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요
이건 마치.. 우라하라는 순간적으로 찡그리려는 인상을 바로 폈다. 묘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부터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다른 이들이 있는 곳에서 표정관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나 하는 일이다. 나이가 찰만큼 찬 지금은 쉽게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일에 능해졌다. 하지만.. 이건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래, 농락을 당하는 기분이다. 늘 그랬던 것
벗어나는 거다. 이 악몽에서. 우라하라는 뻑뻑해진 눈을 비벼가며 손에 든 구슬을 매만졌다. 드디어 완성했다. 몇 달째 상점 문을 닫아놓고 연구에만 매진했다. 여기저기 음식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이제는 그 냄새에 익숙해져서 크게 타격을 받지도 않는다. 실험실 안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많은 영압이 이 마을을 복구하는데 힘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일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쇼파에 한쪽 팔을 굽혀 머리를 기대고 몸을 길게 누운 히라코는 팔락거리던 잡지도 내려 놓은 채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이젠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싱크대가 낮아서 한껏 허리를 숙이고 꼼지락거리며 그릇을 닦고 있는 모습을. 저놈은 말이지.. 참 알 수가 없는 놈이라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생각에 변화는 없다. 달그락
아침부터 기술개발국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쿠로츠치는 이마를 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 생각을 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밀고 올라오는 짜증이 제 생각을 잡아먹고 있었다. 어째서 협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 절대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내가 할 수 있는데?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데? 기술개발국의 실력을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녀석은 변한 게 없었다. 아니, 있나. 있는데 없어 보이는 걸까. 조로는 가만히 상디를 살폈다. 어인섬에서 한바탕 일어난 싸움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우리 선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티를 열었으며 제 연인은 뚝딱뚝딱 많은 수의 음식을 만들어냈다. 예전이랑 똑같다, 이런 건. 아무리 자세히 봐도 여자를 보며 더 넋이 빠져 있다는 점 외에는 달
켄짱이 잘못한 건 없는데. 야치루는 아마 두 팔이 있었다면 팔짱을 끼고, 눈을 부릅뜬 채 자라키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검으로 돌아간 지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가만히 형태를 유지하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쿠로츠치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스스로를 숨길 줄 모르는 남자였다. 발을 탁탁 소리가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다. 온전하게 저만의 실험일 줄 알았다. 쿠로츠치는 인상을 쓴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성질 같으면 발을 탁탁 굴리면서 티를 냈겠지만 상대는 우라하라 키스케였다. 안 그래도 눈치가 빠른 사신인데 지금 제 불쾌감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발까지 굴리면서 티를 내면 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짜증이 나는 걸 어쩌자는 것인가. 온전
“함만 믿어보라니께. 진짜 좋아할 거여.” “그래도..” “아, 나를 못 믿는겨?” 믿지.. 믿는데, 이건 너무.. 어린 아이들이 할 만한 것 아닌가? 히라코는 본인의 가슴을 탕탕 치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요즘은 어른들도 많이 하고 다닌다고. 하지만 이런 것을 아이가 좋아한다고? 가람은 어색하게 머리 위에 얹어진 토끼 모자를 만지
참으로 특이한 남자다. 쿠로츠치는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 남자, 자라키 켄파치라는 남자는 이것 저것 실험을 할 수 있는 게 참 많은 남자였다. 넘쳐나는 영압과 강한 몸, 어딜 내놔도 뒤쳐지지 않는 저 괴물 같은 생명체의 질긴 생명 같은 것들이 제게는 완벽한 실험체로 보였다. 처음으로 그에게 관심을 갖은 건, 아주 오래 전 엄청난 영압을 갉아
충분히 볼품없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을 만큼 가득 차 버린 마음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막아보려고 애를 썼는데, 끝이 났구나. 상디는 한숨을 쉬었다. 폐에서 덜 빠진 담배연기가 훅 하고 허공을 갈랐다. 숨이 모자라 뱉지 못한 것이 희게 퍼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제 자신이 참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어
이번에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히라코는 눈을 뜨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떠올린 말을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텅 빈 방에 저 혼자 남겨두고 다 나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 약간 짜증이 나다가도 그들 나름대로의 배려라고 생각하면 뭐, 나쁘지 않았다. 몸속에 자리 잡은 호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버거운 존재였다. 그를 제 아
아무래도 주변 공기가 사나웠다. 그럴 수밖에. 이 공터를 지나가야 하는 대원들은 다가오다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돌렸다. 우라하라는 팔짱을 끼고 앞에 서 있는 두 사신을 바라보았다. 아이젠은 대답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자라키는 인상을 쓰면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싸움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