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테라연 300일 크리스마스 기념
거리에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곳곳에 트리처럼 꾸며둔 나무들이 줄지어 빛을 내고 있는 한밤중.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었다. 늦은 밤인데도 거리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었으며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보내고 정각에 맞춰 크리스마스를 보내려 하는 연인들 역시 가득 차 있었다. 주변의 식당에는 이미 외식을 나온 연인과 가족들로 북적여 쉴 틈 없이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으며, 건너편의 베이커리에선 케이크가 불티나게 팔려 이미 매진되었다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에 홀로 거리를 걷고 있는 단 한 사람, 연은 하얀 입김을 내며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웃는 연인들, 무엇이 그리 좋은지 단체로 손을 꼭 잡은 채 걷는 가족들. 여태까지의 그는 크리스마스가 즐거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이미 연을 끊은지 오래였고, 제 연인과 연애를 하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탓이었다. 어쩌면 그와 만난 이후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것은 처음이 아닐지도 몰랐으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제 곧 1년이 다 되어가는 것도, 당장 몇 시간 뒤가 크리스마스라는 것도 그에게 들이닥친 현실이었다.
보통의 연인들은 뭘 주고받더라? 주변의 연애사정은 들었으나 직접 연애를 해본 적은 없는 그는 몇 주간 선물을 고민하였고, 비밀리에 준비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탓에—그들 사이에 비밀이 있을 수가 있는지부터 의문이기는 하지만—그를 피한 것도 벌써 며칠 째였다. 이러다 진짜 한 바탕 싸우겠다 싶을 때 즈음 연은 오늘 아침부터 알바가 있으니 바쁠 것이라는 말만 한 채로 집을 훌쩍 빠져나온 상태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상태였다. 테라가 무엇을 좋아할지, 그의 기분이 어떠한지가 가장 중요했으나 연애가 처음이고, 이렇게 오래 누군가와 같이 인연을 맺은 것 역시 처음이었던 그는 모든 것이 서툰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 역시 그를 알고 있던 이라면 어쩌면 한 번 정도는 겪고 가야할 일이었다 생각할 법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있다는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테라에게 줄 선물을 위해 여태껏 돈을 모아왔고, 오늘의 일 역시 그 선물을 사기 위해 일일 알바로 투입된 것 뿐이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연말연시의 일들은 대체로 이벤트성이 많았고, 그런 이벤트성을 가진 것들은 대부분 손님이 몰려 갑작스러운 인원 투입이 주된 일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해본 적 없는 알바가 적은 그에게 있어서 이런 이벤트성 아르바이트는 그에게 아주 좋은 기회나 다름 없었다.
통장에 두둑히 들어온 잔고를 떠올리며 길을 거닐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악세사리를 파는 가게, 케이크가 대부분 팔려나가고 있는 베이커리, 온갖 선물을 진열해놓은 상점. 통유리 진열대에는 LED 전구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며 꾸미고 있었다. 그러나 이거다, 할 만한 무언가가 꽂히는 것은 없었다.
장신구를 선물해주기에는 이미 그가 너무도 반짝였다. 이미 반짝이는 이에게 장신구를 주어서 무얼 하나. 그렇다고 케이크를 선물해 가기에는 너무 식상했다. 그럼 다른 것? 다른 것은 무얼 주어야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깊은 한숨만 세어나왔다. 길 구석에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았다. 대체 뭘 줘야하지? 뭘 줘야 그 녀석이 좋아하지?
"하아아......"
뭘... 줘야할까...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뭐 없나? 진짜 뭐 없어? 그런 생각만을 가지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꽂히는 것은 없었고 그대로 다시 주저앉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을 돌린 곳에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그의 손에는 조그마한 선물 상자가 들려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12월 24일 오후 11시 59분. 크리스마스 1분 전, 300일이 지나기까지 몇 십초. 여전히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전해줘도 괜찮을까? 좋아할까? 아니, 애초에 그 녀석이 지금 깨어있을까? 모든 것을 알 수 없었고 의문만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이거... 괜찮을까? 화나지 않았을까? 그제서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망치고 나와서는 하루종일 밖에 있었는데 테라가 화를 내지 않을리가 없었다. 아마 들어갈 때까지 화를 삭히며 잠들지 않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선물 상자가 들린 손의 반대쪽에는 작은 케이크가 하나 들려 있었다. 굉장히 무난하고 평범한 쇼트 케이크. 새하얀 눈 같은 생크림 위에 딸기가 올려져 있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케이크였다.
"......좋아."
"계속 거기서 서서 뭐하냐."
"......까, 깜짝이야."
"안 들어오고 뭐해."
"들어갈 거야. ...다녀왔어."
결심을 굳게 했을 때 현관의 문이 열리고 그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태 들어오지 않아 찾으러 가기 위해 문을 열었던 것인지 실내복에 겨울용 코트를 걸친 채였다. 어째선지 머쓱해진 바람에 조심히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래서, 왜 여태까지 밖에 있었어? 그것도 하루종일. 부엌의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취조하듯 지그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차마 그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시선을 슬쩍 피하자 어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같이 맞섰겠으나 지금은 명실상부한 죄인이나 다름 없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케이크를 숨긴다고 뒤에 숨겼으나 제대로 숨겨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어차피 화난 거 그냥 다 털어놓자. 이미 망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식탁 위에 케이크 박스를 올려두었다. 이게 뭐냐는 시선에 그는 얌전히 그 옆에 선물 상자를 올렸다. 이게 뭔지 순순히 말해라는 눈빛에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다소곳하게 앉았다.
"...크리스마스잖아."
"......그래서?"
"선물, 사느라......"
"......"
"......"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몇 분이나 이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의 체감상 5분 이상은 지나간 듯 느껴졌다. 거실에 자리잡고 있는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째깍, 째깍, 하고 집안에 울려퍼졌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긴장되는 것이 얼마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알바 면접 갈 때도 느낀 적 없는 긴장감을 지금 느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테라가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것은 작은 선물 상자였다. 상자를 감싸고 포장한 리본을 부드럽게 풀러내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침대 옆에 놓기 적당한 크기의, 안에 눈사람과 하얀 나무가 들어가 있는 램프와 같은 모양의 LED 무드등과 스노우 볼을 겸하는 것이 들어있었다. 300일이었기도 하고, 크리스마스기도 하고, 하니까... 하며 우물쭈물 말을 꺼내는 그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테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내가 화내기도 힘들어지는 거 알고 그러는 거지, 너."
"아닌데...?"
"아악, 진짜, 너, 진짜...!"
잠시 화를 내는 듯 하다가도 어휴, 그래. 내가 너한테 어떻게 화를 내겠냐. 라며 깊게 한숨을 내뱉고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선물, 고맙다. 라며 밝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테라를 보며 그 역시 안심한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창 밖에서는 눈송이가 사르르 내리며 크리스마스의 첫 시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Merry Christmas, M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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