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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후일담 합작 참가글

베스타 후일담 합작 <막이 내린 후에> 참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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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없는 평행세계의 2020년 배경

“야 오늘 진짜 춥다. 11월 맞냐?”

“너 어제도 그 소리 했고 그제도 그 소리 했잖아.” “니들 빨리 음료나 시키고 와. 난 이미 시켰다.”

“야 최유리 넌 뭐 시킬 거?”

“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미쳤나 봐 방금 춥다고 한 거 누구임?”

아 그럴 수도 있지, 얼죽아 몰라 얼죽아? 하고 소리치는 유리를 뒤로하고 하린은 주문대로 향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이요. 아 그리고 치즈 케이크도 한 조각 주세요.

고요했던 작은 카페가 시끌벅적한 활기로 가득 찼다. 겨울로 향하는 11월 말의 추위는 따뜻한 온기로 변했다. 이한결 너 OO대 논술 보러 간다며. 이번 주 아냐? 넌 어떡하게? 몰라 재종반 가야지. 근데 드럽게 비싸더라. 최유리 넌 어쩌게? 나 XX대 정시 써보려고. 가능? 찔러나 봐야지. 야 근데 하수연 걔는 뭐 한다고 안 왔대? 걘 대학도 붙었잖아. 아 걔 오늘 지 오빠랑 약속 있대. 놀러 다니느라 바쁘다 이거지. 

잔잔한 팝송이 조용히 흐르던 카페의 BGM이 바뀌고,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발라드 곡이 흘러나왔다. 하린이 갑자기 아는 척을 했다.

“어, 이거 민주영 노래 아냐?”

“맞네, 이거 베스타 때 불렀던 거잖아.”

“5때?”

“아니 이거 4때 부른 거잖아. 탑 파이브 생방 때 부른 거.” 

베리드 스타즈 시즌 5는 시즌 4를 덮친 악재의 그림자, 시즌 4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재미로 인해 시즌 4에 한참 못 미치는 시청률로 종영했다. 베리드 스타즈는 결국 시즌 5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여러 악평에 시달렸던 베리드 스타즈 시즌 5에서도 우승자 민주영은 확연히 빛났다. 세간에서는 민주영 말고는 볼 게 없었던 시즌이라고도 평했다. 이제 오디션 출연자를 넘어 주목받는 솔로 가수가 된 민주영은 음원 차트 상위권을 자주 오르내리곤 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베스타 시즌 4, 탑 파이브 생방 때.

“아…좀 그렇다.”

“너넨 그 때 기억 나냐? 나 우리 인하 언니 잘못되면 어떡하냐고 새벽에 폰 붙들고 울고불고 난리치던 거.”

“그 때 난리치긴 하수연이 최고였지.”

“아냐 정하린 니가 더 했어. 완전 제정신 아니었잖아. 규혁 오빠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오만 데 다 빌고…”

“그러게. 그 때 다들 밤 새서 폰만 붙들고 있었잖아. 뉴스 보느라 카톡 보느라.”

이 자리에 없는 하수연을 포함해서, 넷은 그 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나마 한결은 여섯 시가 넘어 구조 소식이 들리자 안도하며 잠깐 잠에 들었더랬다. 그럴 법했다. 전국에 생중계된 초대형 사고였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준 연예인,  어찌 되었건 한창 주목받는 유명인들이 휘말린 이상 제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치기 일보 직전의 팬들, 물 만난 어그로꾼들, 사실확인조차 더딘 자극적인 기사들, 이 때다 하고 쏟아지는 찌라시같은 연예 뉴스들…

“그래도 구조 소식 듣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

“어찌 됐건 그 땐 인하 언니 살아서 너무 다행이었지. 그 생각밖에 안 났어.”

“아 나도 그 땐 규혁 오빠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펑펑 울었는데.”

“…그랬지.”

“야 나라고 알았겠냐? 나라고 알았겠냐고.”

살아서 나오지 못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고사인 줄로만 알았다. 침통했다. 살아서 나온 것을 온전히 기뻐할 수 없었다. 서혜성의 팬이었던 몇몇 친구들이 교실에서 오열하는 것을 보았다. 

그 뿐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묻힐 수 있었지만, 진실은 달랐고, 이규혁의 생각 또한 달랐던 모양이다. 

“내가 우리 오빠였던 게 자고 일어났더니 음주운전 뺑소니범이 되고, 우리 오빠였던 게 자고 일어났더니 마약사범이 되는 건 봤어도 우리 오빠였던 게 자고 일어났더니 살인범이 되어 있는 건 또 처음이었단 말야.”

“정하린 너 되게 쿨하게 말한다? 그 땐 안 쿨했으면서.”

“아 이제 놔 줬지. 그 땐 놓질 못 해서. 현실부정 존나 하고.”

“에휴, 그 땐 얘뿐만 아니라 우리 다 깜짝 놀랐어. 대한민국에 안 놀란 사람 없을걸.”

“나 그래서 한동안 유빈이 얼굴도 못 봤잖아. 유빈이가 서혜성 얼마나 좋아했는데. 아…지나고 생각하니 내가 미안할 건 또 아닌데.”

“근데 너 지금은 김유빈이랑 또 잘 지내잖아.”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럼 뭐 안 되나? 어차피 다 지난 일이잖아.”

하린은 뭐 어떻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 오인하는 잘 사나. 얘기 안 들린지 오래 된 거 같은데.”

“나 요즘 싱어게인 보는데 몇 년 전에 오디션 프로 나왔었던 사람들 막 나오고 그러더라. 그 땐 막 준우승도 하고 했던 사람이 잊힌 가수들이라고 나오는데, 되게 기분 이상하더라고. 근데 생각해 보니 나도 얼굴 보니까 그제서야 아 이 언니! 하면서 기억이 나지, 다 까먹고 있었던 거야. 인하 언니도 나중에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넌 뭔 오디션 프로면 다 보는 거 같다.”

“아 왜, 재밌잖아.”

“원래 오디션 프로 끝나고 좀만 지나면 몇 명 빼고는 다 잊혀지는 거지.”

“안 잊혀진 사람 민주영 있잖아.”

“몇 년 뒤면 또 어떻게 될지 몰라. 근데 주영 언니는 오래 활동 해 줬음 좋겠다.”

“그러게…노래 좋은데.”

 

잠시간 그 자리에 있던 아무도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몇 년 뒤는커녕 당장 눈 앞의 대학도, 진로도 불확실한데 타인의 몇 년 뒤를 어떻게 알까. 성인이 되길 막 앞둔 이들에겐, 너무나도 불확실하고 막연한 물음이었다.

노래를 들으며 잠깐 무언가 생각하던 한결이 떠올랐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노래, 작사작곡 한도윤이 했대.”

“뭐? 그 한도윤?”

“응. 주영 언니하고 계속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더라고.”

“그 언니는 그 배신자하고는 또 왜…”

“와 한도윤 배신자라는 말 되게 오랜만에 듣는 거 같다.”

“야 말 조심해. 어디서 하수연 듣고 있다.”

“걔라고 뭐 지금도 도윤님 도윤님 하냐?”

“잠깐 저거 하수연 아냐?”

 

창 밖 유리의 시선 끝엔 즐거워 보이는 하수연이 있었다. 몇 발치 뒤에는 쇼핑백을 양 손에 한아름 든 수연의 오빠와, 그리고…

 

“하수연 진짜 듣고 있네.”

“어? 근데 저건 누구야?”

“응? 수연이 오빠잖아.”

“아니 수창 오빠 말고. 그 옆에 모자 쓴 남자.”

“그러게. 누구지…”

 

창 밖을 지나는 세 사람은 금새 사라졌고, 화제는 빠르게 바뀌었다. 야 너넨 1월 1일 되면 뭐 할 거야? 술부터 마셔야지. 아 언제는 한 번도 안 마셔봤대? 그래도 직접 민증 내밀고 사는 거 해 보고 싶잖아. 야 우리 1월 1일에 대학로 가서 다 같이 술 마실까? 어 나 가 보고 싶던 데 있었어. 야 우리 이제 어른이구나. 그러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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