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e to the M.....

2-2. Minerva / Miracle

아비규환 by 규환
12
0
0

수프 팩을 입에 문 한도윤이 어느새 둥실, 몸을 날려 창 밖을 바라본다. 실크처럼 흩어져 너울거리는 머리칼을 하나로 질끈 묶는다. 꿈을 꾼 게 희소식이긴 한데 날 깨운 목적은 그게 아니라면, 어디 보자. 눈으로 플러그홀의 시선 끝을 찾는다. 어딜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나 했더니 아마도 이런 연유겠지.

"온통 시커먼데 희소식이 있기는 해요?"

“마마는 바깥 말고 여길, 봐주셔야 하올시다.”

플러그홀은 다짜고짜 또 핀잔이다. 여어길, 봐주셔야, 손이 휘적 지나가는 길을 세 축으로 공중에 홀로그램이 펼쳐진다. 좌표값을 읽는 일은 익숙했다. 등속직선으로 항해하던 아테나의 궤적이 미세하게 휘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암흑과 긴 잠에서 벗어나 가장 가까운 항성계의 영향권에 든 것이다. 센타우리 알파의 삼중성계. 현재 아테나의 항로를 기울인 센타우리 A, B 쌍성계를 지나치고, 외따로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선로를 틀면 곧 우리의 목적지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 그곳에는 지구와 아주 닮은 행성이 있다고 하였다. 한반도에서 볼 수 없던 그 별의 이름은 센타우루스 프록시마. 


"진짜로 아테나가… 해냈네요."

"해낸 건 우리지."

"조금 이따가 첫 스윙바이[1] 시작할 테니까 패스워드 잘 체크해 두시고. 알았지? 계산은 자기가 잠든 사이에 다 끝났으니까."

우주선을 가속하는 데에는 다양한 기술이 쓰이지만, 여즉 중력 에너지만큼 천문학적인 연료 절감을 돕는 일도 없었기에 착륙을 위한 궤도 조정 시만큼은 아폴로 시절 기술을 이용한다. 쌍성계의 권역으로 진입하기 전, 쌍성계의 궤도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 하나의 중력을 빌려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이렇게 감속과 동시에 비행각을 조정한 다음에는, 또 다른 행성의 중력을 빌려 쌍성계의 영향권에서 탈출, 프록시마로 향한다. 수식 계산은 물론 시간변수에 따른 오차 수정까지 완료되었으나, 실행에 옮길 에너지에 접근할 권한은 한도윤에게 있었다. 즉, 한도운만이 연료 탱크에 접근 가능한 패스워드를 알고 있었다.


“그냥 홍채나 지문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네 시첼 가져다 쓸 순 없잖어잉.”

“아니, 그럼 내가 도중에 죽었으면 어쩌려고요?”

“나만의 외로운… 해킹 싸움을 해야겠지? 구조 신호나 보내면서.”

“그걸 말이라고…… 좌우지간 암호는 내가 잠들기 전, 내 기억 데이터로써 만들어졌대요. 가장 깊이 새겨진 한 마디를 반영한다던데.”

그와 동시에 한도윤은 지구에서 들은 마지막 인사를 떠올린다.

'Remember. You will take us to a miracle.'

잊지 마, 너는 우리를 기적으로 데려가 줄 거야.


뭐, 그건 이따 핸들 꺾기 전에 입력하시고요. 그는 홀로그램을 끄고 덧붙인다. 여기까지 온 데 쓰인 기술력을 생각하면 이름이 좀 껄끄럽다니까.

"아르테미스보다 어울리……"

"그 얘기 하지 마." 답지않게 단호한 플러그홀의 음성.

"그, 그러려고 한 게 아니고. 구리진 않단 소리였어요. 로마식 이름은 다 떨어졌고, 그리스식 신화 작명에 익숙해질 때도 됐으니까."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이후 인류는 자유롭게 달을 드나들었다. 달 관광 사업은 짧은 붐 이후 차례로 철수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이 아닌 자원의 보고로써 막대한 가치를 보유했기에, 다양한 분야의 기술 개발 및 과학 연구 메카가 되었다. 아테나 역시 드넓은 달 위에서 발사되었다. 집광판으로 뒤덮인 마을 전체가 거대한 발사대였으며, 그곳에 사는 주민이 곧 연구원이었고, 존재의 목적은 이미 쏘아올린 로켓을 가속할 기술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돔형 발사대가 반으로 갈라질 때 솟아오르던 아테나 호의 붉은 상단부.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역사를 뒤엎을 다분히 상징적인 장면을 송출하며 앵커는 눈물을 흘렸다. 지혜의 빛이 창공을 가르고, 미지를 향해 날아오릅니다! 


지혜의 신 좋죠 뭐……, 한도윤은 중얼거리며 플러그홀의 미세표정을 살폈다. 한쪽 눈썹이 찡그려 올라가 있다. 이는 상대와 생산적인 논의를 위한 기본 가정이 맞지 않을 때 주로 짓는 표정이었다. 커뮤니케이션으로써 주제어의 외연(extension)과 내포(compréhension)를 맞춰 주지 않으면 이 말 안 듣는 AI는 가끔 혼자 논리학적 오류를 해결하다가 제 업무의 사소한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으나… 뭐, 그건 핑계고. 그냥 궁금키도 하고 심심하니까. 한도윤은 다 먹은 팩의 뚜껑을 돌려 닫으며 도로 묻는다.


"혹시…… 유감이 있는 부분이 아테나 신화 그 자체라거나?"

아테나. 그럴지도. 돌아오는 답변은 모호했다.

"다분히 내 취향의 누님이긴 했지. 그런데 과거의 기억이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잖아요, 달링?"

"과거면, '하수창' 이야기군요. 그건 왜요?"

"고럼고럼. 자네도 혹시 그 세대인감? 홍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은 안 읽어 봤으나 너 때문에 흥이 다 떨어졌다는 개그는 안다는 답변에 하수창은 진심으로 흥 떨어진 표정을 지었다. 때는 바야흐로, 한 세대를 풍미한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가 어른들의 사정으로 공중분해될 무렵. 옛것에 끌리는 족속답게 소년 하수창은 한 권이 빠진 중고책 전집과 함께 한 세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더라. 아레스의 아들이 세운 나라에서 옛 희랍 비극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심정이 꼭 저같았을까. 오래지 않아 그 책도 어디로 흘러흘러 떠나가고 어른이 된 수창이 사서로 일할 적. 페기되는 장서를 처음으로 슬쩍하니 고것이 당시 누락되어 있던 만화의 한 편이랬다.


"트로이 전쟁. 빼도 박도 못하는 그리스의 승리였는데 어쩐지 트로이에 끌리는 맘 알라나 몰라. 그 맘에 안 드는 그리스 진영에서도 딱 하나, 깨알처럼 아테나가 활약해주면 그건 또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

그 생각이 나서 너 자는 동안 영화를 좀 돌려봤어. 마블 시리즈, 신들의 전쟁, 헌트, 트로이…… 일리아드랑 오뒷세이아, 고 밖의 다양한 전승들도 좀 찾아보고."

"아, 트로이라면 봤어요. 브래드 피트만큼 아킬레우스에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요."

"자기라면 견줘볼 만 하지 않나? 영웅소리 제법 들었기로서니." 그렇게 말하는 플러그홀의 표정은 또 제법 진지해서 한도윤은 손사래를 쳤다. 개소리가 다채로워봤자 개소리죠.

"아니! 아테나 별로라는 얘기 하다가 왜 여기까지 왔어요?"

"진짜 우리가 아테나의 가호를 받는 족속이라면, 사양하고 싶다는 소릴 하려고 했지."

어쨌든 브래드 피트 같다는 소린 아니네요. 아쉽구만? 그럴 리가요. 

우리는 영웅의 이름을 하고 아테나의 수호를 받고 있네. 그래서 대체 아테나의 어떤 점이 불만인데요? 미약하게 인상을 구기고 묻자면 플러그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테나가 제우스 머리 깨고 나온 따님인 건 아시죠. 그래서 제우스가 홀로 슈르르 뿅 하고 만든 건가 싶었은데, 사실 아테나도 어머니가 있긴 있었어. 정실부인 메티스가 엄마야. 그러나 메티스가 아들을 낳으면 제우스를 능가할 거라는 예언 때문에,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켜버린 거야.

 

요즘은 남자 역할 여자 역할 하는 게 구닥다리 발상이지만 고 시절엔 아니었지. 왜냐면 그 시대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과 쓸모가 있었구, 당연히 여신들에게도 명백히 주어진 불가침의 역할이 있었어요. 마더 어스 같은 말 있잖어. 자, 그런데 아테나의 출생으로 여성의 영역이던 어머니 역할을 제우스 아저씨가 침범하기 시작하는 거야. 결국 여성의 역할도 남성에게 종속되기 시작하잖아.”

“원래 중국 신화의 대모신이었던 여와가 홍수 신화에서는 복희의 여동생 겸 배우자로 나오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데요. 신화는 시대에 따라 바뀌니까요.”

“내가 킹받은 부분은 아테나가 정의의 여신이라는 거야. 야만적인 폭력과 복수 대신 법과 정의의 시대가 열렸음을 주창하는 게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의 무죄 판결이거든.”

이름 외우기 귀찮지? 대충 오레오라고 하자. 그러고 하수창은 다시금 이야길 늘어놓는다.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승전하고 개선장군으로 돌아와. 그런데, 걔가 전쟁 중에 딸래미를 산제물로 바친 적이 있거든. 딸을 잃은 와이프는 고무신을 제대로 꺾어 신었지. 바람이 나서 아가멤논을 죽여버리고, 남은 아가멤논의 자식들까지 죽이려는데…… 오레오랑 그 누나 엘렉트라는 겨우 목숨을 건지고, 그 길로 복수의 여정을 떠나게 돼.

오레오는 결국 엄마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근데 피를 나눈 엄마를 죽인 업보로 걘 반 미친놈이 돼요. 미치광이가 돼서 떠돌다가 마침내 아테네 재판장에 서거든. 그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배심원 심사 결과는 동수였고, 재판장 아테나가 나서서 쐐길 박아요. 고개 드세요, 오레오 당신 죄인 아닙니다. 하고.”

왜 그랬게에. 혼자 떠들던 플러그홀은 문제를 내듯 한도윤을 바라본다.

“당연하죠. 그건 정당방위잖아요. 게다가 자식의 살해를 도모하는 부모라면…… 죽어도 싼 거 아니겠어요. 뭐 그게 아니니까 열받았겠지만?”

“아테나는 아들이 엄마를 죽인 것보다, 아내가 남편을 죽인 죄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했대. 아폴론은 곁에서 남자의 목숨이 더 고귀하다고 귀띔했구.”

“아…….”

“아라크네 엿 먹인 것까지 하니까 자꾸 그게 생각나는 거야, 제우스 적장녀에 엘리트인 아테나가 정의의 이름으로 약자를 수호한 적이 있긴 한가? 아테나는 그냥 화자를 대변하는 존재 아닌가 싶었어.”

한도윤은 말이 없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모양이다. 이만큼 떠들었으면 됐으려나, 플러그홀은 그 무겁지 않은 순간의 침묵을 즐겼다.


“해석하기 나름이다만,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하고. 그렇지만 말했듯 호메로스처럼 트로이를 주인공 삼아주는 화자가 있어 준다면 다를 지도 모르지요. 아테나는…… 글을 쓰는 사람 자체를 대변하기보다는, 그들이 무엇을 정의라고 생각하는지. 그걸 말해 주겠지요.”

“내 말이 그 말. 결국 신화라는 건 사념의 집약체 아니겠어용? 약자의 소리는 드라마틱하게 각색하지 않으면 또 어디로 묻히기 마련이고.”

한도윤은 결론내린 듯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나는 아테나의 이름을 빌리는 사람들을 믿을 수 있을까요.

“믿는 건 네 맘이지.”


한도윤은 창 밖을 본다. 지구 밖에서는 북두칠성을 구성하는 별 하나하나 전부 색이 다르댔는데… 이곳에서는 기존에 외우고 있던 별자리 지도는 소용이 없다. 저들 중 자신이 봐온 별은 얼마나 될까. 한도윤의 부모는 같은 하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런 모양의 하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 문득 도윤은 외로워졌다.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 뒤에선 나직한 목소리가 전해진다.


“그들이 누구든 우리는 영웅의 이름을 하고 그 아테나의 수호를 받고 있네.”

“어쩌면 우리는 아테나의 방패에 붙은 거인 팔라스의 가죽 같은 걸지도 모르죠.”



지구 밖에서 북두칠성을 보면, 별 하나하나 전부 색이 달라요. 가슴 깊게 품고 있던 그 말은 첫 한국인 우주비행사의 경험담이다. 애당초 최초의 한국인 우주비행사 후보는 남녀 각 1명씩이었으나 실질적인 내정자는 남자 비행사였다고 하지. 그는 러시아인들의 차별 대우에 분개해 교범을 복사해 읽은 것이 들켜 급작스레 실격되고, 여성 비행사로 교체된다. 급작스레 바뀐 연구원을 위한 자리도, 옷도, 수하물도 그곳엔 없었다. 사람들은 대체 인력인 우주인의 흠결을 찾고자 애썼다. 하다못해 공무원을 뽑아도 남녀의 비율을 맞추면 남자의 자리를 빼앗는다 여기는 생각이 만연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그가 수행한 열여덟 가지의 임무보다, 바뀐 환경 아래 부은 얼굴에 더 관심이 많았다. 

후속 연구라고는 없이 소모된 자신을 직면한 그가 주어진 의무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우주인은 몇십억짜리 우주 여행을 먹튀한 여자가 되기도 했고, 아무것도 모른 채 정부 사업에 희생당한 비련의 여자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그 ‘대체 인력’이 지구 귀환 모듈의 결함을 알아채어 베테랑 동료들의 목숨까지 구한 영웅담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가 아직도 유명한 우주 사고 밈으로 작동하는 시대임에도.


'아테나는 용맹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한도윤은 처음부터 내정된 우주인이었다. 우주개발사업은 더 이상 선전을 위한 일이 아니었으며, 주어진 길을 탈선하지 않았기에 준비된 박수갈채를 받기만 하면 되는 멋진 그림 속 주인공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항공사고였어요.”

해내지 못했다.

“알아, 다 알고 있어. 괜히 말 꺼내봤자 너만……” 

“내가 달에 활주로를 세우고, 태양열발전소를 만들어주길 바란 이유는 멀리 있지 않겠죠. 두 영웅 밑에서 나고 자란 나까지 영웅이기를 바랐을 거예요. 자신들이 바란 영웅은 이런 사람인 거겠죠.”

플러그홀은 안경을 벗어두고 미간을 꾹꾹 짚는다. 악몽을 되새기는 것은 싫은데 굳이 말하겠다는 걸 뜯어말리기도 뭣하고. 한쪽 다리만 접힌 까만 뿔테 안경은 애매한 모양으로 둥둥 선내를 떠다니고.

“에머슨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정말로…….”

미션은 성공적이었다.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목숨만 건져온 아폴로 13호가 성공적 실패라면, 한도윤과 에머슨 리의 아르테미스 4호는 실패한 성공, 상처뿐인 영광으로 불리었다.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은 짧았다. 짧은 수면 이후 연료탱크 재활성화 프로그램을 가동할 마지막 키를 입력한다. 간단한 빈 칸 채우기.

‘Fly me to the M_____’

삼 초 뒤, 한도윤은 얼빠진 표정으로 묻는다.

“미라클 철자 이거 맞죠.”

“자기야 머리에 총 맞았어?”

“아니, …… 아니라잖아요.”

기기판 아래에는 'ERROR - 입력 가능 횟수 : 2' 상태창이 야속하게 깜빡인다. 한도윤의 뇌리에 새겨진 어구가, 기적이 아니라면 대체 무언가.

도윤으로서는 써 본 일 없는 공인인증서가 욕을 들어먹다 폐지된 까닭을 알 것 같았다.


[1] 목표로 하는 행성, 또는 중도 행성의 중력의 장을 이용하여 진로나 궤도를 제어하는 우주선의 비행경로.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