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모모세 아마네]어느 크리스마스의 이야기
IF 모모세 아마네가 2심에서 용서받지 못 했다면?
“모모세 아마네, 제 2심 결과. 용서하지 않는다”
그 결과를 처음 통보받은 아마네는 과연 어땠던가. 불쾌감에 얼굴을 찌푸렸던가? 아니면 자신을 무시한다는 감각에 실소를 터트렸던가? 그것도 아니면 벌써 두 번이나 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사실을 믿기 어려워 몸이 굳었던가? 그마저도 아니면 또 다시 자리를 비운 간수를 향해 이를 악물며 분통을 터트렸던가?
눈앞에 있는 간수를 보며, 아마네는 「예의 바른 모모세 아마네」 답지 않게 무표정으로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건 이 간수가 자신에게 재심 결과를 통보하는 이 상황이 한낱 망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본인이 자신에게 찾아왔다한들 자신의 태도가 크게 변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마네는 착실하게, 정해진 시간에 자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다지 꿈을 꾸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물며 지난 과거에 자신을 욱여넣고 싶은 생각도. 그나마... 그래. 단죄 이후에나 가끔 꿈을 꾸고는 했다. 그리고 그 꿈에서 일어난 날은 빠짐없이 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불경한 꿈을 꾸어 죄송하다, 그렇게 빌었다. 그럼 이것을 꾼 자신은 무슨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
그게 지금의 모모세 아마네에게 주어진 작은 고민이다. 그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눈앞에서 가만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람에게 기꺼이 입을 열어주기로 했다. 말하는 것은 아마네가 잘 하는 것 중 하나이니.
“간수 씨는 꽤 좋은 청자입니다. 저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생각도 바꿔주었으니까요”
물론 꽤 수다쟁이인 면도 있습니다만, 그건 간수 씨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사고가 가능하고 같은 언어체계를 가진 인간인 이상 당연한 거겠죠. 나를 어린아이로 대하지 말아라. 그리고 사과해달라. 꽤 고집스러웠지만 결국 당신은 그리해주었습니다. 그저 귀찮은 상황을 넘기려고 어린아이에게 져준다는 듯이 대충 대꾸하던 사람 정도나 마주하던 입장으로서는 신선했습니다. 적어도 간수 씨는 저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고, 자신을 반성하고, 더 나은 면으로 바뀌었다는 증거니까요.
“물론 그건 저의 큰 착각이었지만요. 그때 알았습니다. 가르침을 전파한다는 건, 우리를 부정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는 걸.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우리의 신앙을 널리 퍼트리시는 아버지는 대단하신거죠. 새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마네는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활짝 웃었다.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며. 여느 어린아이처럼. 부모님을 가지고 서로 누가 더 잘랐네를 앞다투어 말하던 반 아이들처럼.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정받지만, 노력하면 분명 이해해준다고. 이해할 생각이 없는 자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훗날의 너의 역할이기도 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당신의 그 고집스러운 면도, 우리의 종교를 두 번이나 부정해버린 것도 말이죠”
밝고 높은 목소리는 멈추는 일 없이 계속, 계속 말했다. 예의없게 도중에 말을 끊는 짓따위, 간수 씨는 하지 않아주었다.
“그건 당신이 간단히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가치관을 가졌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당신을 이해시켰을 때 느낄 보람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분명 그걸 이뤄냈을 때, 저는 무척 보람을 느끼겠죠.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거고요. 당신의 설득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어떤 사람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작 반친구를 납득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나이의, 그럼에도 확고한 가치관의 소유자인 당신을 설득시킨다면.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사람도 이해시킬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이 우릴 이해하길 마냥 바라지 않는다. 나로 하여금 당신이 이해하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를. 우리의 종교를. 모모세 아마네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겐 기회가 없습니다. 당신은 지각쟁이인데다가, 얼굴을 그다지 비추지 않으니 다음이 마지막 기회죠. 게다가...”
눈을 접어 웃던 얼굴은 눈을 반절정도 뜬 무표정으로 변했으며 목소리는 차갑게 내리깔았다.
“경고를 무시했지”
간수의 표정은 모자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것은 꿈이라서일까. 그러나 딱히 상대의 표정은 상관 없었으니 아마네는, 신앙의 대변자는 말을 이었다.
“그에 대해선 실로 유감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했다. 왜 너는 경고를 듣고도 우리를 부정했는가”
마치 죽어버린 식물처럼 싸늘한 눈동자가 간수와 눈을 마주했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녹빛의 생명력은 착각이라는 듯이.
“우선, 경고에 굴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신앙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마음이 확고해서”
한 발자국 다가갔다.
“종교가 아니라 나를 인정하지 않아서”
다시 한 발자국. 아니, 자세를 바로잡는 것까지 두 발자국이다.
“나를 어린애로 보아서”
또 한 발자국.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졌다.
“혹은 나를 어린아이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도달하자, 아마네는 한쪽 팔을 천천히 들어 밀어보았다. 한 손으로 밀쳤을 뿐인데도 간수는 마치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간수를, 아마네는 서서 내려다보았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아마네가 누군가를 내려다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단 한 번, 아마네가 누군가를 내려다본 경험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감회를 느끼면서, 그 대상과 간수 둘 다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마네는 상대를 빤히 보았다.
간수의 표정이 보인다. 언젠가 학교 근처의 가게에 전시되었던 도자기 인형처럼 멍한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본다. 간수는 무표정하게, 이쪽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듯이 무감각한 얼굴로 이쪽을 보았다. 그리고 입이 열린다.
“용서하지 않는다”
아아. 다시금 제 귓가에 하찮은 목소리들이 울려퍼진다. 뇌 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하는 듯한 끔찍한 감각. 그 순간에 들려오던 종교를 부정하던 목소리들과 그 사이에서도 귀에 꽂혀오던 간수의 부정. 똑같은 상황. 똑같은 목소리.
“밀그램은, 너의 교리를 부정한다”
똑같은 부정. 아마네는 마찬가지로 똑같이 가위를 꺼내주었다.
“이해해라, 모모세 아마네. 죽인 건”
찔렀다.
“......”
그때와는 달리 제대로 공격이 되었다. 얼굴부터 찌른 덕분이었을까. 간수의 입은 다물어졌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대사를 내뱉기만 하던 간수는 드디어 조용해졌다.
“저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물론 귓가에서 자신의 죄를 비난하고, 종교를 부정하는 이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을”
그러나 개의치 않고 찌르기를 계속했다. 빨간 핏물이 튀어 자신의 손과 옷을 물들였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당신들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위가 우산으로 변한다. 딱딱한 바닥은 여느 가정집의 나무바닥으로 변한다. 피가 잔뜩 튀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어진 간수 씨 역시 어느 순간 복장이 바뀌어있다. 그럼에도 자신은 저 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아아...”
모모세 아마네의 죄의 순간이었다.
“...”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려던 아마네보다 먼저, 어떤 소리가 울려퍼졌다. 톡, 톡... 마치 막 비가 오기 시작할 때의 소리처럼.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바로 옆에서 들려오듯, 소리는 귓가에, 아니 집안에 울려퍼졌다.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이 집에서 물소리가 날만한 곳은. 분명. 그 장소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마룻바닥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고인, 아니 떨어진 물방울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시야에 담은 그 순간, 토독토독 떨어지던 물소리는 세차게 바뀐다. 샤워기. 그래. 샤워기를 튼 것처럼.
“죄송합니다!”
샤워기 소리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 무척이나 다급하고, 간절해보인다. 아마네는 힐끗 제 아래를 보았다. 피로 물든 마루는 여전했고, 난자된 그것 역시 여전했다. 꿈이라 그런걸까? 아니면 자신이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걸까.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공존하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는 자신이 멀쩡하다는 진위마저 확신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죄송합니다!”
아, 어쩌면 이 모든 것 자체가 꿈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를 단죄한 것도 꿈. 밀그램에 온 것도 꿈. 다만 그럼에도. 미쳐있다한들. 밀그램이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꿈인들.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행하면 되는 것이다. 꿈을, 현실로 바꾸면 되니까.
“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그건 모모세 아마네의 특기였다. 상상하고, 계획하던, 자신의 안에만 있는 허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그것만이 모모세 아마네가 할 수 있는 것이다.
“......”
문 앞에 다다르자 마치 지직거리는 라디오처럼 잠깐 소리는 멈추었다가 이윽고 변했다. 몇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울려퍼지는 그 소리를, 모모세 아마네가 질러왔던 그 비명을 들으며, 신앙의 대변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가여운 모모세 아마네를 대신해 입을 열어 저 순간에 취해야 할 정답을 대신 말해주었다.
“하나, 사람은 운명을 살아라”
그 순간, 목소리는 사라졌다. 목소리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진 집 안에 차분하게 울렸다. 마치 아버지에게 혼나던 때처럼. 그 사람의 목소리만이 울려퍼졌던 그 순간처럼. 그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낀 것도 잠시, 모모세 아마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이런 꿈을 꾼 자신이 해야만 하는 행동을 드디어, 그제서야 깨달은 아마네는 손을 하나로 모으고 깍지를 꼈다. 기도하듯이. 눈을 감았다. 살짝 열려있는 문의 틈새에는 시선 한 줌 주지 않고서.
“하나, 사람은 천한 것을 버려라”
눈을 뜨자 천장이 보였다. 이제는 자신의 집보다도 더 익숙한, 밀그램의.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점심시간인 모양이었다.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소음이 생기니까. 아마네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잔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 몸을 일으키며 이어서 입을 열었다. 말해야만 하는 것을. 들려주어야만 하는 것을.
“하나, 믿는 것에 헌신해라”
아마네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신중하게. 목표를 향해서. 두 걸음. 제가 해야할 것을 위해서. 세 걸음.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상상하던 것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나, 길을 벗어나지 말고 끝내라”
모모세 아마네는 가위를 높이 들어올렸다.
-
카지야마 후우타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것 따위 처음부터 없기는 했다만서도. 요즘 감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거기서 더 최악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 생길 수 있었구나 싶을만큼. 신이란 게 있다면, 아니... 아니. 그건 지금의 내가 언급할 게 아니었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또 자취를 감춘 에스에게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넌 대체 여길 얼마나 지옥으로 만들고 싶은 거냐고...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후우타?”
쯧. 점심 시간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더니. 딱히 누구랑도 마주칠 기분이 아니었던 후우타는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나 그 거부감을 참고 고개를 들어올리자 그나마 대화를 하기엔 괜찮은 얼굴이 보였다. 무우나 유노나... 아무튼 다른 녀석들보다는.
“...아재”
“밥 먹으러 왔어?”
“그런데. 아재는?”
“나도 같은 용건이지. 이 시간에 밥 먹으러 오는 것 말고 달리 뭐가 있겠어?”
분위기를 풀려는 용도인지 늘 짓는 미소를 지으며 짧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맨날 웃고 있는 건지. 뭐, 정말로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그럼에도 주위를 위해 웃는 건 후우타가 택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런 여유와 배려, 어른스러움을 후우타는 갖고 있지 않으니까.
“아재도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남을 위해 저러고 다닐 수 있다니. 유노 녀석도 처음하곤 꽤 달라졌는데 말이지. 변함이 없는 건 용서를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강한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일방적으로 말하는 카즈이를 내버려뒀을 때, 주제는 싫은 방항으로 바뀌었다.
“간수 군은 언제쯤 다시 나타나려나”
“그 녀석 따위...”
후우타는 부러 말을 잇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차라리 안 나타났으면 했다. 영원히. 제 3심이 시작되는 것도 싫고, 그 순진한 얼굴도 싫으니까. 어차피 에스는 우리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 동정을 보여도, 친밀감을 보여도, 아무리 아이처럼 보여도. 결국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며, 우리를 심판한다. 제 결과가 가져오는 변화를 마주할 생각도 않는다. 그저 어디론가 몸을 옮기고선 그 변화가 끝난 뒤에야, 우리가 망가진 이후에서야 그 아무것도 모른단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고 이쪽은 설명해야 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든. 관찰 당해야만 했다. 후우타는 그 얼굴이, 그 순진무구한 얼굴이 정말로 싫다.
“확실히.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지. 그래도 간수 군이 등장하면... 끝이란 게 보이니까”
카즈이는 후우타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다소 웃음기를 거두고는 어딘가 멀리 보는 시선으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후우타는 저도 모르게 카즈이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가, 바닥을 보았다.
“아재는 좋겠네”
그 말을 내뱉고 후우타는 흠칫했다. 그야 내뱉어선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 정도는 있으니까.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지금 감옥을 「지켜주고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다. 인간으로서도, 무엇으로서도. 그건 후우타가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였으며 지금같은 위기 상황에는 정말로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자신이 카즈이의 입장이었으면 구해줬는데도, 전부 맡겨버린 주제에 시끄럽게 군다고 생각했겠지.
“좋아 보이나. 용서가 좋고, 용서받지 못하는 게 나쁘다는 식으로 나눌 수는 없다고 본다만...뭐,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이쪽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그걸 버텨낸 너희들이 더 대단하다고 보니까. 그건 무너져버려도 어쩔 수 없을 정도였어”
저렇게 사람 좋게 웃으며 넘길 일이 아니라는 뜻이지. 알고는 있다. 하지만 필요를 인정받은 자들이 내심 부러운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나도 용서받았지만, 그건 별개였다. 에스의 마지막 말로 미루어봤을 때, 에스는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서 용서한 게 아니니까. 그저 이 꼴이 불쌍하니까. 단순히 그뿐일 거다. 단 한 번 있는 패스권이라는 거겠지. 마지막에가서 용서받을 거라는 확신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카즈이의 배려도, 뭣도 그저 용서받았고 용서 받을 녀석의 형편 좋은 말로밖에 안 들린다.
“짜증나...”
짜증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혼잣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 짜증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나아졌다곤한들 여전한 고통도, 이 분위기도, 간수 녀석도,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도. 그나마 후우타가 방에 틀어박히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카즈이가 말을 걸 때 피하거나 회피하며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재심 결과 덕이었다. 드디어 받은 용서는, 그럼에도 용서해줬다는 사실은, 용서받았다는 건, 후우타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들어줬으니까.
‘나를 용서해! 용서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니까 말이야!!!’
그 마지막 기억은 후우타한테도 꽤 길게 여운을 남겼다. 처음은 그 감정이 그대로 이어진 분노. 그 다음은 이걸로 용서를 받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후회. 그 다음은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무슨 소용이 있냐는 허탈감. 그리고... 그런데도 자신을 긍정한 간수를 향한 이해가지 않는다는 감상과 감사와 아주 약간의 민망함. 20살이나 먹은 주제에 15살 애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야”
죄를 탓하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물론 겪은 입장에서는 끔찍했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자기합리화를 하고 어떻게든 외부에 그 감정을 표츨해내거나 귀를 닫으며 살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니까. 그리 강인하지도 않은 자신이 이렇게 멀쩡히 있는 게 그 증거다. 의외로 사람은 쉽게 망가지지 않으니까. 그러나 고작 열 다섯살짜리가 사람의 원망, 분노... 그런 날것의 감정과 마주했음에도 책임감과 애정의 이름 아래 버티는 것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스스로가 더할 나위 없는 쓰레기가 된 기분이어서.
“그 녀석이 더 강해”
알고 있다. 알고 있어. 그래도 에스가 결국은 제 판단에 죄책감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고, 그 녀석은 자기 일을 할 뿐이고, 우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마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녀석이라는 건. 하지만... 그래.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어차피, 우리만큼 망가지지도 않았잖아. 괴롭지 않잖아. 그저 판단하면 되는 거잖아. 어차피 우리의 괴로움마저도 판단해갈 거잖아. 그럼 원망 정도는 해도 되는 거잖아...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런 마음이 들어서...
“......시도우는 좀 어때?”
“아, 시도우 군은......이런, 오늘 점심은 고기인가”
“...그래?”
곧 도달한 식당에 준비된 식사는... 비프 스테이크. ...어쩐지 잘 나오니까 기분이 나빠지는데. 아무튼 후우타는 두 사람 몫의 식사를 챙겼다. 수프에 샐러드...게다가 크리스마스 케이크까지 있으니 오늘따라 식기도 많았다. 벌써 크리스마스인가. 어쩐지 한숨부터 나온다. 그리고 잠시 고민했다.
“아재”
“응?”
“먹어”
카즈이에게 스테이크 한 접시를 건네주고 카즈이가 얼떨결에 받자 후우타는 용건은 없다는 듯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후우타를 보며 카즈이는 목을 한 손으로 쓸었다.
“...이것 참. 등 밀어주려고 온 건데. 괜히 스테이크만 한 번 더 먹게 됐네”
밀려오는 민망함에 괜히 천장만 보다가, 카즈이 역시 양도받은 스테이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대충 시간을 보니 딱 점심시간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해도 그럭저럭 시끌벅적했던 시간대였다만 지금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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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리하 코토코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복도를 거닐었다. 그 사건 이후로 밖을 거니는 사람마저 거의 없어진 탓에 아마 마주칠 사람도 없겠지.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일 자체가 드물어졌다. 마치 자신이 일을 저질렀을 때와 비슷한 침묵이, 무척이나 신경에 거슬렸다. 조용하고, 가라앉고, 끝도 없이 자기 안에 빠져드는 듯한... 아, 기분 나빠.
글쎄. 질투라고 누군가는 말 하겠지. 고작해야 살인자 따위가 자신보다도 먼저 감옥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자신이 움직이기도 전에 선수을 빼앗겼다는.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차라리 모모세 아마네가 아니라 자신이, 적어도 다른 누군가가 일을 쳤다면 이 정도로 불쾌하지는 않았을...... 이어지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끊어내고 코토코는 눈앞의 문을 열었다. 노크 따위는 필요 없었으니까.
“상태는 어때?”
“...유즈리하 군?”
코토코는 숨길 노력도 하지 않은 시선으로 침대에 있는 시도우를 훑어보았다. 생각보다는 멀쩡하네. 아쉬울 정도로. 육체적인 의미도 있다만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떤 이유로든 아껴대던 아마네가 제대로 저질러줬으니, 더 이상 그 짓을 못 하게 되었으니 죽을 상이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멀쩡해보이네. 그대로 리타이어 되지 그랬어”
“실망시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할까요?”
“필요 없어. 그보다 그렇게 아끼던 아마네한테 당한 소감은 어때?”
“...그걸 물어보러 여기까지 걸음을 옮긴 건가요. 그건 명백히 어른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고 한들 아마네를 좀 더 신경썼어야 했어요”
코토코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한쪽 입꼬리를 삐뚤게 올리는 것이 비웃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마네가 들었다면 분명 평소처럼 인상을 잔뜩 구겼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네가, 너희들이 신경을 써줬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아니면, 아예 미수로 그칠 수 있었을 거라고?”
“반드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네에게도 무언가의 생각은 있겠죠. 저희에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리고 그 결과가 이런 방식이라면 적어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너희의 존재가 모모세 아마네에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착각도 유분수지. 모모세 아마네를 제대로 무시하고 있네, 당신”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그런 짓을 저지를 때까지 아무도 낌새를 눈치채지도, 저지하지도 못했다는 것은...”
“그 부분이 착각이라는 거야”
그래, 지금 대부분이 그 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견은 눈앞의 대상의 발언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 예상하지 못했다... 누군가 좀 더 신경써야 했다... 심지어 이 지경까지 와서도 내심 아마네가 살인자라는 걸 믿지 못하거나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거니 생각하는 자들은 많았다. 바보같아. 코토코는 아이도 악독할 수 있음을... 약자라고 하여 선하지 않음을 안다. 심지어 아이니까,라는 이유로 멋대로 약자라고 보지도 않고.
즉 자신은 모모세 아마네가 한 행위가 급작스럽다고도,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켜봐온 아마네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상처입힌다. 그건 자기 자신 역시 마찬가지. 옳다고 생각한 무언가에, 해야만 하는 무언가를 위해 망설임없이 몸을 던진다. 입을, 팔을 휘두른다. 최악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기꺼이 그 최악을 행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인간이다.
“그러니까 모모세 아마네에게 미움받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라는 이유로 그 녀석이 한 행위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있잖아”
“그건 서운하지만요. 그나저나 어쩐지 화가 나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나 아마네가 했던 행위가... 아니, 아마네가 싫은 건가요?”
하, 맞다. 이 작자도 이런 남자였지. 같잖게 사람을 찔러대기는...
“싫어”
쓸데없이 헤실거리는 얼굴도, 그 순진무구한 얼굴로 저지른 짓들도, 그리고 그다지 추측하고 싶지 않은 「모모세 아마네」의 사정도, 심지어는 타인에게 결정권을 맡겨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제 행위를 포장해대기는... 정말 죽일 각오도 되어있지 않았던 주제에. 적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스스로를.........됐어. 이 이상 욕해봐야 제 얼굴에 침 뱉기니까. 비웃어줄 생각으로 온 거였는데 괜히 이쪽의 기분만 더 나빠졌네.
“애는 애라고 학습만 빨라서는......”
“네?”
“너한테 한 소리 아니니까 신경 꺼”
코토코는 환하게 웃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같이 떠오르는 어떤 얼굴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 역시 이쪽의 속도 모르고 웃는 얼굴에는 신물이 난다. 심지어는...
‘저는 당신을, 당신의 행위를 보고 깨달았다고요?’
같은 얼굴을 하고 전혀 다른 소리를 내뱉는 건... 변해버리는 건... 몇 번을 겪어도 역겹다. 어찌되었건 그건 더 이상 모모세 아마네가 아니다. 그는 신앙의 대변자가 되길 자처했다. 그럼 이쪽도... 마음을 다잡아야했다. 심판을. 악인을. 죄를. 정의를. 그러기 위해서는... 코토코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떤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여기서 도망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맡겨버리지도 않아!’
아아... 코토코는 이 우스운 광경을 에스에게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보고 있을까? 어찌되든 좋다. 그 차갑고도 다정한 얼굴에 그것들을 들이밀고, 네 불완전하고 옳지 못한 선택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거라고, 나였으면 모모세 아마네가 돌발 행동을 하기도 전에 막아낼 수 있었다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역시 나였다고... 너에게는 역시 내가 필요하다고... 널 주저앉히고, 그 가녀린 어깨를 붙들고, 네가 도망가고 싶다고 느낄 때까지 그 여린 마음을 짓밟고... 그런 너를... 나는...
아, 어쩜. 코토코는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굳이 억누르지 않았다. 내장을 전부 태우는 것만 같은 이 감각은, 금방이라도 날뛸 수 있게 몸을 데우는 이것은 분명 분노일 것이다. 나를 한없이도 불쾌하게 만드는 약자들을 향한... 그러니까 에스, 제대로 마주해. 네가 만든 지옥을. 내가 곁에 없는, 네 잘못된 선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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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에스. 잘 잔 모양이군”
멍하니. 멍하니 에스는 바라보았다. 잭카로프를. 밀그램의 관리자를. 즐거운 듯이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토끼를.
“이것참, 1심이 끝났을 때처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고?”
재촉하고 싶어도, 묻고 싶어도, 입은 움직이지 않는다. 멍한 정신은 주체적인 사고마저 포기하고, 그저 잭카로프가 하는 말을 들을 뿐. 에스는 입을 꾹 다물고 분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어쩐지 식어버리기도 하고, 경악하기도 하고, 안도를 느끼기도 하고,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며... 그렇게 차례는 지나가 이윽고.
“죄수번호 8번, 모모세 아마네”
그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에스는 2심 종료 보고 때를 회상했다. 흥분한 듯한, 그러면서도 어쩐지 냉정한 듯한 그 목소리를.
‘이것 참, 이것 참. 정말로 재미있어. 너희들은 정말로 재미있구나! 용서받지 않으면 죄수를 공격하겠다고 예고한 녀석을! 아이라고 해서 용서하지 않는다! 죄수가 협박 대상이 되더라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이야 대단해! 감탄했어! 모모세 아마네 본인이 원한 그대로로군! 아니면 그 반대였나? 아이였기 때문에, 그 예고에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다른 죄수들이 막아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뭐, 나로서는 어찌되든 좋아. 아까 쿠스노키 무우 때와 마찬가지로. 그나저나 모모세 아마네도 어지간히 키리사키 시도우가 싫은 모양이로군... 아니면 본인이 본인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상대가 키리사키 시도우 뿐이었던 걸까. 굳이 공격 예고였던 건 유즈리하 코토코의 폭력 행위에서 무언가를 느꼈나? 네 반응을 보고 그건 통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이 녀석은 원래 그런 녀석인가? 하하... 뭐. 이 녀석의 환경 때문이든, 지금 밀그램의 상황 때문이든, 본인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든, 스스로의 선택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법이다. 밀그램 밖도 똑같잖아?’
에스는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기도,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악을 감안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를 택했다. 여기서 지면 이후에도 끌려다닐 것이라든가, 이런 협박을 해왔기에 용서하지 않이야 한다든가, 사쿠라이 하루카와 마찬가지로 이 협박이 통하게 두어선 안된다든가... 그러니...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용서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녀석의 사상은 부정받았다. 사상 부정으로 인해 녀석은 죄수번호 5번, 키리사키 시도우를 공격했다. 아까 설명했듯 중상은 아니야. 죄수번호 7번 무쿠하라 카즈이가 막았으니까. 그럴 생각으로 녀석을 용서한 거잖아? 방패가 쓸모있어서 다행이군. 애초에 어린 아이가 성인을 죽이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지. 정말 죽일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격은 했다는 거야. 너 때문에. 네가 이 녀석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덕분에 키리사키 시도우의 의료 행위는 중단, 시이나 마히루의 상태 역시 악화, 그나마 카시키 유노가 도움을 준 덕에 죽지는 않았고... 이제는 완전히 신앙에 미쳤다고...... 뭐야, 그 표정은?”
또각. 낮은 단굽 소리가 조용하게 울려퍼진다. 너무나 생생해서 방금까지 듣고 온 것만 같은 잭카로프의 3심 개시 목소리를 회상하며 에스는 문을 열었다. 끼익, 어쩐지 그 소리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마네”
“......”
“어이, 아마네. 왜 사람을 빤히 보는 건데”
“...이번에는 진짜로군”
“하?”
영문 모를 말을 한 아마네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결국 에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의자에 앉았다. 맨살에 닿는 차가운 쇠의 감촉이 기분 나쁘다.
“그 사이에 실컷 저질러주었더군”
“경고는 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밀그램이, 네가 우리들을 부정한 이상 그 외의 결과는 없었다. 미숙한 신체 때문에 거기에서 그친 것은 유감이군”
“죽일 생각...이었다는 건가?”
“그래. 교리에 따라서. 그것만이 그가 저지른 죄를, 앞으로 저질렀을 죄를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말했듯 우리의 신앙은 관대하다. 죄를 지었다면 그만큼 벌을 받으면 된다. 물론 이제 그 행위를 못하게 되었으니 상관없는 일이지만”
아마네의 목소리는 정말로 평온했다. 2심보다도 더욱. 높낮이도 없고, 감정 역시 느껴지지 않으며, 판에 틀어박힌 교과서적인 말을 내뱉고 있다. 그게 왜곡된 교과서라는 것만 빼고는. 마치 인형과 대화하는 기분인데.
“너 때문에 마히루는 지금 악화되었는데도 말이지. 죽을 수도 있었다고”
“그 역시 시련이다. 자의가 아니었다곤 해도 치료라는 행위로 시련을 피해가려 했기에 주어진 벌이기도 하지. 실제로 키리사키 시도우는 자기가 없다면 시이나 마히루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시이나 마히루는 살아있어”
“좋을 대로 해석하기는... 하아, 됐어. 이 이야기는 그만두지. 어차피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될 테니까”
저런 도돌이표 대화가 반복될 답이 없는 주제에 물고 늘어져봤자 시간 낭비다. 3심까지 와서 저런 주제로 대화를 할 생각은 없으니까.
“죽일 셈이었으면 왜 후우타를 시키지 않았지? 일단은 성인 남성이고, 너의 사상을 긍정해 너를 따르니 시키는 게 더 나았을 텐데”
“그런가.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군. 그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아직 그는 불안정하니. 타인에게 벌과 시련을 줄 정도는 되지 못해. 아직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미숙한 자다”
“자격, 말이지”
에스는 비죽 튀어나려오는 비웃음을 참았다. 사람을 상처입히고 죽이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 「자격 있는 자」에게 벌을 받었던 「자격 없는 자」가 「자격 있는 자」를 주장하는 모습이 얼마나 바보같은지. 누구에게나 구원은 있다고 한 주제에. 결국 따르는 게 전제인 독재체제에 지나지 않잖아.
‘정말 죽일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돌연 떠오른 잭카로프의 말의 에스는 잠깐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일부러는 아니고?”
“......뭐?”
“시도우를 일부러 죽이지 않은 게 아니냐고 묻고 있는 거다”
“...또 나를, 모욕할 셈인가?”
아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표정이 다시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보며 에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1인칭도 바뀌었어. 역시 어린애잖아. 신앙의 대변자도, 뭣도 아니다. 단순히 고집을 부리는 어린애다.
“실제로 시도우도 다행스럽게도 치명상은 아니었다고 했고... 카즈이도 모여있을 때 벌어진 일이라 빨리 막을 수 있었다고 하던데”
“......”
“시도우가 싫다고 말해대는 주제에 죽일 정도는 아니었나? 아니면 이제와서 사람을 죽이는 게 무서워지기라도 했나? 네 신앙도 겨우 그 정도였다는 건가?”
“......”
“뭐, 어느쪽이든 좋아. 결국 너는...”
“어째서 너는 용서하지 않았지?”
감정적으로 동요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거라는 생각과 달리 아마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주제를 바꾸려는 시도는 안 통한다만”
“대답해. 왜, 우리를 부정했지?”
“하아... 뭐, 좋아. 어울려주지”
어째서 나는 모모세 아마네를 용서하지 않았던가. 그 협박에 굴하지 않았던가. 굳이 되돌아볼 것도 없는 것이었다.
“말했듯 그 제멋대로인 기준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들」따위의 소꿉놀이를 네가 지속하는 이상은 더더욱”
“우리의 협박에 굴하지 않은 이유도?”
“그래”
“「모모세 아마네」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고?”
에스는 어쩐지 찔린 듯한 느낌을 받으며 표정을 굳히며 잠시 침묵했다. 그게 아니라고는 못 하니까. 하지만 감안하고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없다고는 못 하겠는데, 관계는 없다고 생각한다만. 그보다 그 소꿉놀이는 그만둘 생각은 없는건가?”
“소꿉놀이 따위가 아니에요”
갑자기 조금은 차분하고, 「모모세 아마네」의 말투로 돌아왔다. 아마네는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건 평소의 아마네의 어린아이같은 미소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흉내를 내는 듯한 어른스러운...
“「저」와 「저희」는 확실히 다른 존재예요”
“......그건 이미 논파했다고 생각한다만, 이제와서 다시 주장할 셈인가? 아니면 너도 다중인격이라고?”
“당신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주제에. 좋아요. 설명해드리죠”
어쩐지 설명해주겠다,하는 태도는 거슬렸으나 에스는 팔짱을 끼고 상대를 빤히 보는 것으로 끝내고 가만히 침묵했다.
“예를 들어... 그래. 회사원인 미코토 씨와 그냥 미코토 씨는 다르죠. 1심 전의 코토코 씨와 지금의 코토코 씨가 다르듯이. 사람은 얼마든지 몇 개의 역할과 가면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걸 나누는 건 직업, 역할, 지위... 혹은 종교. 그리고 그건 딱히 연기가 아니에요. 진짜 나이지만 여러가지로 나누어져 있을 뿐이죠”
“역할 이론과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건가.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지?”
“「모모세 아마네」와 「신앙의 대변자」 역시 그와 같다는 겁니다”
“뭐?”
“간수 씨, 당신의... 당신들의 눈에 저는 신앙의 대변자인가요? 아니면 죄수번호 8번 모모세 아마네인가요?”
크게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귀를 통해 뇌까지 울리는 듯한, 위압감 있는 소리가. 거기까지 하라는 듯한 소리가.
“「모모세 아마네」는 깨달은 겁니다. 「신앙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그리고 나를 「신앙을 강요받은 불쌍한 어린아이」라고 바라보고 있는 당신들을 보며, 코토코 씨의 행동을 보고... 당신들에게 어린아이가 아니게 될 방법을”
“키리사키 시도우...”
“확실히 당신의 말대로 죽이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어요.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어린아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 저도 살인을 저질렀다. 제 죄를, 제 악함을 인지하라는 거였으니까요”
에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유즈리하 코토코의 행위에서로부터 비롯된 모모세 아마네의 증명이라는 거니까. 그렇지만, 그렇지만... 고작 그걸 위해 사람을 찔렀다고. 찌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아, 정말이지.
“...너도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니군”
“당신의 제정신의 기준으로는 말이죠. 그걸 깨달았다면 저는 더 이상 당신에게 있어 「어린아이」는 아니겠네요. 그렇다면 성공입니다”
그건 의심할 도리 없는 진심이었다. 모모세 아마네는 3심까지 와서, 여기까지 와서 고작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건 밀그램에 있어서는 올바른 태도겠지... 괜찮은 죄수로서의 방식이겠지... 하지만... 에스로서는...
“......그럼 너는,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치사하네요. 그건 문제를 풀 때 답지를 보는 행위잖아요. 전 답지는 채점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열어보지 않아요. 간수 씨. 간수 씨에게 저라는 건 어떤 문제인가요? 제 입에서 나오는 것이 답지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간수 씨는 그렇게 사고를 멈추고 남에게 판단을 맡겨버리는 사람인가요?”
“그럴리가 없잖아”
“예. 압니다. 알아요. 간수 씨가 그런 사람이라는건. 그리고 저도 그 마음은 알아요. 오히려 「저」는 감탄하고 있다고요. 협박에도, 제안에도,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판단 아래 「우리들」을 계속 부정하는 그 모습을. 당신과 저는 같아요. 당신은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하지 않는 한 절대 저를 인정하지 않겠죠. 그러니 저도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납득하고, 포기할 때까지 추하게라도 매달릴 겁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굳은 말투로 말을 하던 아마네는 다시금 웃었다. 누군가의 흉내처럼 서툴게, 그럼에도 어른스럽고 상냥하게.
“그러니까 그런 당신이 저라는 문제를 풀어주세요. 전 처음부터 같은 걸 요구했어요. 절 아이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저를 제대로 봐주세요”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는 시선은 그만두라고 말 했을텐데... 게다가 네가 요구할 것도 아니야. 판단은 내가 한다”
“예. 그러니까 그 판단을 원하는 겁니다. 전 당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움직일테니, 당신은 당신의 사고로 절 판단해주세요. 「저」를 봐주세요”
에스는 앞선 죄수들에게서 느꼈던 무언가를 느꼈다. 마치 사형을 앞둔 사형수처럼, 끝의 끝에 가서야 드러내는 죄수들의...
“저는 여기에 있어요. 있었어요. 줄곧. 그때도. 그때도. 그때도. 그때도. 지금도”
“...하아, 알겠다. 제대로 봐주도록 하지”
에스는 일어나 아마네에게 다가갔다. 앉아있는 아마네를 내려다보며, 에스는 다시 한 번 마지막일 소리를 외쳤다.
“죄수번호 8번 모모세 아마네. 너의 죄를 노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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