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윤] 2022년 9월 5일
2022년 한도윤 생일 기념 글
또 다시, 생일이었다. 여럿이서 맞는 생일보다는, 혼자 맞는 생일이 살면서 더 많았기에 충분히 익숙했다. 생일을 명목삼아 술을 마시며 떠들던 것, 잘 먹지도 않는 조그마한 케이크를 기분 낸다는 이유로 내밀던 것, 외롭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었으나, 이것도 이제 몇 년이 지난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지금의 한도윤은, 그렇게 지내던 날들보다 그 이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부인 줄 알았던 시간들은 결국, 한도윤의 인생에서 그리 긴 시간을 차지하지 않았던 날들이 되었다.
글쎄, 처음 일 년 정도는 제법 외롭다고 느꼈던 것 같다. 거듭된 선택의 결과였지만, 혼자가 된 것이 익숙하지는 않았다. 그 이전의 관계로부터 떠나기로 한 선택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러나 허물없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 종종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얻었기에, 홀로 설 수 있겠다고, 홀로 서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곳에서부터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고, 새로운 관계를 쌓고, 새로운 미래를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제법 낯간지러운 이야기다. 스물다섯의 한도윤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고 다짐이었다고, 스물아홉의 한도윤은 생각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것 같았던 그 날의 기억도, 결국 인생의 수많은 나날들 중 하루를 차지했을 뿐인데.
물론 한도윤은 잊지 않았고, 그 때의 인연들은 지금도 유효했다. 예를 들어, 휴대폰 화면에 떠오르는 이러한 메세지라거나,
- 한도윤 오늘 생일 맞지? 카톡이 띄워줘서 알았다
- 작년엔 까먹고 못 챙겨줬잖아
- [카페 기프티콘]
- 마땅한 게 없네 맛있게 먹어
- 담에 시간 나면 얼굴 함 보자
인하는 제법 여전했으나, 당연하게도, 4년 전과 같지는 않았다. 한도윤이 4년 전과 같지 않듯이. 인하 생일은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었지만 정확히 생각나진 않았다. 아마 한도윤도 똑같이, 카카오톡 알림을 보고서야 비슷한 메세지를 보낼 것이다. 민주영의 생일에도 그러했듯이.
이규혁과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사실 애초에 연락의 빈도도 그다지 잦지 않았고, 그마저도 얼마 안 되어서 멎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서로가 할 이야기가 참 많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연락할 차례가 되니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해야 할 말을 서로가 이미 다 쏟아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할 말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여전히, 한도윤은 곡 작업을 할 때 때때로 이규혁을 떠올리곤 했다. 이제 와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하수창의 동생이 - 하수연이라고 했던가, 하수창은 기억할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 뒤로 몇 번 더 언급되었기에 기억에 남았다 - 대학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은데, 이것도 이제 꽤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한도윤은 그 뒤로도 하수창과 종종 연락했고, 하수창이 동생의 부탁을 들고 오는 때도 간간이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꽤 오래 된 이야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연예인도 아니게 된 사람을 여즉 팬으로서 좋아하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팬이라니, 지금 생각하기엔 조금 기분이 이상해지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 한도윤은 허우석을 만났다. 한도윤이 기억하는 허우석은 스물다섯에서 멈춰 있었기에, 지금의 허우석은 한도윤이 기억하는 것과 같지 않았다. 허우석은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았고, 한도윤도 더 이상 방어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서 고작 삼 년도 채 안 되는 시간만을 공유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조금은, 개운해진 것 같기도 했다.
황익선과는 여전히 연락되지 않았다. 아직일 뿐임을 알기에 조급하진 않았다.
한도윤은 걸어갔다. 2018년을 지나, 2019년을 맞고, 그 때로부터 4년이 흘러 2022년이 되기까지 한도윤은 걸었다. 그 때의 감상처럼 미지의 앞날로 한 발짝씩 내딛는, 그런 과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도윤은 그저 걸었다. 새롭기도 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 때도 많았다. 가끔은 쉬기도 했으나 그것이 큰 의미를 갖지는 않았다. 발 가는 대로 문득 들어간 카페에 앉아, 커피를 시켜 놓고 느적거리는 정도의 느낌일까. 한도윤은, 집 앞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그 때는 몰랐던 커피의 맛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게 비장하고 진지하지 않아도 되었다. 살아 있기에, 걸어가야지.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이제는 알기에 겁나지 않았다. 한도윤은, 걸어갈 것이다. 그렇게 다시, 서른 살의 생일을 맞이하러 갈 것이다.
이것은 당신에게, 만족스러운 이야기였을까요? 이것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의 이야기겠습니다. 제가 아직 주인공인,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저의 가능성이요.
제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4년 전에 막을 내렸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저는 이제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는 저는 무대 위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 때의 저를 바탕으로 지금의 제 모습을 그리겠지요. 허나 무대 아래에서 4년을 보낸 저의 모습을,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저도 언제까지나, 무대 위의 기억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더 이상 무대 위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무대 위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무대 위에 서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 때의 당신이, 많이 변한 저를 알아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제 이야기가 당신에게 만족스러운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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