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의 첫 번째 보물
체자렛 &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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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에는 어떤 보물이 있죠?”
갑작스러운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아니, 갑작스러운 건 질문이기 이전에 그 목소리겠지. 아발론 왕성에서 들려선 안 될 음성, 분명 제 착각일 것이다.
그러나 실체가 눈앞에 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체자렛 알티온.”
“어머, 설마 변방 약소국 성 하나 못 뚫을 정도로 제가 약해 보였던 건가요?”
기분 나쁜 웃음소리. 그저 인상을 찌푸렸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래,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맹의 본진을 격파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때까지 조용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세 단계의 사고일 테다.
그는 제 옷차림을 단장한 후 짧게 목례했다. 이런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갈루스 제국의 마도사 체자렛 알티온, 아발론의 군주께 인사드립니다.”
“…… 아발론의 군주, ─다. 용건을 말하라.”
“그 전에…… 여긴 사신 접대가 원래 이 모양인지……. 제가 아무리 소식 없이 온 처지라 해도 이건 좀 심하지요.”
“…….”
“뭐, 좋아요. 신경 안 쓰니 굳이 누굴 부르실 필요는 없어요. 물론 해를 끼치러 온 것도 아니니…… 마찬가지로 충직한 기사들은 지금 이 자리에 필요가 없겠네요.”
팔걸이에 올려 두었던 팔을 들어 팔짱을 끼었다. 이때까지 봐 온 체자렛은 분명 하지 않겠다고 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허나 지금 이 상황은 충분히 아발론에 대한 무례로 받아들이고 그를 쫓아내도 무방한 상황이 아닌가.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나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을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
“아발론의 보물에 대해 물었나. 제국의 마도사에게 국가의 보물을 알려줄 이유가 없다는 건 너도 잘 알 듯한데, 굳이 물어보러 온 건 무슨 의도지? 아발론을……, 나를 무시하는 처사인가?”
“후후, 발상이 참으로 깜찍하군요. 틀렸어요.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드릴 수 있는데…….”
“이런 적은 없었다만……. ……나를 세뇌할 속셈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다고 충고하겠어.”
“…….”
그가 찰나간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나도 이쯤에서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별수 없지 않나? 전개상으로 보아도 개연성은 있다. 카를과 라플라스의 세뇌 여부를 알아 내었으니 이 정도의 경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는 웃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아니라는 말씀부터 드려야겠네요. 말했다시피 지금은 당신에게 어떠한 종류의 위해도 가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하지만…… 이 이상 제 호의를 모욕하신다면 제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군요.”
“그것도 황제의 뜻인가?”
“정말.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건지.”
“알 만큼은 알고 있어.”
“그분은 제가 여기 있는지 모르실 거예요. 흠……, 독단이라 해 두죠.”
카르티스와 인과를 묶었을 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생각할 시간은 많이 드리지 않았나요? 이제 대답해 주셔야겠는데……. 아발론에는 어떤 보물이 있다구요?”
대답할 수 없었다. 보물, 보물이라. 그가 원하는 대답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단순히 황제에게 충성하는 것만이 아니었나. 내게 원하는 게 뭐지? 이렇게 해서 그에게 돌아가는 몫은 뭐가 있을까. 그는 황제에게 무엇을 원하기에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미간을 좁히자 그가 눈꼬리를 반달로 접었다.
“명색이 제국의 첫 번째 보물이 아발론에서 두 번째가 되는 거, 저는 용납할 수 없거든요.”
“……그게 무슨…….”
“어감이 좋지 않은가요? 자아, 혓바닥을 한번 굴려 보세요. ‘아발론의 첫 번째 보물, 체자렛 알티온’. 어때요. 썩 어울리지 않나요?”
“…….”
내게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 내고자 이런 말을. 그 전의 세뇌도 이런 식으로 했을까. 이건 세뇌인가? 나의 전력이 되겠다고 말을 흘리며……. 이건 약함과 무능함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내 심리를 완벽하게 간파해 낸 결과인가.
체자렛, 어느 쪽이냐. 너는 나를 파악해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그 말에 본심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다면 나는 무슨 반응을 보여야……. 이런 혼란을 내게 심어서 네게 무슨 이득이 있지.
그가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인간의 고민이란 실로 추하고 느리다니까……. 상황 파악에 조금 더 시간을 써야겠다면 좋아요, 존중해 드리지요. 하지만 아발론의 군주시여, 내 호의는 오래 유지되지 않음을 기억하세요.”
“체자렛…….”
“후후, 그럼 또 다음에.”
그리고 체자렛은 사라졌다. 내게 풀리지 않을 숙제를 남기고, 이런, ……이런.
분명 함정이다. 함정임이 틀림없다. 내 정신을 흔들어 연맹을 조금이라도 약화시켜 보겠다는 의도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성립되지 않는 일이다. 마지막까지도 카르티스에게 충성을 바치던 충실한 그의 수족이 나를 상대로 흥정이라니. ‘아발론의 첫 번째 보물’이라고? 하. 나를 조롱하는가. ……이건 정녕 조롱이 맞는가.
나는 이런 보물을 바란 적이 없었다. 아발론의 첫 번째 보물은 비단 사람 하나로 국한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체자렛은 이것마저 알고 있겠지.
적어도 그는 이것만큼은 성공한 듯싶었다. 나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은 것. 희망을 먹고 나아가는 내게 헛된 씨앗을 심어 놓은 것. 이 씨앗은 시작부터 썩어 있음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이다지도 나의 동요가 드러남이다.
우선 아발론의 경비를 강화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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