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정인

온달시프

by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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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는 날이면 많은 것이 감춰지지 않는 날이라고도 한다. 근심, 걱정, 가난, 행복, 부유 그리고...

"이 밤에 어떤 일로 찾으셨나요?"

"우리가 그런 걸 일일히 따지던 사이는 아니지 않았나."

"생각보다는 많이 따지는 것 같았는데요."

"조금만 더 평소처럼 자비를 베풀어주시지. 더 무도한 일도 하고자 하는데."

달뜸과 같이 숨겨지지 않는 일상에 숨긴 연정이.

물론 그의 이름과 같이 달이 밝게 떴다고 하여 그들 사이의 감정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온달이 죽음으로부터 돌아오기 이전에도, 시프리에드가 죽음에서 재회한 이후에도 사이의 감정은 풍랑이 일었던 것 외에는 기본적으로 잔잔히, 연인이라기에는 담백하지만 부부라고 하기에는 짙은 무언의 감정이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도 적막을 깨트리지 못하는 밤의 흰 빛이 감도는 때에는 마땅히 무언가의 고백이 이뤄지기에 적당한 때이다.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도 괜찮겠나, 기왕이면 허락해준다면 감사하겠어. 이래뵈도 제법 긴장하고 있거든."

"어머, 제법 귀엽게구네요. 말하는 건 안 귀여운 것 같지만."

"한 번만 허락해주시면 안되나? 우리한테 제법 필요한 일이야."

고백이라 함의 공공연한 정의를 말하자면, 서로간의 호감 이상을 가진 이가 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온달이 바라는 바가 이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시프리에드는 생각보다 깊은 것들을 봐왔고 세상의 삶에서 탈을 씌운 자의 행동 쯤은 꿰뚫어 볼 수 있는 이였다. 그리고 그것을 온달 또한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넘어가주는 것은 단순한 연정의 흔한 관용이 아니라 이름을 빌리는 온달의 행동이 퍽이나 기특하고 착해서다.

"'우리'한테라니. 여전히 착한 아이라니까."

말과 함께 작은 몸이 거의 제 몸의 배는 될 법한 이를 끌어 안았다. 끌어 안았다, 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큰 체격차이였지만 그것이 어색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기꺼이, 익숙하게 손길이 닿자마자 몸을 숙인 이의 탓이다. 이토록 말하지 않는 다정이 시프리에드를 이곳까지 물들였다.

매번 어쩔 수 없이 착한 아이가 되어버린다는 이가 보이는 다정이 더 큼을 온달은 스스로 알고 있을까? 이방인이 이토록 배려와 다정을 동떨어진 타향에서 베풀 수 있었을까? 시프리에드는 이제는 역사라고 기록될 법한 아주 근본적인 자신을 생각했다. 보답받지 못하는 것을 떠올렸다. 경험은 한번 지나면 잊혀질 수 없는 것이라 차곡차곡 쌓여 시프리에드를 방관의 위치에 두었다. 이해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온달은 정녕 어디에도 갈 곳 없음을 돌아온 지금에야 알고서도, 알지 못한 그 때에도 딱히 달라짐은 없었다. 그 모습이 자신이 마주한 어떤 생명보다 커다란 횃불같았다. 분명 운명이 흐트러져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생, 그러나 그 누구보다 밝게 타오르기를 선택했고 그 빛이 시프리에드를 방관의 위치에서 끌어내렸다. 닿아 화상이 입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잊혀지지 않을 것으로는 작게 괜찮겠다 생각했다.

그래,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비가, 생명이 춤추는 비 아래에서 잦아들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더 배려심이 많다는 거, 스스로 알고 있어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이거 허락해주시는 게 맞는지."

"재촉하지 말아요. 허락 안 한적이 있나, 지금은 이렇게 있어요."

차이가 있어도 심장 고동 소리는 확연하게 들렸다. 두근, 두근, 두근. 작으면서도 크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박동은 앞에 있는 것이 분명한 생의 영역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해준다. 시프리에드는 더 이상 끊어지지 않을 소리를 들으며 허락을 내렸다.

"좋아요, 해주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온달이 옅게 웃었다. 시프리에드는 조금 더 깊이 끌어 안았다. 달 아래의 연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은 그 칭에 맞게 얽혀 있는 상태로 사이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시프리에드, 그 때 나는 단 한번도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았어."

"..."

"후회라고 한다면 아마 당신의 표정을 너무 늦게 담았더나...아니면 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너무 미련이 오래 남아서 이 생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당신이 그렇게 쓰러지고 나서 잠시 소동이 있었어요. 마치, 살아서 힘을 주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당신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일어난 착각이긴 했지만."

"진짜일 수도 있었겠지. 가우리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있었어. 혼이란 그 무엇보다도 강한 의지를 가져 어쩌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세상의 많은 이들은 살면서 기적을 바라니까요. 특히 죽음을 앞두었을 때는 더더욱. 그래서, 당신은 어떤 의지를 바랬죠?"

"만약 나한테도 기적이 실존한다면 당신이 나를 꽤나 평범하게 기억해주기를 바랬어. 잊기까지야, 조금 그렇고. 그냥 한번 돌아볼 정도로."

이방인에게, 기억의 중함까지 가벼워진다면 그것이 어떠한 뜻일지 모르지 않은 이의 마음이 무거웠다. 끌어안는 손에 힘이 들어가다가 풀어 온달의 뺨에 올린다. 눈 가림 안에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마음이 울렁였다. 말하지 않는 마음이 깊어 담았다. 이것을 이제야 말하는 것이 조금은 얄미워 안에 담긴 것을 살짝 잡아 당겼지만.

"아야."

"그런 생각 한 벌이에요."

"손이 제법 매워, 가우리에 있었다면 내 대장군 자리가 위험했겠군."

"그럴 일은 없으니까 말 돌리지 말죠?"

눈을 한번 흘기지만 감정보다야 가벼웠다. 잠시 얼굴을 눈에 담던 시프리에드는 이어서 물음을 건냈다.

"그럼, 지금은요. 이제는 돌아왔고, 제법 위험이 있기야 하지만 그래도 나름 평화롭고, 나는 당신을 잊지 않았어요. 유감이지만."

"유감일리가."

"아무튼 그래서 뭘 바래요? 그걸 말하고 싶었던거 아닌가."

핀잔 섞여 나오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온달은 제법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이건 조금 다르겠군. 시프리에드, 우리는 시간도, 시대도 달랐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분명 어딘가에서 함께 했었고, 기적을 통해서 같이 만났어. 시간조차 거슬렀으니 기적이겠지.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과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어. 어떠한 관계보다도 당신의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어때, 이정도면 충분히 무도하고...고백같나?"

죽음이, 끊어지는 숨이, 기약되지 못할 것을 단숨에 사라지게 하는 고백이었다. 시프리에드는 그 마음에 숨을 멈추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할 수 없는 것이 완전히 끊어진 이의 숨을 되돌리는 것, 그리고 그 숨이 돌아온 이가 하는 것은 미래이고, 그간 자신도 돌아보지 못 했던 것에 그 마음이 스며들어 결국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든다. 시프리에드는, 이 마음을 눌러 온달의 머리를 쓸었다.

"...말 했죠? 당신은 너무 다정한 사람이에요."

"그 말은 내가 했던 것 같은데. 당신은 정말 다정한 사람이라고."

"나야 말로도 하지만, 당신은 말로 다 하지는 않으니까."

이어 다시 뺨을 쥐고, 이번에는 앞세웠던 것보다 더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을 앞세우기로 했다. 이 기쁜것을 받아 숨기는 것 만은 또 예의가 아니라, 잘 드러난 이마 한 가운데에 도장을 찍듯이 입술을 내리눌러 떼었다.

"참 착해요, 온달. 고마워요. 기쁘게 승낙하도록 할게요. 어쩐지, 이번에는 내가 선물을 받은 것 같네요."

시프리에드가 희게 웃고, 온달이 떨어질락 말락한 것을 감추기 위해 다른 것을 덮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게 단 것만이 오가는 사이에, 그 밤, 달 밤 아래의 연인은 잊혀지지 않을 시간을 무언 속에 기록하였다.

이제는 오롯하게 미래와, 오롯하게 사랑을 헤아릴 수 있는 날들을.

+잘 봐주셨나요 그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는 이렇게 빨리 온달시프를 쓸 생각이 없었는데...저번도 엄청 마음에 들게 나오진 않았지만 시험기간 버프로 써서 와 한동안 안쓸 것 같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저번보다야 짧지만 이렇게 작성하게 된 사유는 제가 관종이라 그렇습니다. 관심을 좋아합니다.

여기에선 없지만...이 글을 쓴다는 건 저 또한 온달시프 오타쿠로서 서치를 하고 탐라에 흘러들어오는 구독이 있는데

갑자기 제 글이 알티를 받아서 뭔가 하고 보니 너무너무 기분 좋은 글을 남겨주신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을 더 썼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하고 같은 걸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 두배로 기뻤습니다...저 말고도 이 아기부부(그렇지만 굉장히 어른의 바이브인)을 좋아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오타쿠 생이란 늘 그런 것이지요...

아무튼 또 잘 반응해주시면 언젠가 쓸 지도 모르겠지요...좋은 평은 오타쿠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 분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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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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