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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젠히라, 복수를 위하여

커미션 8000자 + 2000자 / BL 2차 / 폭력, 고어 주의

커미션 by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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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나는 거다. 이 악몽에서. 우라하라는 뻑뻑해진 눈을 비벼가며 손에 든 구슬을 매만졌다. 드디어 완성했다. 몇 달째 상점 문을 닫아놓고 연구에만 매진했다. 여기저기 음식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이제는 그 냄새에 익숙해져서 크게 타격을 받지도 않는다.

 실험실 안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많은 영압이 이 마을을 복구하는데 힘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일단 제가 움직이기 편하도록 상점 앞부터 정돈을 해주었다. 아란칼과 싸우면서 제가 임시로 만들어 놨던 마을 모형의 일부가 없어진 땅에 심어졌다. 남아 있는 인간들이 이상하게 느끼지 않도록 귀도를 이용해 그 주변을 채웠다.

 그 다음 그들은 복구를 시작했다. 땅을 채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제가 만들어 놓은 모형이 있어서 그 전과 똑같이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총대장 쿄라쿠 슌스이의 허락을 받은 저는 상점 셔터를 내렸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감으로 몇 달이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어쩌면 몇 년일 수도 있고 몇십 년일 수도 있다. 잘 모르겠다. 시간 따위 이제 제게는 중요하지 않다.

 많이 긴 머리카락이 허리 밑으로 내려왔지만 정돈하지 않았다. 너무 불편하면 수염만 벅벅 미는 정도로 면도기만 사용했다. 욕실에 가면 칫솔이 다섯 개가 있었다. 물에 젖는 건 늘 하나뿐이었다.

 돈을 내지 않아서 전기와 수도 그리고 난방은 끊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저는 그저 그런 인간이 아니다. 사신이다.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의해를 껴입고 직접 뚫은 지하에서 물을 끌어다 썼다. 제 영압을 일정 이상 사용하면 하루종일 불이 켜져있는 조명을 사용했다. 넘치지 않도록 영압을 조절하는 일이란 숨을 쉬는 것보다 더 무의식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 덕분에 제 책상은 늘 빛이 났다.

 그 외에는 어두웠다. 창문도 다 닫아놓고 커튼도 내린 상태였다. 어둠에 익숙해진 제 눈은 물건을 쉽게 찾았으나 아마 이 공간에 처음 들어오는 누군가는 상당한 냄새와 앞을 가리는 어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쉽게 넘어지고 다치겠지. 하지만 괜찮다. 이곳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기척 하나, 영압 하나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저는 과거로 가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어떤 모양이라도 좋았지만 기왕이면 아이젠의 가슴에 박혀있던 붕옥을 따서 만들기로 하자. 작고 둥근 구슬. 홀로 살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빛이 나는 물건으로.

 처음부터 짠 하고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한 번은 작게 폭발도 해서 다치기도 했다. 빛이 푸시식 하고 바람 빠지는 것처럼 꺼지기도 하고.. 과거로 가는 물건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주 미칠 것처럼 어렵지도 않았다.  몇 번의 실패는 있었지만 예상 범위 안의 일이었다. 그 정도는 괜찮았다.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안다. 그 어떤 실험을 하더라도 한 번에 되는 일은 드물었고, 저는 언제나 그 사실을 잘 알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물건은 최대한 빨리, 실패 없이 만들어져야 하는 물건이었다. 그렇게 만들기로 정했으니 그렇게 해야 했다. 한 번 망칠 때마다 격하게 반응을 했다.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저는 그 어느 실패보다 더 좌절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멍청하다고 욕을 어금니로 짓이겼다.

 하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바닥에 부스럭거리는 봉투가 밟혔다. 걸음마다 뽀시락 뽀시락하는 소리가 났다.

 잘 생각해 보니 눈에 보이는 것들을 대충 주워 먹으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은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나 몸이 마르거나 근육이 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가 만든 것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편의점에서 사 먹는 에너지바 같이 생긴 것. 할 게 없고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만들어 놨더니 꽤 양이 많았다. 그것 덕분에 굶어죽지 않았다. 미친듯이 실험에 빠져 있다가 배가 고파서 손이 덜덜 떨릴 정도가 되면 하나를 먹었다. 모양이나 맛이 어쨌거나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었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건 언제 만들었더라. 처음 만들어 봤던 건 대장 시절이었던 것 같다. 기술 개발국이 세워지고 들어오는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정령정 내부를 완전하게 바꾸는 일이었다. 전령신기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나눠주었다. 모든 사신의 것을 다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는 기개국 대원은 없었다.

 그 중 저는 제일 심했다. 국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헀다. 그때는 내려오는 일을 받으면서도 개인 실험 또한 열심히 했다. 하루종일 실험실에 박혀서 나오지 않던 시절.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만들었던 것.

 그걸 발견한 당시 제 부대장은 매우 화를 냈다. 이런 걸 왜 먹냐고, 식사를 잘 챙겨서 하라고. 알았다고 하고 한 귀로 흘리던 것들. 저를 위해 잔소리 해주는 이는 이제 없다. 그들은 다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이제 제 곁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람도 사신도 제가 만든 실험체도 없다. 그저 고독만이 남아 있을 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약간의 통증과 함께 비릿한 맛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찢어진 모양이었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아이젠 소스케의 손에 의해서. 그가 그렇게 할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저는 결국 어리석은 이 생각 때문에 주변을 싹 다 잃은 것인가.

 그는 제게 말했다. 저를 죽여달라고. 뭐, 그런 부탁을 한두 번 들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약간 분위기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대처를 잘 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제 상점에서 살고 있는 죄인은 반역을 다시 시도할 거라는 46실의 판단과 다르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밥이 나오면 밥을 먹었고 밤이 오면 잠을 잤다. 얌전했다. 그를 감시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신들도 의아해할 만큼 조용하게 잘 지냈다.

 호정은 바빴다. 퀸시와 부딪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장급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부대의 대장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말단 대원이 나왔다. 그저 눈도장을 찍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죄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겁을 주는 일도 없었다.

 덜덜 떨며 나온 말단 대원은 그와 꽤 친해진 상태로 돌아갔다.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를 알았다. 놀리겠다는 이유로 괜한 말을 꺼내는 것은 좋지 않다. 단 한 번도 과거를 들먹이지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묻지 않았다.

 아이젠씨는 영원을 살 수밖에 없잖아요. 모두가 다 사라지고 나면 혼자 계실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물어봐야 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됐다. 뒤늦게 후회하는 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저는 이마로 땅을 쳤다. 그때 맡았던 피냄새가 아직도 선명하다.

 제가 농담으로 받아치면서 웃으니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군. 조용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쥐고 있던 아침 신문에 시선을 던졌다.

 은근하게 남아있던 찝찝함은 그 다음 날 커다란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소름끼칠 정도로 강한 영압이 마을에 퍼졌다. 익숙한 것이었다. 저는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점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땅이 사라져 있었다. 풀영창을 외친 그의 흑관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져 있었다. 잿더미가 되어 날아간 공간에는 현세에서 사는, 이제는 소울 소사이어티에 협력을 하는 인간들의 집이 있었다. 그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쿠로사키 이치고가 달려왔다. 저는 그를 막으려고 했지만 분노한 그의 공격은 제가 막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냉정을 지키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아이젠 소스케라는 남자는. 달려온 남자에게 치명상을 입혀 한 손에 쥐고 천천히 하늘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것처럼 터벅터벅 다가온 그는 딱 한 마디 했다. 날 죽여라, 우라하라 키스케.

 이를 악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죽어가는 쿠로사키 이치고의 몸에 80번대 파괴술을 날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뛰는 심장이 멈추고 땅이 사라진 바닥으로 떨어지던 시신은 영자가 되어 흩어졌다.


 ‘내가 원하는 걸 해내라.’

 ‘지금.. 뭐하시냐고 물었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네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제 뒤에서 상점 식구들이, 제 앞에서 남은 바이저드가 달려들었다. 현세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챈 소울 소사이어티의 사신들도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침착해야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홍희를 뽑아 들기 위해 고개를 잠시 돌렸다. 하필 실험실에 두고 나온 이후였다.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참백도를 챙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정말 어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영자들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던 무릎은 아래로 꺾였다. 남은 상점 바닥에 짓눌린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강한 영압으로 저를 누르면서 가만히 바라보던 이는 발을 들어 제 뒤통수를 꾸욱 밟았다. 이마와 코가 엉망으로 뭉개졌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저는 주변에 누군가 죽는다고 해서 울어주는 그런 사신은 아니다. 그저 다물었던 입술을 달싹일 뿐이었다.

 그 사이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헐떡거리며 숨을 뱉어냈다. 척추뼈가 어긋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마디도 뱉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제 앞으로 히라코의 머리가 뚝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왔다.


 ‘진작 알아 들었으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을.’

 ‘.....’

 ‘이렇게 머리가 나쁜 줄 몰랐군.’


 내장이 터진 모양이었다. 강한 통증과 함께 입에서 피가 주륵주륵 쏟아져 나왔다. 콜록거릴 때마다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먹다 만 밥도 쏟아져 나왔다. 무엇인지 모를 덩어리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아마도 배신감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배신감. 하지만 정말로 몰랐을까?

 아니다. 저는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구속구를 다 풀어주는 일을 꺼려했다. 모두가 이제는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저는 아직도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가까이 둔 것은 그렇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제가 통제할 수 있었다. 그는.. 함부로 두어서는 안 될 남자다.

 알면서. 알고 있었으면서. 멍청했다. 어리석었다. 후회해도 소용 없었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영자는 아름다웠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렸다. 시야가 흐려지고 이윽고 정신이 뚝 끊어지는 순간에도 수많은 영혼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붕옥을 가슴에 심은 남자는 불사에 가까운 존재였다. 사형을 시킬 수가 없어서 무간에 가둬놨던 이였다. 당연히 심장을 꺼내 터트려도 죽지 않았고, 뇌를 마구 으깨도 죽지 않았다. 목을 잘라도 말했고 가슴을 찔려도 웃었다. 배가 갈라져도 약간 아파하기만 할 뿐이었다. 최선을 다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머리를 써야 했고 손을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기어코 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는 입술을 달싹여 마지막으로 말했다. ‘쓸모가 있었다, 우라하라.’

 피가 범벅이 된 채로 헉헉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축축하게 젖은 모자는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 상황을, 아이젠 소스케가 죽어가는 상황을 며칠 내내 지켜보고 있던 46실과 남은 호정의 대장들은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기운이 없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릎을 짚고 바닥에 앉았다. 이미 피로 젖은 옷은 더 이상 남은 피를 흡수하지 못했다. 온몸이 무겁고 아팠다. 삐걱삐걱거렸다.

 우라하라는 죽은 아이젠의 시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멀쩡한 장기가 없었다. 다 제 손에 의해 쥐고 터진 것들. 그 잔해를 손으로 밀어내다가 관뒀다. 조각이 너무 많았다. 부서진 뼈는 제 피부를 파고 들어 상처를 냈다. 따끔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눌린 그의 손가락을 바닥에서 하나씩 떼어냈다.

 몇몇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구토를 했다. 표정이 없어야 하는 2번대도 이 순간만큼은 참지 못하고 인상을 구겼다. 저런. 그 모습을 봤다면 소이퐁씨가 화를 냈을 겁니다. 각종 물건을 대준 12번대 대원들도 벽을 잡고 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을 봤다면 쿠로츠치씨가 혀를 찼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없었다.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시체조차 남지 않아서 영원히 현세를 떠돌아 다니는 일부가 되었다. 늘 저를 죽이고 싶어했던 이들이 이렇게 먼저 가버리다니. 하하하. 절 못 죽여서 아쉽겠네요? 어깨를 떨며 흐흐흐 하고 소리 내서 웃었다.  이런 순간에 제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영자가 되어 사라져버린 사신, 사람, 실험체를 떠올렸다. 그리고 눈을 뜬 채 죽은, 한 때는 제 품에서 곤하게 잠을 자기도 하던 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야가 흐렸다. 아니, 붉은가? 잘 모르겠다. 제대로 보이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모든 것이 흐렸다. 굳은 피가 앉은 눈꺼풀이 무거웠다.

 이제는 숨도 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는 그를 보면서, 진동하는 피냄새에 숨이 막혀서 헐떡거리면서, 축축하고 무거운 옷 때문에 똑바로 몸을 세울 수도 없으면서, 그럼에도 언젠가는 제 품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던 그 얼굴을 비교하면서 저는 머릿속으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위에 올라온 구슬이 흔들리고 있었다. 진동하는 썩은내와 물리도록 먹은 식량의 껍질 속에서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슴 위에 올렸다.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얼마나 뒤로 가야만 당신을 막을 수 있을까. 손바닥에 올려진 것을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꽉 쥐었다. 그리고 이를 악 물었다. 땅이 울렁이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어딘가로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상점 내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아니, 익숙한..? 낯설면서도 여기는 아는 곳이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온다. 여기는 어디지. 팔을 들어 눈 주위를 가렸다. 곧 약간 팔을 들자 새까만 옷이 보였다. 사패장..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은 예상보다 좁았다. 느껴지는 영압이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리고 은근히 느껴지는 근육통.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제 소속은 2번대 3석이다.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대장복과 전혀 느껴지지 않는 쿠로츠치와 아콘의 영압. 그리고 지금 제 방 앞에서 저를 부르는 건..


 “우라하라 키스케! 대체 언제까지 잠을 잘 거지?”


 소이퐁이었다. 그것도 어린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아마 팔을 허리에 척 올리고 있을 것이다. 저는 급하게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살폈다. 과거의 모습이다. 원래의 모습대로 시간만 되돌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차라리 다행이다. 일단 돌아오는데 성공하면 과거의 저부터 죽일 생각이었다. 그래야 뒤탈 없이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허리 아래로 길었던 머리카락도 짧아지고 면도기를 이용해 엉망으로 밀었던 수염도 찾아볼 수 없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패장을 만지작거렸다. 구겨진 이불 주변에는 흩어진 실험 도구가 있었다. 그래, 지금쯤 만들었던 의해가 있다. 아직 실험용이라서 사용해보지는 못하고 만들기는 했으나 쓸모가 없어서 만드는 기술만 머릿속에 익히고 말았던 것.

 지금은 어떻게 만드는 지 알기 때문에 어디가 틀렸는지 보였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전혀 몰랐다. 벽에 걸린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두 개 그려져 있었다. 휴가를 받은 날이군. 그러니까..


 “우라하라!”

 “아, 네!”


 저는 문을 빼꼼 열고 헤헤 하며 웃었다. 영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어렸다. 아직 볼살이 통통하던 시절이었다.

 일어나서 다른 것을 하느라 늦었다, 오늘은 시호인 대장님의 허락을 받은 날이다, 저는 오늘 쉬는데용?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그게 아니라 너에게 온 서류가 있으니 받으라는 말을 하며 종이 뭉치를 휙 던졌다.


 “으아아..”


 허둥지둥 받아 든 다음 고개를 들었을 땐 그녀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내용을 대충 살폈다. 제 기억으로는 결국 폐기된 기획안이었다. 음. 저는 그것을 방 안으로 던진 다음 문을 박찼다. 몸이 가벼웠다. 확실히 어릴 때는 다르군.

 전보다 빠르게 달리지는 못했지만 날렵했다. 순식간에 사라져 한 걸음을 내딛고 다시 자리에 섰을 때는 5번대 근처였다. 이때도 순보 한 걸음이 꽤 컸구나. 예전 생각을 하다 보니 새삼스러웠다. 이렇게 몸이 가벼울 때가 있었다니.

 아주 잘 된 일이다. 아이젠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제가 만든 에너지바 비슷한 걸 먹으면서 지내왔지만, 그것이 제 몸을 충분하게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지만, 지금과 같은 가벼움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건 세월의 문제니까.

 어쨌거나 생각한 건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지. 저는 가만히 닫힌 5번대 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문이 열리는 순간을 마주했다.


 “대장님, 도망가실 생각하지 마시고 계셔야 합니다.”

 “아따, 말하는 거 들으면 맨날 도망가는 줄 알겠다.”

 “.....”

 “..눈빛으로 날 죽이려고 하는거냐, 지금?”


 그 후로는 순식간이었다. 저는 아이젠을 낚아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공간이 2번대 안에 많다. 하지만 그러는 건 아쉽겠지. 몰래 끝을 낼 수도 있지만.. 아니면 이대로 바닥에 내리 꽂고 괴롭혀서 본성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죽어가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당신에게 너무 가벼운 벌이었다.

 어떻게 할까. 이 세상에 태어난 일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제게 잡혀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던 것들이 몇이었던가. 이를 갈았다. 그는 일단 얌전히 따라오고 있었다. 그 가식에 진저리를 치며 땅을 박찼다.

 뒤에서 히라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뭐냐고 소리를 지르는데 못 들은 척 하고 달렸다. 저는 그가 따라올 수 있을 만큼만 뛰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제가 붙잡은 이의 손에 죽고 말 것이다. 최대한 다른 사신의 눈에 보여야 했다.

 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자꾸 뒤를 따라오는 히라코를 힐끔거렸다. 물론 당황하는 척하는 표정을 지은 채로. 하하. 소용없어요. 그 표정 저도 많이 봤거든요. 당황하는 척하면서 상황을 계산하고 살피는 표정.


 그는 윽.. 하고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공에서 묶어놓은 안대 때문에 주변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영압도 느낄 수 없겠지. 그냥 일반 안대가 아니었다. 제가 제작한 것이었다. 원래는 구더기 소굴에 들어가야 하지만 반항을 하는 사신들을 묶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만 일단은 가지고 나오길 잘했군.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바닥에 붙이며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여기는 사신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거나 밖에서 소리가 들리면 곤란하니까 일단 귀도를 펼쳐놓을 생각이었다. 그는 제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가 뭘 하는지 짐작했겠지. 꿀꺽 하고 타액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물었다.


 “뭐.. 하는 짓이지?”


 그건 제가 물은 말이잖아요. 제가 그렇게 물어봤잖아요, 아이젠씨. 그런데 대답 안 하시고 제게 그러셨죠. 내가 원하는 걸 해내라고. 그거 미리 해드리겠습니다. 안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냈다. 손가락을 착 감싸는 검은 장갑의 감촉이 차가웠다.

 팔이 뒤로 묶인 채 눈을 가리고 있는 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악 물었던 이에 힘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예전의 제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있어야지. 그래야 제가 미래에서 온 사신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을 것이다. 귀도는 어설프지만 잘 펼쳐졌다. 이때는 아직 촘촘하게 짜내는 기술이 부족했다.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래의 제가 더 촘촘하게 잘 짜낼 뿐.

 틈이 약간 있었다. 일부러 만들 정도의 실력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완성이 된 것이다. 미래의 저였다면 약간 구멍을 냈겠지만 지금은 귀도 자체가 얼기설기해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약간 밖으로 새어나갈 수 있었다. 바로 그 부분을 노렸다.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히라코 대장이 따라오고 있으니까.”

 “뭐?”

 “들키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원래의 모습.”

 “.....”


 그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처럼 달싹거리던 입술은 이윽고 깊은 숨을 내쉰 다음 굳게 다물렸다. 저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짐했던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히라코는 딱 예상 범위 안에서 나타났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저는 힐끔 고개를 돌렸다. 마침 제 아래에 누운 이는 옅은 신음소리를 냈다. 울컥 쏟아진 것이 검은 장갑 위에서 후두둑 떨어졌다. 저는 희게 젖은 손을 털었다. 붉게 웅덩이 진 아이젠의 피 위로 후둑 떨어지는 것이 토독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덩어리를 쏟아냈다. 제 기억으로는 지금 저를 노려보고 있는 대장님과 바닥에 누워 떨리는 손으로 본인의 내장을 주워 담으려는 그의 부관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데. 그건 조금 더 뒤였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하지. 약간 어지러웠다. 과거로 오기는 왔는데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했다면 며칠이라는 시간을 두고 몸에 적응이 됐는지, 이게 완벽하게 제 몸으로 움직이는지 확인을 했을 텐데.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라.

 인상을 찡그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허리춤에 걸쳐 있던 다리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헐떡거리며 겨우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비명을 참다보니 목소리도 축 가라앉아 있었다. 이 정도로 지친다는 게 웃겼다.

 당신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신 아니잖아. 내가 당신을 죽이려고 심장을 쥐어 짰는데, 그런데도 안 죽었던 사신이잖아. 고작 몇 번 관계 좀 하고 배 조금 갈라서 내장 꺼내놨다고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약한 사신 아니잖아.

 후우.. 하고 숨을 뱉었다. 히라코는 참백도를 꺼내들고 있었다. 귀도로 가려놓은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비린내에 그는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긴 걸 보니까 또 오랜만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반가웠다. 그러나 달싹이는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니 누구냐.”

 “.....”

 “2번대 놈이라는 건 알겠어. 이름이 뭐냐고.”


 달리는 제 뒷모습만 봤으면서 곧바로 2번대 사신이라는 걸 알았다니, 역시 히라코씨는 눈치가 빨라요. 저는 일반 사패장을 입고 있었다. 이 구역에 펼친 귀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귀도였다. 그저 달리는 모습과 영압을 정돈하는 능력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는 건 눈치라는 게 필요한 일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는 사태를 파악하는 것에 능했다. 저도 그런 그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아니, 살아 간다는 말이 맞겠지. 지금은 아직 어리니까.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발을 들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아직도 서 있는 그의 것에 발을 올려 세게 밟았다. 아이젠은 신음소리를 냈다. 주워 담았던 내장이 꿈틀거리며 다시 바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발끝으로 툭 건드리자 앞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혀라.”

 “그랬으면 좋겠나요?”

 “갸가 죽으면 내도 가만 안 있을 거니께..”


 아이, 무서워라. 그렇게 믿는 사이도 아니시면서. 큭큭큭 하고 웃던 우라하라는 아아. 하고 소리를 내면서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넘겼다. 끈적하게 묻어나는 피와 손가락 사이에 엉긴 흰 액체가 약간 묻었겠지만 괜찮았다. 이 정도는 가끔 있었던 일이었다.

 물론 배를 가르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가끔 코피를 흘리거나 아래가 찢기거나 해서 피를 흘리고는 했다. 특히 코피 같은 경우는 한 번 시작하면 잘 멈추지 않았다. 티슈 한 통을 다 쓰고도 피를 흘리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앞으로 숙이게 하고 손수건으로 감싼 콧대를 아프지 않도록 눌러주는 일을 하는 것은 저였다. 그는 가만히 얼굴을 대고 있었다. 바닥이 핏물로 젖어들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코피가 멈추는 걸 보고 닦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당신을.. 이를 악 물었다. 내가 당신을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질퍽하게 터지는 느낌과 함께 으윽..! 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이젠은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돌렸다. 저는 그것을 보고 발로 밀어 그를 다시 원래대로 눕혔다.

 히라코는 인상을 쓰면서도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지, 찜찜하겠지. 애초에 이 남자를 부대장으로 둔 이유가 그거였으니까. 가까이 두고 보려고 한 것이니까. 이대로 죽는다면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저 머리 어느 한 켠에는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모를 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남자를 살려두면 언젠가 당신은 후회를 할 거라고 조언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바로 미래에서 온 저였다. 발을 슬슬 옮겨 그의 목을 콱 짓밟았다. 큭.. 하고 소리를 내면서 제 발목을 잡는 이의 손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힐끔 시선을 내렸다. 눈동자가 흐렸다. 느리게 감았다 뜨던 눈에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고개를 돌렸다. 히라코는 움찔거리다가 다시 참백도를 제대로 잡으면서 저를 쳐다보았다. 저 머리가 제 앞으로 굴러왔었다.

 그가 망설이는 이유를 안다. 단지 지금 제가 죽이려 드는 상대가 아이젠이라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귀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얼마나 수준이 높은 종류의 것인지도. 그럴 수밖에 없지. 함께 지내는 이들 중 하나가 귀도를 아주 잘 다루는 사신이니까.

 여러가지 이유로 망설이고 있는 그를 비웃었다. 결국 이 남자의 손 위에서 놀아나 밖으로 쫓겨날 운명인 주제에, 이 남자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목이 잘릴 운명을 가진 주제에. 전 당신을 살려줬다고요. 그런데 저를 못 믿으세요?

 수많은 과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즐기며 수다 떨고 놀던 시간부터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애썼던 시간과 결국 다시 복귀한 그에게 다시 대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부르게 됐다며 참 모르는 일이라고 키득거리던 날들. 담배를 마주 피우면서 이제 본인이 없으면 혼자서 피우느라 심심하겠다며 제 머리를 마구 비벼대던 남자가 이제는 제게 칼을 들이대고 있다. 공격도 하지 못하면서.

 웃기는 일이었고 충분히 웃을 수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제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리로 오기 위해 각 부대에서 움직이는 대장급들의 영압을 느꼈다.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의 팔뚝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천정공라를 썼군. 그렇다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것은 2번대일 것이다. 그는 제가 2번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으니까.


 “크흑, 윽..”


 마지막 힘을 다해 발버둥치던 아이젠은 천천히 제 발목에서 손을 떼어내려고 했다. 저는 발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허억 하고 숨을 들이 마시면서 부풀어 오르는 폐가 갈라진 가슴 사이로 보였다. 참 강해서 좋아요, 아이젠씨는.

 그런 와중에도 영압을 관리하겠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웃기고 귀여워요. 빌어먹을, 그러니까 조용하게 그대로 살았으면 좋았잖아요. 정중하게 부탁하면 들어줄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런 방법을 택했어요?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다. 말 좀 해보라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왜 제 곁에 있는 많은 이들을 죽였냐고 어째서 그랬냐고, 심장이 터지고 뇌가 뭉개진 상태로 죽어가던 그에게 묻고 싶었다.

 숨을 급하게 들이 마시고 있는 과거의 그를 보았다. 아직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소리지르게 만들어 줄 것이다.


 저를 악몽 속에 빠트리고 ‘쓸모가 있었다’는 한 마디를 남긴 채 죽어버린, 왜 그랬냐는 물음에 대답을 해줄 이는, 제 발밑에 깔린 이의 미래는 제 손으로 죽여 버리고 말았다. 어떠한 복수도 속시원하지 않은 것은 이 남자의 미래가 이미 제 곁에 있는 많은 사람과 사신과 실험체를, 그리고 그 자신을 죽여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가 갈렸다. 이윽고 도착하기 시작하는 익숙한 영압들에 눈앞이 흐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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