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지 수록 원고들

[장세일] 죄, 도피, 에쎄골드

2023년 발간 장세일 앤솔로지 <장세일이 세상을 살아가는 31가지 방법> 수록 원고

좋은 기회로 짧은 글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세일이와 관련된 글을 쓸 일이 잘 없는지라...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죄. 속죄. 용서,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슬프게도 나에게는 이 중 어느 것에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죄로서 인정받지 못하였으니 사죄할 방향조차 잃어버렸다. 토해 낼 곳이 필요했다. 이마저도 이기적인 생각이다. 죄를 모두 토해 쏟아낸다면 나는 무결해질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헛된 욕심이다. 그저 묵어서 썩어가는 죄를 끌어안고 함께 곪아갈 뿐이다.

비난받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잊히는 것이다. 정정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것이다 - 기억된 적조차 없으니 잊힐 수 있을 리 또한 없다 - 서로의 죄를 아는 이가 있다. 침묵을 강요받은 이와 침묵을 택한 이, 서로만은 서로를 기억한다. 그러나 같이 잊혀가는 처지이기에 의미없는 일이다. 

상대는 스스로 죄를 택한 자다. 자의로 침묵을 택하고 잊히기를 택한 자다. 나와 같은 입장일 리 없다. 그의 존재가 위안이면서도 또한 허탈했다. 그러나 나를 아는 이는 그밖에 없다. 자신을 의탁할 곳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 싶었다. 그것이 나의 죄의 근원이었음에도.

약간의 술과 안주를 사기 위해 들린 편의점에서 익숙한 물건을 보았다. 금색의 얇은 담배갑이다. 

충동적으로 집어들었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숨을 들이키자 목이 막히고 기침이 나왔다. 죽은 이의 입에서는 불쾌한 맛이 났다. 반도 채 타지 않은 것을 비벼 껐다. 비벼 끄는 자세가 익숙했다. 그렇게밖에 배우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것 또한 내가 품은 죄였다. 역겨웠다.

'나'에 대해 생각한다. 음악을 하는 내가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한때는 힘을 가진 이의 하수인이자 연장인 내가 '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꽤 오랫동안 그래왔다. 오랫동안 나의 자아를 의탁하며 그것이 내 모습이라고 살았기에 의탁할 곳을 잃은 나는 무엇이 '나'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또다시 의탁할 곳을 찾는다. 그것이 나의 죄다. 함께 곪아들어가는 나의 죄이다. 극복을 위해선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극복인지 도피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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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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