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지 수록 원고들

[허우석] 스물다섯, 스물여덟

2021 허우석 생일 축전북 <Minority Report> 참가 원고

카페라는 장소가 딱히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허우석은 이 공간이 몹시 불편했다. 장소가 술집이 아닌 카페라는 점에서, 오늘 자신을 불러낸 상대가 본인을 길게 볼 의사가 딱히 없다는 것을 느낀 탓일까. 상대가 의자에 앉은 뒤 지금까지 흐른 긴 침묵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는 듯 했다.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자신이 마스커레이드에 몸담았던 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이 더 길어졌을 즈음, 허우석은 한도윤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 때의 일은 허우석에게 큰 흉터로 남았을지언정, 지금에 와서까지 지속적인 출혈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혈기왕성하던 스물다섯의 허우석은 그새 스물여덟이 되었고, 허우석 안의 한도윤은 여전히 스물다섯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그러니까, 허우석에게 있어 지금 제 앞에 자리잡고 있는 스물여덟의 한도윤은, 엄밀히 말해 그가 아는 한도윤이 아니었다.

"솔직히 날 보면 한 대 칠 줄 알았어,"

그리고 한도윤이 아는 허우석 또한 스물다섯의 허우석이었다. 

오늘이 되기 이전까지 허우석이 한도윤에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말은 분노에 가득 찬 악다구니였기에, 한도윤이 기억하는 허우석은 그 모습에서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 이전을 기억해 주지. 밴드의 향방을 두고 다투기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기억해 주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허우석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그 사실을 딱히 후회하진 않았다. 후회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알았고, 지나간 일을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이젠 너무 오래 지난 일이었다. 지금의 감상도 오늘이 지나면 큰 의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의미밖에 갖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의례적으로 건네는 인사.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잘 못 지냈다, 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하지 않았다. 어 잘 지냈어. 역시 의례적인 대답. 

사실 못 지낸 것은 아닌데, 나름 잘 나가고 있는 네가 묻는다면 심사가 조금 뒤틀리기 마련이잖냐. 질투하냐면,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조금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사실 어떻게 사는지도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들려오는 말들은 충분히 많았다. 몇몇은 허우석에게 한도윤에 대한 것들을 물어 오기도 했다. 야, 너랑 같이 밴드 했었잖아. 씨발, 나도 몰라요. 언제적 마스커레이드 찾으세요. 망할 만 해서 망한 밴드인데.

마스커레이드의 보컬이 아닌 허우석으로 살고 싶었다. 마스커레이드라는 꼬리표는 한도윤의 그림자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기 때문에. 그 바람은 허우석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중들이 마스커레이드라는 이름을 잊어버렸을 때에야 이루어졌다. 

“잘 지냈다니 다행이다.”

이제 허우석은 안다. 한도윤은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가 안 것들 중 무엇을 겉으로 내보여야 하고 무엇을 내보여선 안 되는지를 잘 알 뿐이다. 눈치가 없었던 것은 외려 허우석 본인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스물다섯의 허우석과 스물여덟의 허우석의 차이였다. 

한도윤이 제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이제 둘은 에스프레소를 사서 나눠 마시지 않는다. 그런 궁상맞은 짓을 해도 배고픈 청춘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나이는 이제 지났으므로. 다른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음에도 굳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익숙해진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둘에게 있어 과거란 그 정도의 의미였다.

허우석 또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라는 것 외에도 이유는 많았다. 저렴해서. 한 잔 시켜 놓고 시간 때우기에 좋아서. 어색한 자리에서 굳이 거창한 음료를 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 땐 미안했어.”

허우석은 실소했다. 한도윤은 여전히 제멋대로다. 대뜸 저를 불러낸 목적도 여기에 있지 싶었다. 스스로가 편해지기 위한 제멋대로의 사과. 사실 이미 묻어버린 지 오래인 일임에도 한도윤은 제 안의 무게를 떨쳐내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것이다. 거기에 상대의 의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정말로 사과해야 할 것은 허우석 본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또한 한도윤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은 제멋대로의 생각이었다. 그 점에서는 허우석도, 눈앞의 한도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허우석은 자신 또한 미안했다는 말을 선뜻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또한 한도윤에게, 의미 있는 일일지 잠시간 고민했다. 그 시절의 알량한 자존심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분노에 가득 차서 한도윤 이 배신자를 외치던 스물다섯의 허우석을 아직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한 켠에 처박아둔 것처럼.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지 싶었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다시 보지 않을 상대일 터였다.

스물여덟의 허우석에게 한도윤은 그런 존재였다. 삼 년 전의, 과거의 기억.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온전히 잊을 수는 없는, 그 때의 기억의 일부로서 남아 있는 존재였다. 스물여덟의 허우석은 스물여덟의 한도윤을 알지 못했다. 자신과는 이제 먼 존재였으므로.

“참, 생일 축하해.”

아, 이제는 미안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물여덟의 한도윤에게, 스물여덟의 허우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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