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나 또한 그러리라
논컾/[어둠]크롬, [어둠]프라우
(크롬은 좌석에 앉아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무대 위에는 검은색과 하얀색의 갑옷을 입은 배우들이 각자의 깃발을 흔들면서 연기하고 있다.)
프라우: (과장스러운 표정을 짓고 옆에 앉으며) 이봐! 재밌게 보고 있어?
크롬: (좌석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않고 꼿꼿이 허리를 세운 자세로 앉아 있다가 프라우 쪽을 본다) 재밌게 보고 있소.
프라우: 거짓말, 전혀 재밌어 보이지 않는데.
크롬: 미안하오. (생각에 빠진 듯 뜸을 들이다가)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로드가 준비한 무대를 폄하하고 싶지 않았소.
프라우: (어깨를 으쓱인다) 뭐? 난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로드를 참 사랑하지만 이 무대는 형편없긴 해.
크롬: (소리없이 웃는다)
프라우: (객석 뒤쪽을 향해 보며) 있잖아, 크롬.
크롬: 왜 그러시오?
프라우: 너는 이 세상이 게임이라면 어떨 거 같아?
크롬: 그렇게 단순한 것이라면 좋을지도 모르오.
프라우: 그래?
크롬: 저 연극처럼 검은색은 검은색이고, 하얀색은 하얀색일 뿐이라면 그보다 더 이상적이고 편한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오.
프라우: 네 말은 검은색이 하얀색일 수도 있다는 거네.
크롬: 하얀 말에 속할 자격이 없는 검은 말도 있는 법이오.(무릎 위에 둔 손을 말아쥔다)
프라우: 네 말은 배신자 같은 거란 말이지?
크롬; 내 말은 승리의 깃발을 드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자들에 관한 것이오.
프라우: 어려운 말이군.
크롬: 어려운 이야기이오.
(두 사람 다 말하지 않고 무대 쪽을 본다. 어느새 하얀 병정들이 무대를 장악하고 검은 병정은 대장과 단둘이 남아 대치하고 있다. 검은 병정이 뭐라고 외치지만 웅장한 음악에 들리지 않는다.)
프라우: 넌 누가 이길 거 같아?
크롬: 포기하지 않는 쪽이 이길 것이오.
(무대 위의 전투는 길어지고, 검은 병정과 대장은 하얀 군대의 공격을 버텨낸다. 하얀 대장이 나타나 검은 병정의 옷을 찢는다. 옷이 찢어지자 그 밑으로 하얀 군대의 문장이 보인다. 검은 병정과 그 대장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얀 대장을 노려본다.)
크롬: (무대를 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기가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 붉은 커튼이 빠르게 떨어지며 극장 안이 어두워진다. 핀 조명이 크롬과 프라우를 비춘다. 조명 때문에 크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프라우: 넌 이런 세상을 위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
(크롬은 붉게 막을 내린 무대를 보다가 좌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좌석에는 그림자에 깔려 보이지 않는 관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들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표정 없는 목각인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크롬: …난 그래도 이 세계를 사랑할 것이오. 무엇이 옳은지 아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답을 위해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테요.
“나도 그럴 거야. 소중한 사람이 지키기로 결심한 세계니까.”
프라우는 자리에 일어나서 화면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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