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젠

무제

언젠가

무제 by L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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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비가 왔다.

생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먼 길을 떠난 이들을 애도하는 공간에서 그는 철저한 이방인으로 자리했다. 반짝이는 것들을 모두 빼버리고, 흰 색의 머리카락을 제외한 모든 곳에 검은 것을 두른 방문객은 그저 조용히 여행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존재했다. 검은 색의 우산을 든 이방인은 모든 이들이 자리를 떠날 때 까지 그 곳에 있었다.

 

저 분은 무슨 관계인가요?

아무 관계도 아니라던데요.

 

적합한 절차의 진행을 맡은 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적막한 공간 사이를 타고 흐른다. 6피트 아래에 잠든 이의 반박이 들릴 리 없으니, 지금이라면 그가 원하는 대로 내뱉어도 될 터이다. 그 어떤 사이를 내세워도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질 것이며, 그들은 어차피 할당 받은 일을 전부 마치고 나면 기억에서 제거해버리고 말 정보값이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이 되었다. 먼 길을 떠나버린 이의 오점이 되지 않기 위해. 차려입은 바지의 밑단이 젖어 드는 감각을 느꼈음에도 발에 거대한 대못이 박힌 것만 같아 뒤를 돌지 못했다. 다시는 방문하지 못할 곳을 두 눈 가득하게 담아 두고 싶었다. 감히 찰나의 허락만 받은 공간을 잊지 않고 싶었다.

 

가진 것이 많았음에도 줄 수 있는 것은 꽃 한 송이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작게 달싹거리던 입술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못할 혼잣말을 내뱉는다. 손에 쥐고 있던 흰 색의 꽃 한 송이만이 이방인의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버려질 꽃이 잠든 이의 이름 앞에 놓인다. 이방인은 그제서야 자신의 발에 박혔던 못이 뽑혀나가는 것을 느낀다. 투명한 색의 피가 흐르는 발을 내려다 보던 이방인은 그것으로 작별을 마친다.

그가 이 곳에 다시 방문할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4년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기일에나 한 송이 꽃이 올라왔다 사라지리라.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이 애도를 모른다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존재했으나 한 사람만이 남은 방에는 언제나 흰 색의 꽃이 담긴 꽃병이 자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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