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1 축하합니다

9월 5일 한도윤의 생일을 축하하며

*베리드 스타즈 A루트의 간접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포함하지 않으므로, 특정 엔딩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가볍게 즐겨주셔도 무방합니다.

*어쨌든 한도윤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


무대 붕괴 사고에서 한도윤은 살아남았다. 온갖 비방을 딛고. 함께 살아남은 동료들은 무너진 무대에서도, 병실에서도 힘이 되어주었다. 무대가 무너졌던 당시에도 한도윤은 크게 다치지 않았고, 구조 후에도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너진 무대에서 있었던 일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출연진들을 향해 비방을 쏟은 적 없다는 것처럼, 대중은 새로운 흥미를 찾아 그들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한도윤도 그때의 일이 먼 과거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무대가 무너지면서 총괄 프로듀서 신승연와 출연자 이규혁이 무대 잔해에 깔리는 일이 있었지만, 그들은 다행히 무사히 구조되었고 차차 회복했다.

아찔했던 순간들도 이제는 지나간 일이었다. 한도윤에게는 동료의 지지와 함께 자신을 믿는 마음이 충분했다. 동경하던 무대가 무너지고 민낯이 파헤칠 정도로 쏟아지던 관심을 겪은 뒤 한도윤은 왠지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지만, 잠깐의 휴식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그렇게 한껏 일상을 누리다, 앞서간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길을 나섰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한도윤은 미리 집을 청소하고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터였다. 인터폰을 확인하고 현관으로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문밖에는 오인하와 민주영이 함께 있었다. 오인하에게는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민주영에게는 긴 인사를 건넸지만 셋 중의 누구도 이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뒤로는 친구들이 왔다. 다른 사람들에 떠밀려 맨 앞을 차지한 허우석이 시선을 피했다. 한도윤이 먼저 한 걸음 다가가 인사하자 그제야 풀어진 얼굴이 시비를 걸듯 축하 인사를 건넸다.

"생일 축하한다."

"고마워."

밝게 웃으며 자리를 비키자 생일 케이크를 한 손에 든 허우석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가도 아는 사람 없을 텐데. 그래도 무너진 무대에서 오갔던 언젠가의 논쟁에 비하면 최근의 어색함은 훨씬 편안한 느낌이라, 한도윤은 살며시 웃고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이규혁이 오고, 마지막으로 서혜성과 장세일까지 도착했다. 정확히는 한도윤의 집에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는 장세일을 서혜성이 붙잡고 들어왔다. 

"어디서 도윤이 형 생일을 그냥 넘어가려고 그래?"

"야, 이것 좀 놔보라고!"

장세일은 집 앞까지 왔으면서도 사람들이 한가득 모인 곳에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한도윤은 서혜성을 제지하는 대신, 다가가 반대쪽 팔을 붙잡았다.

"형까지!"

"내 생일이잖아. 난 네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축하해줬으면 좋겠어."

표정이 완전히 풀어진 장세일을 거실로 데려갔다. 과거의 출연진들이 그대로 자리잡은 모습에 장세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서혜성의 손에 이끌려 그 옆에 앉았다.

한도윤이 혼자서 시간을 보내던 집은 많은 사람을 감당할 수 없기에, 베스타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실에, 마스커레이드 때 함께했던 친구들은 부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케이크를 가져온 사람들이 각자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한도윤. 생일 축하합니다."

보통 생일 케이크는 나이를 초 몇 개로 간략하게 표현하기 마련인데도, 케이크가 여러 개여서 그런지 끌 불꽃이 참 많았다. 그 빛 하나하나가 저를 위한 애정임을 알기에, 한도윤은 기쁜 마음으로 불꽃을 불었다. 민주영과 서혜성이 가져온 케이크의 초를 끄자, 부엌에서 서둘러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초 다 녹는다!"

"갈게!"

멀지 않은 거리를 서둘러 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바람에 밀려 얼마 없는 불꽃이 사그라지는 것이 아쉬워, 한도윤은 불 꺼진 초를 제 손으로 뽑아 들었다.

"넌 생일인데 이걸 또 직접 하고 그래."

그리고 바로 제지당했다. 결국 초를 뺏기고 대신 케이크칼을 받았다. 멤버 수에 맞춰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담아주니, 멤버 한 명이 물었다. 

"네 몫은 왜 안 잘라?"

"저기 있는 거 먹으려나 보지."

"아니, 그래도 의리가 있지. 우리가 사 온 케이크 한 숟가락은 맛봐야 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

그렇게 시작된 토론은 각자 한 숟가락씩 한도윤에게 케이크를 퍼주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한도윤은 이 결론이 당황스러웠지만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친구들의 의리를 받아 거실로 갔다.

그 사이에 거실에서는 이미 케이크를 깔끔하게 나누어 먹고 있었다.

"네가 친구들이랑 있는 동안 내가 접시 가져왔어."

"아. 고마워."

오인하가 툭 던진 말에 한도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서혜성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우리는 케이크 두 개잖아. 하나 정도는 좀 재밌게 써먹어도 되지 않겠어, 도윤이 형?"

"...뭐하려고?"

묘하게 들뜬 목소리에 한도윤이 불길함을 직감하고 묻자 서혜성이 활짝 웃었다.

"뭐긴 뭐겠어, 생! 일! 빵!"

"안돼! 차라리 내 등을 때려!"

한도윤이 다급하게 서혜성의 손을 붙잡았다. 음식으로 장난을 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자코 맞아주었다가는 분명, 제 친구들이 깜짝 놀라다 못해 뒤집어질 것이다.

"아, 알겠어. 안하면 되잖아."

서혜성이 입술을 삐죽이며 붙잡힌 손을 빼내려 했다. 한도윤은 슬쩍 다른 출연진들의 분위기를 확인했다. 다행히 얼굴에 케이크를 날리는 행위가 사전에 약속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제야 안도한 한도윤이 서혜성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 뒤로는 평화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최근 근황이라든가, 서로를 향한 가벼운 농담이라든가. 아니면 한도윤 집 구경이라든가. 별거 없다며 한도윤이 손을 내저었지만, 출연진들은 그렇다고 쳐도 오랜 친구인 마커레 멤버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결국 집 구경이 확정된 분위기에 출연진들은 친구들끼리 좋은 시간 보내라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조만간 또 보자는 약속과 함께.

한 명 한 명 작별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서면 친구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전부터 있었던 이들이지만 갑자기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아져서, 한도윤은 순간 발을 멈추었다.

"왜 그래, 도윤아?"

세상은 그때처럼 무너져내리지 않았다. 흔들리던 무대도, 조명도, 사람들의 비명도 저 뒤로 아득히 멀어져간다.

단단하게 저를 받쳐주는 땅 위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에 따라 친구들과의 거리도 한 걸음 좁혀진다. 우리의 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없이 멀어지지 않는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한도윤은, 그 사실이.

"그냥, 좋아서."

너무나도 기뻤다.

무대 붕괴 사고로부터 1년이 얼마 남지 않은, 한도윤의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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