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어느 카페
커피를 그렇게 진하게 마시면 사람은 죽어요.
사람은 언젠가 죽긴 하지?
작작 마시라는 뜻이라구요.
이젠 주문도 안 받아 주면서.
보고 있기만 해도 심장이 뛰는 듯한 검은 색의 원액 대신 차가운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 두 잔과 무화과 케이크가 담긴 쟁반을 들고 가며 마침 마지막 주문까지 마친 점원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다. 테이블과 테이블 당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어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프라이빗을 지켜 주는 듯 굳건하게 서 있는 칸막이 또한 다른 이들의 시선 같은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가게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만족스러운 서비스 중 하나로 취급 받고 있다.
그래서 인지 케이크가 특히 맛있는 이 카페에는 종종 만나면 안 될 이들이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보통의 경우에는 다른 손님들을 보기 힘들게 조성된 카페의 특성 상 그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걔 이번에 신곡 앨범 낸 거 봤어?’
‘당연하지, 루스 요즘 왜 이렇게 활동 많이 해? 돈 없나?’
그러나 그런 조건 속에서도 발 없는 말이 공기를 떠돌아 당사자에게 닿는 확률을 계산하자면……. 바로 지금 되시겠다. 그래, 방금 막 나온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커피를 평소처럼 마시려다 제대로 목에 걸린 바람에 같이 온 동석 자에게 휴지를 건네받고 있는 저 흰색의 사람 같은 경우 말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뒤 잠깐의 휴식을 취하러 왔다가 날것의 평가를 들어버린 당사자의 존재가 바로 뒷좌석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이들은 저들만의 품평을 이어간다. 대부분의 것들은 개인적인 사감에 의한 것들이라,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인 이야기 들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전혀 아니었는지 점점 고개가 숙여진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싼 이의 모습이 금방 이라도 어떤 구멍을 찾아 들어갈 것만 같아서, 본인의 활동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것에 익숙할 것이라 생각하던 동석 자의 의아함을 자아낸다.
의외로 부끄러움 엄청 타네.
너는 안 탈 것 같아?
이런 상황 자체가 안 일어나는 편이지.
진짜 짜증 나 외젠 아자니…….
적당히 연하게 희석된 아메리카노와 무화과 케이크를 만족스럽게 해치운 이가 들고 있던 서류를 마저 확인하기 시작한다. 며칠 전 다녀온 던전 공략에 관한 보고서를 형식적으로 작성해야만 하는 타자 소리가 이어지고, 다 마신 커피의 리필 또한 그가 담당하기로 한다.
보고서가 전부 작성되고 나면 방에 가져가기 좋을 법한 가벼운 디저트를 골라 포장하기로 한다. 두 사람이 타르트 세 개가 담긴 종이 박스 하나와 서로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서면, 딸랑이는 쾌청한 종소리가 그들의 뒷모습을 배웅한다.
글쎄, 찰나에 자리에서 일어나 스쳐가던 이를 알아본 뒷좌석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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