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된다고 생각해
유료

[ALL] 엣지 오브 피자도우

베스타 아포칼립스 앤솔로지 <BURIED (A)LIVE> 참여작

아비규환 by 규환
18
0
0

베리드 스타즈 아포칼립스 앤솔로지 <BURIED (A)LIVE> 참여작입니다.

베리드 스타즈 A루트, B루트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피자 모서리 공포증에서 멸망하던 세상, 무대 아래에서 Top5와 세일이 아이엠그라운드를 합니다. 닌자 나옵니다.

본문 21,292자.

0.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는 운석의 충돌이나 빙하기의 도래 따위가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피자 모서리 공포증으로 멸망했다.

이 설명은 거대한 펑 소리와 함께 우주가 시작되어 지금에 도달했다는 것과 비슷한 성격을 띤다. 어떤 시점에 인간들은 피자 모서리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극한의 공포를 견디지 못한 인간들은 내재된 폭력성을 폭발시켰다. 그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전염시키려 애썼기에 세상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피자 문화권이 아닌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도 예외랄 건 없었다. 피자를 먹던 사람들과 피자를 만들던 사람들이 뒤엉켜 서로를 뜯어먹는 ‘피자헛 비스트로’ 본점의 생중계 영상이 한국 페이터 서버로 유입되면서 ‘피자헛 비스트로 손님들 비스트됨’ 4글자 달린 인용 페잇은 100k 리페잇을 넘기며 ‘실페’에 올랐다. ‘낙타고기 먹지 마세요!’ 대신 ‘피자 모서리를 먹지 마세요!’ ‘모서리 남은 피자 발견 시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세요!’ 따위의 슬로건으로 급조된 포스터가 삐라로 뿌려졌지만 ‘피자헛 비스트로 손님 비스트됨’ 영상을 본 한국인들이 어디 피자를 먹고 이 꼴이 나겠는가? 이 사달 하에서도 배민을 시키며 ‘괜찮아 안 죽어’를 유언으로 남긴 몇몇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입에 거품을 물고 공격성을 자랑하며 서울 한복판부터 지구 반대편 멜버른의 한인촌까지 아비규환(NOT @abyss__calling)으로 만든 자들은 단순히 이 사태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정신이 붕괴한 신토불이 김치워리어 한국인이었다. 만에 하나 삼 년치 운을 다 써서 모서리 남은 피자를 발견하고도 맨정신을 유지한 자가 있다고 한들, 이미 유선 통신이 먹통인 상황에서는 질병관리본부(구 질병관리청. 2024년 COVID-19 사태 종료 후 예산 전액 삭감 및 강등 조치됨)에 전화할 방법을 찾기 전 지나가는 행인에게 모가지를 물어뜯길 뿐이니 그 포스터는 무용지물이자 공포증 유발의 트리거만 될 뿐이었다.

 

이 농담 같은 상황 한가운데, 출연자 5인과 FD 1인이 무너진 무대 아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페이터에서는 그 누구도 베스타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드문드문 #PrayForEarth 해시태그가 달린 유언만 드문드문 올라올 뿐이었다.

 


1.

오인하, 무대 한가운데에 서 워치를 귀에 대고 통화 중이다. 오인하 제외 전원은 오인하를 쳐다보고 있다.

 

오인하 네? (굳은 목소리로.) 네. 아니, 네. 잠깐만요.

오인하 (일행에게 전한다.) 이미 출동한 구조대 외에는 전멸이고, 이미 출동해서 무대를 해체하는 구조대에게도 소집 명령이 떨어졌대. 기약이 없을 거라고, 더 기다려 달라는데…….

서혜성 (속삭인다.) 기다리라고?

한도윤 (고개를 젓는다.) 그냥 하는 말이지, 아마 구조는…… 기약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망 선고처럼 뱉는다.)

이규혁 나도 그래 보여.

 

일동, 동의한다. 아직 끊지 않은 전화에서 소리 들려온다.

 

구조대원 (소리) 크르르… 크러스트……

 

근거리에서 비명과 함께 뼈째로 씹어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끊어지는 전화.

 

민주영 어쩔 수 없게 됐네. 일단 우리라도 안전한 곳에 다같이 모여서…… 아이엠 그라운드를 해야겠어.

장세일 왜 하필 아이엠 그라운드예요?

오인하 그럼 다른 걸 하겠어?

장세일 그러려는 건 아, 아니고요. 공공칠빵도 있지 않나 싶어서……

오인하 빵? 빠앙? 빵 이야기 하지 마! 안 그래도 그 음식 생각난단 말이야.

 

장세일, 그 말에 끙 소리를 내며 침묵한다.

 

한도윤 생각 정리는 됐어. 기약이 없으니까 둘러앉아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어. 갇힌 상황이니까 아이엠 그라운드를 하자.

 

사이.

 

세 사람이 차례로 탈락하고 한참이 지나도록 승부는 가려지지 않는다. 민주영과 오인하, 서혜성 셋이 제법 오랫동안 살인적인 BPM의 아이엠그라운드를 소화해하는 동안, 장세일의 높은 비명이 무대를 뒤흔든다.

어느새 조성된 탈락자석에서 명승부를 구경하던 한도윤과 이규혁이 가장 먼저 장세일을 진정시킨다.

그들이 발견한 건 거품을 물고 쓰러진 신승연 PD의 시신이었다.

시신을 방치할 수 없다는 주영의 의견에 옥신각신하는 것도 잠깐, 6명 모두가 힘을 합쳐도 다리를 뭉개고 내려앉은 철골은 옮길 수 없어 더 이상의 수습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일동, 어깨를 늘어뜨리고 무대로 돌아간다.

서혜성, 그 자리에 우뚝 선다. 한동안 그대로 서 있다가 일행에 합류한다.

장세일, 눈에 띄게 창백한 모습으로 떤다.

 

이규혁 세일아, 좀 괜찮아?

오인하 손을 너무 떠는데.

장세일 아니, 어떻게 진정해요? 피디님이 피자 모서리 공포증으로 죽,

서혜성 (말을 끊고) 뭔 소리야. 공포증일 리가 없잖아! 피디님 피자 싫어하거든? 피자 안 먹는 사람은 발병 가능성 적다며!

장세일 (쏘아붙인다) 신피디님 입맛을 네가 어떻게 아는데?

서혜성 출연자가 피디 배달음식 취향 좀 알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장세일 아니다, 그래. 비빌 언덕 찾겠다고 정치질하면서 알게 됐겠지 뭐. 끈 떨어지니 똥줄 타냐?

서혜성 쫄리는 건 댁이겠지. 우리 에프디께서는 왜 또 시비실까?

장세일 시비? 먼저 말을 홀랑 끊어놓고 시비?

 

영양가 없는 대화만 계속되자 오인하, 둘 사이 끼어들어 딱 버티고 선다.

 

오인하 작작 안 해? 둘이 손 잡고 있게 한다?

민주영 두 사람 다, 지금 많이 격양됐어. 조금만 참아 봐.

장세일 진정을 하게 생겼냐고 또 얘기해요.

서혜성 내가 할 말이거든?

한도윤 (내내 생각하다가) 정리 좀 하자. 이건 이야기가 필요하기도 한 것 같아.

(앞으로 다가선다.) 그냥 쇼크인지 피자 모서리 공포증인지 알아야 여기 갇힌 우리도 안전한지 판단이 되잖아. 어디 봐.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이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장세일 (끼어든다.) 모서리 신세 되기 싫은 사람이죠.

이규혁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인정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었어.

서혜성 형은 그걸 믿냐?

이규혁 (고민한다.) 솔직히 아니야. 도윤이 너도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

한도윤 피자 모서리에서 자기인식을 끌어내는 건 너무 나간 얘기인 것…… 같아서.

 

그러나 한도윤,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다.

죽거나 미친 사람들이 가득한 바깥에 비하면 이곳은 피난처일지도 모를진대 자신을 숨기는 데 능치 못한 이들은 별안간 초조함을 금치 못하고 남은 날을 헤아리고 있었다. 아니라 해도 한도윤 역시 자신의 혐의를 알기에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도윤 세일이가 피디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전가하는 일과 내가 우석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 중 더 악질적인 짓거리는 무엇일까.

 

갈피를 잃고 헤매듯이 조명이 마구잡이로 바뀌고, 서혜성 불쑥 난입한다.

 

서혜성 가끔 보면 형도 신기해. 두고 온 사람 생각을 해?

한도윤 놀랐잖아.

서혜성 안 그렇게 생겨서 은근 정이 철철 흘러.

한도윤 내가 뭘 생각했다고 그래.

서혜성 맞잖아, 맞네. 형은 거짓말하면 티가 나거든.

한도윤 은근 생긴 걸로 디스한다. (감상에 잠긴다.) 그냥, 베스타 이렇게 쫑나고 나니까 돌아갈 곳 생각하는 거일지도 모르지.

서혜성 베스타가 끝났다고 생각해? 진짜?

한도윤 그걸 말이라고 해?

 

사이.

 

서혜성 솔직히 난 알아. 쇼 안 끝났어.

한도윤 무슨 소리야. 지금 투표도 안 해. 조회수 집계도 안 되고.

서혜성 형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근데……, 그 편이 낫긴 하다. 난 누구한테도 악감정 없었거든.

그때 규혁이 형한테도.

 

서혜성은 의미심장한 말을 허공에 주워섬겼다. 한도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영영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더 묻지 않았을 뿐이다.

 

서혜성 아무튼 나도 통수 갈겨놓고 좋다고 깝쌀 깡다구 되는 놈은 아니란 거야.

한도윤 그러니까 네 말은 아직 쇼가 안 끝났고, 넌 이길 거라는 거지. 나를… 쳐서라도.

서혜성 대충 그런 셈이지.

서혜성 …… 이젠 알어. 힘은 진실을 뺏을 수 있어.

형은 형이 생각하는 게 다 진실이라고 생각해?

그런데도 그걸 다 까보여주지. 아니, 유리한 만큼만.

한도윤 무슨 말이야, 혜성아.

서혜성 그리고 지금은 그걸 신 피디님을 위해 쓰겠어.

한도윤, 같은 말을 한 번 더 할 뻔 했다.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그런 말이 나오려는 걸 꾹 참는다.

서혜성 피디님은 모서리, 토핑, 그런 거에 쫄아서 발버둥치는 사람은 아니었어. 적어도 큰 그림은 볼 줄 아는 사람이었지.

피디님은 이를테면… 가운데와 모서리를 규정하고 싶어하는 축이었어.

한도윤 (의식도 하기 전에 답한다) 그런 사람이었지.

서혜성 그렇지? 봐, 끄덕거리네. 그리고… 그건 도움이 되지.

형도 그렇잖아? 피자…… 모서리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지.

도서관에 억지로 입고된 어느 꼰대의 자서전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없지. 누구도 뽑아 읽지 않는 책이 된다는 기분은 끔찍하잖아. 형도 그렇고.

 

한도윤, 부정하지 않는다. 조명, 한도윤만을 비춘다.

 

한도윤 우석이가 입에 달고 다니던 소리가 왜 지금 생각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허우석 (연극적인 톤으로 소리.) 야, 몰라? 먼저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똥을 싸도 우리에게 박수를 쳐줄 것이라는 말.

한도윤 (소리) 왜 더럽게 똥 얘기야.

허우석 (나직한 소리.) 너도 알걸. 제일 더러운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게 있다는 거.

 

한도윤, 신PD의 입장에서 생각하였다.

한도윤 (방백)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 출세하고 나면 자유로워질까? 결국 돈줄 쥔 양반들이 좋아하는, ‘돈 냄새 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겠지. 그러나, 그 사이에서 그림의 재료만큼은 고를 권한이 생긴다.

한도윤은 자신이 재료임을 알고 있고, 한도윤은 말할 수 있다. 

한도윤 나는 재료다.

 

조명, 다시 두 사람을 비춘다.

 

한도윤 그러나 피디님은 이렇게… 되셨고. 사실 베스타, 아니 WBS가 지속될 힘을 잃었는데 왜.

 

이것이 한도윤의 의문이었으며 서혜성의 무기였다.

 

서혜성 그거 알아? 베스타가 진짜 끝났으면 무대는 이미 다 끝났어. 그런데 우리는 공포증으로부터 안전하지. 왜냐하면 여기서는 몇 번이고 피자 모서리를…….

됐어. 형이 뭘 알겠냐. 돌아가서 아이엠그라운드나 계속하자.

 

사이.

 

일동, 다시 아이엠그라운드 시작한다.

 

죽거나 미친 사람들이 가득한 바깥에 비하면 이곳은 피난처일지도 모른다는 결론 때문일까? 누구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이건 우리가 아는 전개 아니야? 따위의 질문은 애당초 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규칙적으로 만들어진 시트 무늬는 자신이 벽으로부터 몇 번째 위치에 자리했는지, 자신의 앞과 뒤에 자리한 무늬가 어떤 모양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자유 의지가 반드시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주어지는 것만은 아니리라.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만을 꾀하기 때문이다.

결국 온전히 행복한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흐른다. 진화의 끝에는 무한한 반복의 욕구가 있다.

그들은 행복했다. 카레닌과 헵타포드만큼 행복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