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젠

무제

봉사자 관찰일지

무제 by L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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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영혼이 돌아와 잠시 나마 산 자의 곁에 머물다 간다는 삼하인의 밤.

그러나 죽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이들의 최대 공포는 산 것에게 있다. 언제나 이 즈음의 봉사 활동을 펼칠 때면 자금이 부족할 시기이기도 하고, 당연하게도 인력도 부족하다. 그런 와중에 찾아 온 한 명의 헌터란 가뭄 속에서 내려온 한 줄기 달콤한 비… 라는 찬사는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던가. 아무튼, 그런 봉사자가 있다.

본래 참가하기로 했던 다른 한 명의 헌터는 본인 대신 상당히 많은 금액의 기부를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예쁘게 꾸며 진 할로윈 기념 이벤트 종이들을 알록달록한 장식용 집게에 달아 나무와 나무 사이를 줄로 연결해 장식하고, 주변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기 전에 작은 꼬마 전구를 구해다 빛을 밝히기로 한다. 중간에 무엇으로 변장하는가 에 대하여 작은 이슈가 있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으니 넘기고, 행사에 참여한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분주히 움직이고 나면 따뜻한 천들로 엮인 옷들을 단단하게 차려 입은 아이들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

따뜻한 옷 위에 눈이 뚫린 흰 색의 천을 덮어 주거나, 눈코입이 파인 호박 머리를 씌워 주거나, 옆 사람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면 안 된다는 말을 덧붙이며 끝 부분에 별 장식이 달린 검은 색의 마녀 모자를 씌워 주거나……. 뭐, 그리 원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솜으로 만들어 진 칼이나 나사 모양의 머리띠만 씌워 주기도 하고. 가지각색인 나이를 가진 아이들에게 각자 다양한 취향을 존중한 코스튬을 입히고 나면 어디 선가 분장을 마친 인솔자들이 등장한다. 머리 위에 천사 링을 쓰고, 등에도 작은 날개를 단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검은 뿔과 꼬리를 가진 선생님도 있고, 특별히 디테일한 분장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이 아이들의 앞과 뒤를 책임지는 이 들이라는 어필은 될 정도의 분장을 마친 이들이 각자 담당하는 아이들을 맡는다.

몸보다 의욕이 앞서나가 앞으로 뛰어나가다 곧잘 엎어지는 흰 색의 작은 유령을 품에 안아 든 말 없는 호박이 인솔 교사의 뒤를 따라 느린 보폭으로 걷는다. 보통의 사람들은-임시로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만- 각자의 컨셉에 맞추어 아이들의 즐거움 요소를 추가해 주기도 했는데, 마녀 분장을 한 인솔 교사가 과장된 동작으로 별 모양 지팡이를 휘두르며 미리 허락을 받은 집에서 합법적인 간식 갈취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별 다른 말 없이 다른 길로 빠져나가려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 데려오기만 했을 뿐이다.

 

- 선생님은 컨셉 안 정하세요?

- 딱히 취향이 아니어서.

- 그럼 저만 극악무도한 마녀가 되는 건가요?!

-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 거 안 한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던 봉사자는 결국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가려진 호박 머리가 되었다. 가끔 몸 전체를 덮은 긴 로브의 뒤편에 숨으며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기도 하고, 그러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먼지를 털어 주기도 했지만.

인솔 교사를 따라 지정된 집들만 마저 돌고 나면 오늘의 활동은 끝일 것이다. 호박 머리 안에서 슬슬 집에 가고 싶다는 직장인의 눈을 하고 있던 봉사자의 시선 끝에 별안간 휘청이며 떠다니는 흰 색의 유령이 잡힌다. 혼자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기에는 점점 이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 봉사자인가, 하고 생각하자면 유령 분장을 한 봉사자는 딱히 없던 것 같았다.

그럼 저건 대체 뭘까. 손에 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설마 아이들에게서 사탕을 뺏어 갈 생각은 아닐 것 아닌가? 맞다 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다 싶어 흐늘흐늘 다가오는 유령을 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기어이 호박 머리의 봉사자 앞에 도착한다. 애초 아이들은 목적이  아니었던지, 묘하게 익숙한 키 높이를 가진 그것은 호박 머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이- 별안간 그를 끌어안았다 놔 주고는 정 반대 방향으로 흐늘흐늘 사라져 버린다.

 


왔으면 왔다고 말 하지 그랬어.

내가?

갑자기 날 끌어안고 갈 사람이 한 명 밖에 더 있겠어?

그거 나 아닌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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