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우성과 명헌 in NY 2
우성명헌 au 프로농구선수 우성x카센터 사장님 명헌 트위터썰 백업 두번째
백업이라기보다 3차 창작하는 느낌...?
주의: 우성의 침대위 포지션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옵니다 리버시블.. 까지는 아니지만요 불편하실 수 있으니 미리 말씀드려요
그 해 가을과 겨울에 우성은 주에 한 번은 명헌의 가게에 들렀습니다. 어웨이 경기가 많아진 주에는 보름에 한 번 정도 방문했어요. 어찌 보면 취미가 새로 생긴 거예요. 우성을 잘 아는 동료나 에이전시에서는 드디어 실내 체육관 말고 다른 곳을 다니는구나! 반가워했죠. 우성은 호들갑떨지 말라면서 주변의 잔소리를 일축했는데 솔직히 안 돌아다닌 건 맞아요. 게이 클럽도 스태프들이 놀러가는 거에 우연찮게 합류했던 거거든요.
우성은 명헌이 좋았어요. 아직까지는 ‘데이트하고 싶은 좋음’보다 ‘함께 놀면 즐거움’에 가까웠지만요. 넌 이런 것도 모르냐면서 핀잔주지 않는 침착하고 사려 깊은 성격이 좋았고, 시시콜콜한 것을 물어보는 편이 아니라 좋았죠. 본인은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명헌의 생김새도 우성의 취향이었던 거예요.
우성은 가을치고 유독 더웠던 오후에 명헌의 가게를 들린 적이 있었어요. 이 날은 명헌이 느끼하지 않고 맛있다고 칭찬한 도넛을 사서 방문했는데 명헌이 가게 사무실 말고 정비소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정비복 겸해서 입는 멜빵바지 차림이었어요. 티셔츠는 오간 데 없어져서 거의 반나체였지요. 한창 일하던 중이었는지 땀이 난 근육질 상체가 반들반들하게 빛났죠. 명헌은 아시안치고는 허리가 짧고 어깨가 두툼해서 상반신만 벗고 있으면 보기가 꽤 좋았어요.
우성도 같은 걸 느꼈죠. 이 형 몸매 쩐다……. 하지만 자각이 없는 청년은 예전에 운동했나보다, 감탄만 했어요. 명헌은 하던 일 마무리하고 놀아주겠다면서 기다리라 했어요. 우성은 명헌이 고정시킨 보닛 뚜껑에 비스듬히 상체를 숙이고 엔진을 들여다보는 옆모습을 구경했죠. 조금 전에는 어깨 끈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유두가 바짝 일어서 있었어요. 우성은 성인 잡지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에는 흥분하지 않았어요. 원래 사람이라는 게 그래요. 갑자기 눈앞에 맛있는 게 들이밀어지면 당황해서 뭐가 맛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못 느끼거든요.
‘오늘 바빠요?’
‘아니. 이 정도면 한가한 편이지용.’
‘케이티 할머니는요?’
‘원래 오전까지만 일하시는 분이라서용.’
케이티 할머니는 서류 정리를 도와주는 직원이에요. 근처 사시면서 명헌의 업무를 도와주며 용돈벌이를 하는 분인데 매일이 바쁜 분이셨어요. 오전에는 서류 업무, 오후에는 자원봉사활동 아니면 아들 집에 가서 살림 도와주기 등등. 아들은 한참 전에 이혼했고 손녀가 똘똘하고 착해서 맛있는 거 만들어줄 겸 자주 간다고 하셨지요.
‘아, 그럼 둘밖에 없네요.’
무심결에 우성이 그러니까 명헌이 돌아봤어요. 그리고는 다시 하던 일을 했죠.
‘심심하면 간식상이나 차리지 그래용?’
‘이 가게는 손님한테 일을 시켜요?’
‘손님은 무슨.’
입술을 삐죽인 우성이 사 온 도넛을 챙기고 커피포트에서 커피 두 잔을 내려놨지요. 명헌은 적당히 땀을 닦고 기름 냄새 폴폴 풍기면서 우성과 마주보고 앉아 도넛을 먹었어요. 먹느라 오디오가 비니까 명헌이 네가 산 중고차가 뭔지 아느냐고 물어봤죠. 우성은 고개를 저었어요.
‘쉐보레 카마로인데용. 구입할 때 2세대라 하긴 했지만 원래 주인이 개조했던 것 같아용.’
‘그걸 어떻게 알아요?’
명헌이 반짝 눈을 빛내고는 쉐보레 카마로의 역사와 각 세대별 성능 및 외관의 차이, 지금은 몇 세대까지 나왔다는 정보를 줄줄이 읊어주었습니다. 우성은 헤~ 그렇구나~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평소 조용한 사람이 신나서 얘기를 하는 게 재미있어 듣는 척을 했어요.
도넛 맛있게 먹고 노닥거리고 가죽 시트 관리하는 법을 대충 배우니까 금방 시간이 갔어요. 우성이 돌아갈 적에는 명헌도 가게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죠. 다음 주에는 어웨이 경기가 둘에 우성이 스타팅 멤버로 들어갈 예정이었어요. 스타팅으로 뛴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은 특별했죠. 팀의 성적이 부진한 탓인지, 감독은 기존의 선수 명단 대신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패에 걸고 싶어 했어요. 우성은 그 도박에서 판돈을 따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한동안은 바빠서 못 올 것 같아요.’
‘그래용.’
‘크리스마스 전에는 올게요.’
우성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명헌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어요. 입은 웃고 있어도 명헌의 입장에서는, 나이도 어려 보이는 돈 많은 도련님이 여기 자주 오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브루클린 동부에서도 명헌의 가게가 있는 지역은 치안이 좋지 않아 거의 슬럼가에 가까웠어요. 그런 데를 꼬박꼬박, 혼자 올 정도로 정 붙인 현지인이 주변에 없나 싶어 마음이 쓰였죠. 얘기하다 알게 된 거지만 인종차별 당한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영어 실력에 자신이 없어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명헌에게 정붙인 것일 수도 있지요. 돈 많고 외모 멀끔하면 알아서 사람이 꼬이기 마련인데 어지간히 철벽을 치고 사는 것 같았어요.
손님과 고객, 그렇다고 친구 사이도 아닌 모호한 관계는 명헌의 취향은 아니었죠. 당장은 손해 볼 일이 없으니 상관없으려나? 명헌은 알아서 하라며 우성을 배웅해줬어요. 이후로 한동안은 정말로 우성이 안 보였지요. 학생으로 따지면 가을은 한창 바쁠 때잖아요. 그래서 뜸해졌나보다 했는데, 명헌이 출근길에 구매한 스포츠신문 1면에 뜬 헤드라인을 본 거예요.
NEW YORK HAILS A NEW TROUBLESHOOTER!
뉴욕이 연고지인 프로농구 팀이 7연패까지 죽을 쑤다가 이번에 겨우 어웨이 경기에서 이겼다는 기사였어요. 요즘 뉴욕 농구 성적이 부진하다는 건 명헌도 언뜻 들었으니 그 이야기인가보다 했지요. 그러다가 헤드라인 밑의 사진을 보고는 눈알이 튀어나올 뻔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앳된 얼굴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어요. 파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의 조명에 반짝반짝 피부가 빛나는 우성이 심각한 얼굴로 농구공을 패스하고 있었죠.
당시는 구글링 몇 번 돌리면 연예인이나 프로 선수 프로필이 주르륵 모니터에 뜨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한국에서는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했지만 미국 가정에 인터넷이 전부 보급되지는 않았던 시기였죠. 야후, 구글 따위가 미국, 적어도 뉴욕 전역에 상용화되었다고 해도 명헌의 동네는 광케이블같은 인프라를 들여올 자본이 없었어요. 설치되었다 해도 값이 비쌌고요. 덕분에 명헌은 종일 파란 유니폼의 정우성 선수만 생각하며 일해야 했지요. 동명이인 아냐? 엄청 닮은 사람? 혈연 관계? 아니, 상식적으로 NBA 선수면 연봉이 얼만데 그런 중고차를 사? 클래식 자동차 덕후인가? 그런 것치고는 자동차를 쥐뿔도 모르던데? …… 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명헌은 우성이 남긴 연락처로 다짜고짜 전화해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우성이 프로 선수라면, 아무래도 꺼려졌죠. 한창 시즌에 애쓰는 선수에게 시급을 다투며 물어볼 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명헌은 우성이 가게를 찾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주목받는 선수가 이런 허름한 중고차 판매장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지 못한 채로요.
바깥 공기가 쌀쌀해지던 때였어요. 우성이 드디어 노란 자동차를 털털 몰고 나타났습니다. 명헌은 우성이 반가워서 평소보다 10퍼센트 정도는 살갑게 맞이해줬어요. 그리고는 우리 카마로 잘 있나용~ 우성의 자동차를 집적거리고 자연스럽게 물었죠.
‘그, 직업이 뭐라고 했었지용. 운동선수?’
차를 맡기고 맛대가리 없는 커피를 마시던 우성이 끄덕거렸어요.
‘맞아요.’
‘농구 선수였나.’
‘네, 그거요. 형은 농구 관심 없죠?’
초롱초롱한 시선이 꼭, 아니라고, 농구에 관심 많다고 얘기해달라는 눈빛 같았어요. 우성은 명헌이 야구를 좋아한다는 걸 알거든요. 갑자기 관심이 생겼고 마침 농구 선수가 눈앞에 있으니 이제 농구 이야기를 하자고 기대하는 얼굴이었어요. 명헌이 얼버무렸습니다.
‘좋아하는 것까지는 아니고용.’
‘농구는 룰이 그렇게 안 어려워요. 아, 경기 보러 올래요? 농구 몇 명이서 하는 게임인지는 알죠?’
‘모르는데용.’
이제는 우성이 입이 트였어요. 농구 규칙부터 요즘 잘 나가는 선수가 누구인지, 우성이 소속된 팀이 얼마나 역사가 깊고 성적 부진으로 팬들의 원성이 얼마나 자자했는지……. 명헌은 그렇군용~ 하나도 알고 싶지 않았던 고객의 TMI를 흘려듣는 기분으로 설명을 들었습니다.
믿기지는 않지만 정말로 농구 선수였다니. 따지고 보면 웨스트 31번가 근방에서 일한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았어요. 거기 콘서트장은 농구 구단 경기장으로도 유명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 때 클럽에 왔을 때 1층에 있었던 친구들도 운동선수였을까요? 전부 게이는 아닐 것 같고. 우성 본인은 게이가 아니라 얘기했지만 명헌에게 숨긴 걸 수도 있잖아요?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라면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취향을 당당하게 밝히기 어려울 테니까요.
우성은 여전히 농구 얘기를 하고 있었고 명헌의 생각은 콩밭에 가 있었어요. 미국식으로는 옥수수 밭인가. 명헌은 괜히 우성의 자동차를 어슬렁어슬렁 살펴보면서 성정체성 얘기를 꺼내도 될지 어떨지를 고민하고 있었죠. 명헌이야 예전에 커밍아웃부터 집안 어른들과의 눈물어린 대화까지 다~ 나누었지만 쟤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그간 명헌이 파악한 바로는, 우성은 몸만 컸지 어린애에 가까웠거든요. 섹스, 자동차, 파티에 관심이 없는 20대는 미국에서는 너드 아니면 키드 취급을 받았어요. 우성은 둘 다에 속했죠. 농구 너드 아니면 체리 보이.
명헌은 이런 걸 주뼛거리며 말을 돌리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우성은 주변 사람들과는 달라서 살짝 망설여졌어요. 그래서 에둘러 꺼낸 얘기가 이따위였던 거죠.
‘궁금한 게 있는데용.’
‘네?’
‘선호하는 포지션이 있나용?’
탑, 바텀, 이런 걸 물어본 거였는데 명헌도 말해놓고는 아차 싶었어요. 이상하게 우성에게는 자꾸 작업 거는 멘트가 튀어나왔어요. 명헌은 속으로 이마를 열댓 번 치고는 우성의 대꾸를 기다렸어요. 혹은, 우성이 경멸하듯 쳐다보거나 언짢은 기색을 보인다면 아주 침착하게 오해를 풀어줄 변명을 뱉으려고 대기타고 있었지요.
‘포지션요? 올라운더이긴 한데.’
‘올라운더? 둘 다 한다고용?’
저 체격에 바텀은 신선하기는 한데……. 명헌이 곰돌이 푸처럼 흐린 눈으로 쳐다보니 우성이 억울하다는 듯 부연했어요.
‘나도 알아요. 체격으로 따지면 올라운더는 아니죠. 그래도 구단에서 지정해주는 포지션만 맡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걸 어떻게 해요.’
명헌은 진짜로 놀랐어요.
‘구단에서 그런 것도 정해줘용?’
‘당연하죠. 농구는 팀 경기니까요. 고향에서는 포워드 가드였지만 미국에서는 포워드만으로는 힘들거든요. 체격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포인트가드로 전향하긴 했지만, 프로 리그에서는 하나만 잘한다고 끝나지 않거든요. 게다가 리바운드도 미친 듯이 높이 뛰지 않는 이상에야 결국에는 경험과 센스 문제라서……. 형, 왜 그래요?’
‘농구 얘기였구나, 해서…….’
‘엥? 그럼 무슨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요?’
명헌이 차분히 게이 섹스의 포지션을 물어본 것이라 얘기해줬어요. 여기서 우성이 치를 떨면 남자와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거니까 제대로 사과하고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겠다 싶었지요. 사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인에게 물어보기에는 투머치 사생활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우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어요.
‘섹스에 포지션이 있어요? 게이들은 섹스를 특별하게 해요? 섹스는 그냥 섹스 아닌가?’
‘편견이 없다 못해 상식도 없네용.’
‘모를 수도 있죠. …… 근데 진짜로 뭐가 달라요?’
‘고리타분하게 말하자면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이 있는 건데용. 어디 가서 진짜로 이렇게 말하면 뺨맞을 수 있으니 조심하고용. 그런데, 우성.’
‘왜요?’
‘뒷좌석의 냉동 박스는 뭔가용?’
우성이 버럭 소리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엄마가 싸 준 냉동만두인데 형이랑 먹으려다가 까먹었다고 했지요. 찜기에 넣어 먹는 물만두였지만 문명의 이기 전자레인지에 넣고 솜씨를 부리니 그럭저럭 먹을 만 했죠. 그날은 분위기가 묘해지려다가 만두에 홀려, 어머니가 솜씨가 좋으시다는 칭찬으로 대화가 이어졌지요.
실컷 잘 먹은 명헌이 털털거리는 중고차와 함께 우성을 가게 밖으로 몰아냈어요.
‘근방 치안이 별로니 너무 자주 오지 말아용.’
‘여태 그런 소리 안했잖아요.’
‘돈 없는 학생인 줄 알았더니 돈이 넘치는 프로 선수였잖아용.’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학생은, 무슨.’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할 말이 없으면 입술 삐죽이는 게 우성의 버릇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우성이 저러고 있으면 명헌도 마음이 약해졌어요. 완전히 약해지는 건 아니고 아주 조금. 뜨개질 코바늘 하나 들어갈 정도의 얄팍한 틈이 생겼죠.
‘조심해서 다니라는 뜻이에용. 가능하면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용.’
‘에이, 괜찮아요.’
‘나중에 후회해도 난 몰라용.’
어깨를 으쓱인 우성이 또 놀러오겠다며 손을 흔들고 자동차를 출발시켰어요. 노을 탓에 노란 도색이 유난히 화려해 보이는 자동차가 명헌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우성은 명헌의 가게에 오지 않았어요. 명헌은 우성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면 스포츠신문을 뒤적거렸어요. 뉴욕의 팀은 연전연승까지는 아니어도 전년도보다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았고 사람들은 그걸 우성 덕분이라며 좋아했어요. 우성을 칭찬하는 기사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명헌은 같은 기사를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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