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자하] 지붕 위의 고양이

모용자하 교류회 <선생님, 의가에 고양이가 들어왔어요> 배포


약재를 살피던 손이 간간이 멈추었다. 눈빛은 고요했으나 그 아래로는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옆에서 약재를 다듬고 있던 흑백소소도 또한 손을 멈추고 모용백을 주시하고 있었으나 그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그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선생님, 오늘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냐?”

그 말에 정신이 든 모용백이 두 사람을 보았다. 백소아의 말에 흑소령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심마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제 선생님도 강호인이 되셨으니 예외는 아니세요.”

“그 말이 맞다.”

순순히 인정한 모용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등 뒤로 두 사람이 문주님이 오시면 도와주실 테니 그때까지는 아무 생각 말고 쉬시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용백은 두 사람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문주님인지, 문주 놈인지. 그놈이 준 병이 아닌가.”

말하면서 깨달았다. 그래, 병이다. 이건 틀림없이 병이라고.

모용백은 의술을 다양하게 익혔으며 약재에 해박하니 독공에도 재능이 있었다. 게다가 문주놈 덕분에 입문한 이화접목신공 또한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무공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 모용 아무개가 보기에, 이건 분명, 병이라고.

천하제일인조차 어린아이보다 약하게 만들고, 제갈량에 비할 만큼 탁월한 대 군사 조차 바보 천치보다 못한 멍청이로 만드는. 그런 지독한 병에 들어버린 것이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이마에 두른 흰 천을 풀어내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언젠가 이 천을 메었던 때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중병에 들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때였다.

*

그날, 이리저리 떠돌다가 제 마음 내킬 때만 돌아오는 고양이 같은 환자를 찾아 일양현에 갔다. 하지만 자하객잔에 도착하기 전에도 들리는 소리에 환자가 이미 떠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들 이렇게 환자를 반기고, 좋아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하는데. 대체 어딜 저렇게 싸돌아다니는지…. 애초에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가끔은 이 강호의 수많은 사람 중에 모용의가는, 그리고 이 모용백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물론 강호인에게 믿을 만한 의원, 그것도 명의는 목숨만큼 중요한 존재이니 그 자리가 작지는 않을 텐데….

속이 시끄러웠다. 허기나 채울 겸 객잔에 자리를 잡았더니, 장득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문주님이 일양현을 비우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오히려 드물지 않습니까?”

장득수에게 묻는 건지, 저 자신에게 묻고 있는 건지 모용백은 알 수 없었다. 장득수는 일하기 싫은 점소이처럼 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손님 몫의 두강주를 들이켜더니 잔을 내려놓으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이번엔 심상치 않아서.”

아마 값은 분명히 치렀을 것이다. 일양현의 사람들은 작은 일도 반드시 마땅한 비용을 지불하는 걸 잊지 않는다. 문주놈에게 물든 탓이다. 술을 마신 건 장득수인데, 왜 이렇게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지 모르겠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세상에 무서운 게 없고 미련도 없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위태로운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혹시 중병에라도 걸리셨습니까?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아니지, 아니야.”

모용백은 헛소리를 내뱉다가 머리를 흔들곤 했다. 아무리 보아도 실성한 사람은 이쪽이었다. 하지만.

문주놈은 성정이 불같아서 참을성이 없다. 반면 만년한철처럼 냉정하고 변함없는 면도 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 순간이 이토록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이번에야말로 죽을 수도 있다.

목숨만 붙여서 온다면 어떻게든 살려낼 수 있도록, 그런 날을 위해서 의술을 익혀왔지만…. 천하의 명의라 한들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그리고 교주라는 인물은, 강호의 재앙이다. 문주가 일으키는 걸 사건이라 한다면 교주의 움직임은 재앙이다. 사람이 어찌 천재지변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잠잠해질 때까지 몸을 낮추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재앙의 눈에 띄지도 않을 하찮은 미물이라 한들 어찌 그 영향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재앙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러면. 그러고 나면?

모용백의 걸음이 멎었다.

재앙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던가. 거기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면 자신은 그 무언가가 존재했던 흔적만을 이따금 추억하면서 멀쩡히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처럼 의술을 익히고, 환자를 보고, 때때로 왕진도 하러 가고, 의녀들을 가르치고, 가끔 약초를 캐러 산에 오르고, 틈틈이 무공을 익히는 것도 잊지 않고, 돼지통뼈를 좋아하는 의녀들과 함께 가끔 일양현을 찾고….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사는 게 맞나?

모용백은 묻고 싶었다. 그렇게 사는 게 맞습니까?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할 사람이 그 문주놈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놈은 이렇게 말하겠지.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선생. 선생의 마음은 선생의 것이야. 그 일부를 몰래 빼앗아 간 놈이 하기엔 지나치게 뻔뻔한 말이다.

“맞다. 내 마음은 내 것이지.”

그런데,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내 것인데도 내가 알지 못한다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세상의 수많은 의술을 익히면서 육신의 병은 물론 마음과 정신의 질병에도 어느 정도 안목이 생겼다고 여겼지만. 모용백은 그 자신의 마음만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정확했다.

문주의 흔적만 남은 자리에서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

“이럴 줄 알았으면 경공도 수련해둘걸.”

마음이 급했다. 어찌할 바는 알지 못했으나,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의가에 도착하자마자 모용백은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봇짐에 짐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모용백은 산을 오른 경험이 제법 많다. 그러면서 자연히 어울렸던 약초꾼들 또한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수많은 산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어도 화산만큼은 쉽지 않더라고. 모용백은 신발도 몇 켤레 더 챙겼다가, 그럴 자리에 약재를 하나 더 챙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 도로 꺼내 놓았다. 비단 교주뿐만이 아니라 마교의 수많은 고수가 그 자리에 있을 거다. 간교하고 자비 없는 술수로 유명한 놈들이니 역시 독도 준비해야…. 가장 지독한 것들로 엄선해서 봇짐 안에 넣던 모용백은 또, 돈도 두둑하게 챙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저 문주 놈이면 모를까 자신은 아직 경공까지는 익히지 못했다. 그러니 화산까지 빠르게 가려면 말을 타는 수밖에 없었다.

저희의 선생이 갑자기 의가로 뛰어 들어와서 짐을 부산하게 챙기고 있으니 의아하게 생각한 의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야? 선생님이 어디 가신대? 급한 일이 있으신가? 소곤거리는 소리로 이내 복작복작해졌으나 모용백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문주놈이 떠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고, 화산까지는 길이 멀다. 따라잡지는 못해도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도착하기만 하면….

 도착하면?

격전을 벌이게 될 곳이 화산의 어디일지는 몰라도, 자신이 접근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고수의 싸움이란 그런 법이니까. 그리고 만약 접근을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빠져나오는 것이야말로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결과가 어찌 되는, 그런 일에 휩쓸렸는데 멀쩡히 걸어 나올 수는 없겠지. 어쩌면 자신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사실 그렇게 될 확률이 극도로 높았다. 멀쩡히 살아 나올 수 있다면 그쪽이 기적이겠지.

쫒아가는 게 맞나?

그제야 남겨질 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문주놈이 죽고 저만 남겨질 일에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이대로 쫒아가면 사실 같이 죽게 된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러면….

정말, 쫓아가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그는 의녀들에게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의가가 어떻게 될지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없어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게 이런 때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모용백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될 줄 또한 꿈에도 몰랐던 탓이다.

“흑백소소, 의녀들을 전부 불러오도록 해라.”

그 말에 의녀들은 저희끼리 누가 없는지 살펴보더니 각자 제 동무를 찾아 돌아왔다. 그 사이에도 모용백의 머릿속에서 같은 질문이 들려왔다. 쫒아가는 게 맞냐고. 그는 자신에게 답하는 대신 흰 띠를 꺼내서 이마에 둘렀다.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하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해도,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

모용백은 화들짝 놀랐다. 기억 속의 목소리와 현실의 목소리가 겹친 탓이다.

“머리 좀 식히러, 산책 좀 하고 오마.”

“네, 알겠습니다.”

의녀는 모용백에게 끄덕 인사를 하고는 제 할 일을 하러 바쁘게 사라졌다. 당황한 나머지 산책을 다녀온다고 했으나, 정작 가고 싶은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하지만 괜히 어슬렁거리고 있다간 할 일 없는 문주놈이나 계속 생각날 것 같아서 문밖으로 나서려고 했는데….

“야옹.”

야옹?

그러자 문 앞에서 저를 멀뚱히 보고 있던 고양이가 화답하듯 소리를 내었다.

“냐아옹.”

잠시 후.

“선생님, 산책하러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려고 했는데….”

모용백은 설명하는 대신 품에 안은 고양이를 번쩍 들어 보였다.

“캬아옹!”

양쪽 옆구리를 붙잡고 들어 올리니 뒷다리가 대롱대롱하는 게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고양이는 꼬리로 모용백의 손목을 철썩 내리치더니 단숨에 뛰어내렸다.

“웬 고양이예요? 선생님. 의가에 고양이가 들어왔어요?”

“나가려는데 이 앞에 있었다.”

“그래요?”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은데…. 그냥 길고양이인가? 하며 흑백소소는 저희끼리 대화를 나누면서 고양이를 이리저리 살폈다.

“야옹아, 야옹아. 누굴 찾아왔니? 우리를 보러 왔니?”

흑백소소가 쓰다듬으려 해도 영 귀찮다는 듯이 꼬리를 철썩 내리친 고양이가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일단 먹을 걸 좀 챙겨 줄까요? 야옹아, 이리 온.”

그러자 고양이는 심드렁한 얼굴로 흑백소소를 흘긋 보더니 또다시 꼬리를 철썩 내리쳤다.

“귀찮은가 봐요.”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정말 왜 여기로 온 걸까?”

세 사람이 모여 있으니 점차 의녀들이 모여들었다. 그게 또 영 귀찮은지 고양이는 슬금슬금 구석진 곳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의가 밖으로 다시 나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날이 추운 것도 아니고,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쫓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저 고양이, 문주님을 닮았네요.”

누군가 그리 말하자 다들 맞아, 그러네, 하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소란 피우지 말고 일 들 보아라.”

“네, 선생님.”

온화하게 꾸짖는 말투에 다들 정신을 차리고 각자 할 일을 하러 갔다. 그러면서도 고양이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디 가지 말고 계세요, 문주님.”

“약재를 다 정리하면 놀아 드릴게요.”

의녀들은 고양이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서 키득거리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런데, 여태 심드렁하니 몸을 말고 있던 고양이가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야아옹.”

“어머, 정말 문주님이신가봐!”

다들 즐거워하고, 사실 딱히 바쁜 일들도 없긴 했다. 소란을 뒤로 하고 모용백은 자신이 늘 환자를 보던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한쪽 구석에서 의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고양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재빠른 몸놀림으로 모용백의 뒤를 따랐다.

“문주님, 선생님을 찾아오셨군요?”

“야오오옹.”

“어허.”

고양이를 쫓으려던 말에 애꿎은 의녀들만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만 놀고 일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정작 고양이는 이렇게 방석 위에 편하게 드러누워 있는데. 평소 문주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말이다.

“이번엔 무슨 기상천외한 무공에 당하셨습니까? 고양이로 변하는 무공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양이에게 말을 하던 모용백이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오라는 환자는 오질 않으니 애꿎은 고양이를 원망해보았다. 새카만 털이 푸석푸석한 게 목욕이라도 시켜둘 걸 그랬나 싶다가,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고양이는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눈을 깜박이면서 모용백의 얼굴을 살피는 듯하더니, 이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참으로 피곤한 고양이인 모양이다. 모용백 또한 별수 없이 다시 심마에 빠져들었다.

*

이런 날을 위해 의술을 익혔는데, 동네에 편히 드러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쫓아가는 게 맞는지는 몰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건 맞았다. 누군가 제 표정이 너무 불안해 보인다고 걱정하기에, 그제야 모용백은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불안하지 않을 리 없지. 문주놈은 경공이 빠르다. 자신이 따라잡았을 때는 이미 사체조차 남아있지 않을지도…. 이런, 제기랄.

쫒아가는 게 맞나? 아직도 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화산은 정말 멀었다. 말을 몇 번이나 바꾸어서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까마득했다. 낮에는 햇빛을 의지해 달리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을 의지해 달렸다. 지름길로 가면서 산적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만나면 만나는 거지, 하는 오기도 생겼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말을 달리기만 했더니 정신이 혼미했다. 그런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세찬 바람에 뺨이 얼얼했고, 달빛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돌연, 방향이 이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눈을 들어 보아도 화산은커녕 지척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골이 서늘했다.

언제 이렇게 깊은 어둠에 들어온 거지? 아니, 이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맞나? 마치 이 세상의 공간이 아닌 듯이….

그때,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쫓아가는 게 맞나? 응? 선생. 쫓아오는 게 맞냐고. 나는 선생이 죽으러 오는 걸 원하지 않아. 살아남으라고 무공을 준 거잖아. 같이 죽는 것보단 살아남는 게 훨씬 더 훌륭하지.

 모용백은 짜증스럽게 답했다.

“쫒아가는 게 맞냐고 물으셨습니까? 그런 건 모릅니다. 하지만 문주님이 저라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쫓아가고 있는 걸 어쩌겠습니까?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면, 마음이 가는 곳으로 몸이 따르는 수밖에.”

우리는 죽게 될 거야.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쫓아오겠다고?

모용백이 소리쳤다.

“내 마음입니다! 문주님만 멋대로 하라는 법이 있습니까? 저도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목소리도. 오히려 좋아. 사내라면 제 뜻대로 살아야지. 우리 모용 선생이 사내대장부였군. 그러니 내가 선물을 주지.

갑자기 눈앞에서 동그란 구체가 생겨났다. 빛의 공 같은…. 아니, 정확히는 음과 양의 기운이 한데 모여서 조화롭게 회전하는 듯한…. 

모용백은 그걸 처음 보았지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문주놈이 일월광천을…!”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

고롱고롱….

옅은 숨소리를 내는 고양이의 등이 일정한 속도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깊이 잠이 든 모양이다. 창호를 통해 들어온 오후의 볕이 고양이 위로 드리웠다. 그 광경을 한참이나 보던 모용백이 중얼거렸다.

“그거 아십니까? 제가 병에 걸렸습니다. 그것도, 죽을병에 말입니다.”

*

“괜찮으세요?”

모용백이 눈을 뜬 곳은 허름한 객잔이었다. 분명히 산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그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바라보자, 누군가가 의문을 풀어주었다.

“쓰러져 계시는 걸 저분들이 보신 모양이에요. 의원이시라고 들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당돌한 아이에게 모용백이 힘없이 웃어 보였다.

“그러게. 주화입마에 빠져들면 이렇게 되니까 조심해야 한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원이 아니라 강호인이셨어요?”

“강호인이 아니더라도 심마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어린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요란이를 닮은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저를 구해주었다는 약초꾼 무리는 낯이 익었다. 그들과 함께 국수를 먹고 나니 몸에 기운이 생기고 정신도 돌아오는 것 같았다. 화산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을 듣고 난 모용백은 다시 짐을 챙겼다. 갈 길이 험하니 몸을 조금 더 회복하고 가는 편이 낫지 않냐는 말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환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을 리 없겠지만 그렇게 말했다. 어떤가? 이 험한 길을 따라왔는데 다시 쫓아내진 않겠지. 어느새 뻔뻔한 것도 문주를 닮아있는 듯했다.

“그 환자가 위중한 모양이오.”

“네, 몹시 위중한 환자입니다.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지요.”

“대체 무슨 병이 그렇소?”

“그런 병이 있습니다. 아주 지독한 병입니다.”

아주, 아주, 지독한…. 모용백이 그리 중얼거리자 약초꾼들은 그것참 큰일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주놈의 광증은 아주 지독했으니까. 모용백은 광증 또한 죽을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놈의 광증 때문에 제 발로 사지로 걷는 사람이 저 앞에 있으니까. 그리고 광증 또한 전염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놈을 따라 제 발로 사지로 달려가는 사람이 여기에 있으니까.

이번엔 탈진하지 않기 위해 모용백은 잠도 자고 밥도 먹으면서 말을 달렸다. 중간중간 귀한 약재를 발견하면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막상 섬서 지방에 도착했을 때는 저 거대한 화산 어디에서 그놈을 찾아야 할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으나, 객잔에 들어서자마자 다행히 환자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하여간, 어딜 가나 화제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긴 했다.

매화장주는 좋은 사람일 거다. 화산을 오르며 모용백은 그리 생각했다. 옆으로 보이는 광경을 보면 네발로 기어 올라도 쉽지 않을 듯했다. 그러니 이 험한 화산에서 이렇게 두 발로 걸어 오를 수 있는 위치에 손님을 모실 공간을 마련한 매화장주는 좋은 사람이겠지…. 환자가 가까워질수록 광증도 심해지는 모양이다. 차오르는 불안을 어찌하지 못해 아무렇게나 내뱉고 있는데, 매화장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무언가 벌어졌음을 알리는 소리에 모용백의 심장이 저 까마득한 아래로 뚝 떨어졌다.

*

반 시진이 지났어도 고양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피곤했던 모양이다. 잠을 자려면 아무 데서나 자도 될 일인데, 굳이 이곳을 찾아들어 잠을 자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자리를 옮겨 고양이의 곁에 앉은 모용백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문주 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

매화장까지 어떻게 도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내내 빙글빙글 돌던 머릿속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인 순간 하얗게 불타버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의원 부르셨다고 해서 왕진을 왔습니다. 모용의가의 모용백이라고 합니다. 부상자, 있습니까?”

없으면 다행이고요.

긴장이 풀리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주저앉듯이 바닥에 앉았다. 저를 따라오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소속과 상관없이 치료하겠습니다….”

*

그렇게 간 보람도 없이 돌아오긴 했다. 문주 놈이 죽을 정도로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긴 했으나, 대신 자신은 병이 들었다. 아주, 지독한, 중병에.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쫓아간 게 맞았는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까칠한 털을 쓰다듬으며 그가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떄도 저는 똑같이 할 겁니다. 그게 제 마음이니까.”

그때도 자신은 봇짐을 챙겨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갈 거라는 사실.

“야오옹.”

어느새 눈을 뜬 고양이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는 눈을 깜박이며 모용백을 빤히 쳐다보더니….

“문주님, 어디 가십니까?”

모용백이 황급히 뛰어나갔다. 그런데….

“내가 온 건 어떻게 알았지? 그새 무공이 발전했나 보군.”

머리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모용백이 홱 고개를 돌렸다. 광증의 원인. 살아 움직이는 심마가 저를 찾아온 것이다. 문주는 지붕 위에서 두 팔로 머리를 받친 채 드러누워 있었다. 그가 심드렁한 눈으로 모용백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반만 맞고 반은 틀렸군. 여기서 조금 더 쉴 생각이지 갈 생각은 아냐. 그러니 더욱 수련에 정진하도록.”

따뜻한 방에 푹 잠을 청한 고양이는 담장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의녀들이 문밖을 향해 또 오라느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말고 문주가 또 있어?”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일단 내려오시죠.”

“확인.”

문주는 훌쩍 뛰어올랐다가, 가볍게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쫓아가는 게 맞냐고?

모용백은 속으로 답했다.

당연하지. 마음 가는대로 사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고, 내 마음 또한 이 사람에게 있으니까.

세상이 보랏빛으로 물드는 시간에, 그렇게 모용백은 또다시 자하를 만났다.

"선생님, 의가에 고양이가 또 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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