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마유켄, 흥미로운

커미션 3000자 / BL 2차

커미션 by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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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특이한 남자다. 쿠로츠치는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 남자, 자라키 켄파치라는 남자는 이것 저것 실험을 할 수 있는 게 참 많은 남자였다. 넘쳐나는 영압과 강한 몸, 어딜 내놔도 뒤쳐지지 않는 저 괴물 같은 생명체의 질긴 생명 같은 것들이 제게는 완벽한 실험체로 보였다.

 처음으로 그에게 관심을 갖은 건, 아주 오래 전 엄청난 영압을 갉아먹기 위해 안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대체 어떤 사신이 이딴 게 필요하다는 말인가. 제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그렇게 영압이 철철 넘쳐흐르는데 본인이 주체를 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그것도 대장급이. 한심하기 짝이 없군. 혀를 찼지만 일단 만들라는 명령이 내려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압을 갉아먹는 안대를 만들면서 조금씩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어떤 놈일까. 호정 대원들 간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던 시절이었다. 호정이라는 이름 아래 각 부대로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적처럼 견제하던 시절.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대장급들이 줄줄 원인 모를 상황으로 사라지고, 얼마 안 있다가 또 다른 대장이 사라졌다. 그들은 각 부대의 중심축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것들이 순식간에 없어지고 나니 그 밑에 있는 대원들이 얼마나 흔들리고 공포를 느꼈겠는가.

 그러니 각 부 대간의 사이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관심은 오로지 본인들이 속한 그 부대일 뿐이었다. 다른 부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부대장들끼리도 모이면 상대 부대의 대장이 누구인지 모르는 지경이었으니까.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어도.

 어쨌거나 저는 직접 그 남자의 안대를 만들면서 신기함을 느끼는 수밖에는 없었다. 당시에는 대수회도 흔하게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무난하게 만들었다. 튀지 않도록. 아무래도 이런 건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착용하고 다녀서 뭐하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괜히 독특한 걸로 만들었다가 그쪽에서 싸움을 붙여오거나 귀찮게 굴면 곤란했다.

 잘은 몰라도 켄파치가 11번대의 이름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들은 싸움에 미친 자들이었고, 원한다면 서로를 죽이면서 즐거워 할 야만적인 종족이었다. 우리 대원들은 기술개발국에서 일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그런 야만적인 사신들과 싸우게 할 수는 없었다. 대장이라는 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군.

 흥. 콧방귀를 끼면서 안대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쿠로사키 이치고가 갑자기 소울 소사이어티에 나타나고, 아이젠 소스케가 배신을 하면서 대수회가 자주 열리고 얼굴을 자주 보기 전까지는 그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다. 본인의 영압을 주체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야만적인 사신들을 통솔하기 위해 대장 자리에 앉은 싸움 귀신.


 시간은 흘렀고, 싸움은 계속 되었다. 도저히 쉴 수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전쟁은 언제 끝이 날 지 모르는 상태에 이르렀다. 많은 사신들이 죽고, 그것은 저희 부대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서 슬퍼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찜찜하기는 했으나 크게 마음에 걸린다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제가 원래 그런 사신이었다. 다른 착한 대장들처럼 대원들에게 신경을 쓰거나 관심을 기울여주지는 않았다.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제 눈에 차는 사신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설사 그게 제 부대원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자라키 켄파치와 엮이는 일이 많아졌다. 쿠로츠치는 웃음을 거두고 이마를 꾸욱 눌렀다. 분장으로 칠한 살덩이가 꾹꾹 눌리는 느낌이 아주 기분 나빴다.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일은 관두기로 하고 한숨이나 푹 내쉬었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천천히 천장을 향해 들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충분히 꼬셔봤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실험체가 되어 주지 않겠느냐고.

 다른 마음을 먹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절대?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과학자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는 것은 그것을 어떠한 하나의 물건으로 인식을 한다는 뜻인데(나머지 과학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저는 그랬다), 그게 사신이 될 경우에는 문제가 되었다. 그 흔한 사랑이라는 감정과 착각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자라키 켄파치. 그는 순전히 과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흥미가 가는 사신이었다. 영압도 넘쳐나고 몸도 강하기 때문에 어떠한 실험도 다 견뎌낼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일단 그의 영압이 어디까지가 최대치인지도 궁금했다. 최근에는 안대가 없어도 영압을 잘 조절하는 것 같지만, 도대체 얼마나 넘쳐나야 주체가 되지 않는지,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저 몸에 대한 실험도 하고 싶고.. 단순하게 싸우는 것 같지만 그는 재능이 있었다. 저 돌덩이 같은 머리에서 무작정 해낼 수 있다는 생각만을 하는 것도 다 받쳐주는 기본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러면 어쩌다가 그의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영압을 모아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압 증폭기를 사용하면 될 일이기는 하지만, 문득 누군가라면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도 영압을 충분히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자라키 켄파치였다.

 그러고 나니 과거의 일이 생각났다. 맞다, 영압을 갉아먹는 안대를 착용할 정도로 그는 강한 영압의 소유자였지. 그걸 만든 게 엊그제 일인데 아주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적어도 몇 백 년은 지난 후의 일 같다.

 그저 호기심이었다. 그냥 앉혀놓고 어디까지 영압을 올릴 수 있는 지 시켜보고 싶었다. 자라키 켄파치는 이름도 모를 기계 앞에 서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돌 같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옆모습은 아주 단단하고 굵었다. 저 강한 얼굴에 작은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강한 힘을 내보라고 시키고 싶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피하는 게 우선인 상황이 되지 않았더라면 저는 대원들이 말리더라도 그것을 시도해보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가루가 될 수 있겠지. 그러니까 그런 실험은 아주 조용하고 잘 만들어진 곳에서 하는 게 좋았다.

 크게 다른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은 제가 홀로, 들어오는 사신은 네무 밖에 없는 곳에서 하는 게 좋겠지. 벌써 군침이 돌았다. 그가 어디까지 힘을 낼 수 있을 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걸 몸이 버틸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문제가 생기기 직전까지만 실험을 할 것이다. 그러다가 죽으면 손해보는 건 저니까. 어쩌면 재수 없게 대장급을 죽였다는 누명을 쓸 지도 모른다. 저는 그저 실험만 한 것뿐인데도.


 “어이.”


 그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쿠로츠치는 느리게 고개를 돌려 아직 미완성된 기계 앞에 서 있는 자라키를 바라보았다.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몰라서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입술을 벙긋거리는 것조차 귀찮았다.

 제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한 번 더 어이, 하고 불렀다. 저 입술. 영압을 최대한으로 뿜어내면 저 입술은 버텨낼까, 버텨내지 못하고 갈라지고 찢어질까. 전자라면 흥미롭고 후자라면 만족스러웠다. 어쨌거나 전자는 더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후자는 제 궁금증을 채워낸 것이니까. 어떤 식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제게는 좋은 일이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실험은 우라하라 키스케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의 곁에 있는 사신들은 영압이 출중하다고는 하나 대부분 대장급이었고, 쿠로사키 이치고에게 그런 위험한 실험을 시킬 리가 없으니까.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먼저 해낼 수 있겠군. 하고 생각을 하다 보니 미간을 찡그리며 저를 부르는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착각이 들었다. 아직은 괜찮았다. 뺨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미소를 지으니 미쳤냐고 한 마디 하는데 그 투박스러운 말투조차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것만 끝나면 바로 실험에 돌입을 하는 거다. 지금 이 상황만 끝이 난다면..

 쿠로츠치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하하하 하고 소리를 내서 크게 웃었다. 이것이 과연 실험체를 향한 생각인지, 그보다 더 나아간 무엇인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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