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음악이 그리워지면
논컾/[물]크롬, [물]바네사
크롬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크롬 경, 한 번 쳐보시지 않으실래요?”
그는 제 앞에 놓은 하얗고 검은 건반을 보았다. 9살 이후론 만져본 적도 없는 피아노였다.
‘내가 잘못 말해서….’
크롬은 침을 삼켰다.
…
아발론은 정말로 파티를 좋아하는 나라였다. 플로렌스에서도 연회를 자주 열고, 왕의 기사단의 얼굴로 종종 참석하곤 했지만, 그 연회와는 사뭇 달랐다.
누군가를 환영하느라, 생일을 축하하느라, 나인 경의 무기 분리 시술이 성공해서, 린의 성공적인 무기 연성 때문에, 기물 파손이 일주일간 0건이라서 등등 온갖 이유로 축하하고 즐겼다.
처음에는 루인 경의 예산 걱정에 공감하기도 했지만(루인 경은 로드가 하루에 장비 강화 때문에 날리는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했다), 크롬도 곧 그들의 교류에 조금씩 적응했다.
그러다가 보게 된 것이다. 연회장의 장식을 치우는 기사들 사이에서 한 구석에 놓은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나인 경과 슈나이더 경을.
그들은 신기한 듯 피아노 건반을 뚱땅거리며, 별처럼 쏟아지는 소리의 파편에 까르르 웃었다. 이에 바네사 경도 끼어들어 반주를 넣고, 그럴싸한 어린이 노래가 나올 때, 다들 박수 쳤다.
가진 적 없지만 그리운 풍경이었다.
서툴지만 반짝거리는 건반 소리,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함께 치는 친구들, 비싼 피아노를 만져도 나무라지 않는 어른들.
저도 모르게 손이 멈추고 눈이 멈춰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때, 바네사 경과 눈을 마주친 것이었다.
반짝거리는 피아노 소리, 반짝거리는 별빛, 반짝거리는 눈빛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는 들고 있던 의자도 놓치고 그대로 연회장을 나갔다.
…
“크롬 경!”
꿈만 같던 밤이 지나고 다음날이였다. 공교롭게도 크롬은 바네사 경과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어제 일을 기억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 바네사 경이 입을 열었다.
“혹시 음악에 관심 있으세요?”
바네사 경의 질문에 크롬의 자세는 안 그래도 경직되어 있었는데 더 굳었다.
“피아노를 가만히 보고 계시길래요.”
크롬의 긴장된 얼굴에 바네사 경은 가볍게 웃었다.
“사실, 9살이 되기 전까진 배웠습니다. 이젠 기억이 하나도 안 납니다.”
“그렇군요.”
바네사 경우 생각에 잠겨 마차의 창밖을 보았다.
다행이었다. 이대로 넘어갈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한 건 큰 착각이었다.
…
“걱정마세요. 저랑 피아노 연습해보지 않겠어요?”
크롬은 제 앞에 놓인 연습용 피아노와 해맑게 웃는 바네사 경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크롬의 대답에 바네사 경은 빙긋 웃었다.
“그럼 언젠가 음악이 그리워지면 절 불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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