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In Penacony

행오버

. by .

단항 x 블레이드

2.1 메인 스토리 / 나쁜꿈 바 이벤트 스포일러 포함?

요약: 페나코니에서 척자가 말아준 칵테일 시음하다가 밤 사이의 기억이 날아간 단항.

술김에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간밤에 일어난 일에 대한 단서를 하나둘 찾기 시작하는데….

쿵쿵! 쿵쿵쿵! 쿵!

단항은 거칠게 문 두들기는 소리에 놀라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나 오래 잤는지, 누가 이렇게 거칠게 기상을 시키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오한이 그의 몸을 덮쳤다.

난방장치가 꺼진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호텔 레버리의 서비스는 전 은하계를 통틀어서 보아도 최고 수준이다. 더군다나 객실 내의 컨디션을 유지 및 조절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지니어스가 발명한 기술의 소산이었다. 실내 습도 71%. 온도는 19도에서 20도 사이를 유지. 여섯 시간에 한 번씩 공기 순환 장치가 작동된다. 비디아다라족 신체 조건에 맞춰진 객실 내부는 인연경의 본궁이 떠오를 만큼 아늑했다.

최근 몇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호텔은 정상 영업 중이었고 사람들은 5년 내리 빼곡하게 찬 예약 리스트에 자기 이름을 끼워넣기 위해 열심이었다.

객실 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왜일까. 단항은 의문을 곱씹으며 상반신을 일으켜 앉았다. 눈꺼풀이 무거워서 자꾸 아래로 축축 쳐졌다. 머리 또한 망치로 맞은 양 지끈거렸다. 몸살이라도 난 것 같았다. 열차 아카이브에서 드림풀 이용자 중 1.7%가 여러가지 후유증을 호소했다는 기록을 읽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백 명 중에 한 명 꼴에 불과한 확률이나 그런 불운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빈말로도 운이 좋다고 하기 어려운 제 여정을 생각하면 더더욱.

“고객님, 안에 계신 거 다 압니다. 문 열어 주시죠.”

더는 잡생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불청객은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문을 따고 들어올 기세였다. 단항은 차가운 제 이마를 매만지며 문을 열었다. 호텔 데스크 유니폼을 입은 남성과 검은 정장 차림의 여성이 나란히 서 있었다. 남성은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얼굴이었고 여성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단항은 여성과 시선을 맞췄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신원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단항은 냉정하게 물었다. 그는 지금 VIP 자격으로 페나코니에 와 있었다. 물론 그가 자진해서 이런 대우를 받게 된 건 아니었다. 은하열차의 도움으로 오랜 골칫거리를 해결한 가족은 비공식적인 감사를 표하고 무명객을 위한 특별한 혜택을 제공했다. 호텔 영구 숙박권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단항은 일전에 자진해서 숙박권을 포기했고 거기에 미련 한 톨 없었지만 히메코와 웰트는 달랐다. 그들은 단항에게 즐길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항은 그들의 권유를 거듭 거절했으나 즐길 때를 놓치지 말라는 히메코의 조언을 듣고는 결국 마음을 바꿨다.

응당 받아야 할 대우를 받는 입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 특히나 <가족>처럼 겉으로는 화합을 추구해도 내부는 권위와 위계를 규칙 삼아 단단히 굳어진 구조의 집단 앞에서는. 이런 믿음은 단항의 경험보다는 시기를 특정하기도 불가능할 만큼 오래된 기억이 만든 것에 가까웠다.

“고객님의 꿈 속 활동과 관련해 몇 가지 민원이 접수되어서요.”

고압적인 손님들을 다루는 데 이골이 난 여성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내 꿈 속 활동이라고?”

반추와 동시에 질문이 단항의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왼쪽 관자놀이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한층 심해졌다.

“간밤에 황금의 순간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여성이 취조에 들어간 수사관처럼 물었다. 기억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냐고, 그저 꿈에 불과한 가짜 세상을 잠시 돌아본 것 뿐인데…. 그렇게 반박하려던 단항의 말문이 턱 막혔다.

꿈세계로 들어가서 페나코니의 명소를 군데군데 돌아다닌 것까지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구경할 곳을 미리 아카이브에 검색하며 체크해두고, 기념품 가게 앞에서 구한 가이드북을 참고하며 움직였기 때문에 헤매는 일 없이 알차게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시계 소년 동상을 구경하고, 도중에 마치세븐스와 선주식 퓨전 음식을 제공한다는 식당에서 만나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하고, 테마 파크에서 <시계탑의 살인마>라는 제목의 공포 영화도 봤다.

음식은 먹을 만했지만 선주와는 거리가 멀었고 영화는 지루했다. 차라리 레버리 호텔 설립 역사를 기록한 기념 다큐멘터리를 보는 편이 더 유익했을 것이다.

영화를 본 직후 카일루스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가 일하는 가게에 오면 후하게 대접하겠다는 초대 메시지였다. 기껏 휴가를 즐기러 와서는 또 다른 일이라니. 카일루스다웠다.

가이드북에는 그가 말한 가게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길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가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품종 모를 거대한 장미는 숨 막힐 만큼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홀을 배회하며 능숙하게 사람의 말을 했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같은 가게에서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머리까지 정리한 카일루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법 전문적으로 보였다.

‘마침 잘 왔어, 단항. 시음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거든. 목록에 없는 특제 칵테일을 몇 가지 개발했는데….’

거절할 새도 없이 칵테일 한 잔이 단항이 앉은 자리 앞에 놓였다.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 푸른색 탄산수에 레몬 장식을 얹은 음료였다. 눈까지 시큰거리게 만드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다음 잔은 흰 거품이 올라간 연분홍빛 과즙 음료로 인공 색소의 단맛 사이에서 희미하게 복숭아 맛이 묻어났다. 다다음은 기름처럼 검고 탁해서 도무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모양새였는데— 맛은 의외로 소다 두유와 비슷했다. 다다다음, 다다다다음, 그리고 다다다다다음. 이름 미정의 스페셜 칵테일들이 잇따라 제공되었고—

거기서 기억이 끊겼다.

‘젠장….’

단항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차피 다 가짜니까, 뭘 얼마나 마시든 현실엔 아무 영향이 없을 거라고 여기고 주는 대로 받아마셨는데… 설마하니 블랙아웃을 겪게 될 줄이야. 낭패다.

단절된 기억을 인지하는 순간 단항을 압도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고객님의 꿈 속 활동과 관련해 몇 가지 민원이 접수되어서요. 여성은 그렇게 말했다. 몇 가지라고.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섬찟한 의문에 등골이 홧홧했다가 서늘해지면서 땀방울이 솟아올랐다. 충격으로 얼어붙은 그를 본 여성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들고 있던 패드를 내밀었다.

패드에는 사진 몇 장이 띄워져 있었다. 거인의 손에 쥐어짜인 것처럼 산산조각나서 내용물을 토해내고 있는 거대 솔글래드 병 장식, 앞 범퍼와 보닛이 죄 찌그러진 고급 승용차와 부상형 바이크들, 파손된 난간과 도로, 누군가의 손가락에 끼워진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

“이게 전부….”

“네, 고객님의 난동으로 피해를 입은 꿈 자산 현황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단항은 그 중 무엇에서도 낯익다는 감상을 받지 못했다. 영상도 있으니 한 번 보시죠. 여성이 패드 화면을 넘겼다.

‘대박, 저거 진짜 솔글래드일까?’

‘설마. 아무리 꿈이라지만 그건 너무 낭비 아니야?’

‘왜? 꿈이니까 얼마든지 가능하지!’

열린 뚜껑 밖으로 몽글몽글 거품이 솟아오르는 거대 솔글래드 병을 촬영하며 누군가 신난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는 것도 잠시, 갑자기 병 안의 액체가 맹렬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어, 저거 왜 저러냐? 뭐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거기 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동시에 병이 폭발했다. 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동요한 촬영자가 카메라를 손에서 놓쳤는지 화면이 마구 빙글빙글 돌다가 곤두박질쳤다. 바닥을 나뒹구는 카메라를 누군가 차버린 건지 퍽! 소리와 함께 영상이 끝났다.

“…….”

“…….”

사냥매처럼 자신을 주시하는 여성의 눈빛 속에 단항은 침묵을 지켰다. 여성이 화면을 몇 번 더 넘기며 폐쇄회로에 찍힌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화질이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화면에 잡힌 사람의 신원을 파악할 정도는 되었다. 세피아빛 이미지의 중심에는 단항이 있었다. 난장판이 된 길거리를 달려나가는 자신.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몸짓으로 미루어봤을 때 아주 다급하게 보였다.

뭘 쫓고 있었던 걸까? 단항은 초 단위로 찍힌 영상 캡처를 유심히 들여다봤지만,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기억이 안 나시는 것 같군요.”

“…미안하게 됐군.”

단항은 간신히 사과의 말을 입에 올렸다. 기억에 드리운 장막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견고했다. 제 3의 눈에 포착된 자신을 보았는데도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호텔과 손님들이 입은 피해는 전부 내가 배상하지. 이번 일은 열차와는 무관하니 그쪽에 연락을 넣는 일은 자제해주었으면 해.”

침착하게 수습을 시도하는 단항을 보며 여성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 <가족>은 은인인 은하 열차 소속의 무명객에게 배상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난장판이 된 구역 또한 꿈 건축가들이 정리했으니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다만 피해를 입은 다른 고객분들이 계시니 관리자 된 입장에서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고객님께서 직접 다른 피해자 분들을 찾아가 사과해주셨으면 합니다.”

“좋아.”

단항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은 잠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런 문제를 일으킨 손님들은 선뜻 사과를 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누군 줄 아냐로 시작해서 책임자 불러오라는 호통으로 끝나는 지긋지긋한 레퍼토리를 반복하다가 호텔 영구 블랙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 일쑤였다. 무명객이라 그런지 융통성은 있군. 여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패드를 거둬들였다.

“꿈세계로 돌아가시면 사냥개를 찾아 나이팅게일이 보냈다고 전하세요. 그러면 고객님이 필요한 정보를 알려드릴 겁니다.”

현실에서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단항은 잠깐 그런 의문을 품었지만, 여성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떠나는 바람에 질문을 던질 기회를 놓쳤다. 문이 닫히고 객실 내부가 조용해졌다.

단항은 테이블 위에 놓아둔 핸드폰을 확인했다. 카일루스와 웰트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단항은 카일루스의 문자부터 읽었다.

[카일루스: 단항 너 괜찮아? 갑자기 뛰쳐나가버려서 놀랐어]

[카일루스: 내가 만든 칵테일이 그렇게나 형편없었던 거야?]

단항은 침착하게 답장을 작성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취했었나 봐]

[칵테일은 다 괜찮았어. 복숭아맛 나는 것만 빼고]

[내 입맛에 그건 너무 달았어]

자고 있는 건지, 바쁜 건지 반응이 없었다. 단항은 웰트의 문자를 열었다. 휴가 잘 보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짧은 문자였다. 그는 잠깐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하는 건 역시… 부끄러웠다. 열차 사람들 볼 면목도 없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웰트 씨.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예정보다 조금 늦게 복귀할지도 모르겠어요.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웰트와 카일루스의 답장이 동시에 도착했다.

[웰트: 그렇다면 다행이야. 마음껏 쉬고 오도록 해. 열차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카일루스: 복숭아맛? ㅇㅋ. 너 근데 바에서 누굴 봤길래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런 거야?]

단항은 카일루스의 문자를 다시 읽었다.

[누구? 기억이 안 나는데.]

[카일루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가게 밖으로 뛰어갔잖아. 화장실 가는 줄 알았는데 안 돌아와서 도망쳤나 했지]

[…]

[…]

단항은 문자를 몇 번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모르겠어. 정말 헛것을 봤나보다.]

[카일루스: 네가 그렇게 알코올에 약한 줄은 몰랐네.]

일상적인 잡담이 조금 더 오갔다. 단항은 나중을 기약하는 말을 끝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네가 만든 칵테일들 정말 나쁘지 않았어. 조만간 또 마시러 갈게. 그가 보낸 텍스트는 언제나처럼 무덤덤해보였다. 복잡하게 꼬인 그의 머릿속과 달리.

어제의 나는 대체 뭘 봤던 걸까. 뭐가 그렇게 다급했던 걸까. 애초에 취해서 본 그게 진짜기는 했을까?

—이럴까봐 이 호텔에 오길 꺼렸던 건데.

“하아….”

단항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드림풀 속에 다시 몸을 뉘였다.


첫 번째 피해자 A. 나이 불명, 남성형 지능 기계. 황금의 순간 상가에서 셀렉트 숍 <Violeta>를 운영 중. 솔글래드 병 폭파 사건의 여파로 가게 쇼윈도우와 전시 중이던 제품 일부가 파손됨.

제공 받은 정보에 따라 찾아간 가게 주위는 여성이 말한대로 얼추 정리가 된 상태였지만, 군데군데 사고의 흔적이 어수선하게 남아있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다…. 단항은 붉어진 얼굴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숍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A가 단항을 반갑게 맞이했다. 저희 숍에서는 은하계 최신 유행 상품부터 시대를 타지 않는 빈티지 명품까지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취급한답니다. 혹시 특별히 찾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골백번은 반복했을 멘트를 늘어놓으며 손님맞이를 하는 그에게 단항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사과를 하러 왔는데.”

A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단항을 봤다. 단항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친구가 만든 칵테일 시음을 돕다가 너무 취해서 문제를 일으켰다, 자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니 면목이 없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 A는 정석적이고 정중한 그의 사과를 한참 듣고는 손을 들어 제 딱딱한 턱을 매만졌다.

“그랬던 거군요…. 음. 좋습니다. 사과를 받아들이죠.”

대신. 조건이 있음을 알리는 사족이 붙었다.

“제품이나 유리창이 파손된 건 금방 복구할 수 있지만 문제는 간판이에요.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발주해서 만들었는데 이물질이 묻는 바람에 세척 작업에 들어갔거든요. 작업이 완료되려면 적어도 이틀은 기다려야 한다더군요.”

A의 손가락이 단항을 가리켰다.

“그러니 세척이 끝날 때까지 당신이 저희 숍의 움직이는 간판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움직이는 간판?”

사람들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광고판을 떠올린 단항이 미묘한 얼굴을 했다. A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상상하는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A의 부름을 들은 카운터 직원이 일어나 선반 사이사이를 돌며 물건들을 챙겨왔다.

“옷걸이가 훌륭하니 꾸미는 보람이 있군요.”

한참 뒤, 넋이 반쯤 나가서 말이 없는 단항을 살펴보며 A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밈이 느슨한 실크 셔츠에 중간 기장의 얇은 블랙 캐시미어 코트, 독특하게 매듭 진 허리끈과 부담스러울 정도로 광이 나는 부츠를 걸친 그의 모습은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탕아 같았다. 과하게 화려한 옷차림은 단항의 얼굴과 표정이 자아내는 특유의 반듯함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코디를 도운 A와 점원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단항은 살아있는 마네킹처럼 다뤄지는 동안 억지로 목구멍 아래 구겨넣어 두었던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옷을 입는다고 해서… 가게 홍보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정말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충분합니다. 여기 소매의 단추를 누르면….”

A가 뒤로 돌아보라는 손짓을 했다. 단항은 몸을 돌려 거울에 자신의 등을 비춰보았다. 코트 등판에 흰색 홀로그램 문자가 흐르듯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은하계 공용어부터 각종 메이저한 행성 언어가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문자의 뜻은 대충 이랬다: 황금빛 순간에 피어난 한 송이 제비꽃, 오크 스퀘어 16번지에서 찾아주세요. 당신만을 위한 명품이 여기 준비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간판이다. 광고판과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불만을 토로할 입장이 못 되었다. 단항은 한숨을 짧게 쉬며 거울에서 눈을 뗐다.

“자, 이제 자유롭게, 마음껏 모든 순간을 활보해주세요.”

A의 금속 얼굴엔 여전히 표정이 없었으나 단항은 그가 상당히 만족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항은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약식 문서에 A의 서명을 받고 가게를 나섰다.

이따금 얼굴과 등을 훑는 거북한 시선을 느끼면서도 단항은 꿋꿋이 앞만 보고 걸었다. 다음 목적지는 A의 숍과 멀지 않은 골목에 위치한 한 카페였다. 두 번째 피해자인 B가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B는 앞뒤로 찌그러진 고급 승용차의 주인이었다. 단항이 찾아올 거라고 미리 언질을 받은 듯, 말을 걸어오는 그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단항은 A에게 했듯이 깍듯한 태도로 그에게 사과했다. B는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어차피 새로 뽑을까 고민하던 참이었고, 얼마 하지도 않는 물건이니 괜찮아.”

망가진 차는 120만 신용 포인트 가량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B는 그게 별것도 아닌 양 말했다. 단항이 보기에도 그는 상당히 부유한 것 같았다. 물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 넘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군. 선뜻 문서에 서명까지 해주겠노라 펜을 드는 그를 보며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그 사람과는 제대로 화해한 거야?”

“화해라니?”

불쑥 치고 들어온 질문에 단항이 멍청하게 반문했다.

“아, 취해서 기억이 없다고 했지.”

B가 만년필의 뚜껑을 닫으며 말을 이었다.

“굉장히 절박하게 다른 사람의 뒤를 쫓고 있었거든, 당신. 차도를 무단으로 지나다가 내 차에 치여서 넘어지고도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더라.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뛰어가는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무리 꿈이라지만 정말 괜찮은 건지 걱정이 돼서 경호원을 보내 확인하게 했지.”

“…….”

“내 경호원도 실력이 상당한 친구인데, 금방 돌아와선 당신 발이 너무 빨라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는 수준이라고 하더군.”

단항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자신이 물을 차례였다.

“혹시 내가 쫓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해?”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어.”

“뭐든 좋아. 기억하는 건 뭐든 얘기해줘.”

“이런. 굉장히 독한 술을 마신 모양이네.”

잊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잊어버린 것을 보니. B가 별뜻없이 뱉은 말이 단항의 갈비뼈 사이로 파고들었다. B는 침통한 기색이 희미하게 스민 단항의 얼굴을 연민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머리는 하얗고 키가 컸어. 조금 마른 것처럼 보였고…. 아마도 인간 남성이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네.”

키가 크고 머리가 하얀 남자…. 단항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인간관계는 상당히 좁았다. 무명객이 되기 전부터 이리저리 방황하며 여러 세계를 접했지만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때는 단순한 교류조차 피하며 자진해서 외톨이 신세로 남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외관 묘사를 듣고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떠오른 사람은 경원 장군이었다. 하얀 머리, 큰 키. 얼추 조건은 맞아떨어지지만 그뿐이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연락이 가능한 상대의 뒤를 애타게 쫓을 이유가 있나? 경원이 자신을 피할 이유도 없다. 그의 성격상 페나코니에 왔다면 은밀하게 숨기는 대신 먼저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역시 잘 모르겠다…. B의 서명은 받은 단항은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일어났다. 문제는 순조롭게 해결되고 있는데에 반해 의문은 점점 깊어지기만 했다. 그나마 혼자 환상을 본 건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자신과 같은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게 진짜라는 법은 없다. 특히나 이 세계에서는…….


목록의 손님 대부분이 B처럼 너그러운 태도로 단항의 실수를 용서해주었다. 가벼운 심부름과 잠깐의 잡담만으로 지난 과오를 산뜻하게 청산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가진 걸 모조리 탕진하고도 떠나지 않으려는 사람이 차고 넘칠 만 했다. 꿈은 영원하지 않고 덧없다지만 그건 현실도 마찬가지 아닌가. 오랜 세월을 살며 수십 수백 번의 환생을 거듭하는 비디아다라의 입장에서는 현실 또한 어긋난 채 돌아가는 시계태엽에 불과했다. 모든 게 반복된다. 감정도, 사고도….

“이봐요, 사람 불러놓고 뭐하는 거예요 지금?”

까칠한 물음에 잡념에서 빠져나온 단항이 손을 들어 제 눈꺼풀을 느리게 문질렀다. <클럽 하바나> 간판의 붉은 네온사인 빛이 단항의 눈을 아릿하게 찔러댔다. 맞은편에서 마지막 피해자이자 손님인 남자가 제 팔짱을 끼고 앉아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태도를 보아하니 단단히 뿔이 난 눈치였다. 이쪽은 엄밀히 말해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애인인데… 워낙 완고해서 말입니다. 단항은 사냥개에게 받은 정보를 곱씹었다.

“나 때문에 반지를 분실했다고 들었어.”

“‘들었다’고요? 그렇게 뻔뻔하게 물건을 갈취해가놓고 남의 얘기하듯 말씀하시네요.”

“…미안하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너무 취해 있었거든.”

단항은 담백하게 실토했다. 남자의 눈이 빛났다.

“기억 안 나면 답니까? 그쪽이 멋대로 가져간 반지가 대체 얼마짜린 줄 알아요? 행성 하나는 거뜬히 사고도 남을 값이란 말입니다!”

남자는 문제의 반지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스타피스 컴퍼니의 유명한 간부와 연예인들도 탐냈을 만큼 소장 가치가 높은 명품이라는 둥, 그걸 만든 장인이 누군 줄 아냐는 둥…. 그런 것은 전혀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빚을 진 입장이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항은 눈을 내리깐 채 표정 관리를 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못 들어주겠네.”

그때 쓰레기를 버리러 뒷문으로 나온 여자가 끼어들었다. 남자가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넌 또 뭐야?”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어차피 자기 것도 아닌 반지 가지고 뭘 그렇게 성을 내?”

“무, 뭐라는 거야, 이 여자가. 그건 내 반지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선물한 거라고!”

“…….”

남자가 말을 더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쓰레기를 통에 힘차게 던져넣은 여자가 손을 털며 콧방귀를 꼈다. 이봐. 어제 클럽에 당신 혼자만 있었는 줄 알아?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몇인데…. 여자의 눈이 곧 단항에게 향했다. 묘하게 한심해하는 눈빛이었다.

“그 난리를 쳐놓고 다 까먹었다니. 당신도 대단하구나.”

“…무슨 뜻인지 자세히 설명을 좀 해줬으면 하는데.”

“남자들이란.”

여자가 쯧쯧 혀를 찼다. 단항은 어쩐지 그가 자신이 쫓던 사람을 보았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혹시 흰 머리에 키가 큰 남자를 본 적 있어? 머리카락 기장은 이 정도고….”

B에게 들었던 묘사를 읊기 무섭게 여자가 픽 웃었다.

“그래. 아주 잘 봤지. 당신이 그 사람을 붙잡고 세기의 로맨스 영화를 찍는 것까지도.”

“뭐?”

단항은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남자는 어느새 슬그머니 골목을 빠져나가고 없었다.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여자가 과장된 말투로 당시의 상황을 재현했다.

“왜 자꾸 피하는 거야,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제대로 얘기해! 하고, 프라이빗 룸에 있던 손님들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잖아. 마지막까지 책임 지겠다고 했던 건 허언이 아니었다고 진지하게 화까지 내고 말이야.”

머리가 아득해지는 설명이 이어졌다.

“손님 하나가 당신 말에 크게 감명받은 것 같더라고. 정말 사랑한다면 절대 놓치지 말라면서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냅다 빼서 건네줬으니까. 아까 그 남자가 극구 말렸지만 소용 없었지.”

혼란이 극에 달한 단항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성이 났다고 오인할 법한 표정이었으나 그저 상당히— 곤혹스러울 따름이었다. 술에 취해서 기물 파손을 저지른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건… 이건 도무지가, 무슨 정신머리로 그런 짓을 한 걸까?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런 난동을 부리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걸 보니 프로포즈는 실패했구나? 하긴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술 취한 애인의 공개 고백을 달갑게 받아들일 사람이 어딨겠어.”

“그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단항은 항변하려다 말았다. 그는 양 손을 들어 거칠게 마른 세수를 했다. 꿈 속임에도 쓸린 피부의 따가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수치심에 몸부림 치는 건 나중의 일이다. 문제의 남자가 누군지 확인해야만 한다. 어렴풋한 깨달음을 확신으로 전환할 터닝 포인트가 코앞에 있었다.

“혹시 클럽 안에 CCTV가 설치되어있나?”

“당연히 있지. 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약간의 알팔파 코인을 여자에게 지불한 뒤 단항은 클럽 방범실로 들어갔다. 지난 밤의 영상 기록물을 찾아 재생시키자 어둑어둑한 홀 입구가 TV 모니터에 나타났다. 재생 속도를 조절하면서 한참 모니터를 노려보던 단항의 눈이 마침내 목표물을 어둠 속에서 건져냈다.

하얀 머리, 마른 듯한 몸, 큰 키, 어딘가 쌀쌀맞은 분위기가 감도는 중년의 남자.

입구를 촬영하는 카메라의 존재를 눈치채고 렌즈를 노려보는 그의 보랏빛 눈동자.

동시에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넌 또다시 까맣게 잊어버릴 거야. 그런 녀석이니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에겐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없어.’

‘그렇다면 왜 여기까지 쫓아왔어?’

‘말했잖아. 널 쫓은 게 아니라 이곳에 볼일이 있었을 뿐이라고.’

‘웃기지 마.’

‘웃기는 짓을 하고 있는 건 너지.’

비딱한 웃음을 머금은 옛 친구의 얼굴은 차가웠다. 단항은 남자를 보며 단언했다.

‘약속할게. 다시는 잊지 않아. 이건 내 기억이야. 그가 아니라.’

남자의 눈이 놀란 듯 살짝 크게 뜨였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남자는 다시 무표정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좋아. 만에 하나 네가 약속을 지킨다면—…’


팽창을 잠시 멈춘 꿈 건축 경계는 폐허처럼 조용하고 쓸쓸했다. 잘려나간 길을 넘어 하늘과 머리가 닿을 듯 높은 빌딩 옥상에 도달한 단항이 가쁜 숨을 골랐다. 밝아오는 새벽의 순간에 붙박힌 세계 경계선에, 그토록 찾던 남자가 석상처럼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늦었군.”

“아주, 늦지는… 후우, 않았잖아.”

하얗게 샌 머리를 한 블레이드가 입매를 비틀었다. 뻔뻔하기는, 하고 말하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성큼성큼 계단을 밟아 오른 단항이 마침내 블레이드와 같은 지평선에 섰다.

“가족이 네 정체를 눈치 채면 어쩌려고 그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거야?”

“수백 년 전에 죽어 없어진 일개 단명종을 말인가? 그것 참 흥미롭군.”

“나는 알아봤어.”

“넌 당연히 그래야지, 음월.”

어쩐지 입술이 바짝 말랐다. 단항은 숨을 한 번 더 고르고 물었다.

“내가 널 알아보길 원한 건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군.”

“그게 아니라면 왜…”

단항은 블레이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옥색 눈동자가 어슴푸레한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다. 확신을 품은 사람 특유의 반짝임. 땀에 젖은 불그스름한 뺨. 너무나도 어리고 깨끗한 얼굴. 기억 속의 그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그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까? 순진하게, 설익은 감정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때가? 블레이드의 잡념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단항의 물음이 서늘한 송곳처럼 그의 목줄기를 눌렀으므로.

“왜 내게 잡혔지?”

“멋대로 쫓아온 건 너야.”

“얼마든지 따돌릴 수 있었잖아.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어. 나와 얘기하고 싶었던 것 아냐?”

“…….”

블레이드의 미소가 옅어졌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지.”

탁. 블레이드의 발이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동이 트는 하늘을 등진 블레이드의 몸이 그려낸 그림자가 단항의 정수리까지 덮었다. 단항은 양 주먹을 움켜쥐고, 시멘트 바닥에 뿌리를 박은 나무가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블레이드의 눈매가 휘어졌다. 그렇게 웃지 좀 마. 단항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랜 친구의 얼굴과 낯선 표정 사이의 괴리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쾌하면서… 서글펐다.

“내 것이 아닌 껍데기를 쓴 김에 다른 녀석들의 흉내를 내본 것뿐이야.”

카프카가 사냥감을 가지고 놀고, 은랑이 게임 속 주인공을 조작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래도 상관없어.”

단항은 결연하게 대꾸했다.

“약속을 지켰으니까.”

“지켰다고? 까맣게 잊었다가 간신히 기억해냈으면서?”

“그걸 알면서도 넌 여기서 날 기다렸어.”

그거면 됐다고.

단항은 뒷말을 굳이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나직하게 한숨을 쉰 블레이드가 등을 돌렸다. 단항은 그의 손가락과 머리카락 끝이 투명하게 바스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잘 가라거나 또 보자는 인사를 하는 건 어딘가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단항이 말을 고르느라 머뭇거리는 사이 가슴께까지 투명해진 블레이드가 말했다.

“찾는 물건은 네 객실에 있을 거다.”

“반지를 말하는 건가? 그걸 네가 어떻게…”

단항이 질문을 미처 마무리 짓기도 전에 블레이드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단항은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앞으로 뻗었던 손을 거뒀다.

나는 왜 그토록 열심히 그의 뒤를 쫓고,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걸까. 짧은 여정 내내 품고 있던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주 어려운 퍼즐의 일부를 제대로 끼워맞춰 정리한 것만 같은, 이상한 충족감이 그의 가슴 한켠에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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