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회귀/자투리] 성불(成佛)
#2차창작주의 날조주의 두서없음주의
그는 새하얀 눈이 몰아치는 길을 걷고 있소. 어떤 목표도, 방향도 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아가고 있소. 하늘을 가릴 듯 높게 뻗어있는 앙상한 나무들이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소복한 눈들은 어느 새 그의 발목을 스칠 정도로 깊게 쌓여 푹푹 눈에 발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그를 멈춰 세우려 하오. 차디찬 바람이 그의 귀를 스쳐 꽁꽁 얼어붙게 하고 땀과 습기로 얼어붙은 발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미끄러질 듯 위태롭지만 결코 멈추는 일은 없다오. 바로 앞에서 굵은 눈발이 휘몰아쳐도 그의 시선은 마치 여기가 아닌 아득히 머나먼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거 같소.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송이가 거센 바람에 날리는데 마치 한 송이 꽃처럼 탐스러워보여 그가 손을 뻗어 잡아보려 해도 손 끝에 살포시 앉았다 금세 녹아버리는 게 아니겠소? 하지만 그는 만족스러워 보이는 듯 살포시 미소를 지은 후 잠시 멈췄던 길을 걸어가버리오.
숲을 헤쳐나가던 그는 어느 새 너른 들판을 마주하게 되었소. 여기까지 왔다면 모든 시작과 끝이요, 생과 사의 경계라. 혹한에 말라 비틀어진 식물들과 한 줌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들판을 혼자서 계속 걸어가고 있소. 드러난 얼굴부터 시작해 손끝까지 새빨갛게 얼어있는데도 마치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꿋꿋이 전진 하고 있소. 이쯤 되면 감각을 잃은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해서 어이,하고 불러봤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걸 보니 그한테 닿지 않는 것 같소. 그가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입으로 내뱉을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날아가는데 그가 아직 살아있음과 내면의 온기를 보여주는 듯 하오. 내게 흐르는 시간과 그의 흐르는 시간은 달라 마치 이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텐데 어찌 한번도 멈추지 않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소.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끝이 나는지 알 수가 없소. 솔직히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내겐 벅찬 일이라 잠깐 투덜거리며 멈춰 숨을 돌리려는데 저 만치 앞서가던 그가 처음으로 뒤돌더니 번쩍이는 금안(金鞍)이 내가 있는 곳을 향하는 게 아니겠소? 괜히 오금이 저려오는 시선에 딴청을 피워봤지만 그는 부시시한 머리에 쌓여있던 눈을 파르르 털어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소. 아리송한 기분이 들어 다시 따라가기 시작하니 아무렇지 않게 앞을 보고 걸어가오. 멈춰서있으면 그냥 두고 가버릴 줄 알았는데 왜 기다려주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소. 하지만 본능적으로 끝이 얼마 남았다는 게 느껴져서 더 솔직하게 얘기해주자면 그는 어떨지 몰라도 난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거 같소. 나는 생전에 죄를 많이 지어 죽고 나면 팔열지옥(八熱地獄) 중 하나에 떨어질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소. 걸으면서 떠올려보니 제일 먼저 남겨진 가족이 떠올랐소.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여자였지만 못난 남편한테 시집와선 고생만 했는데 내가 일하러 나갈 때마다 항상 조심하라며 옷 매무새를 다듬어주고 자신은 부귀영화고 뭐고 다 필요없으니 당신 몸 성히 돌아오라고 나를 올려다보던 그 얼굴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오. 그러면 이제 대여섯살된 내 자식들과 나이 드신 부모님은? 자연스레 나는 나와 연관되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생김새와 목소리의 높낮이, 어떤 성격이었는가를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염없이 서글퍼졌지만 끝내 그 이유까지도 다 잊어버렸소.
드디어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자꾸만 늦어지려하는 걸음을 재촉해 그의 곁으로 향했소. 안개가 가득 껴있어 사물을 분간하긴 어려웠지만 요동치는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왠지 모를 오한이 뼈 속까지 사무쳐와 나는 이를 덜덜 떨면서 걸어갔다오.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하자 그는 가만히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도 따라서 조용히 바다를 지켜보는데 집채만한 파도가 우릴 잡아먹을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솟구치니 겁이 나 다시 그를 보니까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우고 환하게 웃고 있었소.
"성불(成佛) 해라, 성불(成佛) 해라!"
바다를 향해 크게 소리 친 그가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 하길래 나도 뒤를 따라가려다가 꼼짝도 않는 발을 보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단 걸 깨닫고 다급하게 그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그러면 그는 뒤돌아 걸어가며 한 손을 들어 흔들흔들 작별 인사를 해주오. 나도 따라서 손을 들어 흔들흔들 작별 인사를 하다 어느 새 내 발 앞까지 다다른 파도를 쳐다봤소. 이젠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이라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의미한 걱정 같아 나도 바다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오.
끝.
후기
안녕하세요, 편식쟁이입니다.
이 글은 일행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을 보고 눈이 가득 쌓인 길을 걸어서 바다에 도착하는 자하가 보고싶었는데 관찰자 시점으로 적다보니까 그럼 지금 누가 자하를 보고 있는 거지? 궁금해지더라구요.
아무래도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이 어울릴 거 같아서 적다보니까 생전에 나쁜 짓을 하며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그가 변화하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내새에서는 착하게 살라는 마음으로, 얼마가 걸리든지 자신에게 죽은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문주님이 보고 싶어서 쓰게되었습니다. 좀 있어보이게(ㅎㅎ) 쓰고 싶어서 이리저리 적어봤는데 역시 어렵네요.
수정할 사항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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