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라레] 오후 3시의 휴식

긴머로드 X [빛]라이레이

글쓰는 오이 by 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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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오늘도 조용한 집무실에는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쉴새없이 손을 움직이던 로드가 펜을 내려놓았다. 일을 끝마친건 아니었다. 여전히 책상 위에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서류가 잔뜩 쌓여있었다. 손을 주무르며 목을 이리저리 돌리니 뚜둑-하고 살벌한 소리가 났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펜을 잡으려 할 때, 노크소리가 났다.

“들어오지.”

루인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로드는 애써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하여… 흠, 오늘은 이만 쉬시는게 어떻겠습니까, 로드.”

이런저런 보고를 하던 루인이 갑자기 휴식을 제안했다. 정신을 놓고 있었다면 그저 보고 중의 하나라고 생각될만큼 연결이 자연스러웠다.

“응? 아니야. 아직 세 시밖에 되지 않았는걸.”

로드가 힐끗 시계를 대충 확인하며 말했다.

“급한 건은 오늘 오전에 이미 다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도 페르사의 손님들을 맞이하시느라 늦게까지 무리하셨으니, 오늘은 일찍 쉬십시오.”

루인이 휴식을 권유하는 경우는 종종 있긴 했지만 이렇게 여러번 청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게 피곤해 보이나? 로드는 괜히 얼굴을 문질렀다.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할게.”

로드의 대답에 루인이 미소지었다. 서류들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난 후 겨우 집무실을 나섰지만 로드는 바로 침실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확실히, 오늘은 오후 회의도, 알현 일정도 없어 혼자 쉬기 딱 좋은 날이긴 했다. 침실로 가기 전, 왕성이라도 한 번 둘러봐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해지지 않는다면.. 뭐, 다시 돌아와서 일하는 거지.

마지막으로 왕성 정원에 도착한 로드는 멀리서 보이는 연분홍빛 머리카락에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잔디밭 위에 라이레이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라이레이는 콧노래를 부르다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불시에 눈이 마주쳐 머쓱해진 로드는 더 빠르게 다가가 라이레이의 옆에 앉았다.

“일국의 군주께서 이리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으셔도 되나요?”

“그러는 페르사의 대족장님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둘의 눈이 마주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오전까지 아발론의 군주와 페르사의 대족장으로서 회담을 나누던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지위를 벗어던지고 몸에 힘을 푼 채 서로에게 기댔다. 그러다 어느새 로드는 라이레이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아까 부르던 노래는, 무슨 노래야?”

“이거요? 황야의 버들잎이라고, 페르사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곡이지요. 보통 자장가로 많이 불려요.”

“한 번 제대로 듣고 싶은데.”

“어.. 불러.. 달라고요?”

“응.”

조금 당황한 라이레이가 이내 웃었다.

“왜 웃어?”

“어린 시절 남동생을 보는 것 같아서요.”

“아, 그러가. 그대와 같은 누나가 있다는 건 행운이었겠네.”

“글쎄요, 그런 쪽으로 잘 표현하는 아이는 아니었으니 잘 모르겠네요.”

”그런가.“

로드가 라이레이의 목 뒤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걸린 팔을 굽히자 라이레이는 저항하지 않고 허리를 숙였다. 쵹- 부드럽고 도톰한 입술과 약간 버석한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 겨울의 기운이 덜 빠진 바람이 둘 사이를 갈랐다. 둘의 얼굴이 그대로 다시 멀어졌다.

“그럼,”

“네?”

“내가 그대 동생이면 불러주나, 자장가?”

로드의 말을 이해 못한 듯 라이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언니.”

라이레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라이레이 언니.“

갑자기 라이레이가 로드의 양 볼을 붙잡고 다시 입술을 맞부딪혔다. 끔뻑끔뻑. 조금 놀란 로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매끼리는 이런 짓 안한다구요.“

”아하하-“

그제서야 로드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오후 3시의 적당히 따뜻한 햇볕도, 적당히 부드럽게 부는 바람도, 그에 따라 사각사각 식물들이 부딪히는 소리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내음과 풀내음까지,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라이레이의 손길까지 더해지자 로드는 나른하게 몸이 풀렸다.

“그대가 자장가만 불러주면 완벽한데.”

“아직도 그 얘기인가요?”

“이대로 그대의 노래를 들으면서 잠들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거야.”

“징그러운 소리 마세요. 가끔 그대는..”

“아저씨 같다고?”

말을 고르던 라이레이가 그대로 입을 닫았다.

“그러게, 그대한테는 이런 말이 멋대로 튀어나와.”

“아발론의 군주로서 품위는 지켜주시길 간청합니다.”

“일단 노력하지.”

방금 전의 말이 무색하게 로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던 라이레이의 손을 잡아 장난스레 손끝에 입을 맞춰댔다. 황급히 손을 빼낸 라이레이가 그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장난스레 웃은 로드가 알았다며 라이레이의 손을 다시 잡아 자신의 머리로 가져갔다. 자신을 다시 만지라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행동에 라이레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곤 다시 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을 감고 있던 로드의 숨이 깊고 일정해졌다. 확실히 다른 때보다 더 피곤해 보이기는 했다. 라이레이는 로드의 눈 밑을 살살 쓸었다. 라이레이의 입에서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로드는 살짝 뒤척이며 라이레이의 품으로 더욱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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