다. 비록 그 바람이 착각에서 싹튼 것이라 하더라도 당신의 의지였다. 거절은 의무였으나 당신의 염원은 이뤄져야 할 사명이었다. 조금은 두려웠다.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면 당장 버려지는 것이 아닐까. 결과가 동일하다면 미약하게나마 시기를 미루는 선택이 자신에게는 최선이 아닐까. 깊게 묻어두었던 추악한 욕망도 사실 너는 사랑받고 싶지 않았냐며 속삭였다.

몇 번이나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평소라면 재촉했을 자신의 스승도 지금은 제 답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다캐도⋯내를 버리지 않을거가?"

"무슨⋯. 내가 너를 버릴 일은 없어, 카게히라."

한순간의 장난이다. 카게히라는 다시금 제게 되뇌었다. 이건 저의 신이 즐기는 가벼운 유희에 불과하다. 그 짧은 환상이 지나가도 당신이 저를 버리지 않는다면 원하는 대로 어울려도 죄가 되지는 않겠지. 아니, 그것은 죄였다. 스스로 귀를 막고 눈을 가렸을 뿐이었다. 제게 내밀어지는 손길이 너무나 부드럽기에,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마치 영원한 진심인 양 따스했기 때문에 저는 용서받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속절없이 빠져들고 싶을 따름이었다. 내재된 욕망은 제가 알던 것보다 더 깊고 오래되어 순식간에 무게추를 기울게 했다. 기운 마음은 제지할 새도 없이 정해진 답을 내어놓았다. 저 또한 당신을 사랑하노라고.

당신이 미소지으며 저를 끌어안았다. 몸짓 하나에도 기쁨이 묻어났다. 어리석게도 잠깐의 유혹에 넘어가 저질러버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당신의 품에 안겨 있기에 흔들리는 제 표정은 다행스럽게도 보여지지 않았다. 카게히라, 하고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스승이 저를 불렀다. 신께서 저를 불렀다. 저는 당신의 행복을 지켜야 했다. 화답하듯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내려보는 눈빛은 눈물이 날 정도로 다정해서 무심코 믿고 싶어졌다. 시간에 따라 퇴색되고 무심해질 감정이 아닌, 구원久遠의 감정일 것이라고.

제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이 맞춰졌다. 저는 행복에 겨워 그만 울어버렸다. 거짓이라도 좋았다. 이 연극이 언제까지고 지속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또한 제게 허락될 수 없는 소원이겠지만,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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