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환생

광마환생 13화


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모용백은 깨달았다. 그는 이자하에게 연락처를 주었지만 이자하의 것은 받지 않았다. 퇴근할 채비를 하던 그는 문득 그 자리에서 ‘하오문 태권도’를 검색해봤다. 해당하는 이름의 태권도는 전국에 한 곳뿐이었다.

“역시 유일무이하다니까.”

모용백은 소리 내어 웃으면서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표시된 하오문 태권도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검마, 이자하, 몽연 셋은 맑은 하늘 아래 나란히 서서 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 건물의 출입구를.

“그러니까.”

이자하가 긴 침묵을 깼다.

“교주 선배가 보육원을 하는 게 맞아?”

그렇다. 그들은 교주를 찾아온 것이다.


그들이 교주의 근황을 알게 된 것은 며칠 전 모용백이 하오문 태권도에 찾아왔을 때다. 쉬는 날 한 번 찾아가겠다는 전화를 하오문 태권도 관장실 유선전화로 받은 이자하는, 마침 시간이 비는 검마와 몽연도 불러서 조촐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문득 교주 이야기가 나왔다.

“어디서 사이비 교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그거 진짜 무서운 소린데.”

조금 심각한 분위기가 되자, 모용백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다들 모르십니까?”

“선생은 알고 있나?”

검마의 물음에 모용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보호자로 오셔서요.”

“보호자?”

“교주님은 보육원 원장을 하고 계십니다.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몇 번 병원에 데리고 오셨죠.”

모두 충격에 빠져 말을 잃은 가운데 모용백만 평온한 얼굴로 이자하가 내놓은 매실차를 홀짝였다.

잠시 후에 몽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태껏 들은 소식 중에 가장 충격적인데.”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 있던 검마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전생의 마교도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주워다 기르곤 했으니까. 그 목적이 다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느낌이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교주 선배는 왜 그러는 거래?”

이자하가 직접 모용백에게 물었다.

“음,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직접 들으시죠.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셋은 보육원 앞에 모이게 되었다.

“눈앞에 있는데도 믿기지 않아. 다른 사람인 거 아냐?”

몽연이 멍하니 내뱉는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보육원 건물에서 나와 정원을 건너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인영이 보였다.

“그러고 있으면 아이들이 무서워하니 일단 안으로 들어와라.”

무척 부드러운 분위기의…… 교주였다.

셋은 교주를 따라 원장실에 들어갔다. 푹신한 의자 몇 개가 있어 자리 잡고 앉으며 이자하가 대뜸 입을 열었다.

“거참 많이 변하셨소.”

“그런가.”

교주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왜 하필 보육원이오?”

“음.”

교주는 끓어오른 물과 녹차 티백을 찻잔 네 개에 나눠 담으며 뜸을 들였다. 그리고 세 사람 앞에 놓으면서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

“버림받은 아이들 중에 전생을 기억하는 자가 있으면 뿌리가 없기에 그 기억에 현혹되고 자아를 잃기 쉽다.”

“그런 애들 구하려고 보육원을 세웠다고?”

“미덥지 않은 눈치구나.”

“당연하지. 이상한 사상 같은 거 주입하고 있는 거 아뇨?”

“문주야.”

“왜 부르시오.”

교주는 이자하를 지그시 바라봤다. 전생의 무력으로 말미암은 위압감은 없었으나 여전히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도 이자하는 그를 마주 쏘아봤다.

“네가 지금 문주가 아니듯 나도 교주가 아니다. 기억은 있어도 지금의 나는 전생과 다른 사람이다. 이걸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었다. 그 뒤는 선택이었지. 내 눈에는 전생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 이들이 자립할 수 있게 받쳐주는 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자들을 살게 하는 것. 마교에서는 버려지는 목숨을 짓밟고 홀로 우뚝 섰으나 이곳에서는 버려지는 목숨이 없도록 할 생각이다.”

교주의 말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바깥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말없이 차를 홀짝이던 검마가 입을 열었다.

“낚시 하시오?”

“자주는 못 하지만 가끔.”

“그럼 종종 같이 낚시터나 가지.”

“나쁘지 않군.”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원장실 안에는 은은하게 좋은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인지 창가에 향초가 있었다.

이자하는 향초에서 피어오른 연기를 눈으로 따라가며 생각했다.

‘네가 지금 문주가 아니듯 나도 교주가 아니다.’

마교에서 아귀다툼을 벌였던 것도, 화산에서 펼친 마지막 비무도 지금의 교주에겐 꿈결 같은 일일 뿐이다. 이자하는 오히려 그 기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의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교주의 인생 대부분을 모른다. 비정한 마교의 우두머리가 되며 어떤 시간을 감내했는지, 그 뒤 무슨 생각으로 홀로 마도를 걷고자 했는지. 이자하는 다만 그 시간이 아이들에 둘러싸여 보내는 지금보다 훨씬 괴로웠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교주는 그 모든 전생의 일을 잊고 현생의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목숨을 짓밟고 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일종의 속죄인가. 속죄해야 하기에 잊지 못하는 것인가.

이자하는 문득 자신이 죽인 자들을 떠올렸다. 나중에는 그래도 좀 살려보려고 노력했지만 그전까지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들도 다시 태어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도 당연히 모른다. 그 당시에는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알고도 모르는 체했거나.

멋대로 짊어졌던 이들의 삶 또한 떠올렸다. 객잔의 점소이와 보부상, 대장장이와 숙수들. 그들을 모두 하오문의 지붕 아래 놓고 그 인생이 평온하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대단한 행운은 없더라도 일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삶. 자신이 점소이 시절 바라던 것.

하지만 지금의 그는 하오문의 문주가 아니라 태권도장 관장이다.

무언가를 짊어질 수도, 짊어질 필요도 없다.

“등산도 하시오?”

“마찬가지로 가끔.”

“그럼 같이 산도 타면 되겠군.”

"좋다."

여전히 가벼운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자하의 상념을 깬 것은 몽연의 속삭임이었다.

“…나만 이 대화 흐름 못 따라가고 있냐?”

“그렇다. 역시 똥싸개.”

몽연은 이자하를 째려보았다. 이자하는 그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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