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젠

무제

어느 3팀의 기록

무제 by L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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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오래 지내기에는 여의치 않은 임시 거처에도 아침이 오면 어김없이 햇빛이 방문한다. 깨져 있는 유리를 테이프로 대충 감아 둔 창문 사이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빛이 스며들고, 누가 사용하다 떠났을지 감도 오지 않는 낡은 침대에 대충 누워 잠이 든 사람의 얼굴에 강한 열기가 내리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우 잠에 들었던 이의 눈이 떠진다.

 

- 지금 얼굴 진짜 대단하게 생겼다.

- 칭찬이야 욕이야 하나만 해

- 네가 생각하는 쪽이 정답이야.

 

금방 이라도 스프링이 튀어 나올 것 같은 낡은 소파에 앉아 있던 이가 막 잠에서 깨어난 이의 인기척을 알아차린다. 검은 색의 위장 용 첼로 케이스를 열어 내부에 있는 물품들을 점검 중이던 사람이 무언가를 꺼내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비교적 작은 상자를 손 안에 든 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의자를 들고 와 침대 앞에 앉는다.

부상자의 뺨에 붙어 있던 반창고를 뜯어내고,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새로운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른다. 아슬하게 목을 스쳐 치명상을 피한 상처에는 특별히 더 조심스럽게 드레싱을 이어가고, 복부가 시원하게 뚫린 상처에는 밤새 상처가 덧나지는 않았는지를 다시금 점검하며 엄살을 부리지 않는 이의 식은땀을 닦아낸다.

낡았지만 보온은 착실히 해주고 있던 이불을 완전히 걷어내고 나면 다리라고 해서 간밤의 혈투를 무사히 피하지는 못했다는 듯이 여기 저기 감겨있는 붕대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한다. 피를 잔뜩 머금은 천을 한 곳에 모아 버리고, 깨끗한 천을 부상당한 부위에 새롭게 둘러 감는다.

 

- 배고프다.

- 여기서 숨어 지낸 지도 꽤 됐네…….

- 그래도 제삿밥은 안 먹게 돼서 다행이지.

- 불과 7시간 21분 전에 먹게 될 뻔한 일은 기억 안 나나 봐.

- 네가 있잖아.

- 나는 화타가 아니라고 했지요.

 

필요한 처치를 모두 마친 뒤의 상자가 열려 있던 아가리를 다물고, 각종 물품이 담겨 있는 케이스 안에서는 조그마한 에너지 바 세 개가 새롭게 등장한다. 환자는 잘 먹어야 한다는 가벼운 잔소리와 함께 두 개와 한 개로 나뉜 에너지 바가 각자의 위장 속으로 사라지고, 간밤의 생사 결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 마냥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기대어 나른하게 졸음이 오는 것을 막지 않는다.

낡은 이불이 한 사람의 몸을 포근하게 덮는다.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은 깊은 잠에 빠져든 부상자의 얼굴을 지나 이불에 닿다가 소파에 자리한 이에게 닿는다. 이 곳에 존재했을 이가 버리고 간 듯한 낡은 책을 주워다 읽고 있던 이의 마른 기침 소리, 바스락거리며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침대에서 잠든 이가 간혹 뒤척이는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하다 못해 적막만이 남은 거처 안을 창문 사이로 훑던 햇빛은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물건이 놓인 자리를 비추다 어둠 속에 자리를 양보하러 몸을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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