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환생 6화
이자하는 둘을 따라 웃으며 아연하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기억해봤자 좋을 게 없다는 임소백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현생에서 행복을 찾은 자들. 두 번째 생에서 느껴본 감각을 떠올렸다. 추억이 추억으로 대체되는 느낌. 마주한 현실이 충만하다고 느낄 때 과거의 기억은 빛이 바래고 만다.
하지만.
이자하는 생각했다.
그는 망각을 깊이 숙고해본 적이 없었다. 첫 번째든 두 번째든 흘러가는 대로 살기에 바빴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할 뿐이었다. 어느 생이 더 나은지 말하자면 덜 외로운 쪽을 고르겠으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만약 잊게 된다면 지금 이 순간은 경찰청장의 집무실에 다짜고짜 쳐들어와 친구 먹은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인가. 그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무실의 집기 따위를 휘 둘러보던 이자하의 시선이 몽연에서 멈췄다. 그는 혼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똥싸개, 왜 그러냐. 또 똥이라도 쌌냐?”
“……만약 현생이 못지않게 괴롭다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몽연은 이자하의 비아냥을 무시하고 임소백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문제야.”
임소백이 웃음을 거두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동안 잠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사실 내가 이야기한 건 좋게 풀린 경우이고, 나쁘게 풀린 경우는…… 대부분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병명은 망상장애. 괴로운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러한 기억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거지.”
“허…….”
몽연이 탄식하자 임소백이 그를 힐끔 보더니 덧붙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환자들이 많은 병동에 모용백이 있다는 것이다.”
“뭐요?”
그 말을 듣고 이자하가 뒤로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불쑥 내밀었다.
“대학병원에서 모용백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있더군. 내가 만났을 때 모용백은 전생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어. 몇 년 전이라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확인해보면 될 일이지. 그보다 우리가 여기 온 용건이 따로 있는데.”
“육합을 찾으러 온 건가?”
“잘 아시네.”
“넷 중에 셋밖에 없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육합은 귀농했다.”
“뭐라고요?”
“귀농?”
“그놈이 농사짓고 산다, 이 말이오?”
임소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꾸준히 검도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거주지를 알려줄 수는 있지만, 마음의 준비는 하는 게 좋을 거다. 그간 행적들로 봐서 어느 순간 기억을 잊었거나 적어도 실제 있었던 일임을 모르는 것으로 보이니.”
“상관없으니 알려주시오.”
“기다려봐라.”
임소백은 자료를 찾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나 집무용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고 마우스를 드래그하더니 문득 손을 멈추었다.
“여기 있군. 받아적어라.”
몽연이 대표로 자신의 스마트폰에 육합의 주소를 메모했다.
“슬슬 일어나자.”
검마의 말에 이자하와 몽연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 또 봅시다.”
“무탈 하십시오.”
“그래. 잘들 가라.”
이자하와 몽연이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잠시 검마와 임소백 둘만이 그 공간에 남았다.
“문주는 여전히 정신이 없군.”
“무슨 일 하는지 알고 있나?”
“태권도장을 한다지. 문주도…….”
임소백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생각했다.
“문주도 현생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려 했는데 잘 모르겠군. 종잡을 수가 없어.”
“그게 자네가 말한 변치 않는 성정 아니겠나.”
“듣고 보니 그렇군.”
둘은 또 한 번 소리 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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