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무엇이

C by 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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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이 더 이어지지 않는 곳에서 같이 끊기고 싶었어요.

 

용기까지는 과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의 동기는 당신이었으므로 그것을 용기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기만이었을 일이다. 준은 언젠가부터 삭막함이 이끼처럼 들러붙은 호그와트의 벽을 느리게 더듬었다. 공기가 허공을 짓누르고 시선이 지팡이의 끝, 주문의 말단부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드는 생각. 시계 초침 소리가 곧 징벌마냥 느껴지는 시간의 끝. 키가 커버린 탓에 종아리를 치는 망토의 노란색이 어쩐지 어둡데 느껴진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이기에.

선택받은 그 아이가, ··· 그 초록색 눈의 소년이 돌아오겠지. 당신은 괜찮을까? 뱀이 찢기고 허물을 토하는 것처럼 붉은 피가 터져 나온다 검은 드레스 장례식 피 피가 솟구친다 장례식의 엄숙함은 없다 나는 내가 지켜온 걸 그 지켜온 것은 무엇이었어요 우리? 한순간에 버릴 만큼 이건 버린 거였던가 아니 이것은 지킨 것 용기 있지는 않아 이게 용기가 아니면 뭐예요 생각이 짓누른다. 속을 짓누른다. 무엇이? 알지 못한다···. 플라스틱병을 짓누르면 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나는 뭐가 나올까. 벽에 끼인 벽돌들의 개수, 그리고 돌의 거친 표면이 여전하다. 혀끝이 기어코 벽과 같아진다. 거칠어진다.

 

언제 오려나···.

 

해리 포터가 돌아오면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이 호그와트는 마지막 접전지이자 결전지가 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의 이기로 아이들의 만용을 허락할 수 없다. 잠깐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머리가 영 어지러워진다. 생각이 많아지는 만큼 혀는 무거워질 때였다.

켜지는 불, 드문드문 들리는 환호성.

 

그 사이로 이어지는 발걸음 소리, 준은 이 걸음 소리를 익히,

 

알고 있다.

아니, 들어왔다.

 

걸음이 닿는 소리, 그 무게며 습관 따위를 모를 수 없다. 항상 밝은 태양 아래에서 기어코 빛나던 사람의 것을 준은 알고 있다. 모를 수 없다. 얼핏 냉하게 생겼던 얼굴이 그 태양 아래에서 빛나고 있으면, 접힌 눈동자가 다만 광물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그 머리카락이 반사체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그러니 그 사람의 붉은 색은 언제고 타오르는 색이라는 것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아…. 모를 수 없다.

 

··· 당신,

 

준의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혀끝에 고인 침이 목으로 넘어간다. 목이 메여 든다···. 누군가가 꼭 목에 손을 얹어 누르는 것 같아서. 단순 기뻐할 수가 없어서, 아, 결국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터져버려서. 울 수는 없었다. 당신이 돌아온 날 울 수는 없다. 걸음을 겨우 옮겨서, 흔들리는 걸음에도 몸을 다시고 세우고, 걸음을 한 발자국씩 떼고 앞으로, 옮겨서. 목이 메는 와중에도 다시 돌아온 당신에게, 당신의 앞으로.

 

늦었잖아요···.

 

손을 뻗어 끌어안았다. 끌어안은 품에 한 사람을 온전히 담으면, 심장 박동이 들릴까. 심장 박동을 들으면 그 박동만으로 나의 감정을 다 말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더해야 할까, 알지 못한다. 알 수 없었다. 환호성이 기저에 깔리는 것으로 그 박동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손목을 차마 쓸어내리지 못하는 준은,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태양을 바로 선다.

 

올해의 반전, ···으로 충분한 듯하지?

 

루르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았나?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상기되어 있었다. 기어코 자신을 옭아맨 그 모든 것을 벗어낸 사람이라서, 자신이 사랑한, 자신을 사랑한 사람을 다시 만나서, 아직 서로가 둘 다 살아있기에. 죽음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두렵다. 그렇다면, 죽음을 겪은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상실은 때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바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 이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주위의 사람들은 휘저어낼 수 있었으나 그 가운데 선 루르의 표정은 바뀌는 것이 없었다. 그저, 준을 끌어안고 웃음을 내지었을 뿐이다.

 

준은 기억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했던 그 날의 루르를 기억한다. 검은 드레스, 언제고 빛났던 얼굴이 수요일의 아이마냥 죽어있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그 사람은 없다.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빛나던 사람이 이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아, 그래. 자신은 당신이 이러기를 바랐다. 당신이 당신으로서 살아있기를 바랐다. 그것이었다. 바스러지길 바라지 않았다. 그 빛나는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고, 웃으면서, 날아다니는 당신을 원했다. 그래, 그것으로 족하다. 당신, 그 날은 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았어요. 두 눈이 루비 같았어요. 머리카락은 그저 거울 같았어요. 피부는 도자기 인형의 도자기 조각 같았어요. 그러니까, 나는, 그 날의 당신이··· 당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입은 열리지 않는다. 주변이 잦아드는 탓일지도 모르는 것이고, 어쩌면 시간의 부재로 인함이다. 그래도 시계의 초침은 더 이상 징벌이 아니다.

 

보고 싶었어요.

 

살아있는 당신을, 당신이 당신으로 존재하는 순간을. 맥박이 뛰고 있는, 아니. 나는 당신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세상을 구한다는 것은 너무 과한 꿈임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이야기에서고 옳은 꿈이다. 그러니 두려웠다, 준은. 차마 그 며칠 전의 루르가 동공으로, 시야로 담은, 마지막 루르일까봐. 목소리가 떨려든다. 시선을 마주하면 기어코 눈물이 터져버릴까 두려워, 조금 더 끌어안았다.

 

그래서 돌아온 거야. 네가 보고 싶어서.

 

단단한 목소리가 남자의 말을 끌어안는 듯 되돌아온다. 언제고 생각을 읽을 수 있음에도 그럴 필요가 없는 남자를 루르는 안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고 닿아 머리카락이 손가락 끝에 엉켜 드는 남자를 안다. 시선의 끝을 따라갈 필요도 없이 항상 시작과 끝이 자신에게 있었던 준을. 축축한 공기를, 조금은 어스름했던 새벽의 시야가, 어두웠던 그 날의 벽을, 떨렸던 목소리를. 루르 또한 전부 다 기억한다. 모를 수 없다. 준이 하늘 아래의 루르를 잊지 못하듯이. 루르는 손을 뻗어 준의 뺨을 느리게 쓸어낸다. 손가락 끝으로 콧대 옆에 찍힌 점까지 느리게, 마치 인식을 하듯, 태초의 관습인 듯.

 

갈 거예요?

 

말의 시작이 조금 늦었다. 이 대답을 이미 준은 알고 있는 탓이다. 당신의 그 상복 같은 검은 드레스는 이제 없어서, 그러니 그런 당신은 이제야 웃고 있어서. 그런 질문을 하고서도 준은 자신이 왜 그런 질문을 해버렸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같이 가고자 하는 기대는 이미 당신의 얼굴을 본 순간에 다 떨어뜨렸음에도. 혼자 갈 거예요? 라는 말을 결국 다 내뱉지 못했다. 준은 그것이 아마, 시선이 맞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눈동자가 다시고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살아있고, 타오르고,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가야지. 나는 널….

 

사랑하니까. 네 앞에서 있는 내가, 네가 기억할 내가 그 날의 내가 아니길 바라니까.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원하지 않으니까. 기어코 그자가 우리의 세계를, 네 피를 부정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니까. 네가 학교에서 혼자 있었을 시간을 생각하고,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그들과 서 있어야 했음을 난 아니까. 루르는 다른 모든 이유로도 단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루르를 버티고 설 수 있게 한 것에 준이 있다.

엉키고 설켰던 날들을, 루르가 혼자 관계의 직조물을 풀어냈을 시간을, 그 무게를 전부 감당했을 시간을, 지금까지의 일을 다 풀어내기에 두 사람의 시간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이미 꼬이고 뒤틀어 보내는 짧은 말들, 그러니 그 안에 깃들게 한 수많은 기억, 언제고 끊어낼 수밖에 없는 시간은 결국에는 도래한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그리고 주문이 하늘로 쏘아 올려진다. 시간은 사랑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자, 이제 가.

루르는 준을 느리게 밀어낸다. 그 손의 온기는 몇 도지? 준은 그 온도가 뜨겁기보다는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타오르는 사람임에도 그 온도는 따뜻하다. 준의 눈동자가 루르를 온전히 담아낸다. 하나, 둘... 다시고 새긴다. 루르를, 가장 깊은 곳에. 루르의 그 말은 진심이었을까? 준은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해요.

클리셰, 지겹고 예측 가능한 진부한 표현, 설정 또는 상황 등을 가리킨다. 왜 클리셰가 생겼을까? 그 답은 어쩌면, 클리셰의 상황은 기억에 남아 여럿 회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준은 그래서, 그 클리셰와도 같은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면서. 일그러진 동시에 누구보다 후련한 얼굴로. 루르의 손 끝을 쥔 채로. 터지는 주문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에 심장 박동 소리를 가리면서.

언제나 그럴 거야.

나 또한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손끝을 놓는다. 이제 돌아가,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두 사람의 시간이 결국은 만났으므로 그것을 목적으로 준은 이곳까지 온 것이므로. 살기를 바랐으니까. 다시고 하는 작별 인사.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루르의 걸음은 이제 그 난장으로 향해야 했다. 남아있으면, 주저하면 다시고 이 시간을 계속, 빼앗고 싶었을 것이니까. 그러므로 두 사람은 다시 갈라선다. 다시고 작별을,

잠깐의 적막. 루르는 손을 놓은 상태에서, 겨우 말라붙은 입술 새로 말을 꺼내들었다.

··· 마지막까지 함께 있고 싶었어.

아, 이것이 루르의 진심일 것이다. 당신은 내가, … 남아있기를, 함께하기를. 나는, 아이들을 보내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을, 그러므로 준은 떠나야 한다. 우리가 이어지지 않아도 우리를 기억할 아이들을 보내야 하므로, 움직여야 한다. 준은 루르를 바라본다. 무언가를 받기보다는 주는 것이 익숙한 사람의 소망, 갈망···. 아, 그렇다. 준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옳은 일을 해야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옳은 일은, 바로…

아이들을 살리는 것.

그러므로 준은 움직여야 했다. 아이들을 살려야 하니까. 결국 준은, 움직였다. 걸음을 뗀다. 등록된 포트키를 사용할 순 없다.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포트키라면 모를까, 머글본 아이들은 다시 머글 부모에게 보내야 했다. 그것이 준이 해야할, 옳은 일이므로.

우리는 이 결말을 알고 있다. 결국, 준은 걸음을 돌린다. 아이들을 전부 보내고, 다시금. 나는 당신의 옆에 서있고 싶었어요. 그림자라는 이름으로도 좋아요, 태양이 있다면 자연히 생기는 그림자도 괜찮아요.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라면 함께 추락해도 좋아요. 산화해서 남은 재가 될게요, 당신의 반응이 되고 싶어요. 걸음이 빨라진다, 숨이 차오르고 박동이 터질 듯 달아오른다. 갈게요, 지금. 마지막을 함께 할게요.

그러니, 

그러니, 두 사람의 마침표는 지나치게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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