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환생

광마환생 5화

“잠깐 얼굴만 보면 된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어. 하면 돼.”

“자리에 안 계신다니까요?”

“그럼 기다리지 뭐.”

“자꾸 이러시면…….”

“무슨 일인가?”

경비가 무언가 조처를 하려던 차에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잘랐다. 더불어 자신과 실랑이 하던 이가 경직된 얼굴로 제 너머를 향해 경례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자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경찰 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임소백이 서 있었다.

“청장님, 오셨습니까. 여기 이분이 자꾸 청장님을 뵙겠다고 하셔서.”

이자하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임소백의 눈을 보았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체육복, 거기다 슬리퍼를 신은 모습이 영락없이 동네 마실 나온 백수 꼴이었으나 제복을 빼입은 경찰청장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사내가 그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당연히 미친놈처럼 보였다. 무료한 일상에서 찰나 얘깃거리가 될 미친놈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임소백은 소란의 중심에서 광인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안녕하쇼."

그는 광인의 인사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둘러보다 몰려든 사람들 사이 어딘가에 시선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 눈동자가 천천히 광인에게 돌아온다.

광인은 피식 웃었다.

"거봐. 기억하네."

작게 한숨을 내쉰 임소백은 경비를 향해 말했다.

"아는 사람이다. 신경 쓰지 말고 볼일 보도록. 너는 따라와라."

"검마 선배랑 똥싸개는?"

"……그 둘도."

이자하가 팔을 들고 어딘가로 손짓하자 검마와 몽연이 헛기침하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왔다.

임소백은 이목을 의식한 것인지 가타부타 말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이자하와 몽연, 검마가 그 뒤를 따랐다.


“이렇게 대책 없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임소백이 디귿 자로 길게 늘어선 소파의 상석에 앉으며 말했다. 일행도 자연스레 남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법이 있어야지.”

이자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임소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다들 오랜만이오.”

“……실로 그렇군.”

죽음을 건넌 재회의 해후를 나누는 와중, 몽연이 문득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뭔가?”

“왜 저번에 뵀을 때는 아무런 낌새도 비치지 않으신 겁니까?”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왜죠?”

“대부분 그러니까.”

“대부분? 누구 말이오?”

듣고 있던 이자하가 끼어들었다.

“나는 맹원들을 상당수 기억한다. 내 세대나 윗세대 강자들도 당연히 기억하고. 경찰이 된 후로 그들 중 몇몇을 볼 일이 있었다. 이름이 다르더라도 얼굴이나 성정은 그대로 변치 않아서 알아보았지. 그런데 이야기 나눠보니 그들 대부분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생의 기억을 꿈이나 어린 시절의 망상 같은 것으로 치부하며 살고 있더군. 시간이 지날수록 그마저 흐릿해지는 모양인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전생의 기억이 없다시피 했다. 어디서 본 적 있던가, 정도의 반응이었지.”

“그럼 소백 형님은 왜 기억하고 계시오?”

그 물음에 임소백이 힘없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기대었다.

“하나의 가설인데…… 내가 보기에 이건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여전히 그 시대의 강호인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면 그 기억을 붙들게 되고, 현대의 삶에 만족하고 이곳에서의 행복을 택한다면 점차 전생은 지워지는 것이지. 기억해봤자 좋을 게 없으니.”

“그럼 자네는 강호인으로 남고 싶은 것인가?”

그 물음에 임소백이 검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건 검마,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더니 둘이서 소리 내어 웃는 것이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