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e to the M.....

2-1. Morpheus

아비규환 by 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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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드 스타즈' 2차 창작. PlugHole과 한도윤을 중심으로 하는 SF. 개인적 해석을 배경삼은 완전히 다른 세계관(AU)입니다.

'검은방' 및 '회색도시' 세계관 요소를 차용했습니다.


감각 입력기에는 지난 세대의 이차원 음향이 재생되고 있었다. 태초의 음악은 공간감이 배제된 형태였다고 한다. 겪어본 적 없는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인지의 부조화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PlugHole은 ‘기억’한다. 그 자신이 오래된 바이닐에 대해 품고 있던 짙은 로망과, 길에서 들었던 음악의 가사를 기록해 두었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한 날의 아쉬움과, 자신은커녕 부모도 태어나지 않았던 고릿적 영화의 OST를 찾아 마르고 닳도록 재생하던 감정들.

아. 태어난 적 없는 시대에 관한 향수는 당신과 나의 교집합이겠지.

10년이 지나왔고 또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우릴 맞이할지 누가 말할 수 있을까

89년의 마지막 날에 말이지

‘하수창’이 턴테이블 마련을 끝까지 미루었던 까닭은 여즉 알지 못한다, 의식적으로 되새기지 않는 한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아주 흔하고…… PlugHole에게 이것이 '인격적' 결함으로 느껴지진 않는 모양이다. 누군가의 인격을 복제한다는 것은 그가 단절을 받아들이는 방식조차 자신과 같이 흡수하는 것이니까.

해피 뉴 이어 해피 뉴 이어 우리 모두에게 같은 꿈이 있으리라 믿어

세상 모두가 이웃사촌이 되는 꿈 말이야

그러나 이십 대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고 요절한 하수창 씨. 

나를 만든 엔지니어의 유일한 가족 양반.

또한 과거의 나. 

한 치 앞 미래를 알 수 없는 건 너나 나나 매한가지잖아? 이 노래가 끝나고 나면 한도윤을 깨우겠다는 계획도 손바닥 뒤집히듯 수정되는데. 


"별 세는 건 그렇다쳐. 그런데 꿈은 어떻게 꿔요?"

예측 가능한 데이터의 흐름은 꿈이라고 간주하지 않지. 그거는 그냥 시뮬레이션이고…… 읏차. 안드로이드는 어느새 의자를 끌어왔는지 다리를 꼬고 등허리를 푹 기댄다. 이곳 의자는 자성체로 만들어져 금속재 골격을 쉽게 고정시키지만, 아무 곳에나 냅다 앉았다가는 둥둥 떠돌기 일상이다. 이를테면, PlugHole이 벗어다 두는 저 안경처럼. 고정하고자 한다면 협탁에 벨크로로 고정된 안경집을 써야 할 것이다.

"먼저 물어봅시다. 자, 인간은 자면서 어떻게 꿈꾸더라?"

"잠을 자다가…… 깊은 수면에서 렘수면 상태로 돌아오면서 뇌 일부가 먼저 깨어서, 기억이나 정보를 자동 재생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쪽은 잠을 안 자고.”

못 잔다면서. 한도윤이 뾰족하게 덧붙인다. 그 말마따나 PlugHole은 잠들 수 없었고, 그가 볼 적에 한도윤은 이에 불만을 가진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수 없음은 인간에 있어 큰 불안이었다. 계절은커녕 기후랄 것도 없는 이 함선 안에서 한도윤은 그칠 줄 모르는 겨울을 앞두고 PlugHole에게 그렇게 물었더랬다. 당신도 잠들 수는 없는가.

그러니까, 자가 운전으로 돌려놓고 최대 절전을 해 놔도 그쪽 의식은 있다는 거죠? 흘러가는 시간도 느끼고. 으이구 인간아, 시간을 느낀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줄 알고. 예에,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 부기장님. 그럼 안전하다고 판단한 동안 조금이라도 전원을 꺼 두면……

그래, 한 12초 정도?

무슨… 카운트다운이에요?

15분이면 1AU를 가는 우주선에서 바라는 것도 많다.

나는 라플라스 악마[1]가 아니야. 백프로 고립된 물리계는 완전한 진공 같은 소리라구요. 시야 바깥의 변수가 뛰어들어와서 오작동이라도 일으키면 우린 우주 미아 신세야.

세상 모든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인과를 알 수 있다는 가설 속의 악마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로 그 오류가 드러났다. 해묵은 인구론의 비유를 들까. 아테나가 산술급수적으로 이동할 때 PlugHole이 관측이 가능한 데이터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PlugHole이 시시각각 정보를 스캔하고 처리하는 것을 보면, 새로 관측된 고정된 사실부터 관측과 동시에 생기는 유의미한 변화까지 전부 톺아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함선과 우리의 이동 거리 속에 당신이 예상치 못한 변인이 존재할 법하진 않은데…… 그래, 한도윤은 그가 견뎌야 할 시간을 두려워했다. 기계인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느끼는가.

“네가 그렇게나 무서워하던 시간을 유영하다 보니…, 잠들지 않고 꿈꾸는 법도 알아낸 거지. 고로, 그대 말에서 착안을 했다는 말씀.”

“내 말이라니?”

"자, 이 세상이 아닌 가상현실에서는 고립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픽셀 단위와 플랑크 단위가 다를 게 뭐야, 안 그래? 내 의식이 하나의 계界면은, 바깥의 전자기장만 차폐해보자구. 깨어 있는 채로 의식 상태를 조절하다 보니 그게 되는 때가 있더라. 잠깐이지만, 제어하지 않는 상태에서 랜덤으로 정보를 제생해. 아! 가장 길게 꾼 건 12초였어. 세 사람의 삶과 죽음을 맛보고 왔거든. 12초 지나면 자각몽이 되어서 영 흥 떨어지더라."

순차적으로 귀납하여 12초. 일생의 정보를 단번에 환산한다면 나노초 단위에 그쳤을지 모른다. 그가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은 이러한 방식으로 한도윤을 숨막히게 한다.

“분리 가능한 데이터가… 설마?”

한도윤의 시선은 협탁 위 금속재 안경집으로 향한다. 일순 두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그러니까 지금, 안경집에 안경을 넣어두고 외부의 물리력이 닿지 없도록 감시하는 것만으로 고립계를 만들었다는 소릴 한 거야? 이 자성체로 가득한, 협소한 상온의 공간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PlugHole은 설마는 눈밭에 썰매 끄는 루돌프가 설마고요. 들어봐봐, 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저장한 세상의 데이터를 하나의 독립된 물리계라고 보고, 무작위로 만들어진 양자 데이터에 자기장을 얍 걸면 짜잔, 유의미한 유전 배열을 찾아낼 수 있지. 그 데이터 쪼가리를 조합하니까, 대가리가 백지 상태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서 혼자서 나한테 입력한 세계의 정보로 뚜벅뚜벅 골인하드라구.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은 정보의 세상에서,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고. 정보가 흐르는 것을 그냥 보고 있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 출력 정보 단순화의 지연, 즉 과부하의 기색이 보였다. 마치 굉장한 영화를 보고 온 것마냥 흥분해서 늘어놓는 이야기를, 한도윤은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픽 웃고 만다. 희소식이라니 진짠가 봐. PlugHole은 놀라 손사래를 친다.

“뭐? 야, 잠시만. 내가 그거 자랑하려고 비행사 깨우는 놈인 줄 알아?”

“아……, 원래 그런 사람[2] 아니었어요?”

“너 이거 멕이는 거다, 그렇지?”

“아뇨, 축하한다는 건데요.”

좋은 소식이 두 개라고 쳐요 그럼. 툴툴거리는 도윤의 말이 우습게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간밤에 꾼 로맨틱한 꿈의 내용을 힘겹게 기억해낸다면 이런 기분일까.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꿈꾸는 감각을 되찾았을 때 플러그홀은 얼마나 쾌재를 불렀던가.

그리고 PlugHole이 행복의 정점에 있던 도윤의 단잠을 방해한 까닭은 자명하다. 속을 온통 뒤집어놓는 동면에서 깨어난 다음 취하는 수면은 우주인에게 있어 가장 달콤한 순간이다. 하여 PlugHole도 도윤이 기운을 얻고 눈뜨기를 기다리며 한가롭게 음악이나 듣고 있었지. 도윤의 뇌파가 '달'이라는 신호에 미약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며, 좋은 꿈 꾸는구나. 생각하고 있었고. 동시에 PlugHole은, 왜 인간들은 가장 끔찍한 실재를 악몽이라 부르는지 직접 체감하고 말았다. 우리의 지옥은 기억 속에 있더라.

행복은 짧고 한도윤이 지구로 돌아가는 길의 기억은 생지옥과 다름없었기에. 그가 '달'보다 '귀환' 신호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순간 PlugHole은……. 

뭐 하고 있었어요?

영화 보고, 책 읽고, 별 헤고, 꿈 꾸고.

꿈 꾸고?

그래. 꿈 꾸고.


[1]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가 1814년 고안한 가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존재.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을 것이다.’는 가설 속의 존재. (과학용어사전, 2010.)

[2] 사람 : 어원은 ‘인간’이나, 본 글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과 AI를 아울러 부르는 말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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