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녀는 외발 자전거를 탄다
바퀴가 빠져도 수레는 나아간다. 삶이 그러하듯이.
"왕녀님은 어쩐지
외발 자전거도 잘 탈 것 같아."
저를 가리키며 한 말에 왕녀는 되물었다.
외발… 자전거요? 앗. 아직 개발이 안된 물품인가? 으음~ 그러니까 말야,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외발 수레 같은 걸 말하는 거야! 프라우 레망은 부평초를 닮은 이였다. 제가 외발 자전거라는 것을 잘 탈 것 같다는 의견은 그런 엘프에게서 나온 이야기였다. 늘상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어딘가에, 아마도 저 위에 있을 수면을 둥실둥실 홀로 떠다니는 사람의 말.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외발 수레라니. 수레는 바퀴가 아무리 적어도 두 개는 있어야 하지 않던가. 짐도 아니고 사람이 타는 외발 수레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싶지만 마도 공학이 무섭게 발달하는 와중에 그런 건 불가능하다며 딱 잘라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게 당장 오늘 아침에 나타나는 마당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제 은인이 한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왕녀는 신뢰를 담아 곱게 미소지었다.
"프라우 님의 말씀이라면 분명 그렇겠지요."
찰나였지만 엘프는 움직임을 멈췄다. 때로는 별 것 아닌 말 한 마디가 차마 말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법이었으므로. 엘프는 천천히 눈동자를 움직여 왕녀를 응시하곤,
…그렇지?
한 박자 늦게 씩 웃었다.
오늘따라 그 말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왕녀는 가쁜 숨을 몰아쉰 뒤 활을 내리그으며 외쳤다. 함께하겠습니다! 무엇을? 제가 자아낸 음률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자일수록 사람을 죽이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파악해야만 했다. 아니다.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지? 스스로가 누군가와 함께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이들을 구별해야만 했다. 살릴 자와 죽일 자를 구분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게 지금 이 전장에서 알드 룬 최후의 왕족에게 주어진 의무였다.
세상도, 자신도 어딘가 망가진 게 분명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할 수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외칠 수 있는 건 자신만이 유일하지 않던가. 후회는 사치였다. 진격하라! 알드 룬이여!
망가졌다면 망가진 채로 나아가면 된다. 모든 것을 원상 복귀시키는 것만을 치유라 부르진 않는다. 피가 흐르는 곳에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아 흉터가 된다면 그것 또한 치유였다. 아, 이제야 알겠다. 왕녀는 탄식한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이 끌고 있는 건 외발의 수레였다. 처음부터 외발은 아니었으리라. 많은 일들을 겪고 거친 비탈을 구르며 끝내 바퀴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리고 프라우 레망은 이 모든 걸 꿰뚫어 보았겠지.
왕녀님은 어쩐지 외발 자전거도 잘 탈 것 같아.
은인의 말이 옳았다. 수레바퀴가 하나 빠져도 수레는 굴러간다. 도중에 멈추지만 않는다면 덜컹거릴지라도 수레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마치 바네사의 삶이 그러하듯이.
"네. 저는 분명 외발 자전거를… 잘 탈 거예요."
그러니 지켜봐주시겠어요?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연주도 아직 끝이 아니다. 누구에게 전하려는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왕녀는 다시금 바이올린을 켠다.
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1) '왕녀님은 어쩐지 외발 자전거도 잘 탈 것 같아.' 라는 문구가 빨간색에서 보라색으로 점차 변하는 건 의도한 연출입니다 (힌트: 하드와 노말의 색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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