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도윤] 너의 곁으로

전력 '새벽' 키워드로 썼습니다

디카 백업계 by D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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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도윤 전력 '새벽' 키워드로 썼습니다.
한시간만에 쓰는 건 불가능해서 그냥.. 써 오는 대로 올렸습니다.
당연히 스포가 있습니다(...). 아직 사귀지는 않습니다.

<<<<<<<<<<<<<미리보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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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타기>>>>>>>>>>>>>>>>
<<<<급류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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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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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빠빠<<<<<<<<<<<<<<<<<<<<<<<<<<<<
>>>>>>>>>>>>>>>>>>>>>>>>>>>>심해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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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수창은 잠이 얕은 편이다. 기껏 잠들었다가도 작은 소리에 깬다. 어렸을 때는 그렇지도 않았던 걸 보면 아무래도 수연 때문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동생을 양육하는 일이 오로지 혼자의 몫이 되었을 때부터, 저보다 한참 작고 약한 아이의 기척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했으니까. 이제는 제 손을 타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고 나서도, 수창은 여전히 수연이 한밤중에 거실로 나올 때마다 눈을 떴다. 본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유세 부리는 거야? 이제 나 다 컸거든!”라며 면박을 주면서도, 내심 저 때문에 다음날 피곤한 건 아닌지 마음 쓸 테니까.
 그런 그가 요 이틀만큼은 꿈도 없는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미안하지만, 수연이 수학여행을 떠나 있다는 사실이 원인으로 크게 작용할 거라는 가설을 부인하기 힘들었다. 수연은 밤잠을 깨우는 대신, 낮에 근무중인 그에게 툭하면 메시지를 보내왔다.
 딩동. 딩동. 딩동.

 “예, 반납 기한은 10일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넨 후, 수창은 아까부터 울리던 핸드폰의 화면을 켰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나 수연이었다. 사진을 몇십 개는 보내 오고서도 메시지는 끊이지 않았다.

 [바닷물 색깔 봐봐 완전 예뻐]
 [퇴근까지 몇 시간?]
 [야근야근 야근야근]
 [나는 놀 테니 너는 돈을 벌거라]

 수창은 입가에 피식, 웃음을 띠었다. 고등학생의 값싼 도발이 귀여울 뿐이었다.

 ‘예, 예.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물론 실제로 말이 이렇게 곱게 나가지는 않았다. 아직 아무도 카운터로 다가오려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 수창은 짓궂은 표정으로 답신을 보냈다.

 [뉘예 뉘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답이 없다. ‘읽지 않음’ 표시가 한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수창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하여튼 지 할 말만 하고 쏙 사라진다니까.’

 뭐, 그게 수학여행 간 고등학생의 본분이기는 했다. 아홉 살이나 더 먹은 오빠를 붙잡고 놀려 대는 것보다야, 곁에 있는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백 배는 더 중요한 일이다. 수창은 빙그레 웃으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재밌게 놀아라. 신나게.”

 이 오래비일랑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늘도 그는 야근을 피할 수 없었다. 수연의 말 때문이라고 그는 괜시리 속으로 툴툴거렸다. 하도 책을 옮겨 대서 뼈마디가 쑤셨다.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켜고, 오늘 수연이 보내 온 사진들을 도윤에게 우르르 보냈다. 그가 질색팔색할 만한 메시지도 함께.

 [오늘도 하수연이 염장지름]
 [울 자기도 나랑 언제 한번 #가보자고 ㅇㅋ?]

 언제쯤 돼서야 확인하려나. 어차피 금방 답이 올 거란 기대는 않았다. 어쩌면 내일 한 숨 자고 나서나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수창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집에 도착하고 주차를 하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수연일까, 도윤일까, 다른 사람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업무 연락일까. 마지막만은 아니길 간절히 빌며 화면을 확인했다가, 수창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

 [혼자 실컷 가세요]

 떫은 표정을 짓는 도윤의 얼굴이 단박에 눈앞에 그려졌다. 키보드 자판을 터치하는 수창의 엄지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너무 그러지 말고~~ 사람이 밖에도 좀 나다녀야지]
 [잘 나다니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과연 그럴까? 물 안 준 콩나물마냥 비리비리하게 시들어간다에 한 표]
 [아니거든요 아]

 수창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엘리베이터에 홀로 타고서, 잔뜩 즐거운 목소리로 그는 소리내 중얼거렸다.

 “요거 요거 빡쳤네. 이 소심한 ‘아’가 증거야, ‘아’가.”

 아무리 장난을 쳐도 도윤은 절대 이 이상 심한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찌나 바른생활 젊은이인지. 그래서 더 귀여웠다. ‘귀엽다’는 말을 하니까 더 발끈하는 모습까지도. 목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명분 없이 덜컥 전화를 하기는 좀 그랬다. 수창은 적당히 이 짧은 대화를 끝내기로 했다.

 [암튼 방구석에서라도 바다 실컷 가는 기분 내라]
 [그래요 형도요]

 짧은 답을 보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지만, 수창은 고개를 저으며 잊으려 했다. 거추장스러운, 필요 없는 감정이다. 그때 핸드폰 알림이 다시 울렸다. 화면을 향한 수창의 시선이 잠시 그대로 멎었다.

 [고마워요]

 별것 아닌 네 글자가 수창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아니, 정말 ‘별거’ 아닌데 왜? 하지만 그는 알았다. 도윤이 이런 표현에 서투르다는 걸. 자신을 앞에 두고는 특히 더. 어쩌면 도윤에게는 이런 대화 후 ‘고마워요’란 네 글자를 입력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는 거야말로 절대 ‘별일 아닌’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쓸데 없이 의미 부여하고 자빠져 있네.’

 수창은 눈을 질끈 감았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땡.
 집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드문드문 형광등이 켜져 있었지만 역시 어두웠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을 열고 들어간 수창은 작게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불 꺼진 집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수창의 얼굴에서도 표정이 말끔히 가셨다. 그는 묵묵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침대에 눕자 거짓말처럼 잠이 쏟아졌다. 요 며칠은 꿈도 없는 숙면을 취했는데도.

 ‘...잘 자.’

 수연에게, 그리고 도윤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고서, 그는 잠들었다.




 우웅. 우웅.
 진동 소리에 퍼뜩 일어난 수창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을 깨운 주범이 핸드폰이라는 사실을 그는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아직 졸음 가득한 얼굴로,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그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누구지? 수학여행 가신 고딩 나으리는 아닐 거고...’

 그때 수창은 잠이 확 깼다. 잠금화면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 미리보기로 뜬 메시지에 그는 눈을 크게 떴다.

 [형]
 [도와]
 [주세]

 몇 초간의 간격을 두고 올라오는 미리보기 메시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얼른 화면 잠금을 해제해 메시지 앱을 열었다. 뭐라 하기도 전 다음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니에요]

 그리고는 도윤의 메시지들이 모두 사라졌다. 한 줄 한 줄 적혀 있던 메시지들이 줄줄이 건조한 알림으로 대체되었다.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이 자식이 진짜...”

 핸드폰을 쥔 수창의 손아귀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는 얼른 메시지 앱을 끄고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신호음을 들으며 그는 속으로 계속 주문 외우듯 중얼거렸다.

 ‘받아라, 받아라, 얼른 받아라...’

 열 번쯤 신호가 가고 나서 도윤은 전화를 받았다. 평소라면 그닥 오래 걸렸다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수창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신호음이 끊기자마자 수창은 쏘아붙였다.

 “뭔 일이야?”
 “아...”

 말문이 막힌 걸 보니 전화를 받을 거란 예상은 못 한 모양이었다. 수창이 이어서 따져 물었다.

 “메시지는 또 왜 지우고?”
 “별거 아니어서...요.”
 “도와 달라며!”
 “진짜 별거 아니에요.”
 “별건지 아닌진 내가 정해.”

 수화기 너머에서는 좀처럼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수창은 머리 뒤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길게 토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며 그는 통보하듯 말했다.

 “지금 너네 집 간다.”
 “네? 이 시간에요?”
 “응. 이 시간에.”
 “미쳤어요?”

 그러게. 아까 잠깐 스친 시각을 보면 아무래도 지금은 새벽 4시쯤 된 것 같은데. 아무리 안 막힌대도 수원에서 도윤의 집까지 한 시간은 걸린다. 왕복 2시간이다. 이런 짓을 정녕 해야겠는가? 하지만 그는 이미 핸드폰을 든 채 바삐 잠옷을 출근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수창은 말을 돌렸다.

 “도망가지 말고 있어.”
 “도망은 무슨... 근데 진짜 올 거예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딱 기다려.”
 “에휴... 졸음운전 하지 마요.”
 “어머머, 걱정해주는 고양?”
 “아, 취소! 오지 마! 오지 마요!”

 수창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얼른 이를 닦고 출근 채비를 마친 후 차키를 쥐고 뛰어나갔다. 여섯 시간 정도 잔 셈이지만 눈은 또랑또랑했다. 요새 푹 잔 덕일까, 도윤이 잠을 확 깨운 때문일까. 아무래도 둘 다 같았다.
 새벽의 도로는 적막했다. 간간이 스쳐 가는 짐을 잔뜩 실은 트럭과 오토바이 빼고는 마주치는 차도 거의 없었다. 차갑고 고요하게 가라앉은 밤 공기를 수창은 가슴 가득 흠뻑 들이켰다. 항상 운전을 할 때면 좋아하는 앨범을 틀곤 했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딱지 떼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밟으며, 그는 도윤의 집으로 서둘렀다.
 익숙한 건물에 도착하고서 그는 하나 남은 공간에 겨우 주차했다. 이 시간이니 차가 꽉 차 있으면 어쩌지, 걱정했기에 마음 깊이 안심했다. 그는 현관 앞에 서서 도윤의 집 호수를 입력하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그는 곧 대답했다.

 “진짜 왔네요.”
 “그럼 가짜냐? 얼른 열어.”
 “네...”

 힘없는 대답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수창은 굳은 표정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힘을 주어 발을 내디디며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얼굴 보기만 해 봐라.’

 도윤의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자, 곧 그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도윤의 겸연쩍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왔어요?”
 “그래.”

 현관문이 맥아리 없이 열렸다. 쭈뼛거리며 제 눈치를 보는 도윤의 얼굴이 현관 센서등 조명을 받아 빛났다. 수창은 팔짱을 낀 채 그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도윤이 괜히 그의 눈을 볼 수 없어 시선을 자꾸만 떨구자, 수창은 핀잔을 주며 말했다.

 “고개는 왜 숙여, 죄라도 지었어?”
 “아니, 그...”
 “일단 들어가자고.”
 “아, 드...들어오세요.”

 그제야 도윤은 뒤로 물러서며 자리를 터 주었다. 수창이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식탁 의자를 빼고 앉았다. 도윤은 우물쭈물하다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를 보고 수창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야, 이래서야 내가 집주인 같잖아.”
 “...”
 “그래서, 무슨 일이었던 거야?”
 “...정말 별거 아닌데.”
 “그건 내가 듣고 판단한다고 했지.”

 도윤이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을 수창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관망했다. 무슨 취조하는 형사도 아니고, 왜 이 친구를 앞두고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웃기는 노릇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도윤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불면증 있는 거, 아시죠.”
 “알지.”

 수창은 낮게 대답했다. 그런 일을 겪고 난 후니,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서 더 그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손 내밀어 이쪽으로도 한껏 끌어당겼다. 조금 더 기대 줬으면 했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도윤이 말을 이었다.

 “그러려니 했어요. 치료 받으면서 조금씩 차도도 있었고... 언젠간 이것도 지나가겠지, 지나간 일이라고 말할 날이 오겠지, 하면서. 그런데...”

 도윤이 말끝을 흐렸다. 흑, 숨을 삼켰다. 목이 메인 것 같았다. 수창이 테이블 위로 상체를 기울였을 때, 도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간만에 좀 잠들었다 싶었는데, 또, 또 꿈을... 그때, 꿈을... 잊을 만하면...”
 “...”
 “피디 님이, 혜성이가, 세일이가, 그리고, 규혁이 형이... 난, 난 아무것도 못 하고, 아, 아...”

 도윤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두 어깨가 엉망으로 흔들렸다. 수창은 머뭇거리며 그에게 손을 뻗다가, 다시 거두었다. 소파에 앉지 않기를 잘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곁에 앉은 그를 안아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까맣게 모르는 채, 도윤은 계속해서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꿈에서 깬 것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다시 자기가 무서웠어요. 다시 잠들면, 또 무대에 파묻힐지도 몰라...”
 “...”
 “누구라도, 누구라도 붙잡고 싶었어요. 말하고 싶었어요...”

 수창은 도윤에게 들리지 않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또 들이쉬고, 내쉬었다. 멀쩡한 목소리로 말해야 했다. 지금 이 약하디 약한 모습을 보고 가슴 속에 또아리 튼 감정을 들켜서는 안 됐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동작으로, 도윤의 어깨를 툭툭 쳤다.

 “봐, 별일 맞네.”
 “...”
 “그래도 이 새벽에 연락할 만한 사람이 있단 게 어디야. 근데 메시지는 왜 지워?”
 “그야, 형한테 괜히 이런 소리해 봤자 부담만 되고- 아얏!”

 듣다 못한 수창이 가볍게 꿀밤을 때렸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그것도 몇 년만인지 모를 꿀밤을 맞은 도윤은 발끈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 하는 거예요!”
 “너야말로 뭔 소리야, 이 답답아!”
 “...”
 “야. 내가 왜 이렇게 뻔질나게 네 인생에 간섭하겠냐? 이 오밤중에 여긴 또 왜 쳐들어왔고?”

 도윤은 답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으리라. 알면서 차마 제 입으로는 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염치가 없어서. 그것까지도 수창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제가 던진 물음의 답을 수창은 스스로 입에 올렸다.

 “혼자서 삽질할까 봐 걱정돼서야. 아무 데도 못 털어놓고 끙끙 앓을까 봐. 계속 그러다가 손쓸 수 없게라도 되면 어쩌냐? 기껏 건져 놨는데 방구석에서 썩어 가면 수연이가 퍽도 좋아하겠다!”

 외치면서 그는 생각했다. 수연이만이 문제가 아니다. 저 역시 도윤을 그 못지 않게 염려한다. 물론 도윤도 안다. 단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를 따름이다. 몰라야 했다.
 도윤이 다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계속 눈을 비비는 걸 보니 눈물이라도 나는 모양이다. 굳이 우는 얼굴을 확인할 마음은, 그리고 그를 도닥여 줄 마음은 없었다. 이 친구도 자존심이란 게 있을 테니까. 대신 수창은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다음엔 전화 걸어.”
 “어떻게 그래요. 형 출근해야 되잖아요.”
 “어차피 문자에도 잘만 깨.”
 “아...”
 “말 안 했나? 나 원래 잠이 얕아. 하수연 키우면서 그렇게 됐어.”
 “수연이 지금은 다 컸잖아요.”
 “다 크긴...”

 한숨 섞인 수창의 목소리에서 도윤은 동생을 아끼는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읽은 것 같았다. 문득, 수연이 부럽다고 잠깐 생각했다. 곧 도윤은 제 발상에 기겁했다.

 ‘수연이가... 부럽다고? 수창이 형 같은 오빠를 둬서?’

 도윤은 얼른 제 생각을 의식 아래로 파묻어 버렸다. 이게 무슨 낯부끄러운 사고회로란 말인가.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특히 수창에게는. 도윤은 일부러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요? 저도 다 컸거든요.”
 “쟤도 댸 컜걔든얘~~”
 “이 인간이 진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이럴 땐 꼭 누구라도 붙잡고 털어놓으란 말야. 대낮이건 밤이건. 알았어?”
 “알았어요, 알았어.”
 “대충 대답하지 말고.”

 눈썹을 찌푸리며 쏘아보는 수창을 보고 도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내게 오지랖을 부리는 걸까. 어쨌거나 고마운 사람인 것만은 확실했다. 수창이 없었다면, 이 밤에 곧 지울 메시지나마 보낼 사람은 전무했을 테니까. 그 메시지를 받자마자 왕복 2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온다는 데에 이 사람의 비범함이랄까, 상식을 벗어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감사 인사를 해야겠지.’

 도윤은 큼큼, 헛기침을 했다. 아까도 쑥스러웠지만, 손끝으로만 입력하면 됐기에 비교적 쉬웠다. 지금은 얼굴을 맞대고 말하려니 갑절은 더 낯뜨거웠다. 그래도, 타이밍은 지금뿐이었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알았...어요. 그... 고마워요. 항상.”

 수창은 순간 대답할 말을 잊어버렸다가, 바로 정신을 차렸다. 방금은 위험했다. 동요한 티를 내서는 안 된다. 그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래, 역시 나밖에 없지?”

 수창은 언제나 돌아오던 반응을 예상했다. 뭐 씹은 표정으로 “이 인간이 또 왜 이래...”라며 한숨 쉬는 모습을 보고 마음껏 놀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옅게 미소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래요. 형 아니면 제가 누구한테 이러겠어요.”

 응?
 지금 내가 입을 벌리고 있나? 눈은 깜빡거리고 있나? 한도윤이 지금 이 표정을 보고 웃었나? 이런 생각은 왜 하고 있나? ―고장난 기계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보고 도윤은 눈꼬리를 접어 더 깊이 웃었다. 그를 본 수창이 마음속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패닉에 빠져 외쳤다.

 ‘미쳤어? 왜 저러고 웃어? 미친 거 아냐? 한도윤 나한테 왜 이래? 무슨 팬한테도 아니고 나한테 왜? 너는 나한테 극혐 표정이나 지어야지 왜 이러는 거야?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다던데 내가 삼고빔 드립 쳐서 그러냐? 그건 어그로였다고! 정신 차려!’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냐. 어쨌든 솔직하니 좋네, 하하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는 도윤 앞에서 수창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이 전개가 마음에 도통 들지 않았다. 저쪽은 아무 생각 없는데 이쪽은 절찬리에 휘둘리며 탭댄스 스텝 밟는 꼴이 되는 게.
 그때 창밖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도윤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수창도 엉겁결에 그를 따라 창가를 보았다. 새까맣던 어둠이 어느덧 가시고, 푸른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이제 아침이네요.”
 “그래.”

 도윤은 입을 가리고 크게 하품했다.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밤이 지나가서일까. 다시 잠들 자신을 잡아먹을 어둠이 사라져서. 혼자서는 버티지 못했을 시간을, 눈앞의 고마운 사람이 함께해 줘서. 고개를 푹 떨구는 도윤에게 수창이 말했다.

 “이제 잠이 좀 오나 보네.”
 “그런 것 같아요...”
 “그래, 자라, 자. 내일 스케줄 없지?”
 “네. 형은... 여기서 출근해야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대화가 멎었지만 도윤은 식탁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수창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밖을 바라보는 도윤에게 수창이 조용히 말했다.

 “네 꿈 말이야.”
 “...”
 “새까맣게 잊어버릴 날은 안 올지도 몰라. 몇 달에 한 번, 몇 년에 한 번쯤은 너를 괴롭힐지도 모르지.”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생각은 했다. 평생 이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받아들이는 건 또다른 문제였다. 수창이 말을 이었다.

 “정말 싫겠지. 나는 꿔 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지긋지긋할 거야. 분명히 나는 예전에 그 무대를 벗어났는데, 몇 번을 갇혀야 하나.”
 “...”
 “하지만 그 꿈은 매번 같지는 않을 거야. 꿈 속의 너도 똑같지는 않을 거야. 언제까지나 무력하게 끌려가지도, 정해진 이야기에 잡아먹히지도 않을 거야.”

 도윤은 잠자코 그의 말들을 귀에 담았다. 상담 심리 치료를 할 때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아직은 아득히 먼 나중 이야기 같았지만.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럴...까요?”
 “응. 언젠가 올 거야. 꿈의 흐름에, 균열을 낼 때가. 네 손으로.”

 수창의 목소리에는 어느샌가 힘이 실려 있었다. 도윤은 고개를 돌려 그의 옆얼굴을 보았다. 새벽 하늘의 푸른 빛이 이지적인 이마와 눈썹, 총기 있는 눈동자, 곧은 콧날, 굳게 다문 입술을 물들였다. 도윤은 직감했다. 수창의 말은 여느 이론서나 자조self-help 모임 홍보 서적 같은 곳에 실린 ‘남의 말’이 아니라고. 그 역시 자신이 모르는 악몽에 발목을 잡혀 악전고투해 왔을 거라고.

 ‘역시... 실례겠지. 궁금해하는 건.’

 그래도, 언젠가는.
 어줍잖게나마, 자신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고, 있다 쳐도 느물거리며 빠져나가는 사람이지만. 받기만 하는 건 싫었다.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막연히 미래를 그려 보는 그에게 수창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서 말했다.

 “아무튼 지금은 자라. 이제 꿈은 괜찮지?”
 “그럴 것 같아요. 형 졸려서 괜찮겠어요?”
 “그러게...”

 그제야 수창은 몸이 피로에 절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큰 소리 뻥뻥 친 게 무색하게도, 온몸이 삐걱대고 뻐근했다. 그는 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리며 괜히 변명하듯 혼잣말했다.

 “이상하네, 조금 전까진 진짜 멀쩡했는데.”
 “그러게 무리했다니까요. 형도 나이가 있잖아요.”
 “뭐? 나랑 나이도 차이 얼마 안 나는 게 까불어?”
 “꺾이고 나선 하루 하루가 다르다면서요.”
 “으... 한도윤 너도 곧 남 일이 아니게 된다고. 두고 보자.”
 “그래요, 그래요. 무리하지 말고요. 좀 쉴래요?”

 수창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운전하는 시간 빼면 아직 여유가 좀 남았다. 잠깐만 눈 붙이면 된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 좀 빌릴게.”
 “알았어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 잘 자라.”

 도윤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창은 얼른 들어가라며 그에게 손짓을 하고서 터덜터덜 소파로 걸어갔다. 제 키보다 폭이 짧은 소파에 풀썩, 몸을 던지듯 누웠다. 다리를 접고 누운 수창은 핸드폰 알람을 설정하려다가, 불현듯 떠올린 사실에 골머리를 앓았다.

 ‘출근 시간에 여기서 수원 가려면 2시간은 잡아야 할 텐데.’

 뭐, 그래도 한 30분 남짓한 시간은 남았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가려면 충분히 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자신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잘 되지 않았냐고, 좀 더 오래 여기 머물고 싶지 않았냐고.
 도윤이가 신경쓰이잖아.
 저러고 들어가 놓고, 또 악몽에 시달리지는 않을지 걱정되잖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번엔 바로 옆에서-

 ‘뭐래는 거야, 인간이...’

 수창은 쯧, 혀를 찼다. 그래, 안 쓴 유급 휴가가 쌓여 있었다. 며칠 되지는 않지만. 당일 통보하면 욕 제대로 처먹겠지만, 핑계는 대충 날조하면 된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가족...급한 경조사로 인해... 오늘 출근, 못 하게 됐습니다...”

 수창은 바로 핸드폰을 껐다. 다시 켰을 때부터 휘몰아칠 광풍은 생각만 해도 귀찮았지만, 저 얇은 벽 너머에서 곤히 자고 있는 청년과 며칠 간의 평화로운 직장 생활을 맞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 소파 등받이 위에 올려 두고서 눈을 감았다. 이번에야말로 도윤이 편안히 잠들기를 바라며.


슾도에 관심은 항상 있었는데 쓸 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손가락 빨고 있다가 급 떠오른 걸 써 봤습니다. 새벽에 SOS 문자 받고 바로 운전해서 가면서 님 도르신? 도르신?? 하는 섭호 << 이 한 줄을 쓰니까 이렇게 됐네요. 처음 쓸 땐 몰랐는데 제 글의 섭호(자꾸 연성할때도 섭호라고 쓰게됨) 너무 도윤이를 애끼네요... 어쩌다 이렇게 됐지?
다음에도 뭔가 떠오르면 쓰고 싶어요 후후 섭호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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