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과 단편들

2022년 마스커레이드 전력 단문들 모음

마음에 드는 것들만 일부 추렸습니다.

220430 [우석도윤] 커피에 취미 붙이기

에스프레소 오병이어. 이 에피소드 하나 소개된 것 가지고 얼마나 놀림받았는지 모른다. 가난한 청춘 음악인의 표상! 라면 0.5개와 에스프레소 오병이어. 솔직히 말하자면, 모양새도 안 살고,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기 보단, 그저 카페인을 채우기 위한 목적 외의 다른 것이 전무한...행위 아니었나. 방송에서 좋아하는 음료로 굳이 에스프레소를 답한 한도윤의 저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를 그런 방식으로 팔아먹기 위해? 아니면 그것 외에는 떠올릴 선택지가 없었다거나.

그 시절이니까 할 수 있는 행위였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느니 차라리 좀 싼 테이크아웃 카페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 사는 게 나을 것이었다. 요즘은 1리터 아메리카노 같은 것도 나온다며. 그것도 커피보다는 카페인 충전에 더욱 가깝다는 것은 변함 없긴 한데. 뭐 솔직히 말하자면…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지 싶다. 다만 다들 딱히 커피엔 별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한도윤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제법 자주 했다. 길게 한 적은 잘 없고, 보통은 대타 비스무리한 걸로 단기간 자리를 채우는 식이었다지만, 제법 자주 해 본 솜씨라 그만큼 능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도윤은 커피 그 자체에는 딱히 취미가 없는 듯 싶었다. 알바생의 특권으로 음료 좀 만들어다 챙겨 오면 좋을 텐데 그마저도 꼭 양을 불려 오곤 했다. 이건 그냥 맛알못 아니냐. 그래야 한다는 어떠한 강박이라도 있었거나. 아니면…그것이 그 당시 한도윤 나름의 감성이었거나. 

사실은 한도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에 굳이 찾아간 적도 많았다. 알바생 친구의 특권 명목으로 옵션을 한가득 추가하고, 친구? 대충 그런 걸로 쳤다. 물론 다른 멤버들에게는 비밀이었다. 옆에서 에스프레소에 물 타서 마시는 걸로도 만족하고 있는 마당에 단 음료에 옵션을 가득 추가하는 허우석, 하필 허우석을 본다는 게… 솔직히 제법 웃기지 않겠냐고(평소의 성정이나 스타일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그것도 커피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행위가 맞았다. 그냥 당 충전이지. 그리고 한도윤 이용해먹기. 굳이 음료 한 잔 시키고 카페에 앉아서 가사 적는 척 하기. 머리를 뒤로 묶고 피어싱을 거진 다 뺀 한도윤 감상하기. 가끔은 음료를 한 잔 더 주문해다 완성된 음료를 한도윤 마시라고 주기. 한도윤을 그런 나를 보고서도 굳이 양을 불려 만든 아메리카노를 퇴근 즈음에 챙기곤 했다. 쟤도 참 고집이다 싶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물을 타서 양을 불린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이제 그럴 이유도 없으니까. 굳이 그렇게 해 가면서까지 카페인을 충전하고 싶지도 않고. (도핑은 니코틴만으로 족하다 - 허나 희한하게도 니코틴이 종종 카페인을 더 당기게 만들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가끔 굳이굳이 카페에 앉아 단 음료를 시켜 놓고 세월아 네월아 마시며 가사를 쓰는 척 하는 버릇은 생겼다. 한도윤은 어떨까. 아직도 묽게 탄 커피를 마실까. 그것은 버릇일까 추억일까.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하진 않은 상상이었다. 그냥, 그런 감상이었다.

220508 [우석도윤] 이방인과 이방인

한도윤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얹혀 사는 사람, 가족에 끼지 못하는 이방인. 어느 곳에도 발을 딛지 못한 채로 부유하는 사람. 그는 속할 곳이 필요했고, 결국에는 자신이 속할 곳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것은 그에게 가족의 대신이었고, 그러나, 그렇기에 그 작고 조악한 세계를 벗어나면 아무런 갈 곳도 없는 것은 한도윤뿐이었다. 한도윤은 마스커레이드에 속하면서도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여전히 그는 부유하는 존재였다.

제대 후 서울로 상경한 한도윤은 더 넓은 세계를 마주했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여전히 좁고 좁은 그대로였다.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 도시의 이방인. 원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감상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한도윤은 그러한 감상을 고독이라고 칭했다. 한도윤은 그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것은 한도윤을 정의하는 일부가 되어 있었다.

도시의 이방인은 어느 새 그들의 세계에 들어온 도시 사람을 본다. 그의 자신만만함은 안정감에서 오겠거니 했다. 그를 동경하진 않았으나 그가 딛고 선 곳은 조금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한도윤은 그가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에게서 어렴풋이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한도윤은 그것을 일종의 안정감이라고 해석했다.

허우석은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칭했다. 의욕과 열정은 넘쳤으나 붙잡을 곳은 없었다. 뻗은 손은 허공을 맴돌 뿐이다. 어디서나 그는 맞지 않는 조각이었고 어디에도 기대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것이 그의 모난 성정 탓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것이 그의 이상 때문이라고 했다. 허우석은 그 무엇에도 동의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방인이었다. 고독한 마이너리티, 퍽 나쁘지 않은 지칭으로 포장했으나 크게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그것은 허우석의 본질이 아니기에 그를 정의하지 못한다.

마스커레이드는 그에게 온전히 꼭 맞아들어가진 않았으나 제법 잘 맞는 조각이었다. 그러나 저들끼리 이미 꼭 맞아떨어지는 조각들의 옆에 조각을 하나 더 붙여 놓은 꼴이라고 허우석은 생각했다. 마스커레이드라는 이름의 밴드를 붙들고 기댈 수는 있어도 저들이 공유하는 마스커레이드를 붙잡는 것은 그에게 불가능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허우석은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마스커레이드의 이방인은 마스커레이드의 코어를 본다. 그를 질투하진 않았으나 속할 곳이 있고 환영받을 곳이 있다는 것에는 조금 질투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한도윤에게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익숙한 고독의 냄새에 의아해했다. 그것은 허우석이 발견한 한도윤의 빈 틈이었고, 허우석은 그 곳에 자신의 조각을 끼워넣을 수 있다고, 또한 그것이 제법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허우석은 그 틈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방인이 이방인에게 손을 건넨다. 발 딛을 곳이 없는 이를 붙잡아봤자 서로가 휘청이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허우석은 붙잡을 곳이 필요했다. 한도윤 또한 딛고 설 곳을 찾았기에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붙들고 우스꽝스럽게 허우적거렸다. 그러한 행위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둘은 계속 이방인이었다. 이방인과 이방인이 만나 이방인 둘이 되었다.

220514 [우석도윤] 술기운을 빌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다고, 어떤 머저리가 그 말을 술에다 갖다 붙였는지는 당최 모르겠지만 꽤나 유효한 말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봤자 다 같이 둘러앉아 마시는 것은 맥주 아니면 소주. 혹은 소맥. 가끔 기분이나 내겠답시고 누군가 싸구려 양주를 사 들고 오는 날도 있긴 했다. 양주로서의 기능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 딱 기분 내기 용. 마신 다음 날은 숙취에 뒤지게 고생하곤 했다. 어찌 되었건, 아웃풋은 인풋을 위한 빌미였다. 적당히 던져 두었다 나중에 꺼낸 뒤 머리를 싸매쥔 채 대거 뜯어고치는 일이 다반사이긴 했지만, 무언가 써갈길 용기를 준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동기부여제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가끔은 정말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었고. 물론 그 빈도는 썩 높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동기부여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용기, 말이 좋아서 용기지 그런 건 주로 객기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한도윤이 술에 취하면 소주병 꼬다리를 꼬아서 뗄 줄만 아는 줄 알았다. 술이 아주 세다고 할 만큼도 아니면서 한참을 마셔댄 어느 여름 날 밤엔가는, 혼자 소주 한 병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드러누워 노래를 부르고 있었더랬다. 한도윤이 노래를 제법 부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허나, 나 또한 적당히 취한 채 따라 올라간 옥상에서 그 날 들었던 노래는, 나는 그제야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 같다. 본디 내가 불렀기에 익숙한 노래가 그렇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실 그 뒤로 무엇을 했는지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더운 여름 날 밤의 습한 공기, 축축한 살이 서로 맞닿는 감각. 사실 제대로 취한 것은 나였던 것 같다. 객기라 함은 그런 거였다. 

그 뒤로도 둘 다 술에 제법 취한 날이면 나는 종종 한도윤을 데리고 둘만 슬쩍 나와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곤 했다. 객기는 반복되어 습관이 되었고, 서로에게 있어 암묵적인 약속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퍽 마음에 들어했다. 술기운이란 건 그런 거니까, 핑계도 참 좋았다. 무더운 여름 날 밤은 어느새 제법 찬 기운이 도는 가을밤이 되었고, 습관은 여전히 유효했다. 내가 숨을 고르며 담배에 불을 붙일 즈음이면 한도윤은 때때로 옥상 담벼락에 몸을 기대며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고층 건물도 아닌 옥상에서 내려다보아봤자 무엇이 보일까 싶었지만, 그것 또한 한도윤에게 습관이 되었겠거니 했다.

술기운에 일렁이는 불빛을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술기운에 흔들리는 길바닥을 보고 있었던 걸까, 나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 또한 서로에게 있어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한도윤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지막이 따라 불렀다. 술이 들어갔으니 할 수 있는 일이다.

220521 [우석도윤] 이방인이라는 감각

그거 아냐, 한도윤. 내가 말한 배신은 단순히 네가 홀로 선 것 때문도, 머리를 잘랐기 때문도 아니었다는 거. 그렇기에, 이것은 정말 유치한 이야기다. 고집과 투정으로 가득 찬.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했다. 그 주제는, 때로는 음악이었고 때로는 미래였다. 때로는 우정이었고 때로는 꿈이었다. 가끔 내가 진절머리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어하곤 했지만 그런 것 치고는 서로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말을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많았고, 그렇기에 말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서로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많았다. 그것은 음악일 때도, 일상일 때도, 서로의 성정일 때도 있었다. 나는 그게 참 좋았다. 이마저도 말로 하지 않았다. 그냥 막연히, 늘 그렇듯이 너 또한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자주 살을 맞대고, 등을 맞대고 누웠다.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서로에게 잘 맞는 지점이 있음은 분명하다고, 최소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에게 필요한 지점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좀전의 행위만을 말하는 바는 아니지만서도 - 이것은 목적보다는 결과에 가까우므로 - 조금 저질스러운 표현을 하자면 끼워 맞춘다는 점에서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싶었다. 굳이 이런 식으로 의미를 찾는 것이 유치하다는 것은 알지만…이것은 본능만을 의미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고독을 채우는 행위로는 이만한 것이 없으니. 

거창하게 말해서 고독이고 음악이지 사실은 그냥 - 서로가 외로웠던 거다. 이걸 인정하기까지가 참 오래 걸렸다. 인정하지 못해서 갖은 이유를 붙여대고,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 감각에 성을 내곤 했던 거다.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할 수는 없어서. 그런 약해 보이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네가 떠날 때 내가 본 너의 모습은 여전히 고독해 보였다. 그것을 서로가 일부나마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그 때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배신인 거다. 다른 애들은 그 지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 때 나는 깨달은 거다. 처음과 똑같이,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걸. 나는 거절의 감각을 안다. 거부의 감각도, 고립의 감각도 안다. 많이 겪어본 것처럼 말하지만 반절은 네가 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네가 떠나는 것을 예상하진 못했지만서도 그것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이런 끝이구나.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220612 [황익선] 묻힌 별

세상에 스타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리드 스타즈, 황익선은 프로그램의 이름 끝에 s가 붙는 것이 제법 가증스럽다고 생각했다. 묻힌 별들을 발굴해 - 발굴했다는 말은 딱히 적절하지 않다. 대다수는 저들이 묻힌 별인 줄 알고, 빛날 수 있을 줄 알고 문을 두드린다. 그 중 대다수는 무대에 서 보지도 못했다. 무대에 오른다 한들 상당수는 별이 아니라는 딱지만 대문짝만하게 붙은 채 제 자리로 돌아가 다시 묻히고 만다. 그들이 하는 일은, 엄밀히 말하자면 발굴이 아니라 분류다. 바코드를 붙이고, 삑 그리고 다음인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비유만큼이나 번지수를 잘못 찾은 셈이다. 

그래도 이만치 왔으면 잘 된 거 아닌가, 이렇게 대중적인 미디어에 노출된다는 게 쉽게 있는 일인 건 아니니까. 그렇기에 일찌감치 출연에 동의했다. 우리가 그런 데 나가 봤자 얼마나 뜨겠냐? 라고 한 차례 빈정거리긴 했다만, 반신반의했던 기대에 비하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조금 얼떨떨했다. 그런데 사람이란 게, 잘 되갈 때면 조바심이란 게 생기기 마련이더라.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정도를 모르고 더 욕심내는 순간 처박히는 거다. 분수에 넘는 것을 탐한 죄로.

탐한 게 내 죄냐고, 더 높이 갈 수 있다는 기대를 한 게 내 죄냐고, 허우석이었으면 그렇게 말했을 거다 - 그리고 사실 이 말도 틀린 건 아닌데, 카메라는 분명히 스토리를 부여했고, 우리는 그저 그걸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그런데 애초에 그 스토리에서 우리는 스타가 아니었나 보다. 굳이 말하자면, 묻힌 별이, 묻힌 곳이었던 걸까. 별의 빛을 가리던. 

모욕이라면 지독한 모욕이다. 그렇기에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화를 내려면 번지수를 조금 잘못 잡지 않았나 싶다. 우리를 떠나 빛나게 된 한도윤을 본다. 저 빛은 얼마나 갈까. 이 스토리의 끝에서도 한도윤에게는 스타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을까. 그렇게 정해져 있을까? 황익선은 그게 불안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모욕당했는지. 

그렇기에 황익선은 한도윤이 끝까지 스타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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