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도윤] 전진

논컾! A루트 진엔딩, B루트 장세일 후일담(2) 스포 주의

디카 백업계 by Dica
6
0
0

논커플링 글입니다.
A루트 진엔딩, B루트 장세일 후일담(2) 스포일러 주의해 주세요!

! 스포일러 주의 !


! 스포일러 주의 !

  땅거미가 내린 지 오래된 늦은 저녁, 도윤은 소파에 몸을 묻고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딱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어서는 아니었다. 봐야 할 사람이 있었다. 스크린 안에서는 아주 잘 아는 얼굴이, 담담한 목소리로 미소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제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를 평가해 주신 심사위원님, PD님과 스탭 분들, 그리고 저를 지지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앳된 얼굴의 청년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다시 얼굴을 든 청년에게 박수 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보는 도윤의 얼굴에도 옅은 웃음이 번졌다.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됐구나.'

 스크린 안의 청년이 무대 뒤로 퇴장하려 할 때, 초인종이 울렸다. 도윤은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향했다. 오늘 찾아오기로 한 손님이다. 오랜만의 방문객이었다. 석 달쯤 됐을까. 어쩌면 더 됐을지도 모른다. 정체를 알면서도 도윤은 문 너머를 향해 물었다.

 "누구세요?"
 "저예요."
 "알아."
 "그럼 왜 물어 봐요?"

 풉, 웃으며 도윤은 문을 열었다. 그 얼굴을 본 세일도 피식 웃었다. 녹색 머리에 안경, 헐렁한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인상이었다. 근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끼친 영향 때문이리라. 그때 세일의 시선이 도윤의 어깨 너머 TV에 꽂혔다. 겨우 웃음짓던 그의 미간에 다시 주름이 졌다.

 "아, 저거 보고 있었어요?"
 "그럼 봐야지. 본방사수."
 "떨어지는 순간이잖아요."
 "그래도, 오늘도 좋았어. 네 무대."
 "...그래요."

 세일이 뺨을 붉히며 시선을 떨궜다. 자연스레 도윤의 시선도 그를 따라 내려갔다. 곧 세일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를 본 도윤이 물었다.

 "이건 뭐야?"
 "떡튀순 세트요. 형 분식 좋아하잖아요."
 "뭐 사 오지 말라니까."
 "어떻게 그래요. 혹시 저녁 먹었어요?"
 "그게..."

 별 의미 없이 던진 질문에 도윤은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 의미를 곧 깨달은 세일이 한숨을 푹 쉬며 핀잔하듯 말했다.

 "점심은요? 아침은요?"
 "대, 대충..."
 "주영 씨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세요? 도윤이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하, 그래..."
 "그래, 가 아니고요! 형 그러다가 진짜 몸 상해요. 지금이야 20대니까 괜찮을지 몰라도, 서른 쯤부터 팍 꺾인다고요."
 "나보다 어린데 잘 아네."
 "상식이에요, 상식."

 잔소리를 우다다 쏟아내는 그의 앞에서 도윤은 푸스스 웃었다. 어쩐지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다. 조금이라도 돌출 행동을 할라치면 이렇게 높은 톤의 목소리로 질색팔색하곤 했는데. 세일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뭐 좋은 기억이냐며 착잡해할 테니까. 대신 그는 몸을 비켜 서며 말했다.

 "들어와."
 "...실례합니다."

 세일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때 TV에서 들려온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에 둘은 멈춘 채 귀기울였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탑 4가 경연을 펼칩니다! 부동의 1위, 민주영은 최종적으로 우승을 거머쥐게 될 것인가? 아니면 역전극이 벌어질 것인가? 기대하세요, 채널 고정!"

 카메라가 환히 웃는 민주영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가운데 스탭 롤이 흘러갔다. 배경 화면은 점점 바뀌었다. 탈락한 출연자들의 경연 장면, 마지막 소감. 그 중에는 세일의 모습도 있었다. 신디사이저를 앞에 두고 연주하는 장면, 심사위원이 코멘트하는 장면, 결과가 발표되는 장면, 깨끗이 승복하고 물러나는 후련한 미소. 녹색 머리를 깔끔히 넘기고 흰 셔츠에 검은 서스펜더와 정장 바지를 입은 그는, 도윤이 아는 세일과는 다른 사람 같았다. 안경을 벗자 더 크게 드러난 밝은 눈동자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스크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도윤 곁에서, 세일이 무안한 듯 혼잣말했다.

 "다시 보여줄 것까지야 있나."
 "아... TV 끌까?"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그냥... 별로 보기 좋진 않아서요."

 마찬가지 뜻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도윤은 잠자코 TV를 껐다. 그리고는 세일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받아들며 식탁 의자를 뺐다.

 "앉아, 먹자."
 "네."
 "어디 보자, 접시가... 음료수가 있었나?"
 "아, 저도 차릴게요."
 "넌 가만히 있어. 손님이잖아."

 그렇게 말하며 도윤은 아예 의자에 세일을 주저앉혀 버렸다. 결국 식탁 앞에 얌전히 앉은 채, 세일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렸다.

 "가시 방석에 앉은 기분이에요."
 "편히 생각해, 편히."
 "이런 거 챙기는 건 전적으로 제 일이었는데."
 "옛날 얘기잖아, 그것도."

 바로 그래서 도윤이 제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세일은 잘 알았다. 스탭 시절, 출연자들의 세세한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야만 했던 제 속내를 아는 사람이니까. 알면 알수록 착하달까, 걱정되는 사람이었다. 남만 배려하다가 얻은 결과가 결국...

 "맥주 괜찮아? 딱 2캔 있네."
 "좋죠."

 도윤의 말에 세일은 상념을 떨치고 맥주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알루미늄 캔이 손바닥에 닿는 온도가 기분 좋았다. 도윤이 세일의 맞은편에 앉자,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캔 뚜껑을 땄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왔다. 한 모금을 마시자 둘 다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크..."
 "역시 여름 밤은 맥주죠."
 "근데 떡볶이랑 어울리나?"
 "튀김 있잖아요. 형한테 맥주 있는 줄 알았으면 치킨 살 걸 그랬나."
 "아냐, 오랜만에 먹고 싶었어. 떡볶이."

 둘은 아직 식지 않아 따끈한 떡볶이를 하나 입에 넣었다. 쫄깃한 떡과 적절히 달짝지근한 국물이 잘 어울렸다. 묵묵히 떡볶이를 먹는 도윤을 보고 세일은 쿡 웃으며 말했다.

 "주영 씨한테 사진 찍어서 보내 주고 싶네."
 "그, 그건 좀..."
 "그만큼 걱정하신단 뜻이에요. 메시지라도 보내요, 오늘은 장세일 덕분에 잘 먹었다고."
 "하하, 그래. 공치사 확실히 해 놓을게."

 순대와 튀김도 가끔 집어 먹으며 둘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베스타 시즌 5에 나가기로 한 결심, 고된 준비 기간과 훈련, 페이터에 떠돌던 의혹과 소문들, 그외 온갖 우여곡절. 주로 세일이 이야기하고 도윤은 듣는 쪽이었다. 세일은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이번에 알았어요. 지난 시즌에 제가 얼마나 자의식 과잉이었는지."
 "무슨 말이야?"
 "대중적으로 히트한 곡을 그대로 부르거나 어레인지해서 참여하는 건 질 낮은, 얄팍한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오로지 제 오리지널 자작곡으로 승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대중이 좋아할 만한 코드를 하나도 넣지 않고서. 그러니 그렇게 제 상상과 다른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을 때 당황했던 거고..."
 "..."
 "버스킹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옆에서는 음원 차트 1위를 달리는 그룹들의 곡을 부르는데, 그러기는 죽기보다 싫더라고요. 뭣도 없는 게 자존심만 살아가지고. 하물며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신곡만 연주한 밴드들은 반응이 별로였잖아요. 퀸이 히트곡 메들리를 공연하니까 그제서야 확 살아나고...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마저 그랬는데."
 "그랬지."
 "말하자면 선민 의식에 차 있었던 거죠.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 주겠다고. 당장 한 표 한 표 구걸이라도 해야 할 판국에."

 도윤은 씁쓸히 웃었다. 그러게, 멤버들과 TV에서 허구헌날 흘러나오는 아이돌들의 곡을 들을 때마다 저게 진정한 음악이라 할 수 있냐며, 대중의 취향은 잘못됐다며 웃곤 했다. 그래 놓고 정작 자신이 베스타 무대에 섰을 때는 팔자에도 없는 락 발라드를 불렀다. 비록 위에서 짜맞춘 그림이라 할지라도. 신승연 PD가 의도한 대로 대중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에 환호했으며, 대신 옛 팬들은 분노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 갈 길을 확신한 세일이 저보다도 한 뼘은 커 보였다. 심란한 마음에 빠진 그에게 세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뭘?"
 "저, 베스타 나온 거. 그리고... 경연한 거요."

 도윤은 고민했다. 사실은 걱정부터 더럭 앞섰던 걸 말할까, 말까. 하지만 얼버무린들 이미 세일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사실... 걱정 많이 됐지. 워낙 큰일이 있던 후였으니까."
 "..."
 "그래도... 대단해 보였어. 그 많은 걸 감수하고, 꿈을 되찾으러 나온 거잖아. 화면에서 웃는 너... 정말 행복해 보였어."
 "그래...요."
 "지금도 그렇고."
 "...떨어졌다고 징징거리고 있는데요?"
 "그야, 본인이 떨어진 장면을 보고 기분이 좋을 리 있나."

 세일은 대답 대신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켰다. 복잡한 속내가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이었다. 그의 눈을 보며 도윤이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네 말, 정말 인상적이었어."
 "제 말...이요?"
 "마지막으로 한 인사 있잖아. 사람들도 박수 많이 쳤고."

 그의 말에 세일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시선을 내리깐 채 작게 말했다.

 "사실이 그렇죠. 떨어진 거야 아쉽지만 납득했어요. 주영 씨야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니 말할 것 없고, 다른 참가자들도 저보다 스타성이 뛰어났으니까요."
 "분하지는 않았어?"

 물어 놓고 아차 싶었다. 시즌 2 때 일을 떠올리게 하기 딱 좋은 질문이다. 예상 외로 세일은 언짢지 않은 듯했다. 단지 남 일 말하듯 담담히 이야기할 뿐이었다.

 "뭐, 전적이 있긴 하죠. 그때 난리 친 영상, 지금도 돌아다니니까."
 "..."
 "상관 없어요. 어차피 형도 겪은 일이잖아요. 관심은 골라 받을 수 없다고, 제가 그렇게 힘줘서 말씀드려 놓고 막상 본인이 우는 소리 하면 꼴이 웃기잖아요."
 "그래도... 착잡할 텐데."

 얼굴에 그늘이 가시지 않는 도윤과는 달리 세일의 낯빛은 조금, 하지만 확실히 밝아졌다. 그가 꺼낸 말을 듣고서야 도윤도 안색을 바꾸었다.

 "그리고 제 주무기는 약간 카테고리가 다르니까요, 탑 4 분들이랑은."
 "아, 심사위원 한 분이 그런 말을 했었지."
 "뭐야 형, 그것까지 봤어요?"
 "당연하지. 본방사수 한다니까."
 "...쑥스럽네요."

 세일은 목 뒤를 긁적였다. 도윤의 이야기가 간만에 길게 이어졌다.

 "네 경연, 편곡이 진짜 인상적이었어."
 "그...래요?"
 "원곡은 대중적인 아이돌 곡이나 팝송이었지만 감성이 전혀 달랐어. 코드도 군데군데 절묘하게 바뀌었고... 난 정식으로 화성학이라든가 엔지니어링을 배운 적은 없어서 다는 모르지만."
 "형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부끄럽네요."

 말은 그렇게 해도, 곤란한 듯 웃는 세일은 기뻐 보였다. 도윤이 빙그레 웃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오늘 곡도 그래. 마지막 부분 무그 사운드 있잖아. 주파수가 확 멀어진 거, 역상 쓴 거 말이야."

 그때 세일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움찔 놀란 도윤을 향해 몸을 앞으로 내밀며 그는 높아진 톤의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맞아요! 역시 형도 알아 주셨군요! 저 진짜 공들였거든요. 역상이란 게 보통은 실수로 단자 거꾸로 꽂아서 일어나잖아요. 전 바로 그 효과를 쓰고 싶었다고요. 솔직히 대다수 청중은 역상이 뭔지는커녕, 제대로 된 위상으로는 어떤 주파수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냐, 그래도 그 심사위원은 알았잖아. 코멘트한 거 봤어."

 미소지으며 도윤은 생각했다. 이거 이거, 스위치 제대로 눌렀네. 얼굴에 홍조까지 띤 채 세일은 답했다.

 "네, 정말 정확히요. 칭찬만 해 주신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기뻤어요. 제 음악을 제대로 평가받다니, 존경하는 뮤지션에게... 제가 좋은 평을 얻을 수 있었던 거, 그분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처음으로 저더러 실력파라고 하는 말까지 들었는걸요. 페이터 여론도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고, 제 팬...을 자처하는 분들도 생기고..."

 설렌 목소리로 꿈꾸듯 말하는 세일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를 마음 깊이 축하하는 동시에, 도윤은 그가 부러웠다. 현재진행형으로 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눈앞의 청년이.
 베스타 시즌 5는 여러모로 시즌 4와 달랐다. 출연자의 과거를 까발리지도, 카메라 앞에서 극한 상황까지 몰아넣지도,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거나 앞뒤 정황을 바꿔 끼워맞추지도 않았다. 심사위원도 싹 물갈이됐다. 세일의 편곡 실력에 높은 점수를 준 심사위원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처음 캐스팅된 관록 있는 뮤지션이었다. 의혹 투성이인 FD를 힐난하는 이들은 '심사위원한테는 어떻게 아부를 떤 거냐', '둘이 한 패 아니냐'라며 중상모략을 일삼았으나, 세일이 작업한 음원의 성적이 점점 높아지고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조금씩이나마 수그러들었다. 오히려 지난날의 미숙한 모습이, 몰라보게 변신한 지금의 성장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라 열변을 토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도윤은 따뜻한 미소를 띤 채 물었다.

 "팬이 생긴 감상은 어때?"
 "제 입으로 말해요?"
 "그럼 너 말고 누구한테 물어봐."
 "민망하니까 그렇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일은 뿌듯해 보였다. 당연하다. 환호성 속에서, 저를 응원해 주는 목소리에 둘러싸이는 기쁨을 도윤은 잘 안다. 지금은 모두 과거형이 됐지만. ─자꾸만 밀려드는 씁쓸한 마음을 떨치려 애쓰며 그는 눈앞의 청년에게 귀기울였다.

 "솔직히 얼떨떨해요. 이런 말하면 실례지만, 취향이 특이하신가 싶기도 하고."
 "진짜 실례네."
 "아니, 그런데 실제로 좀 특이하신 분들이 많아요."
 "응?"

 멍하니 물으면서도 도윤은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페이터에서 가끔 서치할 때면 팬들의 반응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세일은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시질 않나, 온갖 음식 이름을 제 이름에 갖다붙이지 않나. 뭐 그것까지는 그렇다 쳐요. 그런데 '이혼하자'는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혼...하자?"
 "말이 안 되잖아요. 언제 결혼을 했다고. 더 웃긴 건 그게 약간 유행어가 된 것 같다는 거예요. 저번엔 플래카드에까지 써 붙여 오신 분이 있었다니까요."
 "세일아 이혼하자, 라고?"
 "네."

 풉, 도윤이 웃음을 터뜨리자 세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 말고도 많아요. 암만 봐도 좀 비뚤어진 애정 같은."
 "관심은 골라 받을 수 없다며."
 "알아요. 그래도 악의를 가진 사람들만 있을 때보단 훨씬... 버틸 만해요, 덕분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편을 들어 준다는 거... 이렇게 든든한 일인지, 몰랐어요."

 세일이 쑥쓰러운 듯 웃었다. 그를 보는 도윤의 웃음은 점점 힘을 잃어 갔다. 제게도 그런 이들이 있었는데. 아니, 지금도 복귀를 기다리는 이들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도윤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거칠게 저었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세일의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그는 여전히 미소가 얼굴에서 가시지 않는 세일에게 물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돼?"
 "아..."

 뜻밖에 세일은 꾸물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시 복잡한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도윤은 행여나 묻지 말 걸 물었나 싶어 망설였다. 다시 화제를 돌려야 할까. 그때 그는 놀라운 답을 들었다.

 "사실은 계약 제의가 왔어요. 솔로 가수로."
 "진짜?"
 "네. 소규모 기획사긴 한데, 싱어송라이터 속성이 있는 걸 가산점으로 쳤다나 뭐라나. 제 캐릭터 잡아놓은 거 보니까 되게 오글거리던데. 뭐, 예민한 천재? 천재는 무슨..."
 "예민한 건 맞는데."
 "형까지 이러기에요?"
 "미안, 미안."

 간만에 발끈하는 세일을 말리며 도윤은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착잡해 보이는 세일의 얼굴을 보자 웃음도 곧 들어갔다. 도윤은 진지하게 물었다.

 "뭐 문제라도 있어?"
 "문제...랄 것까지는 아닌데요."
 "응."
 "방송 내내, 그리고 계약하면서도 생각했어요. 결국 그들에게 저는 팔 만한 가치가 있는 상품이고, 입맛에 맞는 포장지를 씌우잖아요. 실제로 어떤지와는 상관 없이."
 "거부할 권리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 거."
 "하하, 그러게요. 제 입으로 할 소리가 아니었네요."

 어색한 공기가 좁은 거실을 메웠다. 포크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세일이 나지막이 말했다.

 "막상 당사자가 되니까 느낌이 다르네요. ...그땐 미안했어요."
 "미안하기는."
 "형도 아시겠지만 뭐... 멀쩡하지만은 않아요. 순위 오르면서 과거 사진이며 페이터 댓글이며 주구장창 재알티되고 장세일 과거 실검 오르고. 우습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느니, 그런 소리나 늘어놔 놓고."
 "..."
 "뭐, 어떻게 그 사람들한테 저란 인간을 알아 달라고 호소하겠어요. 보고 싶은 대로 보라죠. 어쨌든 저지른 일이니까요."

 자조적으로 내뱉은 세일의 말이 도윤의 가슴을 꿰뚫었다.
─보고 싶은 대로 보라죠.
─어쨌든 저지른 일이니까요.

 '말할까.'

 순간 든 생각에 도윤은 저를 비웃었다. 이제 와서? 그것도 전혀 상관 없는 제3자에게?

 '아니, 그래서 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털어놔 버리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적어도 제 본심에, 자신도 모르게 가장 가까이 와 닿았던 사람에게. 어두운 낯빛을 띤 채 입을 다문 그를 의아하게 본 세일이 물었다.

 "형?"
 "..."
 "왜 그래요?"

 도윤은 고민했다. 정말 말해 버려도 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갑자기 이런 말을 들어 봤자 당황스러울 뿐이지 않을까.

 "무슨 일이에요, 형?"

 걱정스럽게 묻는 세일을 도윤은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안 되겠다.
 더는 혼자 끌어안고 버틸 수 없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눈앞의 청년을 불렀다.

 "세일아."
 "네?"
 "할 말이 있어."
 "가, 갑자기 왜 그래요?"

 긴장한 세일을 앞두고 도윤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가슴 속을 어지럽게 돌던 말들을 뱉었다.

 "나..."
 "..."
 "배신자, 맞아."
 "!"

 장세일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익숙한 표정이었다. 경악한 얼굴. 그 무너진 무대에서 맞댔던 파리한 얼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도윤은 어렵게 말을 이어 갔다.

 "신 PD님이 나만 따로 불러서 말씀하셨어. 정말 그만두겠냐고. 다 깨진 걸... 언제까지 맞춰 보고 있을 거냐고."
 "..."
 "그리고, 난... 처음엔 그럴 수 없다고 했지."

 말하고도 우스웠다.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택한 행동은...

 "하지만... 결국은 하겠다고 했어. 끝까지 가 봐야겠다고."
 "...그랬군요."

 세일은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침묵이 더할 수 없이 무겁게 도윤을 짓눌렀다. 뭐라고 생각할까? 혼자 깨끗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페이터에 빗발치던 말들이 진실 아니었냐고? 그러나 곧 세일은 차분히 물었다.

 "이 얘기, 밴드 분들껜 하셨어요?"

 도윤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세일이 재차 물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요?"
 "..."
 "제가 처음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는 도윤을 보고 세일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는 몸을 조금 뒤로 빼며 중얼거렸다.

 "아니, 왜..."

 하지만 말을 뱉자마자 장세일의 뇌리를 과거의 장면들이 스쳤다. 알 것 같았다. 왜 이 중대한 고백을 하필 자신에게 제일 먼저 하는지. 입을 다문 세일을 흘긋 보고서, 도윤은 물었다.

 "기억나? 분장실에서... 둘이 얘기했을 때."
 "...어떻게 잊어버리겠어요."
 "그때 네게 했던 말, 그대로 내게 들어맞았어."
 "..."
 "네가 도망친 게 아니라, 모든 게 너를 떠밀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했을 때 난 아니라고 했어. 자기 의지로 발을 들였다고. 그 선택을 직면해야 한다고."
 "그랬...죠."

 세일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도윤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털어놓았다.

 "내 얘기였어. 나야말로 선택했어. 배신자가 되기를. 그래 놓고 외면했어. '상황 때문이야'. '어차피 밴드 전원이 붙을 수는 없었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결말은 정해져 있었어'. '난 오명을 쓴 피해자야'..."
 "..."
 "사실은 아니었는데. 그래 놓고 네겐 대단한 양 충고를 늘어놨지. 너는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 주었는데, 나는..."

 말끝을 흐리는 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 숙인 도윤이 말을 다시 꺼내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도윤은 한숨 섞인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모두를 기만했어. 밴드 멤버들도, 너도... 나 자신도."

 세일은 말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몇 초의 침묵이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자백을 끝내고 구형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도윤은 힘겹게 유예된 시간만큼 버텼다. 그가 더는 버티기 힘들어졌을 때쯤, 세일이 조용히 말했다.

 "제가 형을 판단할 계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
 "제가 형 입장이었대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
 "별로 위로는 안 되죠? 제가 하는 말은."
 "아, 아니야 그런 뜻은."
 "농담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세일은 웃고 있지 않았다. 다시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가만히 세일의 말을 기다리던 도윤에게, 세일은 의외의 화제를 꺼냈다.

 "기억하시죠? 저, 마스커레이드 공연 갔던 거."

 생각났다. 수첩 안에 티켓이 들어 있었다. 밴드 멤버들의 연락처며 컨택한 기획사의 정보까지. 처음 보았을 때는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아득한 먼 옛 일이었다. 도윤은 잠자코 답했다.

 "그랬었지."
 "전 심사위원도 뭣도 아니지만 단박에 알았어요. 이 밴드는 한도윤 중심으로 굴러간다는 걸."

 간만에 듣는 소리였다.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말이었지만, 도윤은 저 말이 한 번도 기뻤던 적이 없었다. 그는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통 프론트맨을 보지 않나? 보컬이나 리드기타나. 난 그리 앞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 분들껜 안 됐지만, 사실... 스타성을 느끼지는 못했거든요. 뭐 형 말대로 형은 대부분 무대 구석에 있었죠, 포지션이 포지션이니까."
 "베이스가 그렇지 뭐."
 "하지만 앵콜 때 베이스 솔로 파트 있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솔로래봤자 별 거 아니었다. 마지막 곡이라며 관객들을 잔뜩 아쉽게 해 놓고, 조명을 죄다 끈 채 퇴장하면 앵콜을 외치며 계속 박수를 치는 소리를 백스테이지에서 들었다. 못 이기는 척 다시 나가면 어김없이 열띤 환호가 돌아왔다. 앵콜마저 끝나갈 때쯤, 멤버 소개 시간에 각자 솔로 연주를 하곤 했다. 별로 길지도 않았다. 이제는 어떻게 쳤는지 생각도 안 난다. 흐릿한 기억을 되짚는 도윤에게 세일은 힘주어 말했다.

 "그때 형은 순식간에 관객을 휘어잡았어요. 형, 무대 위에 서면 진짜 사람 달라진다니까요. 보컬이랑 리드기타 봤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
 "마스커레이드 곡 작곡 거의 형이 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형 빠지면 그전의 퀄리티 뽑아내기 어려운 밴드란 건 자명했죠."

 세일의 말을 들을수록 도윤의 속은 쓰라렸다. 그래서였다. 마스커레이드에 균열이 생긴 것은.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았는데. 어제와 같은 '우리'로 남고 싶었는데.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정말로, 있었는데.

 "형. 전 형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 없어요. 지극히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
 "이런 말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스커레이드가 그만큼 형에게 각별한 존재였기 때문이겠죠."

 존재'였기' 때문이었다고, 세일은 과거형을 썼다. 가슴에 턱 걸렸으나 도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뭐, 그건 형의 개인적 사정이니까 제가 뭐라 얹을 말은 없지만요."
 "그래."

 둘은 말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조금 남은 맥주는 그새 김이 다 빠져 씁쓸했다. 소리 없이 맥주 캔을 탁자에 내려놓는 도윤을 세일이 불렀다.

 "형."
 "응."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모르겠어."
 "음악 안 하실 거예요?"
 "..."
 "후회하실 거예요. 아예 놓아 버리면."
 "뭐라 얹을 말 없다고 하지 않았나?"
 "하하, 반격할 기력은 있으신가 보네요. 다행이네."

 세일이 힘없이 웃었지만 도윤은 따라 웃지 않았다. 그저 지친 기색을 숨길 수 없이,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세일은 툭 내뱉듯 말했다.

 "농담이고요. 그냥... 저처럼은 되지 마시라고요."
 "너처럼?"
 "미련은 남아서, 하지만 다시 도전할 자신은 없어서, 주변을 맴돌아도 결국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고, 꿈에서 점점 멀어지며 자괴감만 쌓여 가고."
 "..."
 "형은 그렇게 되기엔 너무 많은 걸 가졌어요. 아시잖아요."
 "모르겠...는데."
 "알게 될 거예요. '내가 이런 걸 할 사람이 아닌데'란 생각이 들 때마다."

 힘겹게 대꾸하던 도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런 거'라. 한때 인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서 팬을 모았던, 베리드 스타즈 4위에 올랐던 경력이, 다른 무슨 일을 할 때 도움이 되기나 할까. 제가 그런 자의식을 가질 만한 인물일까. 그를 가만히 보던 세일이 말했다.

 "아깝단 말이에요. 제가 형한테 했던 말 기억나요? 센스 있다고. 포텐셜 컸는데."
 "하하, 너무 좋게 봐 주는데."
 "진짜라고요. 꼭 공중파에서 보게 되진 않더라도...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하는 형, 다시 보고 싶어요."

 그의 말에 도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그럼 거짓말이겠어요?"
 "..."
 "대중에게 진상을 알려라, 뭐 이런 건방진 소린 안 할 테니까요. 그런 건 알아서 하시고... 이대로 영영 그만두지만 마세요."
 "...그래. 고마워."
 "이거 좀 불안한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세일 앞에서 도윤은 쓰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위이잉.
 세일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세일이 후다닥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전화 좀 받을게요."
 "응."

 좁은 투룸에서 어디 갈 데가 있다고, 세일은 탁자에서 얼마간 떨어진 창가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기 없는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 꾸벅거리는 걸 보니 통화 내용을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은 갔다.

 "...예, 물론이죠. 내일 오전 9시까지, 장소... 아, 보내 주신다고요. 알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세일이 바삐 도윤에게 걸어왔다. 마음이 다급해졌으리라. 아니나다를까 폰을 손에 꼭 쥔 세일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가 볼게요. 내일 미팅이 있어서..."
 "그 소속사?"
 "네. 아, 진짜 해보고 싶은 대사였는데. '내일 미팅이 있어서'."

 도윤은 피식 웃으며 세일의 어깨를 툭 쳤다.

 "하하, 잘 됐네."
 "밉상이지 않아요?"
 "아니, 좋아 보여."
 "참 사람이 좋은 건지 호구인 건지..."
 "넌 또 말을 왜 그렇게 해?"

 부러 앵돌아진 목소리로 답하는 도윤을 보고 세일은 쿡 웃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그는 말했다.

 "연락할게요."
 "응."
 "언제 복귀하시나 볼 거예요."
 "네가 무슨 내 매니저야?"
 "음..."

 시덥잖은 농담에 세일은 의외로 고민을 하는 듯했다. 도윤은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보았다. 별다른 대답을 예상하고 던진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세일은 더더욱 예상치 못한 답을 건넸다.

 "팬."
 "응?"
 "팬이라고 생각하세요. 형 무대를 다시 보고 싶은."
 "..."
 "혹시 알아요? 형이랑 제가 콜라보라도 할 날이 올지."

 그렇게 말하며 웃는 세일의 얼굴이 환했다. 앞으로 다가올 가능성을 믿는 이의 미소였다. 도윤도 이번에는 미소지으며 맞장구쳤다.

 "그거 재밌겠네."
 "네, 그러니까 그때까지 건강 챙기고요."
 "응, 너도."
 "주영 씨께 연락하세요. 밥 잘 먹었다고."
 "알았어, 알았어."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서 세일은 현관문을 나섰다. 배웅하겠다는 도윤을 그는 한사코 만류했다. 결국 현관문 앞까지 오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크게 손을 한 번 흔들고서 걸어 나가는 세일의 뒷모습은 어떤 때보다도 빛나 보였다. 그의 등을 보며 도윤은 생각했다.

 '네 말대로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세일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진 후에야 도윤은 현관문을 닫고 들어왔다. 다시 혼자 남았다. 떡볶이 국물이며 비닐을 치우고, 애매하게 남은 맥주를 버렸다. TV마저 끈 집 안에 다시 적막이 가득 찼다. 손님이 왔다 간 자리는 오기 전보다 배는 더 공허했다.
 도윤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앉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도윤은 생각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정체되어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그저, 도망쳐 왔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나는 막 죽다 살아났다고.
 자신을 좀먹던 비밀을,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러 온 죄의식을, 처음으로 남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진짜 털어놓아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도윤은 제게 다짐하듯 혼잣말했다.

 "...말하자. 멤버들에게. 무슨 원망을 듣건, 차갑게 외면당하건. 그리고..."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운, 아니, 제가 그리워할 자격 없는 얼굴들이 눈앞을 스쳤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믿어 준 그들의 신뢰를 산산히 부수는 자신을 상상했다. 아니, 신뢰는 이미 부숴져 있었다. 제 손으로 무너뜨렸다.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도윤은 핸드폰을 꽉 움켜 쥐었다. 번호야 다들 훤히 외우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서, 그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앞으로 나아가자. 어떻게든.'


베스타 치이고 처음 쓴 글입니다.
A루트 진엔딩까지 보면서 장세일은 살릴 수가 없는 건가 하며 슬퍼했는데
(B루트는 서혜성이 사는 루트라는 것까지만 알고 있었어요)
B루트 진행을 하다 보니? 갑자기 도윤이가 세일이를 따로 얘기하자며 불러내고?
(이 와중에 방으로 들어가자는 선택지 처음에 트라우마 때문에 버렸다가 신뢰도 깎였습니다,,)
A루트에서는 사후에나 수첩 보고 짐작했던 내용들을 살아 있는 세일이 입으로 듣고???
후일담 보니까 베스타 나와 있고????????
"살아있으면 뭐든 해야죠"라고 하는 모습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모니터 앞에서 진행 못하고 계속 울었어요...
잘했다... 잘생각했다... 너는 꿈 접으면 제 명에 못 산다.....
비록 도윤이는 걱정했고 나중에 서혜성이가 빵 터뜨린 후에 세일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글에서는 그런 거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세일이 데뷔해.. 음악해... 아무튼 하고싶은거 다해...........

+ 중간에 역상 얘기는 윤상 씨의 '기념 사진'에 관한 유희열 씨의 해설에서 빌어 왔습니다.

++ 제 글에서 장세일이 갑자기 인정을 훅 받고 '실력파'라는 소리까지 듣게 됐는데, 원작과 최대한 모순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 머리를 굴려 봤습니다(..).
아마 장세일은 제 오리지널 자작곡을 만드는 센스는 아직 키워지지 않았지만(적어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는), 실용음악과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지식 쪽은 빡세게 파고든' 만큼 화성학이라든가 엔지니어링, 발성, 믹싱 등등에 관한 지식은 해박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예전엔 남들은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라는 것의 존재를 믿고(실제로는 완성되기는커녕 다듬어지지도, 제대로 발아하지도 않았으나) 대중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마인드였다면, 지금은 그게 안 먹히는 걸 깨닫고 대중적인 감성에 호소하면서 제 지식을 총동원해서 오리지널리티를 살짝 가미하는? 그래서 베스타 1위를 할 정도로 확 먹히지는 않더라도 매니아층이 형성되는... 뭐 그런 느낌으로 상상했습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