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회귀/자투리] 누가 울새를 죽였나
문주자하랑 점소이자하가 싸우는 내용
#2차창작주의 날조주의 두서없음주의
푹, 푹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흙을 푸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예전 무덤지기로 일했을 때나 누군갈 묻을 때 자주 들었던 소리라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바로 깨달았다. 감고있던 눈을 천천히 떠 앞을 보니 주변은 온통 새까만데 딱 한 곳만 밝아보여 그리로 걸어가니 누군가 구덩이 속에서 허리 숙인 채 쉬지 않고 삽으로 열심히 흙을 퍼내고 있었다. 무덤을 만드려는 건가. 가까워질수록 옆에 쌓여있는 흙 앞에 제 허리까지 올듯한 크기의 비석이 눕혀져있는 게 내 눈에 띄었다. 누구의 무덤인지 궁금해져 비석에 적힌 글씨를 집중해서 읽어보니 이, 자, 하. 자신의 이름이였다. 이 넓은 세상에 동명이인이 있을 순 있겠지만 내 이름이 비석에 적혀있는 걸 보자 기분이 썩 좋진 않아 아직 내가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이게 누구의 무덤인가?"
자신이 불렀는데도 상대가 조금의 반응도 없이 묵묵히 흙파는 걸 멈추지 않자 나는 중얼거렸다.
"싸가지 없는 새끼"
속삭이듯 말했는데도 그 말은 상대에게 아주 잘 들렸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휙 돌리더니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 쪽에선 상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팔짱을 낀 채로 삐딱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상대가 씨익 웃는 게 아닌가? 욕먹고 좋아한다니 미친놈인가싶어 뒤로 주춤했다. 나는 제정신으로 미친놈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들은 괜히 상대하는 건 귀찮은 일이기때문에 똥밟은 셈치고 자리를 피해야겠다 싶었는데 상대가 들고있던 삽으로 익숙하게 땅을 짚더니 폴짝 흙구덩이를 빠져나왔다. 난 도망치기엔 한 발 늦었다싶어 자리에 그냥 멈춰서있었는데, 슬슬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다가오는 상대를 주시하고 있는데 행색이 참 낯익었다. 저 신발, 저 하의, 저 상의 어디서 많이 본 것만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상대가 내 앞에 멈춰섰는데 드러나는 얼굴에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거 같았다.
"싸가지 없는 새끼는 너지"
온몸이 흙범벅이 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머리를 동그랗게 묶고 앳된 티가 남아있는 아직 점소이 시절의 나였다. 난 여기있는데 저걸 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랑 똑같은 얼굴이 바로 앞에서 웃고있는 걸 보고있으니 참 요상한 느낌이였다.
"개새끼야, 너 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당황해하고 있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른 나, 아니 녀석은 정색하고 삽을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는데 우렁차게 달려들던 것치곤 삽을 휘두르는 것도 어딘가 어설퍼 한걸음차로 다 피할 수 있었다. 내가 삽을 휘두르는 족족 여유롭게 피해버리자 녀석은 자길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를 노려보는데 저 때의 내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게 떠올라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나한테 덤벼드는 걸 계속 봐주는 것도 성미에 안 맞아서 가볍게 기운을 끌어올려 녀석을 향해 튕기자 거센 바람이 휙 불면서 녀석이 뒤로 밀려났다. 반사적으로 삽을 땅에 찍고 버텨 간신히 꼴사납게 넘어지진 않았지만 내가 얼마나 강한진 몰랐는지 놀란 기색이 명백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저 뒤에 있는 구덩이를 힐끔 보더니 아랫입술을 깨물고선 다시 덤벼들었다.
무위의 수준이 어른과 갓난아이가 싸우는 것처럼 명백하게 차이가 나서 내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기만해도 녀석은 땅을 데굴데굴 뒹구는데 어떻게든 날 저 구덩이 속으로 처넣고 싶은지 그 와중에도 엉금엉금 기어와 양 팔을 뻗어 내 다리를 붙들고 이로 악악 물어대면서 악착같이 버텼다.
"내가 이자하야!"
"내가 이자하다!"
녀석은 점점 힘이 부치는지 눈물이 고인 눈으로 매섭게 악다구니를 써댔지만 나도 순순히 져주는 성격이 아닌지라 똑같이 맞받아쳐줬다. 날 무력으로도 말로도 못 이긴 녀석은 뭐가 그리 억울한지 나를 째려봤다.
"내놔, 돌려줘!"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아냐, 왜 그러는 건지 말을 해야 알 것 아니냐"
내 말에 엉망진창이 된 모습으로 엎드려 잔뜩 씩씩거리던 녀석이 그대로 굳은 채로 나를 올려다봤다.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본 녀석이 천천히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뭐가, 뭔데"
내가 살짝 짜증섞인 목소리로 되묻자 녀석은 양손으로 내 멱살을 잡고 눈을 맞추며 고함을 질렀다.
"내 인생!!!!"
아, 깜짝이야. 바로 앞에서 냅다 큰 소리로 지른 고함에 귀가 먹먹해졌지만 생각지도 못한 내용때문에 머리가 멍해졌다. 녀석이 이글이글거리는 눈으로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내 객잔, 내 몸, 네놈이 뺏어간 내 미래!!"
내가, 뺏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해 눈만 껌벅이고 있자 녀석이 내 멱살을 잡은 상태로 낑낑거리면서 구덩이 쪽으로 질질 끌고갔다. 나는 순순히 녀석이 끄는대로 구덩이 앞으로 향했다. 저쪽에서 봤을 땐 그렇게 깊게 안 보였는데 가까갈수록 생각보다 구덩이 속은 깜깜했고 깊은지 그 끝이 보이질 않았다. 불길하면서도 섬찟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목덜미를 스치며 경고음이 울리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버텼다. 그 모습에 녀석이 또 씩 웃으면서 구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네 무덤이다. 이자하."
나는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깨달았다. 한번 광마로 살았던 내가 과거로 회귀하면서 그대로 사라진 점소이. 녀석은 나이긴 하지만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저게 정말로 내 무덤이란 말인가? 나는 힐끗 옆에 놓인 비석을 다시 쳐다봤는데 이, 자, 하라고 똑똑히 적혀있는 세글자는 그대로였다. 꼼짝않는 내 몸을 어떻게든 밀어보려고 멱살을 놓고 팔을 잡아당겼는데, 아차, 한껏 예민해져 녀석이 일반인과 다름없단 걸 깜빡하고 힘을 줘 그 손을 뿌리쳐버리자, 녀석은 그대로 중심을 잃고 버둥거리더니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떨어지는 녀석을 잡아줘야겠단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정적. 가만히 기다려봤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구덩이에 다가가 다시 안을 들여다봤는데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까 분명히 녀석이 이 안에 떨어지는 걸 봤는데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알수 없는 내용의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한동안 찜찜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끝.
안녕하세요, 편식쟁이입니다.
1회차 광마가 회귀하면서 그 전에 지내던 2회차 점소이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져서 적어보게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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