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젠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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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by L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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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의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뜬다. 익숙하면서도 전혀 다른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다. 흐릿한 정신을 붙잡으며 시계를 바라보면 8시 33분, 답지 않게 늦잠을 잔 이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닫혀 있던 방 문을 연다. 그리고…….

‘나’를 발견한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몸을 감싸듯이 덮고 있는 긴 머리카락을 깨닫는다. 평소보다 묘하게 낮아진 눈높이도, 확연하게 가늘어진 팔도, 그보다 가장 먼저 뇌리로 꽂히는 것.

‘나’의 웃는 표정이 저랬던가?

평생 이런 몸을 가져본 적이 없었노라, 이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몸인지 모르겠노라, 노력으로도 가질 수 없던 것을 하사받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노라…….

음율이 섞인 것 처럼 나른하고 즐겁게 떠드는 목소리가 예민해진 귓가를 울린다. 행복한 낯을 한 이의 표정을 마주하는 것이 묘하게 거북하다. 당연하지 않는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여 빼앗겨도 된다고 입술 끝에 내뱉은 적은 없다. 잔뜩 예민해진 신경에 몸이 반사적으로 모든 감각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낀다. 그 사이에 깨닫는 또 다른 정보가 뇌리를 다급하게 스친다.

잠깐, 그렇다면 몸 안에 있는 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익숙하게, 혹은 반사적으로 맞잡힌 커다란 손이 제법 따스한 온기를 가진다. 그러나 올려다본 시선은 북극에 가도 이것 보다는 따뜻할 지경이리라.

그 무엇보다 냉소적인 표정을 짓던 ‘나’는 몸의 주인을 바라본다. 그는 반사적으로 시선 끝의 의미를 찾는다. 붉은 빛의 눈동자가 곱게 휘어져 웃어보이고, 그가 알지 못하는 틈에 맞잡힌 손이 놓아진다. ‘나’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는 대신 단어의 나열을 내뱉는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는 언어란 모른 척을 하기에도 어려운 종류의 것일 터다.

귓가에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미련 없이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다급하게 뒤따라가려는 걸음이 추를 단 것처럼 무겁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낯선 기분을 느낀다. 자꾸만 팔에 달라붙는 긴 머리카락이 시야도 함께 방해한다. 불유쾌한 상황의 연속에서 그는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만 가는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는 방의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뜬다. 익숙하면서도 전혀 다른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다. 흐릿한 정신을 붙잡으며 시계를 바라보면 8시 33분, 답지 않게 늦잠을 잔 이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닫혀 있던 방 문을 연다. 그리고…….

‘너’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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