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크레딧만 주면 키스해주는 놈

이상한 놈 x 이상한 놈

남척자 x 삼포

벨로보그 박물관 퀘스트 스토리 스포 有

모럴이 부족한 캐릭터들과 상황 주의

“삼포 씨, 저번에 돈 받고 사진 찍게 해줬었잖아요.”

카일루스가 영사기 뒤의 벤치에 걸터앉으며 갑자기 생각났다는 투로 말했다. 전시관 구성을 바꾸느라 임시 휴업 중인 박물관 내부는 어수선했다.

관객은 뭐든 쉽게 질린다.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면 성실하게 트렌드를 쫓아야 한다. 수백 년 된 골동품들을 전시하는 일마저 그랬다. 야릴로-Ⅵ는 선주나 정거장처럼 유동 인구가 많지 않다. 때문에 박물관의 입장료와 기념품을 판매해 얻는 부가 수입은 대부분 벨로보그 시민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개관(開館) 초반에야 텅 빈 진열대와 벽을 실시간으로 채워가며 전시 구역을 순차적으로 개방하는 허술한 방식이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호기심에 박물관을 찾았던 사람들은 내부를 한 바퀴 설렁설렁 둘러본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 박물관의 주 방문자는 달리 유흥 거리가 없는 사람, 따분한 연구자들, 교육 목적으로 관람을 신청하는 학교의 단체 손님이 전부였다.

‘쇄신이 필요한 때가 온 거예요.’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 자리에서 페라가 발언했다. 로비에서 특별 아르바이트 타임(이라고 쓰고 강제 사회 봉사 시간이라고 읽는다)을 보내고 있던 춥다리 아저씨의 늙은 고막에까지 와닿을 정도로 똑부러진 목소리였다.

음, 꼬마 아가씨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춥다리 아저씨는 휑한 로비 내부를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행성 자체가 죽다 살아난 판국에 이딴— 골동품 무덤이나 만든 것부터가 굉-장한 실수 아닐까?

회의에 참여한 책임자와 직원들은 페라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들은 박물관 방문 인원을 3개월 전의 평균 수치까지 돌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 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영양가 없고 죽을 만큼 따분했다. 그래도 한두 가지는 나쁘지 않았다. 박물관에 시뮬레이션 전투 무대를 설치하자거나, 슬롯머신을 만들어서 랜덤 경품 추첨(와, 대박! 진짜 유물 포함!)을 하자거나 뭐 그런 거.

사람들은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대신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지 떠드는 쥐새끼들처럼 쉬지 않고 찍찍거렸다. 그러다 내놓은 결론은 뻔했다. 쥐구멍 밖에 사는 늑대에게 도움을 청하자!

인간은 어리석고, 염치가 없고, 같은 짓을 반복 또 반복하고,

“…응, 그랬지?”

상념의 옆구리를 슬쩍 찔러서 뒤로 밀어낸 춥다리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출을 받고 벨로보그를 찾아온 은하 방망이 협객은 내키지 않는단 표정을 하면서도 <박물관 쇄신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새로운 테마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헤르타와 나부 등지에서 크고 작은 수집품을 구해왔다. 그중엔 값어치 있는 것들도 꽤 섞여 있었다. <눈구름 밖에서 날아온 것들>. 귀엽기도 하지. 삼포는 이번 전시 테마의 타이틀을 지은 사람이 페라란 사실은 감쪽같이 잊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돈만 받으면 정말 뭐든 할 수 있어요?”

꽤 도발적으로 들릴 법한 질문이었지만 삼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대신 카일루스의 얼굴을 가만 내려다봤다. 파멸을 빼닮은 호박빛 눈에서 그림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애들은 원래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삼포는 그런 호기심을 좋아한다. 모든 즐거움의 원천에는 탐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하가 아키비리를 친구로 여긴 것도 그와 같은 이치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이 늙은 삼포의 노고에 알맞은 값만 치러 준다면 말이야.”

“사람들 보는 데서 무릎 꿇고 ‘나는 개처럼 짖는 것밖에 할 줄 모릅니다’ 세 번 외치라고 하거나, 옷 다 벗고 춤추라고 해도 할 거예요?”

“하하! 그 정도야 껌이지.”

“얼마면 가능한데요?”

“무릎 꿇는 건 80크레딧, 거기에 긴 대사까지 요구하면 플러스 20? 벗는 건 장소와 날씨에 따라 다르겠네. 눈보라 치는 날이면 목숨 값까지 쳐서 계산해야 할 테니까.”

나름대로 체계가 있는 계산법에 카일루스가 흐음, 과연, 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다가 그들의 말소리를 듣게 된 직원 한 명이 별 해괴한 얘길 다 듣겠단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도 타인의 기척을 알아차렸지만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지금 해볼래요?”

“꿇는 거, 아님 벗는 거?”

카일루스는 잠깐 고민했다. 어디까지 벗고 무슨 춤을 출 지도 궁금하긴 한데 박물관 한복판에서 그런 짓을 시켰다가는 이상한 취향을 가진 변태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수치를 모르는 카일루스라도 그런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다. 무릎 꿇는 거요. 카일루스의 선택에 삼포가 씩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이런 건 선불로 해야 깔끔하니까. 결제부터 좀 부탁할게 형제.”

“알았어요.”

단말기를 꺼낸 카일루스가 삼포의 계좌로 신용 포인트를 이체했다. 아.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포인트에 0이 하나 더 붙었다. 실수를 인지하는 것보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게 더 빨랐다. 이체 알림을 듣고 제 단말기를 확인한 삼포가 휘파람을 불었다.

“받은 것보다 거슬러줘야 되는 잔돈이 더 큰데?”

“그냥 가지세요.”

백이나 천이나 푼돈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래서 아스타가 그렇게 물 쓰듯이 돈을 쓰는 거구나, 걔한텐 억이든 십억이든 별 차이가 없으니까. 부럽네…. 실수에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은 카일루스는 생각했다.

“우리 가족님은 역시 통이 크네. 좋아. 이 삼포가 섭섭지 않게 서비스해주지!”

호언장담한 삼포가 카일루스 앞에 힘차게 무릎을 꿇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카일루스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삼포의 얼굴을 응시했다. 누구는 자존심이나 명예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는데, 또 누구는 돈 몇 푼에 무릎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꿇는다니. 신기했다.

“아까 뭐라고 했지? 짖는 것밖에 모르는 개였나?”

“아, 그건 됐어요. 막상 시켜보니까 별로 재미 없더라고요. 귀만 아프고.”

“그래? 그럼 이건 어때?”

양 손을 허리 뒤로 겹쳐 쥐고 가슴을 과장되게 앞으로 내민 삼포가 눈웃음을 쳤다. 보기 좋게 근육 잡힌 몸의 윤곽이 타이트한 재질의 옷감 너머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조도가 낮은 전시관의 조명이 삼포의 몸을 노골적으로 겨냥했다.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 무릎 꿇은 그의 모습은 취향 나쁜 조각가가 빚은, 배경이 되는 시대도 제작 의도도 알 수 없는 작품 같았다. 작품명은 뭐라고 지어야 할까? <벨로보그의 악덕 상인>, 또는 <미스테리한 사기꾼>? 옴폭 들어간 눈구덩이 만든 그늘 밑에서 불길할 정도로 어두운 녹색을 띤 눈동자가 카일루스를 올려다보았다. 카일루스는 삼포의 눈에 어린 웃음과 장난기 사이에서 미세하게 존재하는 균열을 찾아냈지만, 그 균열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 지는 알 수 없었다.

삼포는 자신의 턱을 잡아 당기는 손에 순순히 얼굴을 내어주었다. 제 얼굴을 바싹 당겨 살피는 카일루스의 눈빛에는 여전히 호기심이 가득했다. 갓 태어난 에이언즈가 소통 가능한 작은 생물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이고, 순수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감정.

“입 맞추는 건 얼마나 받나요?”

카일루스가 나직하게 물었다. 속삭임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였다. 삼포는 귀 주변의 솜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내 기분이랑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지금은 얼마인데요?”

“특별히 무료?”

카일루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삼포는 그 미소의 의미를 묻고 싶었지만, 입술이 맞닿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카일루스의 키스는 여전히 서툴고 투박했다. 기억을 잃기 전엔 어땠을까. 카일루스의 호기심이 전이된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삼포는 그 궁금증을 붙잡는 대신 물처럼 흘려보냈다.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일이었다. 그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을 때 자신들이 태연자약하게 입을 맞추고 살을 맞댈 만큼 우호적인 사이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카일루스의 입술을 혀로 밀어 열고 부드러운 입 속을 능숙하게 헤집어가며, 삼포는 자신의 믿음을 살짝 정정했다.

분명 아하는 아키비리를 진심으로 좋아했을 거다. 개척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녀석이니까.


개척 50레벨 찍으면 크레딧 엄청 부족하다던데

작중 카일루스는 아직 뉴비라서 돈의 소중함을 모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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