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우성과 명헌 in NY
프로농구선수 우성x중고차 딜러 겸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 명헌au
트위터에서 썰 푼 걸 백업할 겸 간단한 연성과 섞어 다듬어 올립니다
연성으로 보고싶은 장면 기준으로 썰을 잘라 백업하려 해요 (잘하면 19금도 쓸 수 있겠군요 힘내라 미래의 나~)
변명하자면, 이명헌은 게이 클럽을 자주 가지 않았다. 원나잇 스탠드에 취미가 없었기도 했지만, 뉴욕, 특히 브루클린에서 정신머리 제대로 박혔고 매너 좋으며 섹스까지 잘하는데다 그의 취향에 부합하는 게이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날 명헌이 브루클린의 게이 클럽에 간 건 거기서 파는 칠리 프라이가 먹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명헌은 한 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그날 칠리 프라이를 먹어야 했다. 반드시. 가게를 30분 일찍 닫고 채비를 마쳤을 즈음에는 약간의 자기변명이 섞여있기는 했다. 한동안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를 가진 적이 거의 없었다. 벌써부터 아랫도리에 거미줄 칠 게 아니라면 요즘 클럽의 수질은 어떤지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가장 큰 게이 클럽은 추구하는 게 독특한 편이었다. 지나치게 끈적거리거나 섹스 심볼을 어필하지 않았고, 아무나 와서 마음껏 돈을 쓸 수 있게 만들었다. 몇몇 게이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와서 별로라며 기피했으나 오히려 명헌은 그 점이 좋았다. 뉴욕은 넓은 도시다. 거주하는 인구는 물론 많다. 그런데 오픈리 게이인 작자들이 많은가 하면, 글쎄. 뉴페이스라 호기심에 접근하면 뜨내기에 불과해 헤어지게 되어 있었다. 결국에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을 사귀게 된다는 거였다. 명헌은 원나잇 후 헤어진 상대와 어색하게 재회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만큼 여운이 남는 상대를 만난 적도 없었고 말이다.
할로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할로윈 다음 대목은 추수감사절 아니면 크리스마스다. 클럽 입구에 장식된 우스꽝스러운 칠면조 장식을 목격한 명헌이 피식 웃었다. 보수적인 게이 클럽이 있을 리 없으니 화목한 가정에게 어울리는 추수감사절은 셀링 포인트에서 빠졌어야 마땅한데, 말했다시피, 이 클럽은 누가 오던 지갑만 잘 열면 환영했다. 명헌도 처음 왔을 때는 의아했었다. 그러면 게이 대상의 클럽이라고 하지 말아야지. 처음 온 기념이라며 폭탄주에 가까운 칵테일을 말아 준 바텐더가 자본주의의 미소와 함께 이렇게 되물었었다.
클로짓 게이가 자신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그렇다. 돈에 미친 사장은 자신이 헤테로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클로짓 게이, 디나이얼 게이, 진짜 헤테로, 그 밖의 성소수자와 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마저도 잠재적인 고객으로 보고 있었던 거였다. 같은 자영업자로서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는 경영 방식이었다.
클럽은 지상 2층과 지하 1층의 규모였는데, 지하는 개인이 대관하여 이벤트를 여는 공간이었다. 보통은 지상 1층과 2층을 오가며 춤을 추고 미식을 즐겼다. 1층 스테이지 옆의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있는 푸드 바는 ‘게이가 아니어도 클럽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한 끼 즐거운 식사를 위해 게이 클럽에 오는 사람들도 많다는 소리였다. 트렌드에 아주 민감하거나 셀러브리티를 흉내 내고 싶은 이들이 대부분이기는 했다. 즉, 스테이지를 기웃거리지 않고 푸드 바로 직행하는 손님에게는 보통 일행이 있었다. 명헌은 2층에 일행이 있는 척 당당하게 혼자 걸어 올라가 1층 스테이지가 가장 잘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후 계절이 두어 번 바뀐 까닭인지 스텝 중에 익숙한 얼굴이 거의 없었다. 클럽의 들뜬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아니, 잠깐.
칠리 프라이와 생맥주를 주문한 명헌의 시야에 묘한 게 잡혔다. 낯익은 사람이 있긴 있었다. 그것도 앞 테이블. 저 동그란 뒤통수가 아주 익숙했다. 머릿속 리스트를 파라락 넘긴 명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달? 한 달하고도 2주 전쯤에 현찰 박치기로 중고차를 구매한 청년이다. 일시불로 현금을 지급하면 번거로운 서류 절차가 줄어 판매자나 고객이나 서로 편하기는 했는데, 고객의 신원이 수상쩍어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돈 받고 물건을 판 다음의 일이야 알 바 아니기는 했다. 뉴욕에서 오지랖을 부렸다가는 오래 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묘하게 신경이 쓰이는 고객은 머릿속에 리스트를 만들어두었다. 저 동그란 뒤통수의 고객은 그 중 한 명이었다.
동그란 뒤통수는 테이블에 혼자였다. 옷차림이 구질구질하지 않고 현찰 박치기가 가능할 정도면 재산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얼굴도 저만하면 준수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얼굴에 표정이 없어도 사납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미술관에 전시된 조각상처럼 섬세하고 수려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머리를 지나치게 짧게 깎았다는 건데…….
돈 많고 잘생기고 쿼터백처럼 어깨가 벌어진 젊은 아시안 게이.
명헌은 고객이었던 동그란 뒤통수의 청년이 왜 1층에서 놀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갔다.
“안녕.”
혹시 미성년자인가? 앳되어 보이니 가능성은 있었다.
테이블에 지루한 듯 앉아 있던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왜 말을 거는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일전에 내 가게 왔었잖아. 중고차 가게.”
아. 작게 탄성을 지른 우성이 조금 뭉개지는 발음의 영어로 대꾸했다.
“그때 사장님이네.”
“혼자야? 어린애는 이런데 오는 거 아닌데.”
명헌은 조금 후회했다. 이건 10마일 바깥에서 도청기로 들어도 아저씨가 어린애를 꼬시는 말투였다. 명헌은 이마도 동그란 청년이 의심의 눈초리를 건네기 전에 좀 더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2층에 혼자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나 성인 맞아요.”
“여기가, 흠. 게이 클럽인 건 알고 왔죠?”
우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성인은 맞는데 게이는 아니고요.”
놀러 왔나보네. 확신을 가지고 물어보자 우성이 1층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스테이지 옆에 설치된 주크박스로 장난치는 무리들이 있었다. 기껏 해봤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어린애들이었다.
일행이 있었군. 명헌도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 쓸데없는 참견을 했네.”
동그란 이마의 청년이 명헌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이 동네 사람은 아니니까 혹시나 싶어서. 모처럼 왔으니 재미있게 놀다 가요.”
“여기 스텝이세요?”
“나는 중고차를 팔면서 클럽에서 파트 타임을 뛸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에요.”
말하다보니 생각 난 용건이 있었다. 명헌은 이마와 뒤통수 둘 다 동그란 청년의 어깨를 친근하게 두드리고서 덧붙였다.
“지난번에 샀던 노란 차, 연식이 오래 된 애라 정기적으로 손봐야 해요. 차 볼 줄 모르면 가르쳐줄테니까 시간 날 때 찾아오고.”
“아, 네에…….”
싫으면 말고. 명헌은 뒷말을 삼키고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서 얼마 뒤에 우성은 차 볼 줄 모르면 가르쳐주겠다는 중고차 사장님을 찾아 기웃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 썰 풀 때는 모국어로 대화하는 게 좋아서 찾아갔다고 했는데, 정비하는 것도 배울 겸 갔으면 좋겠지요. 우성이 산왕공고 출신이라 하더라도 일 년 남짓 배운 기술을 안 써먹었으니 까먹은 부분도 있을 것이고, 클래식 자동차는 관리하는데 노하우가 필요하니까요.
클래식 자동차는 우성의 로망이었습니다. 우성은 동부 디비전에 속한 1군 리그에 입성한 지 쪼금 지난 프로 농구 선수이고 머슬카니 스포츠카니 비싼 차량을 얼마든지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주변에서는 돈도 있는 게 중고차를 몰고 다닌다고 핀잔을 줬는데 우성은 꿋꿋했어요. 지금 살고 있는 펜트하우스 건물은 경기장이나 구단 트레이닝 센터와 가까워서 운전할 필요가 거의 없었거든요. 즉, 비싼 차를 사 봤자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건데 농구 말고 관심이 없는 인간이 그런 사치에 흥미가 생길 리 없죠.
그런데 중고차를 구매하러 갔을 때 만난 명헌에게는 조금 흥미가 있었어요. 구단 내 아시안 스텝이 전 여자 친구가 알던 가게라며 소개해줬는데 뒤통수치는 곳은 아니라 했고. 무엇보다 돈 때문에 중고차를 사고파는 게 아니라 차를 정말로 아끼는 것 같았거든요. 우성이 농구 덕후라면 명헌에게서는 자동차 덕후의 향기가 느껴진 거죠. 우성은 그래서 명헌이 정비 배우러 오라는 게 빈 말은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클럽에서 재회하고 얼마 뒤. 정규 시즌은 이미 시작했지만 우성은 짬을 내서 중고차 가게를 들렀습니다. 위치는 브루클린 동부쯤. 우성 집에서는 자동차로 30분 거리예요. 노란 중고차 털털 몰고 가니 뚱 한 표정의 사장님이 진짜 왔냐는 식으로 맞이해줬죠. 명헌은 레슨비를 요구하지 않았고, 생색내지 않고, 그냥 옆집 동생의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는 태도로 자동차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전문적인 단어로 말할 때는 우성이 헷갈려 해서 중간부터는 우성의 모국어로 얘기해줬어요. 우성이 어디 출신인지 어떻게 알았냐면, 돈의 힘으로 서류를 줄였다고 한들 거주지나 국적 정도는 기재해야 했거든요.
사실 그러면 나이도 알고 있었어야 맞는데 명헌이 어려 보이는 얼굴에 홀려 착각했던 거였습니다. 첫 만남에도 그랬어요. 가게를 기웃거리기에 앳된 생김새만 보고 ‘(고등학생이지?) 얼마 있어?’라면서 잠재적 고객에게 건방을 떨었죠. 그리고 클럽에서도, 그 이후에도 계속 노란 중고차를 산 고객은 돈 많은 아시안이다, 그런데 얘가 성인이 맞던가, 라면서 헷갈려 했고요. 나중에 몸으로 확인한 다음부터는 헷갈려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현찰 박치기를 했으니 돈은 있어 보였는데 우성이 방문하는 시간대가 좀 들쑥날쑥했어요. 도련님인가? 돈 많은 유학생?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명헌은 우성이 번듯한 직업도 있고 나름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신예 스포츠 스타인 걸 몰랐습니다. 3대째 뉴욕에 자리 잡은 명헌의 집안은 대대로 야구를 좋아했고, 그래서 명헌도 야구 외에는 스포츠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스포츠 뉴스는 곧잘 챙겨봤는데 야구 리그 소식만 보고는 다른 건 흘려 넘기는 식이었죠.
그 날도 명헌은 우성과 정비 수업을 빙자한 비영어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돈 얘기가 튀어나왔어요. 우성이 돈 많은 유학생일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명헌은 그새 친해진 아시안계 동생을 챙겨주겠답시고 제안을 했죠.
‘일 구하고 있으면 내 가게로 오지 그래용?’
명헌은 영어는 멀쩡한데 우성의 모국어로는 용용거리는 묘한 말버릇이 있었습니다. 뭐, 대단히 중요한 설정은 아니고. 명헌의 제안은 간단한 파트타임하면서 용돈 벌이하고 레쥬메 쓰는 법도 필요하면 알려주겠다는 거였어요. 명헌이 지금은 브루클린 동부에서 허름한 정비소와 중고차 가게를 운영하고 있긴 해도 학벌이 좋았거든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방인이 미국 땅에 자리 잡으려면 현지의 관행을 빨리 익힐수록 좋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우성이 정말로 미국에서의 커리어를 준비하는 유학생이라면 고마워했을 텐데, 이미 직업이 있었거든요. 우성은 어리둥절해했어요.
‘직업 있는데요?’
‘학생이잖아용? 난 고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성인이라니까요.’
저 얼굴이 어떻게 성인 얼굴이지……. 그런데 몸매는 성인이 충분히 맞거든요. 사장님 자꾸 얼굴만 보시지 말고 그 아래를 보라고요. 명헌은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다시 물었어요.
‘어디서 일하는 데용?’
우성의 직업은 프로 농구 선수였죠.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농구 선수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일하는 곳? 우성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어요. 구단이 연봉을 주니까 구단 주소를 얘기해야 하나? 아니면 경기장?
‘저기, 웨스트 31번가에.’
‘웨스트 31번가? 아, 코리안 타운 옆에?’
‘네. 거기 큰 센터 있거든요.’
큰 센터? 코리안 타운 옆의 센터라면 명헌이 아는 곳은 하나였죠. 실내 농구 경기장으로도 유명한데 패션쇼와 콘서트가 자주 열리는. 이 썰의 시대적 배경은 2000년대 초반이니 그 즈음에는 마이클 잭슨의 공연도 개최되었겠네요. 그 때의 빌리 진 공연이 역대급이었다고 하던데요. 명헌은 알아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거기 스텝으로 일하는구나. 집안에 돈이 없는 게 아닐 텐데 성실하게 파트타임도 하면서 공부하네, 라고 크게 착각하면서 말이에요.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