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도윤] 한도윤을 죽이는 다섯 가지 방법

2021 우석도윤 개인지 <한도윤을 죽이는 다섯 가지 방법> 수록 단편

허우석은 멍청했고, 손가락이 가벼웠으며, 스스로가 그 사실을 절실하게 체감했다. 별 생각 없이 남긴 페잇 한 줄은 그것만으로도 갖은 생각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인정한다. 분노에 잠시 눈이 멀었었고,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일종의 현실부정, 한도윤같은 배신자가 나를 버리고 잘 살면 잘 살지언정 죽진 않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한도윤이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한도윤은, 죽었다.

시신은 잔해 더미 속에 깔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있었다고 했다. 허나 그것은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다. 시신의 목에는 파란 넥타이가 매여 있었다고 했다. 사망 추정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페잇을 올렸던 시각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미안. 미안해. 다 내 탓이야. 새벽 네 시경 한도윤이 마지막 페잇을 올렸을 때, 허우석은 비웃었다. 네 탓인 걸 알기나 하느냐고, 미안하긴 누구에게 미안하냐고 비꼬았다. 그 감정이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새벽 여섯 시의 허우석이 결국 마주한 것은, 자신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무게의 것이었다. 한도윤이 죽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부정했고, 그 다음은 분노했으며, 그 다음에야 가까스로 수용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 때에 몰려온 것은 후회였고, 헛된 가정이었다. 네가 말한 '미안해'의 대상에 내가 없기만을 바랬다. 그랬다간 더욱 버틸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이런 식으로 듣게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으니까.

허우석은 후회하는 대신에 도망치길 택했다. 그러나 온전히 도망칠 만큼 용기있는 사람은 또 못 되어서, 한 쪽 귀를 차마 막지 못 한 채로 버텼다. 어떤 날은 죽은 듯이 잠을 잤고 어떤 날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리를 질렀으며 또 어떤 날은, 한도윤의 귀신이라도 보았다는 듯이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네가 한도윤을 그렇게 생각하기나 했어? 이제 와서 무슨 지랄인데? 누군가의 비웃음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 날의 죽음에 대한 수만가지 소문이 만들어지고 부풀려지는 가운데 허우석의 존재는 쉽게 잊혀졌고, 그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라고는 두세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허나 허우석은 그 사실조차 견딜 수 없었다. 그 두세 명 중 한 명이 허우석을 딱 죽기 직전까지 패 놓고 누군가가 방관한 어느 날에, 허우석은 믿지도 않는 신을 찾았던 것 같다.

허우석은 눈을 떴다. 창 밖은 온통 어두웠다.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방전된 채로 방치한 지 좀 되었던 것 같은데,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며 화면을 보았다. 날짜와 시간을 마지막으로 가늠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10월 4일, 오후 11시. 드디어 제가 헛 것까지 보는 모양이라고 자조했다. 진동이 계속해서 울렸다.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아 그대로 전원을 껐다. 잊자. 잊어버리자. 잠을 자는 동안은 잊을 수 있다. 허우석은 억지로 다시금 잠을 청했다.

허우석은 한도윤의 두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한도윤은 쏟아진 철골과 잔해에 파묻혀 죽었다. 허우석 자신조차 행동의 당위를 본인조차 설명할 수 없었지만 눈 앞에 쌓인 잔해를 계속해서 파헤졌다. 손톱이 깨지고 피가 흘렀다. 잔해 더미 사이로 끈적하고 붉은 액체가 새어나와 바닥을 가득 메웠다. 눈을 질끈 감았다. 잔해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우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우석은 또다시 눈을 떴다. 10월 4일, 오후 11시.

헛 것이 아니었나? 헛 것이든 아니든 이미 제정신은 아니었던 허우석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켰다. 여기저기서 온 연락들이 어지러웠다. 무대는 붕괴했고, 한도윤은 그 안에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채로.

페이터를 켜고 새로고침을 눌렀다. 어수선한 타임라인 속 한도윤의 자동 쓰기가 보였다. 한도윤입니다.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허우석은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되돌릴 수 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 허우석은 한도윤을 죽이지 않을 수 있다. 나같으면 자살했다는, 그 따위 말을 던지지 않을 수 있다.

허우석은 한도윤에게 멘션을 보냈다. 괜찮냐, 어디 다치진 않았냐,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만 버텨 줘, 자신의 말이 한도윤에게 닿길 바랬다. 용서받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개과천선 따위 할 리도 만무하다. 그저 제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였을지도 몰랐으나,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제게 기회가 온 이유라고 생각했다.

한도윤은 답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허우석은 한도윤의 세 번째 죽음을 목도했다.

한도윤의 네 번째 죽음은, 세 번째 죽음의 교훈을 빌미로 허우석이 더욱 모진 말들을 쏟아냈을 때 찾아왔다. 이번에는 목을 매지는 않았지만, 사망 추정 시각은 그 때보다도 더 빨랐다고 한다. 모두가 이상하게 여겼음에도 허우석은 답지 않게 오열했다. 살면서 겪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후회했다.

허우석은 또 다시 철골에 깔린 한도윤의 시신을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한도윤, 목에 푸른 멍 자국을 두른 한도윤, 한도윤, 한도윤… 입술이 차가웠다. 죽은 이는 말이 없었다.

허우석은 또 다시 10월 4일 오후 11시를 맞았다. 신은 제 편인 것인지, 신이 한도윤을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자꾸만 기회를 주는 것인지, 그렇다면 도대체 왜? 누구를 위해? 어쩌면 신이 저를 끝없이 반복되는 지옥에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의문은 가시지 않았지만 허우석에게는 깊게 생각할 여력도 능력도 없었다.

언제까지 이 기회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성공하고 말리라는 오기가 생겼다.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기를 바라며, 허우석은 고심 끝에 또 다시 한도윤에게 멘션을 보냈다. 허우석으로서 개연성이 있을 만큼의 적당한 짜증과 적당한 걱정을 담은 말을 건넸다.

살아 있냐?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응. 예감이 나쁘지 않았다.

10월 5일 오전 6시경, 한도윤은 무사히 구출되었다. 두 명이 죽었다고 했다. 사고사로 죽은 한 명과 자살한 한 명, 한도윤은 살아남았다. 허우석은 드디어, 성공했다.

한도윤은 일체의 병문안을 거절했다. 몇몇의 취재진들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이밀고 한도윤을 찾았으나 이 또한 거부했다. 허우석은 굳이 한도윤을 찾아가지 않았다. 다른 밴드 멤버들의 병문안조차 거절한 상황에 자신을 받아줄 리도 없었을뿐더러, 무엇보다, 허우석은, 지쳤다. 제가 할 일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역할이었을 터였다.

그 날의 사고는 한동안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한 명의 자살, 허우석도 당연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허우석의 관심은 그 곳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죽음의 목격자인 한도윤이 입을 다뭄으로써, 소문은 한도윤을 중심으로 이것저것 덧씌워져 퍼져나갔다. 세간의 관심이 적당히 잠잠해질 무렵, 몇 개인가의 폭로가 이어졌다. 허우석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것들이 어느 새 사건의 본질이 되어 있었다. 한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다만, 살아 있었다.

허우석의 존재는 어느 곳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한도윤의 주변인으로서마저도, 허우석은 그 사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남이 아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것마저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거면 족했다.

황익선이 한도윤을 찾아갔다는 연락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후였다.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연습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한도윤이었으니, 마스커레이드로서 있을 수 없게 된 지금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도윤은 제 예전 동료이자 오래 된 친구를 마주하고서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익선은 온갖 쓰레기로 너저분한 방 구석에, 흩어진 약봉지 몇 개와 같이, 마치, 한도윤의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존재를 보았다고 했다. 베이스 기타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목소리는 다 갈라지고, 한 때 손가락에 박혀 있던 굳은살도 거진 사라져 있었고, 방 한쪽에는 태워 버리다 만 악보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한도윤의 다섯 번째 죽음이었다.

허우석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신은 나에게 기회를 준 적이 없다. 헛웃음이 나왔다. 기회를 얻은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한도윤을 위한 저 너머의 의지를 가진 무언가가 존재해서, 신? 애초에 그것은 신이었나?

무엇이 바뀐들, 바뀌지 않은들 그것은 나로 인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한도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인과 속에서 어쩌면 나는, 허우석은, 그냥 그 인과 속에, 어설프게 끼어버린 존재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한도윤을 죽인 것 또한 내가 아니다. 나는 그 인과에 낄 수조차 없는 존재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허우석은 그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동시에, 절망했다.

한도윤 이 재수없는 새끼, 넌 끝까지 주인공이구나. 넌 언제나 그랬어.

한도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역할은 한도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얼굴조차 나오지 않는 그저 한도윤의 주변인, 그것도 한도윤에게 되도 않게 시비나 거는, 조연조차 못 되는 역할의, 그런 게 내 역할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옳을 것이다. 한도윤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나의 자리는 없다. 과거는 기억되지 않는다. 한도윤이 버린 과거다.

어디에도 쓰여지지 못할 감정이라면, 이름 석 자라도 박아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이란 게 존재한다면, 씨발거, 내가 한도윤이 없으면 화면에 드러나지도 못 할 그저 그런 존재라면, 한 때 한도윤의 곁을 맴돌았던 사람이란 것 하나는 기억하게 해 주겠다고. 오기라면 오기겠고 고집이라면 고집이겠다. 한도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허우석 자신을 위한.

허우석은 또 다시 10월 4일을 맞았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11시 35분, 허우석은 페이터를 켜고 익숙하게 멘션을 보냈다.

“제꺽 뒤졌냐?”

한도윤이 아닌, 화면 너머의 당신을 향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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