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과 단편들

[도윤인하] ROCKCATS

디카님 생일선물로 드린 글

디카님의 생일 선물로 드린 글입니다. 수제작 중철본(ㅋㅋㅋ)으로 만들어서 드렸어요.

처음 써 본 도윤인하라 무언가 뜻깊습니다. 그 김에 웹에도 업로드해 봅니다.

트루엔딩 이후 시점을 다룹니다.

“…제정신이야?”

“뭐가.”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죽은 듯이 살 거야?”

WBS에서 받은 보상금의 액수가 제법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들 당장은 생활에 별 무리가 없을 거란 것을 오인하 또한 잘 알고 있다. 허나 한도윤의 퇴원 후 석 달 만에 얼굴을 다시 본 오인하는 한도윤의 근황을 듣자 그를 타박했다. 알바라도 하나? - 안 한다. 밥은 잘 먹고 사나? - 별로 이유를 느끼지 못해 대충 챙겨먹고 있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긴 하나? - 이상한 사람을 두어 번 만나긴 했는데 어쩌다 알게 된 사람인지 설명하자면 길다. 다른 하는 거라도 있나? - 딱히 없다. 무얼 해야 할 지 사실 잘 모르겠다.

배신자가 된 한도윤은 구태여 자신의 배신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한도윤은 밴드로 돌아가지 않았고, 이는 단순히 마스커레이드의 종결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다른 밴드에 들어가거나 하는 것은 마스커레이드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도윤이 굳이 그리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락 배신자를 당장 받아 줄 마음씨 좋은 밴드는 없을 터였다. 한도윤은 돌아가지 않는 것을 택했다. 어차피 선택지는 없을 터였으나 그것은 한도윤의 의지가 맞았다.

“그렇다고 너같은 놈이 페이터나 유튜브 같은 거 보거나, 게임 같은 거 하면서 시간을 죽일 리도 만무하고.”

“잘 아네.”

“그럼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한도윤은 스스로의 넉 달 - 병원에 있었던 기간까지 포함해서 - 를 되돌아보았다. 연락을 좀 했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았기에 자신의 안부를 전할 사람도 많지 않았다. 파탄난 관계의 종지부를 찍었다. 배신자 도장 땅땅. 아버지와 연락을 했다. 사고가 있고 이 주인가 삼 주쯤 후에 전화를 받았다. 굳이 알릴 계획이 애초에 없었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조금 헤맸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바로 연상된다. 다른 말도 좀 하셨으면 좋겠지만 달리 할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하는 말임을 안다.

그리고 끝. 사실 석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람과의 접촉을 거의 않고 산 것 치고 오인하와의 대화는 부자연스럽진 않았다. 공부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을 간다고? 응.

“…그런 건 전혀 생각도 못 해 봤는데.”

“너더러 공부하란 얘기 한 거 아니거든.”

야, 배신까지 했잖아. 어찌됐든 너도 니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거 아냐. 그 보람은 있어야지. 한도윤은 답변을 떠올릴 수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었더라.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더라.

내가 살아왔던 방식은 이제 버려야 하는데. 나한테 배신을 권하던 이는 이를 대신할 방식을 보여 주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존재했나?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온전히 한도윤의 몫이다.

“음악은 계속 안 할 거야?”

“지금?”

“어쨌든 아예 놓고 살 순 없을 거 아냐.”

“왜 그렇게 생각해?”

“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니가 그럴 수 있는 위인인가.”

“…”

“뭐라도 해. 그게 너한텐 어울려.”

그러는 오인하도 한도윤이 당장 음악을 계속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오인하는 원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 길로 한도윤의 집까지 쳐들어온 오인하의 제안 1. 곡을 다시 써 본다.

니가 무대에 당장 다시 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 나는 잘 모르지만 - 언젠가 써먹을 니 자산은 될 수 있을 거 아냐. 그리고 지금의 너라서 할 수 있는 얘기도 있을 거고. 솔직히 하고 싶은 얘기도 있잖아. 아냐? 한도윤은 부정하지 않았다.

오인하의 제안 2. 베이스를 다시 잡아 본다.

“기껏 잘 치는 거 실력 다 녹슬게 하는 거 아깝지 않아?”

“이제 밴드도 안 할 건데 쓸모가 있나?”

까지 말했다가 등짝을 한 대 맞았다. 구석에 놓인 베이스는 사고 이후 몇 번 건드려 보기만 했을 뿐 제대로 잡지 않아 먼지가 조금 쌓였다.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이 그새 꽤 엷어졌다는 것은 한도윤 스스로가 더 잘 안다. 허나 베이스만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지. 애초에 그런 포지션인데. …유튜브를 할 것도 아니고.

“유튜브라도 할래?”

“내가?”

“못 할 거 있어? 구독자 끌어모을 것도 아니고, 그냥 기록용이라고 생각해. 조회수 나오면 겸사겸사고.”

나 춤 출 때도 크루에서 영상 자주 올렸거든. 인기 끌 거 기대하고 올리는 건 아니지만 가끔 알고리즘 타서 조회수 오르는 영상 생기면 기분 좋더라. 그냥 니 치고 싶은 거 치고, 올려 봐.

“그리고 너 베이스 칠 때 좀 멋있거든.”

반박할 여러 근거는 떠올랐지만 의미가 없어 굳이 말로 뱉지 않았다.

항복.

자타공인 아날로그 인간 한도윤이 영상 촬영이나 업로드 같은 쪽에 조예가 있을 리는 만무했기에 오인하가 한도윤의 재활을 돕기로 했다. 작은 촬영장을 꾸미고 - 가볍게 하자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한도윤의 말에 오인하는 그냥 화면에 나와도 될 정도만큼만 방 꼬라지를 정리할 뿐이라고 답했다 - 카메라를 세팅하고, 각도를 잡았다. 얼굴은 나오지 않는 쪽으로 했다. 당장은 그게 맞을 듯 했다. 한도윤의 방을 뒤져 간단한 녹음 장비를 찾아내 세팅했다. 조회수 신경 쓸 거 아니니 선곡은 한도윤이 좋아하고 손에 익은 곡으로. 그렇게 테스트 삼아 영상 하나를 촬영했다.

유튜브 채널명을 정하라는 인하의 말에 한도윤은 여러 가지 안을 내놓았으나 센스 하나는 정말 끔찍하게 없다는 말과 함께 전부 퇴짜를 맞았다. 한 시간 정도 씨름한 끝에 딱히 특출난 대안이 나오지 않아 채널명은 ‘ROCKCAT’이 되었다.

“왜 고양이야?”

“너 베스타 방영할 때 고양이로 모에화… 넌 그거 뭔지 모르지, 하여튼 고양이 같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

“내가? 너 아니고?”

역시 대중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놈이 뭔 오버씬에서 가수를 하겠다고 덤볐냐는 말과 함께 인하는 한도윤에게 영상을 업로드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본문에 쓸 스무 자도 안 되는 말을 적기 위해 또 한 시간 정도를 씨름한 것은 덤이다.

인하는 공부를 위해 당분간 서울에 있는다고 했고, 영상을 찍고 싶을 때 연락하라고 했다. 방법을 알려 주었으니 한도윤이 직접 해도 되지만, 어쩐지 못 미덥고, 그리고 그냥 자기가 현장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괜히 한 말은 아니었던 듯 한도윤이 스스로 채널에 올린 영상이 다섯 개가 되었을 때 인하는 한도윤에게 전화를 걸어 농담조로 서운하다는 말을 전했다.

“야.”

“왜?”

“신청곡도 받아?”

“아는 곡이 있어?”

“아… 돌아가신 전설분들 노래 아니면 취급 안 하신다?”

“대체로 살아 계셔…”

인하가 말한 노래는 한도윤에게는 아주 생소했고, 인하는 문명과 단절된 산구석 자연인을 목격한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야, 요즘 밖에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하루에 열 번은 듣는 노래를… 맞다, 너 밖에 잘 안 나가지.

그렇게 오늘의 선곡 또한 한도윤에게만 익숙한 곡이 되었다. 한도윤이 연주하는 동안 턱을 괴고 묘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인하는 곡이 끝나자 적당한 텀을 두고 아이폰의 촬영 종료 버튼을 눌렀다.

“곡 이름이 뭐야?”

Korn의 Got the Life. 그건 왜? 들어 보려고? 어쩐지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간 듯한 한도윤의 말에 인하는 부러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았다. 물론 장난임을 알기에 한도윤의 기분이 상할 일은 없었다.

이제 한도윤 또한 어디 가서 구닥다리 소리는 듣지 않을 만큼 촬영과 업로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에 인하가 도울 일은 많지 않았지만 인하는 굳이 한도윤의 집에 찾아와 연주와 촬영을 구경했다. 이렇게라도 한도윤 사람 만나야지. 맛있는 것도 먹이고. 말마따나 족발에 막국수까지 야무지게 포장해 온 터였다.

“뭐 이런 것까지…”

“이거 대 자 나 혼자 시켜 먹으면 이박 삼일은 먹어야 해. 내가 먹고 싶어서 사 온 거니까 잔말 말고 먹어.”

군말 없이 인하의 앞에 놓인 컵에 소주를 따라 주었다. 사운드가 비는 것이 어색해 대충 틀어 놓은 유튜브 자동재생에서는 한도윤에게 길들여진 알고리즘 탓에 딱히 식욕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곡들만 연이어 흘러나왔지만 인하는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나도 들어 보려고.”

“추천해 줄까?”

“한도윤 또 신났다 야. 너 이럴 때 진짜 웃기는 거 알아?”

한도윤은 멋쩍게 웃었다. 인하는 따라 웃더니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간간히 짓는 표정이 묘했다. 신경이 쓰였지만 부러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놈이 뭔 음악을 때려친다고 객기를,”

“때려친다고 한 적은 없잖아.”

“좋겠다.”

“뭐가?”

하고 살아야 할 게 확실해서. 잘 하는 거랑 좋아하는 게 같아서. 아주 살 의욕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도 좋아하는 일 하나에 다시 살아나는 사람이라서. 아주 기를 쓰지 않아도. 나는 니 생각보다 그러지 못한 사람이거든.

하고 싶은 게 생겨서 공부를 하겠다고 덤비긴 했는데 내가 그렇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걸 떠올리는 데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거든. 사실 내가 이걸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아주 있는 것도 아니고.

“…소주 더 사 올까?”

“아냐 됐어. 혹시 집에 라면 있어?”

“두 개 끓일까?”

“그럼 하나만 끓이냐? 밴드 시절 쫑냈다며. 베이스 다시 잡더니 버릇 살아났나 봐.”

“취했어?”

“좀 그러고 싶네.”

한도윤이 라면을 끓이는 동안 인하는 현관문을 열고 나서더니 기어코 소주 몇 병을 더 사 왔다. 라면을 안주삼아 마셨고, 라면을 다 먹은 뒤에도 계속 잔을 채워 거진 한 병을 혼자 다 비웠다. 한도윤은 제지하는 대신에 마주앉아 같이 마셨다. 인하가 거진 방바닥에 드러누울 모양새가 되어서야 한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라면 냄비를 치웠다.

“야 한도윤.”

“왜?”

“무릎 좀 빌려 줘.”

“어… 그래.”

대강의 설거지까지 마치고 온 한도윤은 군말 없이 무릎을 내어 주었다. 한도윤 다리 저리겠다고 킬킬거리는 인하에게 무슨 반응을 해 주어야 할 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것이 최선인 것 같았다. 한도윤 또한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벽에 적당히 등을 대어 기댔다. 손은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라 적당히 뒤로 두었다.

“영이 언니 다시 베스타 나간대.”

“그래?”

“되게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넌 뭐 느끼는 거 없어?”

“누나는… 잘 되겠지.”

“그게 끝?”

“뭐… 응원해 줘야지?”

“우린 잘 될 수 있을까?”

“…”

“모르겠지. 나도 모르겠다야.”

야, 그러니 응원이라도 해 주자. 막 여러 사람에게 박수받고 응원받고 그럴 처지 아니니 우리 서로 응원이나 하자고. 너 돕겠다고 한 건 날 위한 일이기도 하거든. 보람차기도 하고 그래야 서로 도울 만한 사람들끼리 돕고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나 서울에 지금 아는 사람 또 없어. 너도 그 기분 알 거 아냐. 시작은 내가 하자고 했지만 니가 열심히 하는 거 보니까 나도 기운이 나고.

“고마워.”

“고마워할 거 없어.”

“근데 이래도 괜찮아? 집에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고?”

“뭘. 어차피 혼자 지내는데.”

“그… 경계심 너무 없는 거 아냐?”

“뭐, 안 돼?”

한도윤은 아주 가까운 이들과 바로 옆에 붙어 부대끼며 살아 온 생활이 길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간간히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 응원하고, 필요할 땐 서로 기댈 수 있는 사이, 한도윤은 본인이 그런 관계에 생각보다 익숙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필요할 때만 찾냐는 볼멘소리를 하거나 듣지 않아도 필요할 때는 찾을 수 있는 관계,

사실 정말 괜찮은 관계란 이래야 했던 게 아닐까. 서로 죽고 못 사는 가족같은 관계가 일순위인 것이 아니라. 함께의 성공을 전제하는 관계가 아닌, 각자의 앞날을 서로 응원하는 관계. 이런 관계라면 배신하거나 배신당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거의 곯아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인하를 내려다보았다. 누워 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조금만 이따가 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밤이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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