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ing
하제현지
너는 언제고 죽음이 장난인 것처럼 굴곤 했다.
은하제 대리는 품 안에 한가득 꽃을 끌어안았다. 버스럭거리는 포장지 소리, 구겨지는 옷가지에 생화 향이 묻어난다. 아직 물기를 머금은 하얀 튤립의 모가지가 언제고 뚝뚝, 끊길 것만 같이 팔랑거렸다.
이 회사에 들어온 이상 삶을 갈구하지는 않았다. 은하제는 오로지 하나의 복수를 위해 입사했고, 그 목적을 이루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굳이 죽음에 목 매이지는 않았으나 삶을 열망하지도 않았다. 동전 한 면과도 같은 삶에서 뭘 바라냐,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리님,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
재수 옴 붙는다, 새끼야.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담배를 피웠던가? 연초 끝이 생명선처럼 타들어 갔었나, 분명 네게 했던 말은 기억이 나는데 영 상황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면서 네 머리를 손으로 눌렀었나, 아니면 담배를 껐었나? 어쩌면 허이고,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정장 재킷을 고쳐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너는 죽지 않았다.
죽을 것 같아요,라는 말이 무색하게 너는 죽지 않았다. 아득바득 살았다. 주저앉아 있는 시간이 있을지언정 새로운 괴담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 뭔 네 잎클로버를 찾지도 않았고 아이템을 들고 가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네 죽음이 곧 삶의 동의어라고 생각했다.
동의어와 동음이의어를 같이 보는 실수를 범했다. 언제고 현장의 실수는 방심에서 오는 법이었고, 그 방심은 순간의 특종이 된다. 너의 부고는 1면에도 실리지 않을 특종이었다.
— 칙, 치직.
Q. 원래 있던 괴담이었나요?
A.... 새로운 괴담이었습니다. ■과장이 무조건 사람을 많이 투입해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었죠.
Q. 안은 어땠습니까?
A. 조커 게임이었습니다. 저희 말고 다른 팀들도 다 다른 종류의 게임에 참여했고, 무작위로 선출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팀원과 같은 테이블이었습니다.
Q. 어떻게 죽었죠?
A. 마지막에 □팀원이 조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팀원이 그 조커 카드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약 10초 후, 조커 카드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습니다..
이상으로 기록 GEC-2749호-383번.
은하제 대리가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마지막, 한 장이 남기 전 조커 카드를 가지고 있었던 건 은하제 대리였다. 글렀네, 하는 생각 정도야 들었을 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저항할 생각은 없었다. □는 그런 은하제를 보고 웃었다. 왜? 하는 생각도 잠시, □는 은하제의 조커 카드를 들고 갔다. 손 끝이 스쳤다. 따뜻했다. 피가 흐르고 있어서, 심장이 뛰고 있기에. 입모양이 움직인다. 은하제가 입모양을 기억하려는 순간,
그리고 피는 결국 카드에서 터져 나왔고 심장 박동은 외려 비명으로 찢어졌다.
은하제는 입모양을 복기한다.
Trick or Treat!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말을, 항상이고 장난이었던 말은 지금은 진심이었던가? 갬블러는, 괴담은, 그 공간은, 조커카드는, 언제 있었냐는 듯 녹아 사라지고 자신은 D조 소파에서 눈을 떴다는 걸, 알게 된, 은하제는... 아, 이때 너는 죽었다. 삶에서 장난처럼 죽음을 토해내던 너는 죽음 끝에서도 장난처럼 역류하고 말았다.
동이어와 동음이의어를 착각하는 실수는 잊히기 쉬운 게 아닐 텐데 네 죽음은 쉽게도 잊혔다. 사망 처리가 되고 포인트는 사라졌다. 언제 자리가 있었냐는 듯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그리고 공백. 스페이스 바를 몇 번이나 두드려 낸 걸까. 오보여야 하는 기사였다. 정정 기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속보는 나오지 않았다. 윤전기는 세워지지 않았다.
은하제는 결국 그날 하얀 튤립 꽃다발을 사 왔다. 비석도 없는, 무덤도 없는, 하다못해 제도 없었던 장례식을 위한 헌화식이 었다. 눈 밑이 물러터진 탓에 따끔거렸다. 가을 낙과도 이것보단 덜 물렀겠다.라는 자조 섞인 중얼거림이 구겨지는 튤립의 꽃잎 새로 사라진다.
은하제가 이현지의 사원증, 그 위에 적힌 이름을 손가락으로 오래오래 쓸었다는 사실은 위키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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