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환생 12화
“좀 전에 아는 사람이라는 건 혹시 청장님입니까?”
“오, 어떻게 알았지?”
“현생에서도 알고 지내는 사람 중 TV에 얼굴 비출만한 사람은 청장님뿐이라서요. 언제 만나셨습니까?”
“얼마 안 됐어. 애초에 사대 악인이 모인 것도 최근의 일이고.”
“모두 모인 겁니까?”
“그래. …전생처럼 몰려다니면서 사고 치지는 않을 거니까 그렇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볼 거 없어.”
모용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전생과 현생을 구분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아서요.”
그렇게 말한 뒤 모용백은 잠시 뜸을 들이며 안경을 고쳐 썼다.
“문주님은 괜찮으십니까?”
“뭐가?”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자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선생, 이곳에는 무공이 존재하지 않아. 외공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그것은 호신용, 혹은 스포츠의 일환일 뿐, 내공을 포함한 무공의 고강함이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 전생에 어떻게 살았든 나는 무공이 없는 세상이 되었음을 기꺼워했다. 제힘만 믿고 양민을 핍박하는 놈들을 내 손으로 직접 잡아 족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거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그저 무력으로 돈을 갈취하지 않을 뿐 그놈들은 더 교활해졌어. 심지어 당하는 사람이 깨닫지조차 못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걸 빼앗아가지. 그런데 나는 화가 나면 불태우거나 죽이는 편이잖아.”
“문주님.”
“그러니까 뉴스 같은 걸 안 보고 산다고. 지금은 옛날과 달라. 환경이 바뀌면 나도 달라져야 하지. 다만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그대로다. 전반적인 수준은 향상되었을지 몰라도 결국 약자와 강자가 있어. 문제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며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것이고 그런 흑도 무리 같은 놈들 때문에 약자는 권리를 침해당하지. 그래, 권리. 내가 전생에 그토록 밑바닥 인생들을 긁어모아서 사람답게 좀 살라고 일장연설을 했던 게 여기서는 하나의 개념이 되어 있더군. 아무튼, 환경이 바뀌었고 이번 생의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으니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찢어발기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여전히 밑바닥 인생들이 눈에 보이니 화를 낼 수밖에. 나는 점소이 시절 불타던 자하객잔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거든.”
모용백이 입을 열었다.
“지난 생에는 문주님 속의 불길이 더 강한 자를 향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썼지요.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여태까지 그저 참아오신 겁니까?”
“뭐, 가끔 시위 나가거나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정의로운 태권도 관장 행세를 좀 하긴 했는데.”
“태권도요?”
“그래. 하오문 태권도 관장, 그것이 나다. 소백 형님이 말 안 하던가?”
모용백은 할 말을 잃고 이자하를 보았다.
“왜 그러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화산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치셨죠. 크흠, 아무튼.”
모용백은 작은 메모지에 펜으로 무언가 적더니 이자하에게 건넸다.
“받으세요.”
“뭐야. 전화번호?”
“예. 제 개인 연락처입니다. 만약 문주님 속의 불이 누군가를 향할 것 같으면 전화 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병원 일이 바쁘지 않나?”
“상관없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문주님이면 정말로 사람 한 명 죽이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아서 그럽니다.”
모용백의 진지한 태도에 이자하는 헛웃음을 흘릴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은.”
“예?”
“선생은 잠을 잘 자나?”
이자하는 조금 전에 했던 질문을 되풀이했다. 모용백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사라고 환자만 돌보지 말고 본인도 좀 돌보면서 살아. 화병이 있는 건 선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저는 병까지는 아닙니다. 이 정도 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선생도 조심하라고. 진상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면 연락해.”
“하하, 예.”
모용백의 웃음 섞인 대답을 들은 이자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십니까?”
“그래야지. 밖에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던데. 고생하라고.”
"예, 문주님도 살펴 가십시오."
모용백은 자신의 진료실을 빠져나가는 이자하를 눈으로 따라갔다. 문이 열리고 시야 밖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뒷모습은 영락없이 그가 아는 하오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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