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회귀/자투리] 육아기록(育兒記錄)
#2차창작주의 날조주의 두서없음주의 스포주의
맥락없을 무
*23년도 광마회귀 배포전 때 무료배포했던 글입니다.
xxx년 x월 x일.
며칠 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동이 트기 전에 객잔 앞을 쓸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그런데 문 옆에 웬 바구니 하나가 놓여져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싶어 바구니 안을 들여보니 흰 포대기로 쌓인 갓난아기 하나가 색색 잠들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기를 아는 이가 없고. 근처 마을까지 수소문해봤지만, 부모라 주장하는 이도 나타나질 않았다. 왜 버리고 간 것일까? 버리고 갈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어도 결국 낳았단 건 그래도 키우려고 했던 걸 텐데. 시간이 지나면 맘이 바뀌어 아기를 다시 찾으러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기와 아기의 부모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았지만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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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흘렀지만, 부모가 아기를 찾으러 오지 않아 자연스레 내가 거두게 됐다. 솔직히 나 하나 먹고 살기에도 벅찬데. 갓난아기까지 책임져야 한단 생각이 들자 막막했다. 혹시나 아기를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주변 사람들을 떠봤지만 모두 그럴 여유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기의 부모는 왜 내 객잔 앞에다 버리고 간 것일까? 객잔에 들렀던 손님이었나? 아기가 배가 고픈지 온종일 울음을 그치지 않길래 겨우 젖동냥 해먹였다.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조그만데 어찌나 잘 먹는지 아기는 젖을 아무리 먹어도 배고파했다. 단순히 객잔에다 버리면 아기가 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묘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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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내 성을 따서 이. 객잔 앞에 버려져 있었으니 객잔의 이름을 따서 자하. 이자하李紫霞라 이름 붙였다. 여태 이름은커녕 호칭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괜히 정 붙였다가 부모가 데리러 오면 어쩌나 하는 나이 먹은 노인의 속 좁은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 찾아왔다는 건... 아마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거 같단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내겐 남은 가족이 없고. 너도 나밖에 없으니 우리가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자꾸나. 처음엔 날 아버지라 부르게 할까 하다가 그러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아 아이가 클수록 괜한 오해를 살 거 같았다. 그럴 바엔 할아버지가 되어주는 게 낫겠지. 이자하.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천천히 이름을 불러주었다. 자하야. 아기와 눈을 맞춘 채로 반복해서 불러주니 아기는 그제야 자길 칭하는 말이란 걸 알아챈 거 같았다. 눈을 끔벅거리다가 그 짧고 통통한 손을 내게 뻗으며 뭐라 옹알옹알거렸다. 그래. 자하야. 이게 네 이름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네 할아버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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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면 객잔 문을 열고 하루종일 손님을 응대하다가. 해가 지면 문을 닫고 내일 준비를 마친 후 홀로 잠들던 하루가 자하가 오고서부턴 바뀌었다. 아기란 얼마나 신경 써야 하는 게 많은지.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달래고, 치우고 나면 또다시 반복. 젖을 먹이고나면 등을 두드려 트름을 시켜야 했고, 눕혀놔도 혼자 몸을 뒤집어 숨을 막진 않을까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자기 손을 입에 넣고 계속 빨아대길래 대신할 걸 찾아야 했고. 목이 쉬어라 울음을 멈추지 않아 열이 오르면 나는 당장 자하를 품에 안고 달려 의원을 찾아갔다. 하루종일 온 신경이 곤두세워야 하니 나도 점점 무리 가는 거 같았다.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 누군가 곁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한순간에 죽을 수 있는 존재. 아기란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듯싶었다. 하지만 진이 빠져 당장 쓰러질 거 같다가도 내 손가락 하날 잡고서 평온하게 잠든 얼굴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우리 부모님도 날 이렇게 고생하면서 키우셨겠지. 생전에 좀 더 잘 해드릴걸.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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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 몸 하나도 제대로 못 가누는 갓난쟁이를 데리고 일할 수도 없고. 며칠 동안 객잔을 못 열었더니 손해가 막심했다. 하는 수 없이 애 둘 있는 옆집에 돈을 주고 애를 봐달라 부탁했다. 오랜만에 바쁜 와중에도 밥은 잘 먹었을까, 내가 없다고 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태산처럼 쌓여 한숨으로 나왔다. 얼른 해가 저물어야 데리러 갈텐데. 옛날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하니 계속 객잔을 열려고만 했는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갈대와도 같구나. 내일 쓸 재료 준비까지 마무리해놓고 얼른 옆집으로 달려갔는데 자하가 주먹을 꽉 쥔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하 눈이 새빨갛길래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여태 한숨도 자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선 하루종일 자도 잘만 잠들던 녀석인데.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싶어 자하야, 할아비 왔다하고 부르면서 안고 등을 토닥여주니. 자하는 그대로 입을 쩍 벌려 크게 하품 한 번 하곤 바로 잠들었다. 이 녀석. 내가 올 때까지 버티고 있던 거였구나. 어린 게 뭘 알까 생각했는데. 새삼 내가 자하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실감이 났다. 그래. 그래. 할아버지 여기있다. 그러니 아무 걱정 하지말고 푹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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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자하가 걸음마를 뗐다. 뒤집기도 곧잘 하더니만 걸음마도 금방이었다. 아장아장 조심스레 발을 내딛다가 나를 쳐다보며 걸어오는데 괜스레 울컥했다. 다시 떠올리니 또 눈물이 나려 한다. 늙어서 주책없지. 슬슬 한자를 알려주고 글 쓰는 법, 읽는 법, 셈하는 법을 배우게 해야겠다. 그래야 객잔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언젠간 자하가 이 객잔을 물려받을 테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걸 보니 대견스럽기도 하고 참 뿌듯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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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가 어느 정도 한자를 읽을 수 있게 된 후에 나는 객잔 일에 대해서 차근차근히 알려주기 시작했다. 객잔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것들과 시작하기 전에 뭘 준비하고, 확인해야하는지. 내겐 이미 익숙한 것들이라 자연스레 넘어간 부분에 대해서도 자하는 놓치지 않고 계속 질문을 했다. 앞으로 매일 하게 될 일들이니 자연스레 몸에 익히면 되겠지. 자하는 객잔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신기한 눈으로 둘러봤다. 그러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더니 행주를 집어들곤 달려가 탁자를 닦기도 하고, 주방에 따라들어와 재료 손질하는 걸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영리한 녀석.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기분이 좋았는지 환히 웃었다. 용돈 좀 챙겨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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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하가 접시를 닦다가 갑자기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평소에 부모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언급한 적이 없던 아이라 답을 생각해 놓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얘기해야 상처받지 않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자하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을 돌렸다. 오늘은 흐지부지 그렇게 넘어갔지만 뭔가 눈치챈 건 아닐까? 눈치가 빠른 아이라 계속 마음이 쓰인다. 부모에 대한 걸 묻다니 다른 사람한테 무슨 얘길 들었던 건 아닐지... 다음에 물어보면 뭐라 답해줄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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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가 감기에 걸렸다. 원체 튼튼한 녀석이라 지난밤 괜찮다고 하는 걸 그냥 넘겼더니 결국 아침에 열이 펄펄 끓어올랐다. 그런데도 일을 돕겠다하며 침대에서 일어나길래 푹 쉬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간신히 설득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녀석이 원... 나와봤자 일도 제대로 못한다고 구박이나 받을 테지. 주문을 왜 이렇게 늦게 받냐, 음식은 언제 나오는 거냐 등등.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나도 아플 때 일해봤지만, 직원의 건강까지 신경 써주는 손님은 흔치 않았다. 그러니 차라리 푹 쉬고 빨리 낫는 게 이득이었다. 벌개진 얼굴이 신경쓰여 많이 아프냐, 할아비가 곁에 있어줄까 물으니 혼자서도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릴 적 좀만 아파도 빽빽 울던 게 눈에 선한데. 머리가 좀 컸다고 저리 대답하니 기특하기보단 안쓰러웠다. 자하 혼자 두고 나서야 하는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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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대로 이어온 객잔에서 태어나 일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객잔을 물려받기 전까진 점소이로 일했고, 객잔을 물려받고 나선 객잔 주인이 되어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런데 얼마 전, 자하가 자신의 꿈은 무신 武神이라 했다고 앞집 청년이 말해주더라. 처음엔 장군이 되고싶단 건가 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천하제일인? 강호에서 제일 강한 경지? 뭐 그런 거 같았다. 객잔에 들르던 강호인들을 보며 내심 꿈꿨던 걸까. 그 얘길 들은 사람들은 자하가 아직 어리다며, 허무맹랑한 꿈이라 비웃었다던데. 괜히 애를 기죽이는 사람들때문에 열받긴 했지만 나도 그 꿈을 마냥 지지하긴 어려웠다. 허구한 날 주먹질하고, 칼질하다가 죽는 이가 한둘이었던가. 거기다 그런 걸 하려면 수련도 받고 무공도 얻어야할텐데. 어느 부모가 자식이 위험한 일을 하길 바라겠는가? 그런 것보단 젊을 적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고, 객잔을 물려받아 참한 처자랑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행복이지. 나는 자하와 함께 저녁을 먹다가 자연스럽게 얘길 꺼냈다. 무신이 되고 싶다고 했다면서. 내 입에서 무신이란 단어가 나오자 자하는 민망해하며 볼을 긁었다. 자하야. 점소이도 나쁘진 않다. 자하가 국수를 들이키며 대답했다. 저도 알아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 눈은 이미 나와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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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진 응대 위주로 일을 시켜봤는데 썩 나쁘지 않길래. 앞으로 객잔을 운영해나가려면 요리도 직접 할 줄 알아야지하 는 생각으로 간단한 요리 몇 가질 알려줬다. 자하는 소매를 걷어붙이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보고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금방 국수 한 그릇 말아오길래 대충 만든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국수 한입 먹어보니 국물이 좀 밍밍하긴 해도 나쁘지 않았다. 국물 맛을 깊이 내려면 이러저러해라 일러주고. 내일부턴 내가 응대를 맡을 테니 자하더러 주방을 맡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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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에게 처음으로 주방을 맡긴 날. 자하가 만든 국수로 내갔는데 어떤 손님은 먹을만하다 하고, 어떤 손님은 이걸 어떻게 먹느냐며 젓가락을 내던졌다. 일단 화가 난 손님에게 죄송하다하고 맛을 봤는데 음... 이걸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어제 먹었을 때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자하를 불러 국수 맛을 봤는지 물어봤다. 자하가 나오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국수를 먹어보더니 못 먹을 정돈 아니지 않냐길래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조용히 자하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아직 어려서. 잘 몰라서 그런 거겠지. 계속 요릴 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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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영 기분이 찝찝하더라니. 객잔 내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결국 싸움으로 이어졌다. 싸우는 거야 익숙한 일이지만 탁자를 뒤집고 식기를 던지고. 아이고. 저게 다 얼마냐. 골치가 아팠다. 결국 분을 못 이긴 놈이 칼까지 꺼내 들어 달려드니 식사하고 있던 손님들도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나도 주방으로 피신하면서 자하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지만, 자하는 이를 갈더니 멈추라고 고함을 지르며 둘 사이로 뛰어들었다. 자하야! 내 부름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하는 칼 든 놈의 다리에 매달려 허벅지를 꽉 깨물었다. 악! 비명과 함께 자하를 떼어내려 버둥거리던 놈이 자하의 머리채를 잡아 쥐고, 주먹으로 내려치고. 아이고, 자하야, 자하야! 나도 말리려고 뛰어들었다가 밀쳐졌다. 그걸 본 자하가 또 눈이 돌아가 덤비고 아수라장도 이런 아수라장이 없었다. 다행히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말려준 덕분에 큰일은 나지 않았지만. 도망가야지 이놈아. 덤벼들면 어떡하느냐. 저 새끼들이 지랄발광하면서 다 부셔대는데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그러다 칼이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구. 자하는 아직도 흥분한 상태로 흐르는 코피를 손등으로 훔쳤다. 주룩. 쌍코피였다. 도와준 사람들에게 인사하다가 길길이 날뛰는 자하를 겨우 달래 들여보냈다. 혼자 남아 어질러진 가게를 치우는데 진이 빠져 의자에 걸터앉았다. 속에 돌이라도 얹힌 듯 답답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다행이야. 물건이 망가지며 새로 사거나 고치면 되지만 만약 자하가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다시 떠올리니 가슴이 벌렁거려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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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가 밖에서 얻어맞고 왔다. 누구와 싸운 건지, 어쩌다 맞은 건지 물어봐도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젓는다.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자꾸만 속이 상해 나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안봐도 뻔하지. 그놈들한테 시비가 털렸을 것이다. 점소이로 살아가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을 텐데. 어느 누가 점소이를 신경써 주겠는가? 힘없고 무시당하기 일쑤에. 자기 기분 상했다고 행패 부리는 놈들 천지인데. 오늘은 그냥 쉬라고 해도 팅팅 부은 얼굴로 꾸역꾸역 객잔에 나와서 일하는 걸 보니 녀석도 참. 누굴 닮았는지. 약이나 받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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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죽었다. 객잔에서 흔히 하던 싸움이었는데. 장ㅇㅇ이 놈이 ■■■ 가슴에 비수를 푹 쑤셔 넣자 그대로 쿵. 말릴 새도 없이 탁자에 고개를 박고 죽었다. 낄낄거리며 웃는 장ㅇㅇ놈이 떠난 후 자하와 둘이서 ■■■시체를 치웠다. 모르는 사람이 죽는 것도 반갑지 않은데, 아는 녀석이라니. 거기다 자하가 친형처럼 잘 따르던 녀석이라 더 씁쓸했다. 아무 말 없이 묻어있는 피를 닦고, 어질러진 매장을 치우고. 자하가 상처 난 탁자를 가만히 서서 지켜보길래 모른 척 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 내가 없어도 의지할 사람이 많아야할텐데... 한숨만 깊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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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의 시선이 높아질수록 내 시선은 낮아져 간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늙어가고 있다는 게 실감 난다. 눈은 침침해서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워진 지 오래고. 성한 곳 하나 없는 몸뚱어리는 딱딱하게 굳어 전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뼈마디와 관절들 사이가 시리고 아린 건 이제 약을 먹어도, 침을 맞아도 고통이 줄지 않고. 전보다 굽어가는 허리와 다리는 계속 후들거려 오래 서 있기도 힘들었다. 기침할 때마다 찌르르 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러다 내가 죽고 자하 홀로 남을 거란 생각이 떠오르면 그보다 괴로운 것이 없다. 육신의 통증따위 아무 것도 아니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 생각이 깊고 섬세한 아이라 참으로 걱정이 된다.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젊은 사람에게 자하를 맡길 수 있었다면 나보다 오래 자하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생각할수록 아쉬움만 늘어가 글을 적다가 지웠다. 괜히 마음이 약해져선 안된다. 자하는 내 손주다. 내 객잔을 물려줄 하나뿐인 손주. 내가 자하와 지내며 외롭지 않았던 것처럼 자하도 외롭지 않아야 할텐데. 그나마 득수가 자하를 잘 챙겨주고, 자하도 형이라고 부르며 잘 따르니 부탁 좀 해야겠다. 자하가 가정 꾸리는 건 보고 가야하는데 그 때까지 내 몸이 버텨줄까...
xxx년 xx월 x일
힘든 날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함께라서 행복한 기억만 떠오르더구나. 내게 와줘서 고맙다. 혼자 남겨놓고 가서 미안하다. 자하야. 그 누구보다 널 사랑한다. 꼭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야 한다.
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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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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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인가?"
사방이 새하얀 빛 속.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바로 앞에 흰 백발과 금안. 그리고 수염을 매끈한 수염을 길게 기른 상대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 아니 더 어려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많은 거 같기도 하고.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상대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기백이 어마어마해서 보통 사람이 아니란 게 확연히 느껴졌다. 나는 상대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날 아시오?"
"아, 그렇지. 아무것도 모르니...이자하를 기억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하. 내가 이름 짓고, 직접 키운 손주의 이름을 어찌 잊겠는가. 내 반응을 본 사내는 잘 찾아왔군하고 수염을 쓸더니 자신을 자하와 연관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날 따라오게."
그리곤 뒤돌아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갑자기 나타나서 따라오라니? 내 생전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상대가 의심스러웠지만 아까 한 말이 떠올라서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걸어가던 상대는 건물이 보이자 슬슬 걸음을 늦췄다. 딱 봐도 돈깨나 들여서 지은 고급진 외관의 객잔이었다. 이런 객잔의 주인이라면 어마어마한 부자에 돈도 많겠군. 어림잡아도... 감탄하며 건물을 쳐다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보면 볼수록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구석구석 자세히 뜯어보니 우리 객잔과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우리도 저 부분이 저렇게 생겼는데. 물론 객잔의 모양이 다 비슷하다 해도 자하객잔은 이름 그대로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다른 객잔들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 객잔은 그런 작은 부분들까지 고대로 빼다 박은 게 아닌가?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상대에게 물었다.
"이 객잔의 이름이 뭡니까?"
내 질문에 침묵하던 상대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무신객잔일세."
무신?
누군가 말했던 단어인 거 같은데. 무언가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목에 턱하고 걸린 듯 걸리적거려 되뇌었다. 무신... 무신이라. 그러자 가라앉아있던 옛 기억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객잔의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그러면 나는 허허. 갑자기 왜 웃음이 나오는지. 허허. 하하하. 하하하하. 자하와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잘 지내곤 있는 지 사내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떠올랐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상대는 뒷짐 진 채로 소리내어 웃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짓궃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나?"
"예. 참 맘에 듭니다."
"그럼 이 객잔 좀 맡아주게."
"예?"
"주인이 객잔을 비웠는데, 언제 돌아올지 알 수가 없어. 그렇다고 그냥 뒀다간 객잔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낡아서 엉망이 되어있을 게 아닌가? 그런데 이 객잔 주인이 성질이 아주 고약한 놈이라 영 불안해서 말이지. 돌아와서 이게 뭐냐며 고래고래 난리를 피울 거 같지 뭔가."
아. 그 얘길 들으니 나는 사내가 나에게 뭘 맡기고 싶은 건지 눈치챘다. 그러면 여기가.... 나는 피실피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수 없지요."
"그렇지? 자네한테 부탁함세."
사내가 자릴 떠나고 나는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펴봤다. 익숙한 풍경. 내가 평생을 살아온 객잔. 그리고 자하를 만난 곳. 함께 시간을 보낸 곳. 하지만 여긴 이제 나의 객잔이 아닌 자하의 객잔. 과거가 아닌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갈 곳. 항상 날 괴롭히던 통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구석에 세워진 빗자루를 찾아서 쥐었다. 자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진 돌아오면 직접 들어봐야겠다. 그때까진 여기서 아이를 기다려야지.
끝.
안녕하세요, 편식쟁이입니다.
사실 제 마음대로 상상해서 날조한 글이지만
할아버지와 자하가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고,
자하 혼자 남는 걸 염려하면서 돌아가셨을
할아버지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하면서 적어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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