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대신 물어봐줄게.
논컾/ [물]크롬, feat. 너를 사랑하는 프라우
“어때?”
크롬은 자신의 머리가 어색한지 제 목을 쓸었다. 머리를 만지면 기껏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 모양이 흐트러질 것만 같았다. 마치 깃털로 허술하게 짠 둥지를 머리에 올려놓은 듯, 크롬의 온 신경은 정수리로 향했다.
“어색합니다.”
어쩌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색해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의식하진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쌓아 올린 이미지란 게 있는 모양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은 무척 낯설기 짝이 없었다.
“아니, 왜? 멋지기만 한데.”
대기실의 거울 양 옆에서 조명이 비쳐 얼굴이 더욱더 새하얗고 짙은 바다의 색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 같다. 프라우는 자꾸만 삐져나오는 앞머리를 밀어 넣어 보려다가 포기하고 타협했다. 너무 깔끔해도 고지식하게 보일 테지.
“이러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 그지? 예를 들면 고대라던가.”
“프라우 경이 종종 말하는 것 말씀이십니까? 저는 또다른 제가 있는 것도 신기합니다.”
“아, 그렇긴 하지.”
프라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있잖아.”
“네?”
“넌 이 세계가 게임이라면 어떨 거 같아?”
프라우는 빗과 왁스를 내려놓고 미소를 지었다. 크롬은 거울 너머 프라우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자주색 머리카락이 조금 붉게 비쳐 보였다.
크롬은 그녀의 질문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현자인 라플라스도 이해못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게임이라.
그러고 보니 카를로스는 종종 귀족들과의 정쟁을 게임에 비유하곤 했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적군과 아군이 분명하고, 추구해야할 목적이 분명한 게임. 게임에서 카를로스와 그의 대장군은 목숨과 이상을 걸어야했다.
“최선을 다해 승리하도록 노력하겠소.”
“그럴 가치가 없는 게임이라고 해도?”
“선택한 이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니 말입니다.”
“흠, 아주 무거운 대답이군요, 우리 대장군께선.”
프라우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말이야, 넌 그 게임 속에서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있어?”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이 게임에선 특별한 정체성이란 게 존재하거든. 나이지만 내가 아닌 게 존재하고, 내가 아니지만 나인 게 존재해.”
“시간선 이야기이오?”
프라우의 불꽃이 점점 머리카락을 뒤덮다가 수그러들었다. 크롬은 얼핏 그녀의 피부색도 잠시 변한 것처럼 느꼈다.
“넌 어느 시간선의 크롬이니?”
크롬은 거울 속에 떠오른 자신을 보았다.
창백한 대기실, 거울 양옆에 늘어선 환한 조명, 그 사이에 앉은 거울 속의 파란색 제복의 사내. 양 옆에 자주색 머리의 엘프와 적갈색 머리의 엘프가 그 사내를 내려보고 있었다.
“궁금하잖아, 이 세상이.”
자주색 머리의 프라우가 고개를 들더니 거울 밖의 크롬을 쳐다보았다.
“딱히 난 아니지만.”
적갈색 머리의 프라우는 허공을 보다가 눈을 마주쳤다.
너는 궁금할테니까 물어봐 주는 거야.
크롬은 멍하니 거울을 보다가 대답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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