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인간이 아닌 줄 알았어.

논컾/[불]크롬, [물]프라우

로오히 2차 by 로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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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인간이 아닌 줄 알았어.”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크롬은 목검을 닦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갸우뚱 기울였다. 프라우가 어깨를 으쓱이자 크롬은 다시 목검에 묻은 먼지를 닦아냈다.

 

“괜찮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하오.”

 

크롬은 구태여 어떤 사람들인지 말하지 않았다. 프라우는 몰라도 될 사람들이었다.

 

허구한 날 결혼하라고 재촉하는 제라드 형님이나, 어떻게든 좋은 연줄을 잡아야 한다면서 꼬리를 살랑이는 플로렌스의 귀족들이나 함께 전장을 누비는 병사들도 그렇게 말했다.

 

형님은 왜 이렇게 말을 들어 먹지 않냐며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어떤 귀족은 그렇게 굽히고 살지 않을 거면 전장의 진흙이나 퍼먹으라며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병사는 뭐랬더라. 흔자 그 많은 적을 해치우다니 단장님은 역시 인간이 아니라고 했지.

 

각자 다른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그의 고향에선 입을 모아 그가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걸 굳이 그녀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나? 크롬은 고향에서 받은 배척을 굳이 그녀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발론에선 이런 걸 말하면 걱정하니 말이었다. 차라리 모르는 척 넘기는 게 편하지.

 

“굳이 말하면 난 인간 종족이고, 그대는 엘프 종족이지.”

 

“아니, 넌 이해 못 한 거 같은데.”

 

프라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프라우는 크롬이 말하는 ‘인간이 아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 겪어온 인간 NPC들의 행동과는 확연히 달랐으니까.

 

“난 네가 단순하게 프로그램된 NPC인 줄 알았지.”

“아, 그 게임 이야기 말하는 것이오?”

 

크롬은 그건 전에도 말했다면서 목검을 내려놓았다. 언젠가 프라우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전투를 걸면 거절하지 않아서 전투만 하는 NPC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크롬은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계속 훈련하자고 말을 걸어오는데 내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크롬의 태도는 이 이상한 엘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자기를 두고 하는 소리일지도.’

 

크롬은 아무리 둔해도 프라우가 종종 어딘가 다른 곳을 본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자신은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닌 것처럼, 모든 인간들을 멀리서 관찰하듯이 보고 있다는 것을.

 

‘넌 이 세상이 게임이라면 어떻게 할래?’

 

그런 질문을 던질 때 크롬은 어떻게 대답했던가.

 

‘이 세상이 게임이라면 그 규칙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소. 내가 쓸모 있는 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전혀 그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이더라도. 도저히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별종이라도. 언젠가는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 게임 속에서 가장 쓸모있는 말이었다고.

 

그게 판 위의 장기말[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네가 말하는 게임과 내가 말하는 게임은 좀 다른 거 같지만 말이야.”

“어차피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더뎌 그대가 바라는 재밌는 답은 못 했을 것이오.”

“그래?”

 

프라우는 얕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이건 가짜잖아.

이 게임을 클리어해도 다 허상인 걸 알게 되면 허무하잖아.

넌 그걸 알아도 지금처럼 너를 불태울 수 있을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면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소. 끝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프라우는 크롬을 바라보았다. 크롬은 그 시선에 멋쩍어하면서 뺨을 긁적였다.

 

“그게 내 대답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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